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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37 FLEX

#37 FLEX


 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


 플렉스는 소비나 어떤 무언가를 과시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요즘 유행어다. 겸손을 꽤 괜찮은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좋아하지 않는 말이고 풍조다. 굳이 티를 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나를 좀 봐줘- 인정해줘-라는 인정 욕구의 한 발로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아서다. 안 그래도 양극화가 심한 요즘인데 위화감을 주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도 덤으로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지인이 책 하나를 선물로 주더라. 대학 교수들이 몇 가지의 실제 사례를 들어 세계 각지의 문화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서술한 책인데, 플렉스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부시맨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을 관찰하기 위해 얼마 간 함께 했던 학자가 조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 부족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엄청나게 큰 소를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소를 가져온 후부터 이상하게 부시맨들이 저렇게 뼈만 남은 소를 누구 코에 붙이냐고 대놓고 핀잔을 주더라는 거다. 아무리 봐도 큰 소인데. 처음엔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소를 잡는 그날까지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잘못한 일인가 싶어서 마음고생을 했다고. 축제 당일 울상이 되어 있는 학자에게 친한 부시맨이 다가와 말하길, 부족 전통이라면서 함께 사냥을 나가서 누군가 큰 짐승을 잡으면 일부러 작고 보잘것없다고 핀잔을 준다고 했다. 당사자 스스로도 작은 것을 잡았다고 말하는 독특한 풍토가 오래 이어져왔던 것이다. 만일 그를 치켜세우면 우쭐해하고 과시하게 될 것이고, 자만과 교만이 쌓이면 언젠가는 공동체에 해가 될 것을 염려한 고유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고서 바로 플렉스가 생각났다.

 

 겸손이라는 덕목은 어떻게 보면 개인을 누르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개인보다 전체가 더 중요하니 튀어나오지 말고 고만고만한 개인으로 성장해 사회에 일조하라는 명령으로 말이다. 허나 시대가 바뀌었다. 그땐 조용히 살아도 서운하지 않은 보상이 돌아왔다. 둘러봐도 다 비슷비슷하고 굳이 자랑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오고 개성과 주체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의 풍조도 한몫을 했겠지만, 열심히 일하고 벌어도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벽을 뚫은 사람은, 과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좀 잘난 체를 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도 플렉스를 함으로써 잠시나마 판타지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말하는 것인데, 사치나 과소비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경제적인 주체라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거다. 그런데 명품을 사는 행위는 비합리적 소비다. 그럼에도 소득을 넘어선 소비를 하는 이유가 명품을 좇는 속물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만한 삶을 꿈꾼다는 것이다. 500만 원짜리 시계를 차는 것이 자랑이나 허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돈이면 다 되는 현실에서 돈으로 귀중한 무언가를 얻었다는 금화만능주의에의 복속을 넘어 그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배반의 욕망도 함께 동반한다고 말한다. 그럴 듯 한 말이다. 이 관점에서 플렉스를 보면 마냥 꼬아 볼만한 일은 아닌 듯싶다. 반동의 힘을 가진 풍조일 수도 있다는 것.

 
 
 

  마이클 샌델의 최근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너의 성공이 오로지 너의 능력으로만 일궜냐는 질문이다. 부시맨이 큰 사냥감을 사냥을 할 때 혼자서 하진 않을 것이다. 동료들이 옆에서 몰고 몰아 막다른 곳에 도달하면 누군가 마지막을 장식할 테다. 마지막 순간 위치 선정이나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 누구에게 급소를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급소에 창을 찔러 넣는 사람은 번번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과신이나 과시, 자만은 사라지지 않을까. 황정민이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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