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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Mar 13. 2020

'자발적인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기

*이건 이제 막 가족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미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회사에서 내가 속한 팀을, 조직을 생각하면 그것도 마찬가지..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동생 이렇게 넷.

동생이 대학에 갔을 때 잠시 기숙사 생활을 했던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넷이 쭉 함께 살았다.


아빠, 엄마, 나는 해야 할 것이 보이면 하고, 생각나면 바로 해야 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동생은 굉장히 느긋하게 보인다.  차이 때문에 아주 가끔 속상한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동생을 이해할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몇 년 전부턴 내가 이런 말을 했더랬다.


"그거 다 엄마 아빠 탓이야. 쟤가 뭘 할 수 있게 놔뒀어야지. 쟤 차례까지 가기도 전에 다 끝나잖아."  


사실 난 어릴 적부터 매우 고집스러워서 하고 싶은 건 죽어도 해야 하는 애였고, 동생은 상대방에게 잘 공감하는 아이여서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곤 했다.






내가 결혼해서 분가했을 때 즈음 동생도 나와서 살고 있는데, 석 달쯤 지났을까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ㅇㅇ이 집 엄청 깔끔하게 하고 살아~”


지난달 초에 일이 생겨서 동생을 본가로 보내고 그 집에서 나와 남편이 한달살이를 하게 됐는데, 같이 살 땐 몰랐던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집안 곳곳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에 반듯하게 있고 먼지 한 톨도 없었다.


문득 같이 살 때 동생 방을 떠올려보니 물건이 많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자주 들어가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동생 방의 물건들은 늘 각 잡혀 놓여있었다. '이렇게 깔끔한 성격이었다는 걸 같이 살 땐 왜 몰랐을까?'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인 건 상대적인 게 아닐까?'


이 집이 온전히 동생이 책임져야 하는 공간이 되니 곳곳이 동생답게 깔끔했고 물건이 별로 없었다. 부스러기가 떨어져 그대로 있는 것도 없었고, 식탁 위에 커피 자국 같은 것도 없었다. 또 제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 놓인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물건도 없었다. 물건을 쓰고 나면 항상 제자리에 두는 건 어릴 적부터 교육받아 만들어진 동생과 나의(우리 가족 모두의) 습관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데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

그게 뭔지 인지하고 판단해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 있어서 내 속도가 어떤지 아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의 속도가 어떤지 알아차리는 일. 나보다 느리거나 빠른 상대의 속도를 알아차리고 존중하는 일은 아마도 앞으로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서로가 느낄 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에서는 자신보다 빠른 세 명 때문에 동생은 느리고 비자발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공간에서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발적인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넷이 살던 우리 집에서 동생의 공간은 자신의 방뿐이었으려나..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다.  

 

최근에 동생이 이직했는데, 도대체 이런 어린애가 일은 제대로 하겠냐던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누군가 동생의 연락처를 물어물어 연락해 오더니 스카우트해 갔다. 일을 매우 잘하나 보다. 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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