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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28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28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노동운동을 한 지 20년이 지났다. 번듯한 대학교를 나왔다. 모두가 부러워한다. 다들 만류하지만 못 입고, 못 먹고 공장으로 가서 노동자들과 함께 운동을 해도 세계는 변할 기미가 없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이도 생겼다. 이때부터 나를 투신해 새것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내 것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졌다. 젊었을 때는 바위에 계란 치기라도 끝내 깨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무모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세계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괜한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면 된다. 그래서 택한 것이 정치다.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정치였지만 지금 말하는 정치는 여의도 정치다. 20년을 몸담으면서 터득한 스킬이 여의도 판에서 먹힐 진 모르겠지만 실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궤도에 올랐다. 혁명의 시대는 갔다. 금배지를 달고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지켰다. 그곳에서 나는 변절자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나를 우러러보는 이가 있었다. 권력이라는 게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많다. 신념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 때문일까. 지분은 문제없다. 생각을 조금 바꿨을 뿐이고 예나 지금이나 나를 우러러본다. 그리고 나는 지키고 싶은 게 더 많아졌다. 내 가족 그리고 나, 내가 가진 것.

 

  “네 남양주 소방서입니다”

  “네 여보세요. 그래요”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네 소방서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네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보수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가 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죽을 때까지 강경노선을 택했다. 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면 보수를 택하게 된다. 촛불집회의 연령대 구성과 태극기 부대의 연령대 구성을 보면 뚜렷하게 보인다.

 

 나도 어렸을 땐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든 경찰이든 대통령이든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은 배를 곯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최우선이다. 뭔가 던지긴 했겠냐마는 반동적으로 무언갈 한다고 했다. 그런 세력이나 사람에게 지지를 보냈지만 세계는 여전히 견고하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이가 드니까 잃을 것이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가진 건 없지만 잃는 것에 더 민감해진다. 코로나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받을 때 전 국민보다는 핀셋 지원이 더 솔깃하다. 왜냐면 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해를 더 직접적으로 받은 자영업자니까. 무상급식에 찬성표를 던졌던 그때는 옛날 일이다. 지금은 내가 더 힘들다. 지키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끼는 강아지도 있다. 이게 보수화인가? 


 1~20년 후의 나를 상상해본다. 내가 그토록 강조하던 광장에 나는 무엇을 들고 있을까? 촛불일 수도, 태극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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