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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Mar 06. 2018

당신의 자리는 '보상'이 아니라 '위임' 받은 것이다

이보세요, 출장은 일하러 가는 거예요. 놀러 가는 게 아니고요-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2년 전 선임으로 진급을 했었다는 글이 떴다.

가만히 읽다가 '지난 2년간 평가와 진급 프로세스가 얼마나 나아졌지?' 생각하니 지난 12월에 했던 2017년도 평가 면담에서 조직 책임자와 나누었던 정말 궁색하기 짝이 없었던 대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결국, 인사과가 개입하고 나서야 끝이 났는데, 그때 인사과에 던진 질문은 이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직의 최상위자에 의해 소속 팀 바깥에서 하는 일에 투입되었을 때 어떻게 평가하나?


나도 올해 10년 차 직장인이라 잘 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가 평가라는 걸.

하지만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회사에서 정책이나 절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리를 이해하면서 지금은 생산성 없이 투덜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좀 나아지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회사 차원에서 설계한 평가 프로세스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그 기준은 명확한지에 관한 질문을 했던 것.


이 질문은 기존 경험에 의거, 나를 포함하여 비슷한 상황인 동료들이 다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했다.


설정한 가정은 실제로 맞았다. 가장 가까이, 함께 출장을 다녀온 사람의 팀장은 '네가 다녀온 3개월간의 미국 출장은 혜택을 받은 것'이라며 그를 다른 모든 출장에서 배제했다. 또, 사장님 보고까지 할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지만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조직의 KPI가 아니기 때문에 평가권자인 내가 너를 평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 시간 동안 면담을 하며 알아냈다. 앞서 내 동료가 평가를 못 받은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


내 조직 책임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3년 전, 팀에서 한 명뿐인 진급 대상자였던 나를 진급에서 누락시킨 팀장도 말했었다. "난 할 만큼 했어"라고 말이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조직 책임자가 그랬듯 이 사람도 그저 부족한 사람이라 이 정도밖에 못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 사람에게는 크게 화가 나지 않았지만 저런 자가 조직 책임자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은 화가 났다. 저런 사람에게 구성원의 평가 권한을 내준 조직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정말 후지다고 생각하며 평가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인사과에 연락했다. 

그리고 맨 처음부터 인사과에 요청한 건 한 가지였다.

'과제의 주인이 소속 팀 바깥있을 때 팀 내부(인사권자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있습니까? 없으면 고민해 주세요. 암묵지에 둔 채로 방관하지 마시고.'


현재의 평가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잘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깨달을 수 있는 시발점이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조직 책임자들은 본인이 앉은 팀장 자리를 스스로 쟁취한 혹은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조직 내에서 마치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면서 조직 책임자 자리는 오래 일한 자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이 때문에 조직 개편 때 팀장 자리에서 내려오면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한다.


제발 착각 좀 그만하셔라.


조직 책임자 자리는 그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사람에게 회사가 잠시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애초에 당신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직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따라 방향성이 바뀔 수 있고, 이에 따라 업무가 달라지면 당연히 필요한 역량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언제든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게 옳다.


앞서 같이 출장 갔던 사람이 받았던 불이익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의 팀장은 장기 출장을 보상이라고 단정 지었다. '넌 혜택을 받았으니 남은 출장은 다른 애들을 보내겠다-'는 말이 생략되었고 말이다.


내 글에 지인 한 분이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다셨다.





이보세요, 출장은 일하러 가는 거예요. 놀러 가는 게 아니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가 어색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발연기라며 논란 기사가 뜬다. 

월드컵 때는 뭐 다른가? 헛발질 한 번 하면 갑자기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난리가 난다.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자리에 합당한 역할을 하라고 돈을 더 많이 줬고, 권한까지 주었는데 응당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면 더 참거나 미루지 말고 말을 해주어야 하는 순간이 아닐까?


#보고있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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