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령들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청을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갔다. 운이 좋아서 신청을 하면 세 번에 한 번 꼴로 당첨이 됐던 것 같다. 혼자 가도 상관없겠지만 매번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게 오히려 더 고역이었다. 가수와 그의 공연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특히 눈에 띄었던 게 있었다. TV에 나오는 인물들 말고 FD나 AD 등 프로그램을 꾸리는 스태프들의 면면이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노래만 잘 부른다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공연을 해도 위화감이 없을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키도 크고 늘씬하고 잘생기고 예쁜 분들이 많았다. 방송을 만드는 분들도 다 잘났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한 때 다녔던 사무실에서 매년 독립영화제를 열었다. 약 일주일 간의 상영을 마무리 짓고 폐막을 하면 저녁에 뒷풀이도 거하게 한다. 퇴사하고 1년 후 염치 불구하고 남의 집 잔치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간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즐거웠는데, 전직이 스태프다 보니 아무래도 감독님들 보다는 스태프 쪽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저녁도 깊어지고 술도 많이 되고 슬슬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게 자원활동가는 일찍 가는데 집이 가깝다며 남아 있는 분이 있었다. 얘기해보니 영상 관련 공부를 하고 있고 영화를 좋아하고 또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면서도 쉽지 않다고, 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걸 찾아봐야 하나 등등 고민을 얘기했다. 별로 해줄 말이 없어서 내 얘기를 좀 했다. 나도 영화를 좋아한다. 자꾸 보다 보니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꿈도 꿨다. 현장에 가서 일도 해봤는데 생각처럼 그리 낭만적인 공간은 아니더라. 가열차게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재능도 없어 보여서 만들지 못하면 좋은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어 영화제 스태프를 했다. 마지막 영화제를 했던 당시에 대상을 받았던 작품이 있는데, 그 감독님의 작품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대상을 받을 줄 몰랐는데, 대상으로 호명이 되는 순간 멀리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를 포함한 오래된 스태프들이 마치 자기 작품이 상을 받은 것처럼 울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한참 후에 한 생각이지만, 나랑 유스케의 스태프가 겹쳐 보였다. 감히 상상하는 것이지만 그들도 꿈이 있지 않았을까. 유령, 귀신이라는 건 한이 있어서 구천을 맴돈다고 한다. 살아있지만 한이 있어 그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계와 마주치고 현실과 타협해 내려가는 중 인지, 꿈을 향해 도약하는 중 인지 여하튼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 테다. 그렇다면 나도 그들도 유령이지 않을까. 자기 계발의 노예를 길러내는 사회다. 꿈을 좇으라고 말하지만 실패한 사람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 허덕이게 만든다. 한만 그득하게 담고 있는 유령만 배출해내는 기괴한 곳이다. 어느 철학자는 역사의 잘못된 것이 유령, 귀신의 형태로 돌아온다고 했다. 개인사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큰 역사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향한다. 삶이 물의 흐름이라고 치면, 굽이치거나 큰 폭포를 만나기도 할 텐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바다로 향한다. 끝내 있어야 할 자리에 도달하는 것. 순응이나 체념이나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잘 맞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일 테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곳에서는 남 일도 곧 내 일이 되고 뭐 그러지 않을까. 유령은 없고 사람만 남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