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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3 비간의 시간

#3 비간의 시간

 2020년의 마지막 날이다. 오래전 방송했던 ‘2020 우주소년 원더키디’의 2020년이라고 신기해하며 다시 본다고 올 초에 호들갑을 떨었는데, 결국은 못 보고 2020년을 떠나보낸다. 마음먹었지만 못다 한 일들이나 이런저런 아쉬운 것들이 생각나는 마지막 날이다. 19년의 마지막 날은 중립국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새해맞이도 같이 했었다. 올해는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느낌은 살려보고자 2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늘! 한 해를 보내면서 함께 했으면 좋은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작년은 사람들과 함께 ‘인 디 아일’이라는 독일 영화를 봤다. 대형 마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인데, 진실하면서도 따뜻함을 담고 있어서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골랐다. 그럼 올해는? 제목도 그럴듯하고 내용도 그렇고 비간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을 같이 보고 싶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중국의 변두리 출신의 젊은 감독으로 시도 쓴다고 한다. 영화도 시적이다. 혹자는 타르코프스키, 왕가위, 아핏차퐁 등등을 섞어 놓았다고 하던데 그런 느낌이 있긴 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많이 접하지 못해 말을 아껴두기로 하고, 왕가위와는 비교를 해보겠다. 왕가위 영화의 정수는 미끄러짐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다 끝나버리는 관계를 주로 다룬다고 생각한다. 왕가위의 시간은 현재 그 자체이며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다. 화양연화에서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몇 번 반복해서 나오는데, 마치 법관인 것 같은 위압감을 받았다. 그래서 왕가위의 시간은 지금!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비간의 시간은 왕가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비간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 미래가 포개어져 있다. 첫 작품인 ‘카일리 블루스’도 그렇고, ‘지구 최후의 밤’도 마찬가지로 각 등장인물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거대한 시간의 분모 위에 같이 놓인다. 예를 들어, 중년의 주인공이 만나는 아이는 어렸을 때 자신이며, 노인은 늙은 자신이다. 다른 관계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떠나보냈지만 어린 시절 연인의 만나기도 하고, 늙은 연인과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래서 비간의 시간은 그리움이나 한이 희석된다. 비간의 그곳은 속죄의 공간이다. 영화를 보시길 바란다.


 뒤돌아보는 일이 때론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긴 할 거다. 하지만 관계든 뭐든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않고, 앞으로의 한 발을 다시 내딛기 위해 지금까지 잘 걸어왔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꼭 필요하지 싶다. 그리고 되돌아보는 일에 회환만이 남길 바라지 않는다. 비간의 영화처럼 그것이 뭐든 풀 수 있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중립국에서 꽤나 많은 영화를 봤을 텐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함께 보지 못해 아쉽다. 올해 마지막 날, ‘지구 최후의 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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