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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Oct 17. 2019

개발은 잘해도 관리는 처음이라

천상 개발자가 리더가 되어가는 여정

최근 몇 달간 남자친구랑 대화하면서 깨닫게 된 건, 줄곧 개발자로 커오다가 이제 막 리드를 하게 된 초보 리드의 눈에는 아직 조직이 굴러가는 건 안 보인다는 점이다.


난 개발자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PM을 병행했고, 곧 제품 전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떨어졌기 때문에 신입 때부터 자연스럽게 전체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내가 좀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회사 내에서도 개발자와 PM은 그 역할과 조직이 전혀 달라서 개발자 한 명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해내야 하는 그런 환경에 갑자기 처할 일은 잘 없기도 하다. 게다가 문제를 받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은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맡겨진다고 해서 바로 그 모드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례로, 내가 3년 차 때 개발자이면서 PM일 때 해결했던 인테그레이션 관련 이슈에 관해 이야기해주었을 때 남자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드는 예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자신에겐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되지 않아서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공감이 안 된다고 했다.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땐 좀 서운하기까지 했다. '내 말을 듣긴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절대적으로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거였다. 그냥 입을 닫고 있는 것보단 이런 피드백이라도 줘야 우리 사이에 흐르는 대화가 어느 정도의 농도여야 할지 나도 고를 수가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있던 조직은 이미 너무 거대해진 조직이고, 사일로가 심해서 협업이 잘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다.

더 작은 조직, 얼굴 돌려 말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그 정도 규모에서, 일당백 하는 사람들이랑 일하면 벌어지지 않을 일은 맞았다.

하루쯤 지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굳이 이런 걸 겪어볼 필요는 없지. 어쩌면 평생 겪지 않을 일일 수도 있는 걸.’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해도 될 일이었을텐데 늘 이다음에 뭐가 터질지 몰라 미리 플랜 여러 개를 준비하던 습관이 생긴 건 내 과거 경험 탓이었다.


처음 리더를 맡았을 때 남자친구는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새로 맡았으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처음 눈에 띄는 모든 일이 그저 새로웠을 때였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네가 두 가지 역할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리고 네가 정말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지금 네 팀 다섯 명은 딱 너의 리더십을 실험하기 좋은 환경이니까 그 역할을 네가 감내할만한지 아닌지 잘 살펴봐. 다른 스타트업에 CTO로 가든 네가 회사를 차리든 다섯 명보단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챙겨야 할 것도 더 많을 테니까"


고군분투한 6개월이 지난 엊그제 그런 말을 하더라.

"미진아, 내가 일하면서 네가 했던 말을 잘 생각해봤는데 난 개발할 때가 더 좋고 행복한 것 같아."


리드 자리를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저 말이 굉장하게 들렸다.

이 친구가 지난 6개월간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옆에서 봤고,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으니까. 감이 있다는 건 분명히 보였다. 한데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 리더에겐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고,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익숙했던 걸 할 시간은 없었다. 매번 부딪히는 새로운 상황을 소화할 시간도 없이 받아내야 하는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진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개발자였으니까. 새로운 일은 재밌었겠지만 그만큼 많이 힘들었겠구나.


게다가 사실 국내 회사, 규모가 일정 수준 커진 회사의 리더라는 직책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을 최상위 우선순위에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되려 사내 프로세스와 시스템(그게 잘 만들어졌든 아니든)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한 책임을 위임해 주고 구성원이 이를 잘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지켜보도록 하는 일에 대한 요구가 더 크지 않던가.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협업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일이 잘 안 굴러가는 상황을 몇 번 더 맞아보면 그땐 자연스럽게 그 역할도 지금보단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아직 때가 안된 거고, 일단 필요는 느꼈네' 정도로 혼자 생각했다.


네가 행복한 일에 집중하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네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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