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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Nov 05. 2020

서른이 넘어도 익숙해지지 않던 (4)

어른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스물다섯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해 2년 만에 불가피 퇴사한 나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대학 시절 동안 하나의 직업만을 생각하며 달려왔던 터라, 해당 업종을 제외한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첫 직장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보지 못하고 다분히 감정적으로 바라봤던 터라, 사회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감정과 내가 몸 담았던 직종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인해 생긴 번아웃 증후군 등이 뒤섞여 새로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당시의 잘못된 선택을 만회할 수 있을 만큼 젊었다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선택을 되돌리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해야 했다. 당시 일주일에 삼일을 퇴근 후 소주를 마시며 허비했는데, 계단에서 술을 마시고 구르면서 다친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뼈에는 여전히 글씨를 쓸 때마다 느껴지는 이물감이 남아 있다. 비단 내 인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이의 인생이었다고 할 지라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시기다. 누군가 내 인생을 붙잡아줄 어른이 있었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첫 직장을 퇴사한 스물일곱의 2월부터 6월까지는 내게 의미 있는 시기였다. 퇴사 후 처음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장문의 글을 노트에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일필휘지로 노트의 삼분의 일 가량을 채우며 두세 시간을 카페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어떤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hope'과 'eternal'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be the hopeternal'이라는 제목을 노트에 붙였고, 그 노트를 지금도 가끔 꺼내본다.


그 노트에 적힌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까지의 나는 '가족'이라는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삶의 진로를 선택해왔고, 지금부터는 문제 해결이 아닌 진짜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그렇게 해서 추려진 세 가지 분야가 음악, 미술, 글쓰기였는데 음악과 미술 모두 너무나도 기회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노트에 적혀있다.

이후 나는 스물여덟의 후반부에 야근과 주말 근무가 없는 직장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 뒤 문화센터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첫 소설은 내 안의 어른 아이와 대면하고 그를 떠나보내게 해 준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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