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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4 다래

#4 다래


 강원도 산골에 고향집이 있는데,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약수터가 있다. 언젠가 한 번은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다래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다니기 불편해 잘라서 정리한 적이 있었다. 따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 집이 가장 가까워서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닌 자잘한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했다. 다래나무는 덩굴식물이라 이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면서 휘감는다. 밑동만 자르면 넘어지는 게 아니라서 자른 다음에 휘감은 걸 풀어야 했고 여기저기 휘감은 탓에 잘라야 할 곳도 많았다. 팔뚝보다 얇은 데다 무른 타입이라 쉽게 잘렸지만 끌어내리고 정리하는데 품이 많이 들었다.


 어질러진 다래나무 잔해들을 보면서 문득 어디서 봤던 내용이 기억났다. 다래나무는 중간을 잘라서 땅에 꽂아 놓아도 잘 산다는 말. 이런 걸 삽목이라고 하는데, 뿌리나 줄기, 잎 등을 잘라 또 하나의 개체로 번식시키는 방법이다. 씨를 뿌려 싹을 내어본 적은 있지만 삽목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버리는 나무였고, 호기심이 발동해 화분 하나를 구해 좋은 흙을 담고 팔뚝만 한 줄기를 두 개 꽂아 놓았다. 얼마 만에 싹이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딱딱한 껍질 사이로 푸른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가 14년 4월 봄의 일이었다. 꽃은 피는데, 바다 밑은 어둡고 차가웠다. 돌아온 사람보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새로이 줄기를 내놓는 다래나무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다. 각 생물의 생장 방법에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다래나무의 생장 방식이 더없이 대단해 보였다. 잘리고 잘려도 다시 뻗어나가는 생명력.


 1월 1일이다. 다래나무처럼 아파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는 한 해가 되길, 그리고 열매도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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