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다가 막히는 길에서 끼어드는 여러 차에게 양보하는 내 앞차를 보던 중에 문득 그 드라마 장면이 왜 계속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흔히 양보, 친절이라며 하는 그것이 내 관점을 벗어났을 때도 과연 양보와 친절일까?
#1.
2018.9.17 월요일, 운전하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월요일이라 유독 막히기 때문에 평소보다 15분 일찍 나왔다. 3, 4차선은 직진 차선으로 분당-내곡 고속화 도로로 빠지는 길이고 5차선은 우회전해서 청계산 구 길로 가는 길이 나온다. 월요일은 평소보다 일찍 나오긴 하지만 주로 청계산 길을 이용한다. 청계산 길은 1차선 도로라 막히면 답이 없지만 그래도 고속화도로보다는 거리가 멀어서 진입하는 차가 적기 때문이다.
암튼 오늘은 일찍 나왔음에도 청계산 구 길로 가려고 선택하곤 5차선에 들어섰다. 우회전 차선이라 신호대기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막힐 이유가 없다. 근데 오늘은 분당-내곡 도로로 직진해서 들어가는 3, 4차선에 비해 현저하게 느린 속도가 이상했다. 창문을 열고 보니 내 바로 앞에 있던 차 앞으로 4차선 차들이 계속 끼어들고 있었다. '아 양보해주고 있네. 친절한 사람이군.' 뭐 이 정도 생각을 하고는 EBS 영어 방송을 들으며 오늘의 문장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3, 4차선이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신호 하나를 더 기다리고, 두 번째를 기다리고, 세 번째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알았다. 내 앞차의 평소 습관은 앞차와의 거리를 1.5배 이상 두는 거고, 끼어드는 차를 막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애초에 내가 5차선에 섰던 이유는 3, 4차선보다 그 길을 빠져나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5차선에 들어선 이유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5차로를 빠져나가는 시간은 적어도 6:55는 돼야 했다. 난 아직 길 중간에 있었는데 이미 7:10을 지나고 있었다.
#2.
최근 방영 중인 사생결단 로맨스라는 드라마가 있다. 배우 이시영 씨와 지현우 씨가 종합병원 의사 역할인데, 이시영 씨는 모든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라서 진료받은 환자들이 다시 병원을 찾을 땐 늘 이시영 씨만 찾고 선물도 갖다 주는 그런 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시영 씨가 치료해 준 덕에 너무 좋아졌다며 고맙다고 명품 가방을 놓고 간 부자 환자가 있었다. 이런 걸 받을 수 없다며 돌려주러 갔다가 결국 돌려주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왔는데, 이 광경을 보고 지현우 씨가 병원에 내부고발을 했다. (드라마를 다 안 봐서 모르겠지만 지현우 씨는 이시영 씨를 싫어했음) 세세한 사정을 듣고 나면 오명이라는 걸 알지만,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면 환자에게 부정청탁으로 명품 가방을 받은 의사이기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가 결국엔 사직서를 제출하는 그런 장면으로 이어졌는데, 이시영 씨가 나는 환자들에게 친절했을 뿐이고 이게 대가성이 아니었다는 건 그 자리에 있던 간호사 당신도 잘 알지 않느냐며 함께 일하던 간호사에게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냐고 토로하는 장면이 나왔다.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환자들에게 친절하시죠. 그건 모두가 알아요. 그래서 누구도 선생님이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개인 병원도 아니고 종합 병원이잖아요. 선생님이 환자 한 명씩 붙잡고 얘기하는 거 들어주고 휘둘리느라 밖에서 대기하는 다른 환자들의 불만을 들어야 하는 건 저희예요. 선생님은 친절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로 인한 뒷감당은 전부 저희가 해야 해요."
순간 이시영 씨의 얼굴에 무언가로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침 출근길에 양보해 주는 앞차가 했던 작은 행동은 일종의 나비효과와도 비슷하다. 그는 고작 몇 대의 차를 끼워줬을 뿐이지만 덕분에 그 뒤에 있던 나는 평소보다 15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6:50에 나와 7:25에 도착하는 회사에 오늘은 6:35에 나와서 7:45에 도착했다. 내 앞차가 몇 대의 차를 끼워주며 나와 내 뒤 차들의 길을 막는 동안 신호가 3, 4차선에 비해 무려 4번이나 더 끊어졌고, 그렇게 흐르는 약 20분의 시간 동안 청계산 길은 20분 분량만큼의 차가 더 들어와서 더 막혔다.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늘 10분 이상 일찍 나오지만 이렇게 늦게 도착한 적은 손에 꼽는다.
사생결단 로맨스에서는 동료 간호사가 '당신이 베푼 친절은 네 앞의 환자에게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이시영 씨에게 알려주어 본인에 대해 생각해 봤을 테지만, 아마 내 앞의 차주는 앞으로도 모르지 않을까?
대기업에서 프로세스를 다루는 업무를 하면서 느낀 건, 한 명이 친절하게 말로 설명하며 상대할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30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얼굴 보며 일일이 설명한다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큰일이라 하루에 기껏해야 5명이나 될까. 가끔은 그들에게 오랜 시간 붙잡혀 불만을 들어야 할 때도 있어서 극한 감정노동이다. 즉, 수천 명 규모가 되면 웃는 얼굴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며 모든 일을 일일이 설명해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결국엔 인력으로 채울 수 없어지므로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보완해야 한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도록 꾸려야 한다.
간혹 친하다는 사실을 빌미로 '나 한 번만 봐줘' 같은 부탁을 해오는 동료들이 있다. 예외 없이 거절하는데 그러면 친절하지 않다는 부류의 불만이 돌아올 때가 있다. 물론 한 번 그냥 봐주고 그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수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거절하고 잠시나마 매정한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하게 됐다.
사실 대규모의 인원이 있는 집단에서 하나의 예외를 봐주는 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잘 안 보이기 때문에 그 한 명의 실수쯤 그냥 덮어주고 나와 너만 입 다물면 된다.
하지만 보통은 그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내가 입을 다물어도 도움을 받은 그 사람이 비슷한 부류의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동료를 마주치면 "난 그때 걔가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이야기를 하는 수순이다. 그럼 그 말을 들은 다른 동료는 내게 따지러 온다. "너 걔는 봐줬다며, 나는 왜 안 봐주는데?"
혹은 다른 동료가 내게 따지러 찾아오지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예외로 해준 것도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다시 그 사람의 주변으로 알려진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이 룰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생각을 하는 순서로 간다.
나로서는 왜 사람들이 룰을 지키지 않는지 영문을 모른다. 화가 난다. 난 내 일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따라주지 않는다. 저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웃는 얼굴로 베풀었던 아주 작은 친절이 오히려 이 큰 조직의 운영 룰을 망가뜨리는 문제가 생기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규모의 인원이 있는 조직, 커뮤니티에서는 운영 룰을 최소한으로 두되 그것만큼은 엄격하게 다루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난 애자일을 하는 사람이라 기민하게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이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운영의 묘를 살린다는 것과는 또 다른 맥락이다.
이처럼 전체 구성원 4만 명이 넘어가고 내가 무언가를 하면 그 영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천 단위가 넘어가다 보니 내가 집어넣은 작은 넛지가 어떤 집단행동으로 나타날지 여러 가지를 따져보게 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걸 염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 오늘 아침 출근길과 드라마 이야기는 눈앞에 벌어질 '작용'에 대한 부분만 고려하느라 그로 인해 생기는 반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사례였고 말이다.
자, 당신이 오늘 베푼 친절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