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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21 낚시

#21 낚시


 낚시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놀거리가 많지 않았어서 족대를 들고 냇가에서 고기를 잡거나 낚시를 하는 게 큰 낙이었다. 낮에도 할 수 있고, 밤에도 할 수 있어서 때를 가리지도 않았다. 낮에 잡을 수 있는 어종은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물길을 따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혼자서 다녔다. 밤에 잡을 수 있는 어종은 메기인데 불빛만 조심하면 된다. 시골이라 달빛이 없으면 칠흑같이 어둡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최소 2명이서 간다. 여담이지만 가끔 혼자 가는 날이 있는데, 하루는 자주 가던 앞 개울에 갔었더랬다. 혼자 가더라도 잘 낚이면 몸이 바빠 무서울 틈도 없는데, 그날은 유독 잘 낚이지도 않았다. 미끼가 떨어진 것 같아 낚싯대 손잡이를 멀리 두고 끝에 바늘을 만지고 있는데, 낚싯대가 물살에 흔들리는 것처럼 떨리더라. 랜턴으로 손잡이 쪽을 비추어 봤는데, 물에 닿지는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랜턴을 돌려 미끼를 다시 만지는데 또 떨리는 거라… 다시 비춰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소름이 좀 돋았지만 기왕에 온 거 그냥 가긴 뭐해서 미끼를 손 보고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얼마 있다가 입질이 와서 평소처럼 들어 올렸는데, 낚싯대 앞부분이 똑 부러지더라. 옛날에야 장비의 내구성이 좋지 않아 자주 부러졌지만 그때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소름이 확 끼쳐 다 챙겨 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밤낚시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 뒷집 이모부는 미끼를 손질하고 물에 손을 씻는데, 뭐가 팔뚝을 타고 올라가서 봤더니 뱀이었다는 얘기 등등. 아무튼 많이 잡히는 날엔 낚싯대를 넣자마자 물려서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언제부턴가 낚시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시골 마을은 국립공원 내 관리구역이라 외부인은 어획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브래드 피트처럼 장비도 멋지게 갖추고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표지판을 곳곳에 세워 두긴 했지만 따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있으나마 나다. 낮에는 다들 농사일을 하느라 바빠서 살피지 못하는데, 언제 한 번은 이장님이 낚시하러 온 사람에게 야단치는 걸 보게 됐다. 안된다고 하니 낚시하러 온 외부인이 “잡아서 방생합니다”라고 사람 좋은 낯으로 대꾸한다. 이장님은 그게 더 나쁘다며 오히려 강하게 뭐라 그러더라. “아니 당신 아가리 쭉 찢어 놓고 놔주면 참 기분 좋겠다” 차라리 잡았으면 먹는 게 더 낫다고 하시면서.


 낚시로 잡은 고기들이 참 많은데 난 그걸 먹지 않았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팔든, 친한 사람이 오면 해주든 엄마가 처리를 해주는 지라 그저 잡는 재미로 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빨간 고무 바케스에 잡은 물고기 한 마리를 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던 차가 서더니 뭘 잡았냐고 묻더라. 산천어라고 하니 팔지 않겠냐고 하길래 팔았던 기억이 있다. 집에 가져가면 좋아했고 뭔가 뿌듯했다. 돌아오면 몇 마리 잡았냐며 물어보는 엄마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낚시의 재미에 손맛이 빠지진 않는다. 이 손맛이란 생사여탈권을 잡은 포식자의 스릴일 것이다. 내 입장에선 재미지만 물고기 입장에선 생사를 넘나드는 몸짓일 테다. 하지만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잡아서 방생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바늘을 깊게 문 고기들은 그걸 제거할 때 간혹 내장까지 상처를 준다. 그러면 십중팔구 죽는다. 가장 작은 상처가 입에 구멍이 뚫리는 것.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 먹이 활동이 힘들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먹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잡았다 놔주는 건 착한 것이 아니라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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