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도가 어렵다. 지도에 쓰인 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것도 어렵고, 필요한 곳을 찾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접는 방법도 헷갈려서 한번 펼쳤다가 원 상태로 돌려놓기도 쉽지 않다. 워낙 지리에 어둡다 보니 친해지려고 내가 사는 곳인 대전광역시 지도와 전국 지도를 거실에 붙여놓았다. 대화 중에 지명이 나오면 벽으로 가 수시로 찾아보는데, 몇 년이 지나도 실력이 제자리 걸음이다.
대전을 잘 모른다는 점은 월간 토마토 취재기자로서 나의 콤플렉스다. 대전에 산지 7년이 되었지만 집과 직장, 업무상 목적지만 오갔을 뿐 별로 돌아다니지를 않았다. 취재하면서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 도시와 친해지고자 지도를 더 열심히 살펴본다.
대전광역시 관광안내지도
월간 토마토 2021년 신년 호에 대전의 하천, 그중에서도 징검다리를 취재하기로 하면서 여러 개의 지도를 사용했다. 지도를 노트북 사이에 끼우고 다녔더니 기사가 마무리될 때쯤에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제일 처음 사용한 것은 거실 벽에 붙어있던 대전광역시 관광 안내지도였다. 벽에 있던 큰 지도를 떼서 대전의 3대 하천과 다리의 이름을 익혔다. 지방하천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지만, 갑천에서 몇 군데, 대전천에서 몇 군데, 유등천에서 몇 군데 이런 식으로 취재 범위를 나누는 데 유용했다. 특히 하루에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는 날은 집에서 제일 먼 곳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방향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방향 등 동선을 짜는 데 도움을 받았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하천의 어디가 상류이고 어디가 하류인지, 동서남북에서 어느 쪽인지 와 같은 사실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어서 넣지 않았다. 지리에 밝은 동료와 지도를 펴 놓고 내가 이해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
취재하면서 사용한 지도가 찢어져서 새 지도를 구해다 붙였다. 대전트래블라운지에서 구한 것이다. 아이들이 지난번 지도랑 다르다며, 어딘지 모르게 더 화려해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지도를 노트북에 끼고 다니며 접었다 폈다 한 장본인인데도 한눈에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들 말을 듣고 예전 지도와 새로 구한 지도를 비교해보니 조금씩 차이가 보인다. 새 지도는 그림과 색깔이 강조되어 그런지 생동감이 있다. 그사이 바뀐 랜드마크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국립대전숲체원이 떠올랐다. 2019년에 개원했으니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정말 예전 지도에는 성북동산림욕장만 표기되어있고, 새로 나온 지도에는 성북동산림욕장과 국립대전숲체원이 동시에 표기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자료가 이용자의 손에 가기까지 담당자들이 주기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대전 지하철타고 뚜벅이여행
대전광역시 지도 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대전 지하철타고 뚜벅이여행>이다. 이 지도는 지하철역에비치되어 있는데, 내가 사는 반석동 카페거리가 나오고 유성온천 족용체험장도 실려 있어 대전을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미술가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한 지도라 정감이 있다.
징검다리 취재를 위해 월평역에 갈 때 이 지도를 사용했다. 갑천에서는 주로 금강 쪽과 가까운 징검다리를취재하려고 했는데, 동료 기자가 유림공원 앞에 특이한 물고기 징검다리가 있다고 제보해 주어 계획에 없던 일정을 추가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갑천의 징검다리를 취재하는 것인 줄 알았다. 도착해서 지도를 자세히 보니 이 지역은 갑천과 유성천으로 나뉘는 곳이었다. 내가 취재하는 곳은 유성천에 있는 징검다리였다. 갑천은 국가하천이고 유성천은 지방하천이라 물고기 형상 징검다리는 국가하천을 관리하는 대전하천관리사업소의 자료에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미포함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지도를 들고 현장에 가보니 의문이 풀렸다. 유성천 표기는 대전시 관광안내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보였는데, 지하철 이용에 특화된 이 지도가 유림공원 근처를 방문하는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집에 와서 카카오위성지도에서 유림공원 앞 유성천을 검색해 보았는데, 물고기 징검다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대동하늘공원: 야간관광지도
대전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곳 중 하나는 대동하늘공원이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관광100선에 뽑힌 곳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지도는 낮과 밤에 대동을 여행하는 방법을 따로 설명해 놓았다. 밤에 방문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음으로 일단 낮에 이 공원을 가볼 계획을 세운다. 지도를 훑어보니 취재 후보지가 몇 군데 보인다. 먼저 대전의 청년 작가들이 만든 대전 굿즈 판매점인 머물다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대동의 여행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하니 취재차 방문할 가치가 있을 듯하다. 국수가락을 널어놓고 말리는 중부제면과 제분소도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식품을 만드는 업소이니만큼 취재 허락을 구해야겠지만, 오래된 상점과 아날로그 감성에 가치를 두는 월간 토마토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유성구청 안내지도
유성구 지도는 산 이름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다. 유성구 소재 공공기관에 가면 로비에서 브로슈어를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내가 유성구 주민인데 모르는 데가 있을까 싶어 들춰보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 유성구 소개 책자 맨 마지막 장은 병풍처럼 펼쳐지는 지도다. 지난 번 국립대전숲체원에 갔을 때 숙소 이름이 대전의 산과 봉우리에서 따온 것을 보았는데, 금수봉, 금병산 같은 객실 이름을 마주하고도 대전 어디쯤이라고 짐작만 할 뿐 위치는 알지 못했었다. 유성구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제야 그 이름과 위치가 연결이 된다. 특정한 취재거리가 정해지지 않아도 평상시에 대전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물려 받은 비행산수
마지막으로 내가 참고한 지도는 신문에 실렸던 대전의 모습이다. 내가 열심히 취재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이년 전에 스크랩해 두었던 기사를 주었다. 중앙SUNDAY의 아트전문기자인 안충기 님이 직접 펜으로 그린 대전의 버드뷰이다. 그는 하늘에서 본 국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비행산수라는 코너에 연재했다. 이 그림은 <모든 길은 여기로 통한다, 대전>이라는 제목과 함께 2019년 3월 16일에 중앙SUNDAY에 실렸다. 친구는 신문에다 물길을 표시하고, 아는 빌딩 몇 군데를 색칠하였는데, 이렇게 흔적이 있는 지도를 물려받는 기분은 특별했다. 나의 대전 글쓰기를 격려하고자 본인이 잘 간직하던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친구에게 정말 감사했다. 지도를 주면서 나에게도 우리 집이나 식별할 수 있는 건물을 한두 개 찾아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우리 집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작품이 세밀화라서 빌딩이 빽빽하고 촘촘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런 거라고 변명을 해본다.
오늘 편집장이 슬슬 4월 호 취재 기획을 준비하자고 했다. 곧 회의를 소집할 거라고 했다. 이 글을 정리하느라 들춰본 지도 속 아이디어 몇 가지를 제안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