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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Oct 31. 2020

서른이 넘어도 익숙해지지 않던 (3)

내 안에 크지 못한 어른 아이

심리학 용어 중에는 '어른 아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면에 다 자라지 못한 아이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어른'과 '아이'라는 상반되는 단어의 조합에서 이미 어떤 그 뜻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엄마의 부재와 그에 따른 상실감보다 훨씬 더 큰 괴로움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상태를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 독립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남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세상에 나는 홀로'이며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나 외에 아무도 없음'을 깨달으면서부터 내 인생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이 정확히 언제 주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나'

나의 십 대 시절을 지나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까지도 나는 별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며, 나의 결핍을 수용해주고 나의 등을 도닥여 줄 '진짜 어른'에 대한 이상적인 생각과 기대를 가진 채 살았고, 그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감에 젖어들곤 했다. 우울감은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망한 일들에 시간을 한없이 낭비하게 만들곤 했다.

그니깐 '왜 남들에겐 저렇게 좋은 아빠(혹은 엄마)가 있는데 왜 나에게는 없지?'라는 답 없는 생각-이런 생각을 해봤자 엄마가 다시 돌아오거나 아빠가 갑자기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에 사로잡히곤 했고,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며 조금이라도 기대려고 하면 금세 부담을 느끼며 나를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늘 공허감과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지금의 나는 어른 아이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의 성향과 환경에서 각각 발견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다소 의존적인 성향의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고, 남들보다 민감한 덕분에 남들이 감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감각할 수 있었던 반면 훨씬 더 크게 상처 받았다. 아버지와 별로 부딪히지 않았던 동생과는 달리 나는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절 내내 아버지와 부딪혔고, 그럴 때마다 죽고 싶단 생각으로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만들곤 했다.  

선천적인 성향 이외에 나를 어른 아이로 만든 환경적인 원인은, 유감스럽게도 아버지였다.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아버지의 품을 떠나 첫 독립을 하면서 나는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로워졌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 무렵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꽤 잘 지내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상처 받아야만 했다.

돌이켜보건대 나에게는 아버지의 모든 부정적이고도 저주에 가까웠던 독한 말들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힘이 도무지 없었다.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는 차라리 그 환경으로부터 빨리 도망쳐 벗어나야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무리 해도 변화시킬 수 없는 철옹성 같은 환경이었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다는 무력함에 갇혀 그 어떤 적극적인 대응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대신 그의 감정 받이가 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를 끊임없이 증오했고 동시에 그를 미워하는 나를 끊임없이 자책했다. 엄마는 나를 버렸지만 아빠는 나와 동생을 거두워 먹이며 학교를 보낸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아무리 나를 괴롭힌다 해도 그는 나의 아빠이기에 불쌍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으며, 나는 이러한 불필요한 양가감정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을 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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