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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34 리얼리스트

#34 리얼리스트


 군대에 있을 때 각 내무반에 책장이 있었다. 2단 6개 칸 정도로 작았고 장르는 다양했다. 보급은 아닌 것 듯했고, 선배들이 가져와서 놓고 간 책들 같았다.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꽤 두툼했고 새빨간 양장으로 된 커버라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꺼내 들고는 좀 놀랐다. 체게바라 평전이었다. 군대에는 정훈시간이라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장병들에게 교육을 한다. 한국군의 주적이 누구인지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등등 영상을 보거나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한다. 그 교육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적으로 간주된다. 헌데! 사회주의의 영웅인 체게바라의 평전이 내무반 책장에 떡하니 꽂혀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달콤한 이적행위였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게바라

 

 체게바라의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뜯어보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앞 문장은 현실주의를 뒷 문장은 이상주의를 얘기하고 있지 않나. 그 책을 막 읽어냈을 때는 그냥 멋진 말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의미를 곱씹어보진 않았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로 현실주의자가 아니었고,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러면서도 억울했던 부분이 있었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이 생겨날 수 없다고 말이다. 현실의 바깥, 이상은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감각과 직시가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더 나아가 오히려 내가 현실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주의자는 현실이 곧 이상이니 안주하는 거고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거다. 현실주의자 중에 세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불완전한 것은 현실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잖아?라고 답하겠지. 반대로 나는 현실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현실을 바꾸려 하니까 오히려 현실을 더 중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현실이니 비정상을 타파하고 현실로 편입시키자고. 말이 이상이라서 이상하지만 그건 또 다른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주의자 타이틀은 나에게도 어울리지 않나. 바다에 반쯤 잠겨 파고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파도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는 서퍼의 마음으로.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씩 클리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 번에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면 그에 이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괴와 피곤이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된다. 경험해보니 맞는 말 같다. 아무리 좋은 목표라도 너무 멀다 보면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한 번에 100미터를 뛰면 좋겠지만 힘이 들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2미터씩 50번, 더 힘들면 1미터씩 100번 뛰면 된다. 큰 목표를 향하는 길목에 버팀목을 놓는 일이 필요하다. 불가능한 꿈을 꾸되, 리얼리스트가 되자라고 한 말은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불가능한 꿈이라는 건, 끝까지 채찍질을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 달리는 거다. 지금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386(586)세대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서 멈춰있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목표를 잘못 잡은 것 같지는 않다. 피와 땀을 흘려 민주화도 이뤄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은 아닐 것이다. 더 불가능한 끝을 꿈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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