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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Oct 28. 2020

제1장.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엄마

1. 서른이 넘어도 익숙해지지 않던(1)


3년 전이었던 2017년 여름, 친척들 중 가장 선한 인상을 지닌 둘째 고모가 간암 투병 끝에 일흔도 되지 못한 생을 등지셨다. 나는 돌아가시기 직전 고목(枯木)처럼 짙은 색으로 변해버린 고모의 얼굴빛을 기억한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놓은 게 고모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 실은 많이 울지 못했다. 남들보다 이른 연세에 맞이한 죽음이 가슴 아파 울었지만, 고모와의 추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그가 살던 대전과 내가 살던 서울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아득해 기억나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커다란 눈망울로 언제나 다정하게 "OO이 왔니"라고 했던 일만 떠올랐을 뿐이다. 고모가 "OO이구나" 할 때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존재를 재차 확인해주며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다.

우리 가족은 어쩐 일인지 친척 간의 왕래가 잦지 않았다. 나의 부모가 갑작스레 이별하게 된 중학교 2학년의 여름 이후로 더욱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짐작일 뿐이다. 어쩌면 부모가 헤어지는 그런 일은 나에게만 큰 사건이었을 뿐 친척들에게는 그리 큰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OO네가 이혼했대" 정도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내 아버지를 포함한 아홉 명의 형제지간에는 그리 끈끈한 우애를 다질 여유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남의 집 소작농으로 지내며 자녀들을 힘겹게 먹여 살려야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녀들 간의 우애까지 북돋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존 외에 다른 가치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척에 살며 왕래가 잦았던 친척은 없었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을 하기 전의 가족앨범 속에는, 어린 우리들이 작은 아버지네와 넷째 고모, 막내 고모네 가족들과 서울대공원에서 보냈던 행복한 한 때를 담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너무 오래되어 잊고 있었을 뿐 우리는 추석이나 설마다 공주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다 같이 모이곤 했던 꽤 단란한 대가족이었던 것도 같다.

어쨌든 내가 중학생이 되어 힘겹게 1학년을 보내고 사춘기의 급변하는 호르몬 변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 엄마는 조용히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도 조용히 이뤄졌으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엄마에게 무관심한 가족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그때까지만 해도 인생을 낙관할 줄만 알았지 불행을 예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4월,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나는 그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엄마를 붙잡지 못했다. 모든 게 꿈이거나 거짓말 같았다.


엄마가 사라진 뒤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이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집에서 엄마 없이 어떤 삶이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엄마 없이,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상태로 무려 스무 해를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둘째 고모가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하고 병원의 안내에 따라 시신을 지방의 장례식장으로 이송하는 절차까지 모두 마친 뒤, 가족들은 병원 내 식당에서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식사 장면이 그때의 기억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아빠와 동생은 오지 못했기에 나는 다른 식구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 식탁에서 다 큰 자식에게 끝없이 "OO아, 이 것좀 더 먹어봐." 하며 끝없이 반찬을 권하고 밥 위에 얹어주던 시퀀스가 펼쳐졌다. 누군가에겐 아주 당연하고 일반적인 상황이었지만,  내게는 잊고 있던 엄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었다. 사실 향수보다는 낯선 감정이 더 컸는데, 엄마를 그리워하기에는 엄마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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