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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25 버닝

#25 버닝


 영화든 소설이든 긴 서사를 가진 작품이더라도 마스터 이미지가 있다. 그 작품을 떠올릴 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미지. 버닝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갯속의 종수다. 진실이 사라지고 모호함으로 점철된 세계. 젊은 세대의 공허와 질투, 허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등 여러 해석들이 있겠지만 오늘의 서술은 진실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농사는 정직하다’라는 말이 있다. 땀을 흘린 만큼 거둬들인다는 데서 나온 말인 것 같다. 때에 맞춰해야 할 것들을 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하다 보면 수확이 보장된다. 큰 재해만 아니라면. 버닝에서 종수의 아버지는 축산업(농사)을 한다. 그러나 빚을 지게 되고 갚지 못해 감방에 갇히게 된다. 땀을 흘려 일하지 않아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아서 빚을 지게 된 걸까? 공교롭게도 아버지 역은 전문 배우가 아닌 MBC의 최승호 PD다. 황우석 사건을 다루는 등 기타 굵직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진실을 파헤친 인물이다. 농사와 언론, 정직과 진실이 중요한 판에서 그는 끌려 내려간다. 종수의 세계는 그런 곳이다. 정직과 진실로 버텨내려 했던 아버지가 추방된 세계.


 해미의 마임이나 종수가 소설을 쓰는 일, 뭐하냐는 질문에 그냥 이것저것 한다는 벤이나 모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감독 이창동은 문학을 했고, 영화도 픽션을 다루는 작업이니 만큼 진실과 거리가 있을지언정 이 정도로 모호하진 않았다. 비록 허구이지만 어떤 사실이나 상태를 향해 달려가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버닝은 다르다. 벤이 진짜 해미를 죽였는지, 종수가 벤을 죽인 것이 사실인지 모두 마임 같다. 진실이 사라진 세계. 종수는 인풋도 아웃풋도 없는 소설 그 자체인 안갯속에 살고 있다. 버닝을 생각하면 무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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