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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19 올해의 작가상

#19 올해의 작가상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맘때쯤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다. 작품과 관련된 기사 때문에 엉겁결에 알게 됐다. 어느 작가의 영상 작품에서 중국의 섹스돌 공장을 보여주는데 시각적으로 적나라하나 보다.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썼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해당 작품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 sns 계정에 해당 작가의 후보 철회 및 작품을 내리라는 꽤 많은 댓글이 달렸고, 몇몇 여성 단체에서도 성명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 혐오라며. 주최 측은 문제없다, 작가는 작품으로 봐달라는 입장만 전했다.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봤다면 말이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없다면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작품으로 본다면 비판은 있을지언정 작품을 내려라, 작가상 후보를 철회하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전쟁 영화를 찍는 감독이 전쟁광이라거나 여성의 상처를 다루는 감독이 그것을 전시하는 게 좋아서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고, 수족을 잃어야 우리는 전쟁이 참혹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는 것이 불편함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그런 이들이 내 눈 앞에는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하고 왜 아픈지 알게 된다면 뭔가 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물론 의도하는 바를 전하기 위해 재현의 방법을 달리 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선택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혐오가 만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언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린 컴퓨터가 아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도 눈금을 나눈다면 무한대로 나눌 수 있겠다. 자가 길어서 눈금이 많은 사람이 있다 치자. 좋다가 51, 나쁘다가 49라면 좋음도 나쁨도 비등비등할 것이다. 그에게 완벽하게 치우친 의견이란 없을 것이다. 눈금이 천 개, 만개인 사람은 나쁜 것도 왜 나쁜지. 좋은 것도 왜 좋은지 길다란 주석이 붙을 것이다. 반면에 눈금이 2개인 사람은 이거 아니면 저거다. 좋으면 그냥 좋고, 싫으면 그냥 싫은 거다. 내가 조금만 기분이 나쁘고 불편하면 그건 악이고, 반대면 선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더욱이 갈등이나 불편함을 너무 피하고만 살다 보니 역치가 낮아져 조금만 불편하고 달라도 반응이 커지는 것 같다. 불편하고 달라도 왜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지, 그것이 지금 왜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살펴보아야 내가 덜 피곤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감정은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저리 치게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을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하지만 누군가 혹은 무엇이 싫다고 한다면 조곤조곤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내적 논거를 마련해보자. 왜 그런지 200자 정도 적어보면 이것이 단순한 감정인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합리적 판단인지 구분할 수 있을 테다. 그렇게 언어가 늘어나면, 자가 길어지면, 쉬이 혐오를 꺼내들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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