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하세요
중립국과 집을 오갈 때 가끔 1133번 버스를 탄다.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지만, 비가 오거나 요즘처럼 추우면 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 차멀미가 있어 버스는 되도록 피하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지하철을 타곤 한다. 어쨌거나 버스를 타는 것이 나에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날은 중립국을 마치고 막차일 것 같은 버스를 탔던 날이었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에 버스 문이 열렸고, 발판을 밟고 올라가는 순간 기사님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더라. 처음이었다 버스에서 인사를 받다니. 설마 하고 지켜보니 모든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3명이 오를 땐 3명 모두에게, 더해서 하차할 때도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맨 뒷좌석에서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 크기로 매번. 지선 버스라 승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해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언제 한 번은 내리면서 ‘수고하세요’라고 했더니 ‘네~’라고 답까지 해주신다. 지금까지 그 기사님의 버스를 대여섯 번 정도 탄 것 같은데, 인사와 답례까지 어김없었다.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뒤 이어 갓 입사하신 분일 거야라는 질 나쁜 추측까지 해봤다. 얼마 안 가서 다른 기사님들처럼 해야 할 말만 하겠지. 추측일 뿐 알 수는 없다. 굳이 확인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인사를 받았으면 되돌려주면 될 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이런 류의 인사는 많이 받는다. 이용자가 많아 스킵하는 곳도 있지만 대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끝인사는 하는 것 같다. 거기에 ‘수고하세요’라고 돌려주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다. 돈과 서비스의 등가교환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것을 사람이 하는 이상 말 한마디나 표정 하나의 디테일 때문에 다시 찾거나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천안이었던가. 얼마 전 뉴스에서, 버스기사가 너무 무례해서 승객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강제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영혼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서 시간만 되면 알람 울리듯 ‘어서오세요’하는 걸 보면 정말 우악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인사는 정말 난감하다. 그분들은 힘이 들겠지만, 받아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기계적인 인사. 1133번은 그래서, 뜻밖의 선물 같았다. 하루의 끝, 오늘 힘들었는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빨리 집에 가야지… 잠깐 오른 버스에서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는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고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게 막차라면 더욱이.
인사하는 1133번 버스에 오른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1133번에 그 기사님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는 물론, 어느 버스건 나도 요금 카드를 대기 전 기사님한테 살짝 고개 숙여 목례를 한다. 왜 옛말에 인사만 잘해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성공하려는 수작은 아니고, 되돌려준다는 느낌이다. 그 느낌 아니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살짝 잡아두는 그 느낌.
혐오의 시대, 1133번 안녕하세요는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서로 밀어내기 바쁜 세상에서 이런 작은 당김이 삐걱거리지만 그래도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