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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Mar 08. 2022

나는 내 삶에서 얼마나 성장했나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여성이자 직업인으로서의 고민

2021년 회고에 적어보려고 시작했던 글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올려본다.





2016년 어느 날,

휴직했던 때 일인 것 같다. 엄마랑 집 앞에 장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사실 당시에 휴직을 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만 꼽기는 어렵고,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이 얽혀있었다.

난 일을 하는 게 재밌고, 내가 하던 일과 관련 있는 것들로 영역을 확장하는 게 즐거웠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게 뿌듯했는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일을 해도 더 이상 재밌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재밌을만한 일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으려고 노력하는 그 시간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억지로 애쓰는 내 모습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 덕에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된 원인이 뭔지 끊임없이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엄마랑 나갔던 그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나 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쭉 되짚으면서 '아, 내가 지금 이런 것 때문에 그런 건가...?' 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질지를 생각해 보고, 나름의 결론이라고 생각한 걸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뭘 해도 재미없는 이유가 뭔지 되게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아마 일하는 백미진으로서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봐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그러다 보니 성과도 나고, 그 결과로 인정도 받고. 그래서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성취를 많이 이룬 것 같거든. 내가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으니까 비교군도 없고... 그런데 사람이 일만 하면서 살진 않잖아... 요즘에 사람들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을 많이들 하던데, 그걸 일하는데 쓴 시간만큼 똑같이 퇴근하고 나서 취미 생활에 쏟아야 하는 거라는 말로 해석해서 퇴근하고 나면 악착같이 취미 생활하려고 애를 쓰더라고. 근데 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 인간이 살다 보면 일하는데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시기가 있고, 가정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가 있을 거잖아? 그럼 지금 이 시기가 나에게 어떤 때인지를 잘 알아채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히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게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고 생각해 나는."


"근데 내가 한동안 방황했거든. 날 찾는 곳은 많은데, 그게 내게 새롭지도 않고 했던 거 그냥 또 하는 느낌이라 언젠가부터 뭘 해도 재미가 없더라고. 그러다 보니 '뭘 해야 재밌지?' 하고 더 찾으려고 애쓰고, 억지로 찾으려고 하다 보니 더 안 찾아지는 것 같고..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는데, 내 삶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는 일에서의 삶과 개인의 삶의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아. 일적으로는 비대하게 커졌는데, 개인적인 삶을 보면 난 아직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있고 내 손으로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고, 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번 돈으로 세금을 내거나 가정이 돌아가게 하는 주축도 아니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챙겨야 하는 일을 하나도 하고 있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 내가 이제 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싶었어."


어느 날 갑자기 해탈한 건 아니었다. 

스스로의 상태를 꾸준히 살피고 있었고,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광경에 대한 기대가 더 많은 나의 성정이 그런 결론을 내렸던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2018년 어느 날,


그로부터 몇 년 뒤, 또 엄마랑 밖에 나가서 걷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 보니 나이가 차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열심히 자기 계발하고 일에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늦게 결혼해서 아이 낳는 거 난 참 좋은 것 같아. 난 일도 해볼만큼 했고 그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잖아. 그런데 임원이 되고 싶은 욕심은 또 없어서 지금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경력 단절될까 봐 조마조마하지는 않을 것 같아.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일과 삶에서 모두 사용되는 거라 오히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지금까지 안 보이던 새로운 시각이 생길 거라 내 일에 도움이 됐으면 더 됐지 퇴화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런데 만약 내가 계속 개발자로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생각은 못했을 것 같아."


"여성에게 경력 단절이 생기는 그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면, 대학 갓 졸업하고 어렵게 취직했는데 바로 결혼해서 아이까지 생기면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이 두 군데나 펼쳐지는 거잖아. 오랫동안 꿈꿨던 회사에서 1인분으로 인정받고 싶으니 거기에 내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투자해도 모자란데 가정이 생기고 거기다 아이까지 생기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도 모자랄 거라 당연히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지. 뭐든 새로 하는 건 잘하게 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면 난감할 거야. 회사에서는 일에 제대로 몰입을 못할 테고, 집에서는 가정도 못 돌보고 아이 케어도 제대로 못할 테니 난 직장에서도 실패하고 아이한테도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자괴감만 들겠지. 사실 둘 다 잘 해낸다는 건 양쪽에서 각각 어느 정도는 양보를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거라 그걸 인정하고 가야지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근데 둘 다 완벽하게 잘해야지! 같은 생각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고..."






2019년 11월 어느 날,

 

결혼을 했다. 짚신도 다 제 짝이 있다더니. 내가 결혼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다들 놀랐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은데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에겐 내가 마지노선이었나 보다. 내 결혼 이후 조급해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연애 기간은 짧았지만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는 터라 내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 별다른 문제없이 순탄하게 결혼까지 이어졌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내게 결혼을 재촉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부모님과 나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의 공유가 매우 잘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에 써 내려간 것처럼 나는 평소에 내 생각과 의사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부모님께 전달했고, 서로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땐 이해의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서로가 생각할 시간을 두었다. 절대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거나 서로의 의사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하려면 결정을 완료해야 하는 시점보다 훨씬 먼저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야 했다.

 

부모님은 사실 나를 결혼시키는 일이 급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친척들이 걱정을 가장한 참견을 해올 때면 잘 넘어가시다가도 두어 번인가 내게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했던 말을 적어본다. 지인들에게도 검증해 봤는데 매우 잘 먹히니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꼭 써먹어보길 바란다.



1.

"난 60살에 20살이랑 결혼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해."

-> 이건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친척들이 내게 결혼 이야기를 언급할 때 여러 번 써먹었던 말이다. 어르신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라 너무 어이가 없으니 대꾸를 못하셨다.


"엄마 아빠가 내 결혼이 과업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해해. 그런데 나는 지금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거든. 솔직히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결혼하자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엄마 마음에 드는 사람 데려와. 그럼 내가 결혼은 해줄게. 근데 나중에 안 맞아서 이혼해도 어쩔 수 없어. 잘 살아보려고 애는 써보겠지만 도저히 못살겠으면 이혼할 거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혼하는 게 엄마 아빠 탓이라고 자책할 거 아냐. 안 하겠다는 거 나이가 찼으니 자꾸 결혼 얘기해 가지고 억지로 결혼시켜서 이혼한 건가 하는 생각 하면서 자책할 거잖아. 그러면 그거 보는 내 마음은 좋겠어? 부모의 과업은 나이 차기 전에 자식을 결혼시키고, 때 되면 아이를 낳게 하는 게 아냐. 자식을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온전한 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까지지.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온전히 내 선택이어야 하고 내 책임이어야 해."

-> 이 말은 아마 2018년 이전에 했던 말로 기억한다. 결혼을 하려면 누굴 만나야 하는데, 내가 누군가를 만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던 엄마에게 "내가 엄마에게 말을 안 해서 내가 누굴 만나는지 모르는 거지, 엄마가 모른다고 해서 내가 노력을 안 하는 게 아니야."라며 더 길게 했던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을 했을 때 부모의 반응은 천차만별일 텐데, 나와 내 부모님은 평소에 대화를 많이 했던 탓도 있지만 부모님 두 분 다 역지사지가 되고 측은지심이 매우 강하신 분들이라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그 뒤로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저 말을 뒤로 더 이상 결혼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내가 알아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ㅋㅋㅋ






2021년 어느 날,


결혼한  2년이 됐지만 여전히 둘이  집에서 사는 삶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집안일을 누가  많이 하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가정의 일원이면 가정이 돌아가게 하는 일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지금 당장은  못하더라도 앞으로 함께  시간이 긴데 잘하려는 노력은 하는가? 에 관한 거였다. 그리고 나는 그게 당연한 집에서 자랐다. 


게다가 시가에서 아이를 낳으라는 이야기는 자꾸 나오는데,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은 해본  없지만 남편이 아이를 함께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치관은 비슷하지만 감정 기복이 거의 없고 대체로 차분한 나에 비해 감정 기복이 크고 항상 흥이 넘치는 비글 남편이라 나와 정반대의 성격인 것이 좋아서 결혼한 거였다. 하지만 연애랑 결혼은 다르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큰아들을 키우는 건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여기에 애까지 생기면 애가 둘인데 어쩌지...  


과거에는 남성이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담당했지만 2022년인 지금은 여성, 남성 모두 회사에 나가 돈을 번다. 더 이상 살림과 육아가 온전히 여성의 몫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내 부모, 내 조부모, 더 윗 세대에서 뿌리 깊게 박혀서 내려온 여성의 주 업무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들이 키운 아들, 딸에게도 그러한 사상이 주입되었고, 2022년을 사는 많은 여성들이 내가 살림과 육아를 좀 더 챙기지 않으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드는 게 현실이다.


나 또한 그러한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없었다. 게다가 이미 그런 집에서 3x  동안 자란 동거인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라 마냥 기대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물론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을 보다는 나아졌지만,  기준에서 '아이를 같이 키울  있는 사람인가?' 대한 확신이 서기엔 부족했다. '현재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라고 되새기며 2년을 지내왔지만 반대로 큰아들이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아이를 함께 양육할 만큼 나아질지  끝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baby-pungsandog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개엄마가 됐고, 남편은 개아빠가 됐다.

강아지를 데려온 배경엔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기에 너무 작아서 마당에 내놔도 괜찮을 정도로 더 큰 다음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임시 보호를 해보며 우리 부부가 작은 생명체를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인지 살펴보고 싶다는 내 욕심을 얹었다.


2kg이었던 강아지는 엄마 무릎에 앉아있는 걸 좋아하고 아빠랑 노는 걸 좋아하는 15kg의 개로 성장했다.

개엄마는 아이를 기르는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개아빠는 작은 생명체를 보살피는 일이라는 건 인간인 내가 놀아주고 싶을 때만 놀아준다거나 밥과 물만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엔 아무 데나 쉬야를 해서 배변 훈련에 몰두한 적도 있고, 이갈이를 할 때는 나를 자꾸 물어서 울기도 여러 번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몇 주가 채 되지 않을 만큼 정말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아지는 수개월이면 어른이 되기 때문에 점잖아지는 데까지 2년이 채 안 걸린다.

하지만 인간 아기는 그 시간이 수배에 이르니 난이도가 훨씬 높을 텐데 부모가 인내를 가지고 일관된 태도로 양육을 해야겠지, 하는 다짐을 한다. 다행인 건 내가 어릴 적부터 오은영 선생님 팬이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금쪽같은 내 새끼>의 애청자이고 이걸 실생활에 적용해 보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남편과도 같이 봐야지.

 





2022년 3월


주변에 알리지 않았지만 작년 결혼기념일에 우리에게 아주 큰 선물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조심스러워 알리기 어려웠고, 노산(?)이라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는 걸 기다렸는데 얼마 전에 결과가 모두 나왔다. 18주가 되고부터는 태동도 격해져서 그냥 앉아 있어도 느껴질 정도이다. 태명을 여름이라고 지었는데, 남편은 여름이라는 이름이 맘에 드는지 이름으로 하면 어떻냐고 한다.


사실 여름이가 생긴 걸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사월이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내 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하루에도 여러 번을 그랬다. 그 덕에 나도 '내 몸에 이상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잠을 잘 때 내 옆에서는 잘 안 잤는데 초기에는 자주 내 옆에서 잤다. '여름이가 있어서 지켜주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여름이를 사월이가 데려다준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 집으로 안 왔다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를 이 작은 생명체를, 어떤 보답을 바라며 거뒀던 건 아니지만 '사람은 역시 착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름이가 생긴 후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봐도 '아 아기가 내 뱃속에 있구나' 하는 정도였고, 처음 정밀 초음파로 여름이가 팔다리를 매우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과 콧날이 오뚝한 걸 봤을 때도 '얘가 날 닮아서 부산스러운가??? 콧대가 날 닮아서 오뚝하네 ㅋㅋ ' 하는 정도였다.


그렇지,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모성애가 탑재되는 건 아닐 게다. 아기가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자라는 것처럼 엄마도 같은 시간 동안 점차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겠지.



그 사이 남편은 이직을 했다. 점차 배가 나오면서 더 이상 하기 힘들어진 일들(바닥에 앉거나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깊게 굽혀 해야 하는 다양한 일들,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진 사월이 산책 등)을 아침에 해주고 출근을 한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 같은 건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해낸다. 퇴근은 빨라야 11시나 되어야 하지만 돌아오면 하루종일 지루했을 사월이와 잠시 놀아주고, 내 다리를 주물러주고, 책을 읽어주며 여름이와 대화를 한다. 요즘 읽어주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로, 양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쓴 일기이다. 삶이라는 건 대체로 이렇게 잔잔함의 연속이며, 좋은 일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일도 벌어지는 거라는 걸 여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업무 강도가 높은 곳이라 회사에서 피곤했을 텐데 나의 힘듦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가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애쓰는 남편이 기특하고 고맙다.



우리 여름이, 건강하게 잘 있다가 7월에 만나자!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 많이 싸웠다. 생각해 보면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서로 3x 년을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데 사사건건 안 맞는 게 당연하지 않나? 심지어 나는 "부부라고 해서 꼭 같은 집에 함께 살아야 할까? 현대식으로 각자 따로 살다가 사월이 산책할 때랑 주말에만 만나는 건 어때?" 같은 말도 해본 적이 있다. 진심이었다 ㅋㅋ


불편한데도 적절한 표현을 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나는 상대방의 눈빛과 행동만 봐도 잘 안다'는 건 착각이다. 해야 할 말을 제 때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가며 안 좋은 감정을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놓다가는 나중에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터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기술 부채가 쌓이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행동으로 옮겨 보여주어야 한다.


중요한 건 '다툼이 생겼을 때 그걸 얼마나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려고 노력하는가'라고 생각한다.



결혼 후의 시간을 쭉 돌아보면 남편과 나의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진 시점이 네 번 정도 있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좋아지는 커브가 더 가팔라졌다.


1.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적금으로 돈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었던 때. 나는 돈을 모으는 습관을 기르는 것을 제안하여 꾸준히, 꼬박꼬박 종잣돈을 만드는 적금과 예금을 선호했고, 남편은 위험이 커도 수익이 높은 주식 투자를 이야기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장기 계획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걸 위해 급여의 많은 부분을 적금으로 넣어 돈을 모으는 습관과 종잣돈을 모으고 있다. 그 사이 남편은 인센티브로 받은 돈이나 용돈 등을 주식에 넣어 수익을 내며 내게도 주식 차트를 어떻게 보는 건지, 투자는 언제 하는 게 좋은지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주식 차트를 보거나 어떤 기업에 투자하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며 남편과 나눌 이야기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 재밌다고 생각한다.    


2. 2021년 중반 남편 본가의 일을 내게 알린 후 그걸 풀어가는 과정. 그때 다양한 말과 행동이 오갔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 사이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무언지 찾아냈고, 그걸 어떻게 개선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후로 나의 행동으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에게 변화가 나타났고, 이때부터는 남편이 고민이 있을 때 혼자 끙끙대지 않고 바로 내게 이야기하게 됐다.   


3. 사월이를 데려온 후 집안일과 강아지 돌봄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에게 몹시 실망해서 토요일 아침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과 사월이를 두고 집을 나갔다. 이틀간 연락도 받지 않고 월요일 아침에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은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내가 왜 나갔을까 돌아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는지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실제로 행동에도 변화가 있었다.

 

4. 여름이가 생기고 난 후. 내가 그동안 남편을 바라보며 어떤 고민과 걱정을 했는지, 내가 왜 혼자 하는 걸 더 익숙해하는지, 앞으로 남편이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도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든 때가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더 자주 이야기하자고 했다.










결혼을 했다는 건 서로에게 앞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겼고 내가 품어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갈라서서 시가로, 친정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라면 모를까, 계속 같이 잘해볼 생각이 있다면 서로의 우선순위는 서로가 가장 높아야 하며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는 부부가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는 걸 결혼기념일 두 번을 보내고 몇 달을 더 지내면서 우리 둘도 깨달았고, 다른 가족들도 그걸 깨달은 시간이길 기대한다.


시간이 간다고 해서 있던 문제가 저절로 해소되거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드러내어 확인하고, 그 차이를 줄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더 현명한 선택과 언행을 하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여러 사람의 행복이 달려있다.



잊지 말자.

지금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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