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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26 폴 버호벤

#26 폴 버호벤


 구렁텅이에 빠져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주인공이 있는 반면, 역경을 딛고 목표한 바를 이루어내는 주인공이 있다. 여기서 캐릭터는 단순한 한 인물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세계와 관계하면서 정립된다. 당연스럽게도 세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관점이 있어야 캐릭터 또한 만들어진다. 감독이든 작가든 세계에 대한 인식이 주인공의 한계를 결정짓는다.  


 개인의 노오력으로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고, 이 벽은 한 사람의 힘으론 역부족이라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대표적으로 켄 로치를 꼽을 수 있겠고, 반대로 고난이나 역경은 높이가 허리춤밖에 안돼 허들처럼 좀만 힘을 내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너만 노력하면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갈 거야라고 말하는 많은 창작자들이 그렇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윌 스미스가 나오는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가 대표적일 테고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많은 영화들이 인물과 세계와의 관계를 그렇게 그린다. 물론 그 중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시스템이냐 개인이냐의 문제를 저글링 하는 창작자들도 있다. 봉준호처럼.


 개인이 노력하면 뭐든 극복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은 좀 시시하게 보는 편인데, 예외가 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작품들. 로보캅, 토탈 리콜, 스타쉽 트루퍼스, 쇼걸, 엘르 등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한 조건은 절망적이다. 범죄자들에게 사지를 절단 당해 몸이 기계가 되고(로보캅), 기억을 잃은 특수요원(토탈 리콜), 외계 행성의 공격으로 군인으로 차출되어 끔찍한 외계 생물과 사투를 벌이고(스타쉽 트루퍼스), 스트리퍼로 헐리웃에 입성하지만 구린내 나는 쇼비니지스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쇼걸), 이웃집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한다(엘르). 하지만 인간 정신의 고매함으로 고난을 극복해버린다. 시시한 영화들과 다른 점은 폭력이 가미된다. 이는 선을 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다 보면 목표한 지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드라마틱한 조건이 없다면 세계는 끄떡없다는 세계관의 반증이다. 그의 영화에서 폭력적인 장면은 꽤나 수위가 높다. 시각적인 쇼크를 바라기도 했겠지만, 폭력은 필요조건이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것 같았다.

 

 또한 그의 세계관에서 벽이란 자본주의(로보캅/토탈 리콜), 전체주의(스타쉽 트루퍼스), 여성 억압(엘르) 등으로 굉장히 정치적이다. 너무 드러내서 B급 취급을 받지만 내겐 A급! 특히 최근 작품인 “엘르”는 SF가 아니라서 그런지 초기작들에 비해 클래식하다. 피해자다움은 개나 줘버려 하고는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만들고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히어로 영화와는 궤가 다른 카타르시스와 생경함을 준다.

 

 행복에도 티오가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노력보다는 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조건들로 판가름 난다. 폴 버호벤의 작품들이 영화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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