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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Feb 28. 2018

좋게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 정문정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무례함에 지쳤지만 말 못 하던 사람들에겐 실용서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이 알아채기 어렵다. 심지어 스스로 그런 아픔을 겪는 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을 뿐더러, 깨달았을지라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전에 <우리가 녹는 온도>에 대해 쓰면서 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이 책을 몇 장 읽다가 그 이유가 뭐였는지 떠올랐다.


책의 첫 장에 무례한 사람들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쓴다고 적혀있었고, 매 장 '난 이렇게 했다'는 경험담과 함께 꽤 단호한 어조로 "--있다" 혹은 "-- 없다"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이 흔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꽤 적절하고 단호하게 대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난 그게 뭐든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을 즐기는 인간이라, 방법을 찾기 위한 여정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끝을 내려고 하는 내용보다는 열린 결말이 좋다.


하지만 그런 내 취향과는 관계없이, 이 책은 염치와 측은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대처할 수 있는 단호한 화법에 대해 적절한 예를 담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세련되게 말하기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니까 - 





  인간관계는 시소게임이나 스파링같아서, 체급의 차이가 크면 게임을 계속할 수 없다. 한두 번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져줄 수는 있겠지만, 배려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금방 지칠 뿐이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요건으로 '착함'을 드는 사람에게 그건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할 수도 없다고, 예전 내 모습이었던 착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느 한쪽이 착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 '시시한' 것 아닐까? 건강한 인간관계는 시소를 타듯 서로를 배려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맺어진다.

- p.40-43 인간관계는 시소게임과 같다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 p.48-52 후려치기 하지 마세요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고민해 선택한 결과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신조차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서도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러 책에서 반복한다. ... 그는 자신의 성격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담담한 긍정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 대답을 오래도록 찾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같은 통찰이 아닐까?

  자신에 대한 질문을 멈추고 다른 사람에게만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건 내 미래가 더는 궁금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니까, "괜찮아?"는 사실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종종 해야하는 질문이다.

- p.66-70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돼



  내 인생은 롱테이크로 촬영한 무편집본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결국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처럼 불행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고서도 갑질인지 모른다. 인정해주는 곳이 없으니 자꾸 "내가 누군지 알아!"하고 소리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회로가 무너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 p.79-82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변신은 편집되어 조작된 극적인 쇼일 뿐이다. 텔레비전이나 책, 강연 등에서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는 모른다. ... 나는 이 평강공주식 이야기가 평범한 대부분의 인간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간관계나 조직문화를 망치기까지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강요나 계몽 같은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달라지기로 마음먹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해야만 바뀐다. 대단한 정신력이나 의지가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잠깐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그것이 금연이나 다이어트 수준의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성이나 우울증, 인격장애처럼 핵심인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애정과 노력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아름답고, 때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진실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는 개선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p.87-90 너는 그 사람을 고칠 수 없어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된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는 의외의 모습들이 모여 완성된다.

- p.104-106 인정받기 위해 무리할 필요 없어


  2017년 8월, '노예 공관병'이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
  내가 일하는 미디어에서 이와 관련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대학생들을 섭외했다.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군대에서 갑질을 당한 적이 있나요?" 기다렸다는 듯이 경험담이 나오리라고 기대했지만, 처음에는 다들 이런 반응을 보였다. "군대에서 갑질이요? 잘 생각이 안나는데..." "갑질이라고 할 것까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노예 공관병처럼 부당한 대우를 당한 적이 없었느냐고 다시 묻자, 그들은 한참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있었어요. 근데 그게 갑질이라고는 생각을 안했어요. 왜냐면 군대에선 그게 너무 당연한거니까. 이제 생각해보니 갑질이네요."
  문제는 늘 있었다. 그걸 문제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 군인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 당연한 이치가 그동안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말로 무시되어왔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고 누군가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말은 그만하고, 비상식적인 관행 앞에서 눈을 감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세상은 진짜로 좋아진다.  

- p.117-120  좋게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



  심리학 용어 중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공간을 뜻하는 말인데, 나라마다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다르다.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퍼스널 스페이스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의 거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이 영역의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을 대할 때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기에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다. 반면, 이 감각이 뒤처지는 사람들은 자꾸만 선을 넘는 발언을 하거나 친밀도에 맞지 않는 질문을 던져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질문자의 의도를 모르더라도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 논쟁이 예상되는 질문에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과 토론을 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최저 시급이 오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같은 질문을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받았을 때는 그저 대화의 공을 상대에게 넘겨주자. 보통 상대가 나를 훈계하거나 떠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쪽으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하고 나의 패를 내보이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대화를 빨리 종료하는 기술이다.

  이처럼 나의 공간을 문득 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또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평정을 유지하면서 나만의 고유한 공간 감각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p.128-132 선을 자꾸 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의 책을 낸 김민섭 작가는 글 쓰는 일 말고도 대리운전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다. 한번은 대리운전 콜을 받고 손님에게 전화해 10분 정도 걸리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다. 약속대로 도착해 여러 번 전화했지만 상대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민섭 작가는 그 앞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법한 에피소드다. 그런데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뒤 김민섭 작가의 대처였다. 그는 이후에 이렇게 행동했다고 자신의 SNS에 썼다.
  "이런 일이 있으면 대개는 '어디 계세요?' 하면서 혼자 이리저리 뛰다가 콜을 취소하고 곧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그냥 가신 걸로 알고 콜 취소할게요. 그런데 당신 때문에 저는 출발지까지 갔고 그건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는 과정입니다. 지금처럼 연락 두절되는 건 몹시 비겁한 행위입니다.' 그가 내가 보낸 문자를 볼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일 아침 깨어 이 문자를 보고 조금은 부끄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사정이 생겨서 취소할 수는 있지만, 이를 미리 알리지 않는 것은 상대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빼앗고 다른 사람의 기회까지 뺏어간다. 다른 사람이 느낄 불편함을 잠깐이라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인 것이다.

  일상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행동은 부적절했어요", "불편하네요"처럼 경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묵과한다면,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다른 곳은 되는데 여기는 왜 안돼요?"하는 고객처럼 "다른 애들은 괜찮다는데 왜 너만 예민하게 굴어?"하는 사람들도 줄지 않을 것이다. 김민섭 작가가 했듯이, 일방적인 상대에게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 p.133-136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알려줘야지


  허세는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가난한 흑인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대부분의 래퍼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쓰는 MC는 'MIC Controller'의 약어로 '마이크 지배자'라는 뜻이다. 크라운, 닥터, 킹, 지니어스 같은 말들은 모두 자신을 과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런 힙합 정신에서 온 것이다.

  결핍은 그 자체로는 연약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무엇이라고 믿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위대해질 수 있다. ... 한국처럼 서로 자존감을 낮추는 데 바쁘고 권위적인 곳일수록 더더욱 이런 힙합 정신이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평가를 그대로 믿지 않고,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리스펙(respect)하는 것. 그렇게 되면 누군가 "가만히 있으라"라고 할 때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 p.137-140 자화자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이상하지 않은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성희롱 가해자 중 "네가 예민한거야"라고 항변하는 자들이 자꾸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믿어라. '불쾌하다'는 감정은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허락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희롱적인 발언을 들었다면 상황에 따라 "혹시 제가 딸 같아서 그러시는 건가요? 저희 아버지는 저한테 안 그러시는데", "방금 말씀하신 거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면 순식간에 유명해질 것 같지 않으세요?", "요즘 그렇게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같이 농담인 듯 하지만 분명하게 문제가 되는 상황임을 경고하는 것도 유용하다.

- p.146-153 네가 예민한 게 아니야


  보편적인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외국인에 대한 과도한 동경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한 생각도 조금씩 없어졌다. 크게 보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적은 경험으로 일부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편견에 사로잡혀서인 것 같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1인분씩의 불운을 만난다.

- p.160-162 상처에 대해 용감해져라



  사람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만 남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관심'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무례한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는 피하고 싶은 상황 앞에서 거리를 두게끔 하는 말이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들었지만 논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라며 경청 자체에만 포인트를 두는 것이다.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무덤덤한 인식은 상대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거대하게 느끼다가는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 p.171-174 부정적인 말에 압도당하지 않는 습관


  신경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는 "불안이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방심하면 금세 살이 찌는 몸을 대하듯, 마음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실제로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대단한 정신력이 아니라 우선 몸과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즐겨 입던 옷이 꽉 끼면 '다이어트를 해야겠구나' 깨닫고, 점심에 과식한 것 같으면 저녁은 거르거나 가볍게 먹고, 정기적인 운동으로 체력을 키운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식이장애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굶기와 폭식, 구토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니 마음의 근육을 키울 일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는 건 감정의 진폭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우울함이 찾아오더라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는 회복력을 얻는 일이다.

- p.178-181 마음의 근육 키우기


  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조언을 거대하게 받아들인다. 확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물을 시간에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이 당신을 평가하거든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넘겨버려라. 그는 나를 잘 모를뿐더러 나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지도 않는다.

- p.183-186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회사가 자기계발도 시켜주고 영혼의 단짝도 찾아주는 좋은 곳이라면 애초에 월급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이 모든 관계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유지될 수 있다.

- p.187-190 회사에서 멘토를 찾지 말 것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당분간 만나지 않고, 뾰족한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여러 번 경고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최대한 옆에 두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더 좋은 사람들이 다가오곤 했다. 나 또한 모든 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노력하게 된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p.197- 자존감 도둑 떠나보내기


  여성들은 첫 경험을 할 때 분위기에 휩쓸려서, 연인에게 "No"라고 하기가 어려워서 응하곤 한다. 그 때문에 첫 경험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현경 교수는 대학생일 때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관계를 요구하자 성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좋아서 한다', '자진해서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다', '상호 동의에 의해서 한다' 등의 주체적 규범을 만들고 스스로 완벽히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섹스를 했다. 그렇게 첫 경험을 한 남자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결혼 전에 자신과 섹스했다며 정조관념이 없는 여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책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만약 내가 그의 논리에 몰려 섹스를 했다면 화가 나서 펄펄 뛰었겠지만 그가 뭐라 하건 내 온전함은 그가 건드릴 수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그처럼 섹스는 자존감의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고, 그 결정이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거절하면 상대가 실망할까 봐 섹스에 응했다는 여성들을 아직도 주변에서 많이 만난다. 하지만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자기 힘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첫 경험조차 남자의 요구에 응해주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이후에도 섹스에 대한 생각은 '나한테 질리지 않을지', '나를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을지'처럼 수동적인 방향으로만 흐르게 된다. 특히 여자들은 섹스에 관해서 자신의 느낌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섹스가 끝났을 때 충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섹스는 상대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 여자들은 특히 섹스에 관한 한 이기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 p.213-216 자존감을 높이는 섹스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한 거다."

  남들이 지적하는 말을 듣고 단점을 없애는 부분만 집중하다 보면 장점도 함께 없어지고 만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단점이 있더라도 특정한 장점이 크게 발휘되는 사람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원래 반짝거렸던 것들을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수정하다 보면, 결국 그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 p.232-236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믿지 마


  연애를 하면서 딱히 심각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마음이 떠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걸 남들도 다 겪는 권태기 같은 거라고 한마디로 넘겨버리기엔 마음의 복잡 미묘함이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 열렬히 좋았던 것이 시시해지기도 하고 취향도 변하듯,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주요 시기마다 목표와 우선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같이 있고 싶은 사람도 계속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하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의 일부가 나의 일부가 된 후 작별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아무리 친밀했던 사이라도 그 만남이 나를 더는 성장하게 하거나 자극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나를 더는 괴롭히지 않고 떠나보내게 됐다.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하면서 어른이 되듯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화나 헤어짐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됐으니까.

- p.237-240 사람 졸업식: 헤어지면서 성장한다


  경경화 외교부 장관이 UN 사무차장보로 있을 때 토크쇼에 출연해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여성으로서 직장에서 겪는 편견에 대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강 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생각이 계속 들 때가 있어요. '내가 한국인이라, 동양인이라 차별받는 건가?' 상황이 좋고 결과도 좋고 협력도 잘될 때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죠.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거나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갈등이 있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나 실망할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데서 '진의가 뭘까' 고민하지 않으려고 저 역시도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너무 지나치게 의심하지 말고요. 상대의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으면서 괜히 넘겨짚지 마세요. 그건 정말 건강하지 않은 업무 습관인데 그 생각에 빠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런 마음의 덫에 빠지는 동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특히 당신이 리더의 자리에 있고 서로 다른 문화권의 동료들을 대할 때는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 p.241-244 둔감함을 키우는 일



네 번째 책으로 2018년 2월의 마지막날을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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