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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Jan 13. 2017

스토리 작성하기

'나 애자일 한다'라고 말하기 전에 뭘 만들겠다고 썼는지부터 보라

개발팀에서 애자일코치/스크럼마스터로 활동하다 보면 스토리 작성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있는 곳이 하드웨어 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기가 참 힘들죠.  


이다음 스프린트에 뭘 하겠다고 개발자들이 작성해 둔 내용을 보면 대부분 task 형태로 나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구사항이 "USB 3.0 프로토콜 개발"이라고 들어왔을 때, 개발자들이 To do list에 만들어내는 티켓은 (1) 요구사항 분석 - (2) 설계 - (3) 구현 - (4) 검증과 같이 activity 위주로 되어 있어요. 

각각이 끝났을 때 뭐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고, 일한 장본인도 "설계 끝났어요~"라고만 할 수 있을 뿐, "산출물 좀 보자"라고 하면 "없는데..." 혹은 간혹 정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라서 잘 정리된 스펙 분석 문서가 있거나 콜랩에 정리한 플로 차트 같은 것이 있어요.


자, 이제 개발만 하면 완벽한 건가요???


사실 "USB 3.0 프로토콜 개발"이라는 제목의 요구사항은 제목부터 글러 먹었어요.

제목이 몹시 구리지만 본문에 적어도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면 요구사항이라고 불러줄게요.

왜 이 feature가 추가되어야 하는가? (business case): 본 요구사항이 제품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needs와 pain point에 의해서 필요한지, 이게 구현되면 제품을 얼마나 더 팔 수 있는가?

본 요구사항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추가하려는 기능이 무엇인가?

CX/UX 측면에서 현존하는 feature 대비 새로운 요구사항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본 요구사항을 완성하면 나오는 산출물이 무엇인가? 데모 가능한 시나리오로 표현할 것.


적어도 이 정도 수준으로 내용이 채워지고 나면 스토리를 작성할 수 있는 준비상태가 된 건데, 앞서 말했듯이 task로 업무를 적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한 개발자들을 여태껏 봐왔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정을 설명해 보세요"

-> 이걸 Story로 먼저 쓰고, 그다음에 Task로 비유해 볼게요.


Story  

1) 오전 6시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2) 방의 불을 켠다.

3) 주방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한 잔 마신다.

4)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양치를 한다.

5) 옷을 입는다. 오늘은 좀 추워서 두꺼운 옷을 입었다.  

6) 식탁에서 바나나를 하나 들고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7)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양재역으로 온다.

8) 4번 출구로 나와 회사 건물로 들어와 16층을 누른다.

9) 자리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켠다.

10) 메일함을 열어 퇴근 이후 어떤 메일이 왔는지 확인한다.

11) 협업 사이트에 날 태그했다는 알림이 온 것이 많다. 무슨 내용인지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한다.  

10) 그중 내가 회신해줘야 하는 것에는 답변을 단다.

11) 8시다. 데일리 미팅 시간이라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도 미팅을 하러 간다.


Task : 일어난다 - 씻는다 - 출근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껴지나?


"스토리를 보고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동료들 모두 "그럴 수 있다"란 대답이 나오면 스토리를 잘 작성한 거예요.

하지만 "일어난다 - 씻는다 - 출근한다"는 뭘 개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각각은 해석의 여지가 너무나도 다양하여 개발을 한창 하고 있을 때 (1) 요구사항 분석 - (2) 설계 - (3) 구현 - (4) 검증 중 구현 단계를 지나는 중에 이런 반응들이 나오겠죠.

'음? 내가 지금 요구사항과 다른 걸 개발하고 있었네..'

'아 뭐야. 왜 제대로 안 알려줬어.'

'이건 누구누구 탓이야.'

'아 몰라. 난 할 만큼 했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정을 설명해 보세요"라는 질문을 하면 아마 사람들 머릿속에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했던 장면이, 지하철을 타고 양재역에 내려 회사에 ID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통과했던 장면이 휘리릭 지나갈 겁니다. 하지만 그걸 글로 적어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못써요.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만 두지 말고 자꾸 끄집어내서 동료들과 나눠야 해요.


내가 뭘 개발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어난다 - 씻는다 - 출근한다 쪼개고, 또 쪼개고, 또 쪼개서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단위로 만드는 것. 그게 스토리의 핵심입니다.


3/3 추가) 얼마 전 재밌는 영상 하나를 봤는데, 이 영상 하나면 이 글을 안 읽어도 될 것 같아요. 

https://www.facebook.com/hkilbo/videos/140997140905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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