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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May 07. 2024

오늘의 서술, #63 화요일 저녁 공병 소리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가

 2년전 겨울, 술자리에서 누가 물어봤다. 지금 행복하냐고. 자주 보던 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진부하거나 어색한 질문은 아니었다. 다들 행복한 상황이고, 지금에 만족한다고 했다. 나만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단, 그저 불행한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해 행복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상태라고 구차하게 말을 얹었다. 


 난 그런 사람이다. 어딜 가거나, 누굴 보면 오목한 부분부터 보인다. 나를, 그 좋음이, 압도하지 않는다면. 잘못되어 있고, 안스럽고, 억울하고, 남한테 피해주고 뭐 그런 것들에 눈길이 먼저 머문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물론 행복한 순간도 있다. 행복을 못 느낄만큼 무감각하지 않지만, 행복만으로 살만큼 무심하지도 않다. 이런 날 의심해본 적 없다.


 그와 만난지 5년이 됐다. 어느 날, 그가 이렇게 서로 집을 오갈거면 같이 살자고 했다. 가족이 아닌 남과 오래 같이 살다보니 다른 점이 더 많이 보였고, 불편한 점도 많았다. 더 억울한 건 그쪽이겠지만. 어딜 다녀오는 길에 그가, ‘이 집은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좋아’ 라고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큰 감흥은 없었지만, 허투루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번만 했던 말이 아니라서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 후, 같이 살고 있는 이집에 대해 생각해봤다. 뭐가 좋을까.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내가 사는 곳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 화요일이다. 화요일이면 일주일 동안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한 곳에 모인다. 특히 저녁이면 분주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양손 가득 박스를 들고 있는 이웃과 마주치는 것으로도 일주일간의 기다림을 공유하지만, 직접 마주치지 않고 보지 않더라도 그날 저녁이면 포대 안으로 쌓이는 공병들의 경쾌한 부딪힘 소리가 화요일을 알린다. 내다 놓기 귀찮아서 다음주에 버려야지 하고 현관에 쌓아놓은 더미들이 있는 화요일 저녁에도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가 그 소리를 내준다. 혼자 살 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같은 요일에 같이 버리고 그 소리와 분주함을 같이 경험하는 것. 우리 동네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들 눈길도 안 마주치고 잘도 모르며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많이 했다. 화요일 저녁에 들리는 공병소리는 나와 가까이 사 사람들이 나와 같이 쓰레기를 버리고 있구나. 퇴근하고 시원한 맥주로 하룻저녁을 말끔히 마무리했겠지. 그 시원함이 포대에 떨어지는 소리겠지. 힘든 일이 있어 술에 기댔을 어떤 사람의 애환도 저 소리에 섞여있겠지. 비오는 날엔 우울한 소리로 들렸다가도, 화창한 봄날이면 기분 좋은 소리로도 들렸다. 


 화요일 저녁의 공병소리가 좋다. 함께 했기때문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소할 수도 있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묵묵히 옆을 지켜준 그가 새삼스레 고맙다. 이럴 때 가끔 행복을 느낀다.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가. 외롭지 않을 때 그런 것 같다. 나와 같이, 하루를 어찌어찌 보낸 사람들의 나머지가 포대 속으로 찰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외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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