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올초에 교육 과정 하나를 설계했다. 토론식 수업을 염두하고 만든 터라 과정에 참여할 사람은 팔짱 끼고 앉아 ‘어디 날 가르쳐봐라’ 하는 사람은 들어오면 안 됐다. 하여 신청서를 받아 소수의 인원을 선발했고, 12주에 거쳐 세 개의 반으로 나누어 운영했다.
사실 이 과정은 약 10여 년 전, 매 순간 떠오르던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과 성장에 갈증이 심할 때의 나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만든 과정이다. 참 다행인 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나는 수만 명의 임직원이 있는 조직에서 인하우스 컨설턴트이자 애자일 코치로 일했고, 덕분에 이러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검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 이러한 욕구가 내 머릿속에서 그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와 비슷한 고충을 가진 다른 동료들을 찾아 그들에게 도움 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었다는 점
- 만든 것을 몇 년 전에 실험적으로 해봤던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로도 더 발전시켜서 새로운 동료들에게 다시 내놓은 점
- 덕분에 내가 코치라는 업을 하는 동안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는 점
나에게 2022년과 2023년은 참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해이다.
일적으로 정체해 있다는 마음이 든 지도 몇 해가 되었는데, 이 과정을 원동력 삼아 다시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의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으로 적어보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1기가 생겼고, 앞으로 2기도 선발할 예정이다.
나는 지금 그 사이 쉬는 시간 동안 1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모임을 구상했다. 그중 하나가 독서 모임이다.
회사의 교육에서 만난 사람들인 만큼 모임이 유지되려면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에 독서 모임의 형태를 빌어 시작하기로 했다.
그 독서 모임 첫 번째 책이 바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다.
책은 사둔지 좀 됐지만 육아를 하느라 책을 쭉 읽을 시간이 계속 없던 터라 얼마 전에야 끝을 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여러 철학책을 사기도 했고, 읽기도 했지만 어려워서 끝까지 못 읽은 책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용 서적에 가까워서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철학자를 시간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않았고, 철학을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같은 이유로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교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프롤로그 중에 교양을 갖추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어 옮겨본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 프롤로그 마지막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한 말이 적혀있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몇 장의 프롤로그만으로도 이 책이 무슨 얘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너무 잘 적어두어서 좋았다.
IT씬으로 옮겨온 후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말을 더욱 많이 듣는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은 효과적으로 일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정답이 있고 그걸 알기만 하면 시간과 비용을 줄여 결국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정답을 달라는 모습을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다.
세상만사에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교양을 좀 더 갖추어 가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일이 삶의 매 순간 내 앞에 펼쳐질 선택지를 좀 더 현명하게 고르는 방법이 아닐까.
하여 이 글에서는, 지금껏 내가 고민했고, 여전히 고민이 끝나지 않아 앞으로도 더 깊이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었던 내용을 발췌하였다.
03. 성과급으로 혁신을 유도할 수 있을까?, 예고된 대가 - 에드워드 데시
그들은 대가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128건의 연구에 메타 분석을 실시했다. 이 실험의 결과로 그들은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든 대가를 예고하면 이미 재미를 느껴 몰입해 있는 활동에 대한 동기가 저하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 즉, 대가를 약속받으면 높은 성과물을 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대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가 아니라 가장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게 된다. ... 다시 말해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08.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대가 -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
오랫동안 도파민은 쾌락 물질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도파민의 효과는 사람에게 쾌락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찾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파민은 각성, 의욕, 목표 지향 행동 등을 유발하며, 그 대상에는 물질적 욕구만이 아니라 음식이나 이성 등 추상적인 개념, 즉 근사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식견도 포함된다. .... 욕구계 도파민과 쾌락계 오피오이드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을 제어하는 엔진과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욕구계인 도파민이 특정 행동을 촉진시키는 반면 쾌락계인 오피오이드는 만족을 느끼게 함으로써 추구 행동을 정지시킨다.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욕구계가 쾌락계보다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무언가를 느끼고 추구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하지 못한 일에 직면하면 자극을 받는다.
09. 인생을 예술 작품으로 대한다면, 앙가주망 -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이 중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How의 물음'을 중시한 입장이다. 이 물음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라는 답을 제시했다.
결국은 주체적으로 관계한 일에 참여commit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참여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다. 현대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이며, 따라서 '무엇을 할까?'라든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사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앞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다룰 때 자유의 괴로움에 관해 고찰했는데, 사르트르 또한 자유를 매우 무거운 것으로 인지해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앙가주망에 따라 참여하는 두 번째 대상인 '세계'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시간, 즉 인생 자체를 사용해 어떤 계획을 실현하는데, 이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르트르는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사르트르의 직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엄격한 지적으로 들린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목표가 자신의 존재와 자유(선택 가능한 범위 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인데도 많은 사람이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와 조직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는 고지식한 사고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직업 같은 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텐데도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취직 인기 순위의 상위에 올라 있는 회사만 원하는 것은 전형적인 '융통성 없는' 사고다.
10.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현행 시스템이 초래하는 악폐에 생각이 미치기보다는 그 규칙을 간파하여 제도 안에서 능숙하게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무의식 중에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지배하던 시스템이 더 발전된 형태로 대체됨으로써 세계가 진화해 온 측면도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도 언젠가는 더 나은 시스템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대개 현행 시스템에 잘 적응해 큰돈을 번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택함으로써 시스템 자체가 자기 증식 또는 자기 강화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은 정말로 바람직한 일일까?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설'은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행은 그 잔인함에 어울릴 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 데만 열심이었던 하급 관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11.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일수록 인맥이 넓지 않다, 자아실현적 인간 - 에이브러햄 매슬로
어쨌든 우리에겐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의 올바른 해석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줄지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여기서 특히 살펴보고 싶은 조항은 초월성-프라이버시의 욕구(5)와 대인관계(10)다.
매슬로의 고찰에 의하면 성공한 인물들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자아실현형 인간은 오히려 고립 성향이 있고, 극소수 사람들과만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이 매슬로의 지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점점 '얕고 넓어지는 ' 우리의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실은 매슬로와 같은 지적을 한 사람이 과거의 현인 중에도 있었다. 바로 장자다. <장자>의 <산목>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군자의 교제는 물과 같이 담백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고, 소인배의 교제는 단 술과 같아 오래가지 못한다."
소인의 교제는 까닭 없이 이루어지므로 자립성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되어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척거리며 사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의존'이라고 표현한다. ... 알코올 의존증 자체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라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유를 바라면서도 문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과적으로 환자가 자립할 기회를 방해하는 자기 중심성을 감추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신도 머릿속으로는 그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면서도 실제로 내면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진짜 욕구를 숨기고 있다. 이것이 의존 관계다.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매슬로의 지적은, 이제 우리가 이상적인 인간관계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13.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다, 권위에의 복종 - 스탠리 밀그램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실험을 끝까지 계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난 단지 명령 집행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흰 가운의 실험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거란 것이다. 실제로 선생 역의 피험자 중 많은 사람이 실험 도중에 주저하거나 갈등을 보였지만, 실험 담당자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대학 측에서 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하는 표정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이 결과는, 반대로 책임 전가를 어렵게 하면 복종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밀그램 교수의 '아이히만 실험'이 실시된 것은 1960년대 전반 미국에서였다. 이 실험은 그 후 1980년대 중반에 이를 때까지 여러 국가에서 추가로 실시되었는데, 대부분의 실험에서 밀그램 교수의 실험에서보다 높은 복종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이 실험 결과는 미국 고유의 국민성이나 특수한 시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성질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밀그램의 실험은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 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사람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제심과 양심의 작용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 현상은 아주 위험하다.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양심이나 자제심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면, 조직이 비대한 만큼 악행의 규모 또한 비대화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 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 아돌프 아이히만은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그 악마 같은 통찰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밀그램 교수의 실험 결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어떤 일을 할 때야말로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자신의 양심과 자제심을 자각시키는 아주 조그마한 지지라도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는 걸 말해 준다. 밀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에서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 의견 또는 양심과 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는 조직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맨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와 같이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수많은 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은폐와 위장은 바로 분업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체계에 속해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눈앞의 일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짚어 보고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무언가 개혁이 더 필요하다가 여겨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15. 뛰어난 리더의 조건, 마키아벨리즘 - 니콜라 마키아벨리
어떠한 리더십이 가장 올바른가는 그 시대의 고유한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 다르므로,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고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마키아벨리는 어떠한 비도덕적인 행위도 권력자에게는 허용된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마키아벨리즘이 자주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므로 기억해 둬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더 나은 통치를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행위도 허용된다고, 즉 그 행위가 더 나은 통치라는 목적에 부합하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일 뿐이다.
즉 마키아벨리는 부도덕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냉철한 합리자가 되라고 조언한 것뿐이며, 때때로 합리성과 도덕성이 부딪힐 때 합리를 우선으로 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분명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질과 행동 방향에 관해 쓴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이상형의 지도자는 국가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인물인가'하는 점에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시대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의 모습은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는 훌륭히 역량을 발휘한 리더십이 전혀 다른 국면에서도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리더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환영받지 못하는 결정이나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비즈니스든 사회 조직이든, 혹은 가족 안에서든 장기적인 번영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리더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때때로 고독하고, 암흑의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권력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16.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악마의 대변인 - 존 스튜어트 밀
어떤 사람의 판단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경우, 그 사람이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항상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능한 한 받아들였으며, 잘못한 부분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되짚어 보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하기를 습관으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듣고 사물의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은 현인은 없으며 지성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간은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게 밝혀졌다.
17. 붕괴된 가족과 공동체의 새로운 대안,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독일어로 게마인샤프트는 '공동체', 게젤샤프트는 '사회'를 의미한다.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에 의하면 인간 사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연이나 혈연, 우정으로 깊이 연결된 자연 발생적인 게마인샤프트가 이익이나 기능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게젤샤프트로 점차 옮겨간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인간관계 자체는 소원해진다고 생각했다. 기능을 중시하는 게젤샤프트에서는 사회나 조직이 일종의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된다. 게젤샤프트에 소속된 개인의 권리와 의무는 '명확'해지며, 그때까지 인정에 약하고 감정적인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성적인 인간관계로 바뀌어간다.
기업을 게젤샤프트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기업에는 종신고용, 연공서열, 노동조합이라는 세 가지의 특수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제도가 있으면 왜 게젤샤프트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상부상조 문화 역시 붕괴되기 시작한 촌락 공동체를 다른 형태의 게마인샤프트인 기업이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회사나 가족의 해체가 불가역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인류에게는 그에 맞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텐부르크는 사회 전체를 이루는 구조가 해체되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구조 단위의 자립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회사나 가족의 해체에 대응해서 이른바 역사의 필연으로 새로운 사회적 유대의 형성이 요구된다.
18.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변화 과정 - 쿠르트 레빈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앞으로의 일을 '시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쿠르트 레빈의 지적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개인 경력의 문제에서 이와 똑같은 이론을 주장한 인물이 미국의 윌리엄 브리지스다. ... 그는 이를 토대로 전환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한 단계를 '끝(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무언가가 끝남) -> 중립 지대(혼란스러운 고뇌의 단계) -> 새로운 시작(무언가가 시작됨)'의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또한 변혁을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무언가가 끝남'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새로운 시작'에만 주목해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끝'에 관한 물음에 진지하게 맞서지 못한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환경 변화의 전망을 바라보는 사정거리가 경영자, 간부, 실무자의 순서로 점점 짧아진다. ... 그러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자라면 머지않아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책임자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이대로는 위험하니 방식과 방향을 바꾸라는 지적을 받으면 충분한 해동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바로 혼란기로 돌입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가 '내려가기'만 하는 상황을 문제 삼고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 애초에 '같은 산'으로 만족해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거품 경기의 종말'이라는 적절한 표현으로써 마침표를 찍을 명분을 얻었는데도 산의 정상을 뒤돌아보며 '그 시대가 참 좋았지!' 아쉬워하며 하산해 온 것은 아닐까? 쇼와라는 시대에 올라갔던 산을 못내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기대마저 가슴에 품고서, 비전도 없는 채로 미련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같은 산을 내려가고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말이다.
20.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만 하는 이유, 타자의 얼굴 - 에마뉘엘 레비나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는 글자 그대로 자신 이외의 사람이 아니라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레비나스의 문헌에서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우선은 알기 쉽게 타자를 '좀처럼 알 수 없는 상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타인'이라는 말보다 훨씬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레비나스는 끊임없이 타자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논했다. 서먹한 상대, 소통이 안 되는 타자가 왜 중요한 것일까? 레비나스는 이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미지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3. 왜 기장이 조종할 때 사고 발생 확률이 더 높을까?, 권력 거리 -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호프스테더는 권력 거리를 '각 국가의 제도와 조직에서 권력이 약한 구성원이,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를 예기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라고 정의했다.
반면 권력 격차가 큰 국가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오히려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고 권력 약자가 지배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진다.
"권력 거리가 좁은 미국에서 개발된 목표 관리 제도는 부하 직원과 상사가 교섭 자리에 대등한 위치로 나올 것을 전제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상사와 부하 모두 교섭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국가, 즉 권력 거리가 큰 문화권에서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호프스테더가 조사한 일곱 국가의 권력거리는 아래와 같으며, 예상대로 일본의 점수는 상대적으로 상위에 위치했다.(저자의 국적이 일본이고, 이 책의 곳곳에서 일본의 현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68), 일본(54), 이탈리아(50), 캐나다(39), 구 서독(35), 영국(35)
권력 거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1. 준법 감시에 관한 문제
2. 혁신에 관한 문제 ...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기술 혁신이 가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권력 거리는 상대적으로 커서 조직 내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의견은 묵살당하기 십상이다.
24. 안정이 계속될수록 축적되는 리스크, 반취약성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범위를 반영하기 때문에 '반취약성'에 꼭 들어맞는 언어가 영어에도 일본어에도 없다는 사실은 이 용어가 새로이 등장한 개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시스템에 해를 끼치는 현상의 발생을 예측하기보다 시스템이 취약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취약성은 측정할 수 있지만 리스크는 측정할 수 없다. ... 변동성으로 인해 얼마나 피해를 입기 쉬운지는 측정할 수 있으며, 이는 피해를 일으킨 사건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하다. -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가능한 한 젊을 때 많은 실패를 맛보는 것, 여러 조직과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을 한 장소가 아닌 분리된 여러 장소에 형성하는 것 등의 요건이 중요해진다. 하나하나의 조직과 커뮤니티는 취약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과 커뮤니티의 존속보다도 그 사람의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의 축적이다. 만약 속해 있던 조직과 커뮤니티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사회 자본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고 아메바형으로 분산되어 유지될 수 있다.
25. 어떻게 시스템은 인간을 소외시키는가, 소외 - 카를 마르크스
한마디로 소외는 목적과 시스템 사이의 주종관계를 역전시켜, 시스템이 주가 되고 목적이 종속되게 만든다.
30. 업무 방식 개혁 앞에 놓인 무서운 미래, 아노미 - 에밀 뒤르켐
뒤르켐은 주요 저서인 <사회분업론>과 <자살론>에서 아노미에 관해 언급했다. <사회 분업론>에서 그는 분업이 지나치게 발달한 근대 사회에서는 기능을 통합하는 상호 작용 행위가 결여되어 공통 규범이 생겨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자살론>에서 뒤르켐은 자살을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아노미적 자살'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3) 아노미적 자살 - 집단과 사회의 규범이 느슨해져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결과, 부풀어 가는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다가 끝내 실현되지 않는 데에 환멸을 느끼고 허무감에 빠져 일으키는 자살
뒤르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컨대 '사회적 규제와 규칙이 느슨해져도 개인이 반드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다. 규제와 규칙이 느슨해지는 현상이 꼭 사회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취직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기업에 입사할까'의 개념으로 인식하지만, 본래 취직이라는 말은 '직무'에 임한다는 뜻이지 '회사'에 임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통된 일을 하는 무리에 소속되어 그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취직인 것이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회사라는 종적 구조의 커뮤니티가 자신에게 더 이상 안전한 커뮤니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이 소속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가족도 소셜네트워크도 직업별 길드도, 그것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참가해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성립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아노미 상태에 빠질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시대다.
36. 사람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슨다, 차이적 소비 - 장 보드리야르
이를테면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를 타거나 무인양품을 애용한다거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지내는 일 또한, 그 길을 선택한 주체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은 타인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차이적 소비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아무 목적 없이 행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기호가 생겨난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 기호성을 갖지 않거나 또는 갖더라도 희박한 상품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때 자아실현이 자발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마찬가지로 '타자와의 차이'라는 형태로 규정된다면, 그 상품 나름대로 서비스가 어떠한 차이를 규정하는지를 의식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는 어렵다.
43.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사고한다. 하지만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 사고를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의거하는 구조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고찰한 사람이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였다.
소쉬르의 지적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풍부한 어록이 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역량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가운데서 더 많은 시니피앙을 지닌 사람과 더 적은 시니피앙을 지닌 사람을 비교해 보면 어떻까? 소쉬르가 지적했듯, 어떤 개념의 특성이 '다른 개념이 아니다'를 의미한다면, 더 많은 시니피앙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세계를 더욱 세심하게 분별해 파악할 수 있다. 즉 세계를 더욱 깊이 분석할 수 있다.
어떤 시니피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시니피에를 파악하는 일로 이어진다. 개념이라는 말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개념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나눠서 인식할 수 없다. 시니피앙이라는 어휘를 알고 있기에 어떤 개념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시니피앙인지 시니피에인지 판별하는 기능이 작동되므로, 이는 세상을 더욱 미세한 메시로 분석해 파악하는 능력의 차이와 그대로 연결된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철학, 사상에 관한 용어가 바로 그러하다. 이들 용어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45. 과학적인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반증 가능성 - 칼 포퍼
포퍼가 지적하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과학 요건은 우리에게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채근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라는 것은 반론의 가능성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며,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진 가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말을 이야기의 앞부분에 수식어처럼 붙여 주장의 정당성을 집요하게 호소하면서 다른 사람의 반론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포퍼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태도야말로 과학의 취지에 어긋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과학적인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49.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 예측 - 앨런 케이
그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해 그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렸고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도록 끈질기게 운동으로 벌였다. '예측'과 '실현'이 역전된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세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행한 의사 결정이 축적되어 지금 이 세계의 풍경이 그려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 세계의 경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까지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라고 남에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라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미래라는 것은 예측하기보다 오히려 비전으로 생각하며 그려내야 한다는 사고관은 다른 각도에서 보완된다. 예측은 빗나가기 때문이다.
50. 사람은 뇌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생각한다, 신체적 표지 - 안토니오 다마지오
철학에서 다루는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로 마음과 신체에 관한 고찰이 있다. 플라톤은 이 문제를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연구했고, 시대를 한층 건너뛰어 데카르트는 이를 '심신이원론'으로 정리해 기본적으로 양자를 분리, 독립된 별개로 취급했다. 한편 스피노자는 '심신평행론'을 내세워 마음과 신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며 데카르트를 비판했다.
특정한 반응 옵션과 관련해 나쁜 결과가 머리에 떠오르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당신은 어떤 불쾌한 '직관적 감정'을 경험한다. 그 감정은 신체에 관한 것이므로 나는 이 현상에 소마틱(somatic, 그리스어로 '신체'를 의미)이라는 전문용어를 붙였다. 그리고 감정은 하나의 이미지를 나타내므로 나는 그것을 마커(marker)라고 불렀다. - 안토니오 다마지오, <데카르트의 오류>
신체적 표지 가설에 따르면 정보에 접촉함으로써 야기되는 감정이나 신체적 반응이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 부분에 영향을 미쳐 눈앞에 주어진 정보에 관해 '좋다' 또는 '나쁘다'의 판단을 도와 의사 결정의 효율을 높인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의사 결정은 가능한 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행해야 한다'라는 상식은 잘못된 것이며 의사 결정 할 때 오히려 감정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삶은 기록을 재지 않는 마라톤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끝은 죽음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정해져 있고 죽기 직전까지 내 삶을 어떻게 가꿔갈 것인가?하는 과제 또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는지에 따라 그간 살아온 삶의 풍경도, 남아있는 삶에 펼쳐질 여정도 저마다 다를테고 마음으로 느끼는 풍요로움 또한 다를게다.
오랜 시간동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 삶을 잘 가꾸며 가까운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잘 늙어가는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오래오래 하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때문에 꽤 오랜 시간동안 관심 있는 주제가, 17, 30번이다.
17. 붕괴된 가족과 공동체의 새로운 대안,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 -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30. 업무 방식 개혁 앞에 놓인 무서운 미래, 아노미 - 에밀 뒤르켐
그리고 최근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 때문에 20, 43, 50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20.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만 하는 이유, 타자의 얼굴 - 에마뉘엘 레비나스
43.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 페르디낭 드 소쉬르
50. 사람은 뇌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생각한다, 신체적 표지 - 안토니오 다마지오
독서 모임의 주제로 발제를 할 예정이기도 한 이 내용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쏟을테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기본인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 동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회사나 가족의 해체가 이미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그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것은 각 챕터의 마무리가 된 내용까지 적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문제의 소지가 될 만큼만 적어두기도 했다. 개인의, 조직의, 사회의 어떤 문제에 대한 철학자와 저자의 생각에 대하여 나 또한 공감과 동의를 표현한 것쯤으로 여겨주면 좋겠다.
책을 필사하려고 적은 것은 아니므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사서 전문을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