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고 Nov 28. 2021

마음으로 재는 거리

전희수 『눈/마음/사이』

지난주 막을 내린 2021년 하반기 대전시립미술관 어린이미술기획전은 원근을 주제로 한 『눈/마음/사이』였다. 이 글은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전희수의 전시리뷰이다. 만화적 요소나 일상의 장면을 내러티브로 표현하는 전 작가는 『눈/마음/사이』에서 아크릴 페인팅 10점과 색연필 드로잉 10점을 선보였다. 전희수의 작품은 발랄한 색과 분위기를 가졌지만 가볍지만은 않다. 전시장에서 본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다녀 작가의 SNS에서 소식 받기를 신청했다. 그리고 그가 매일 일기 쓰듯 작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 작가에게 드로잉은 어떤 의미일까? 선과 음영이 확실한 드로잉은 일상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근황 기록으로, 편안하게 낙서하듯 자동기술적으로 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오랜 세월 드로잉이 쌓이면 개인의 기록이 될 뿐 아니라, 현대사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Isolation>은 코로나 시대 필수인 마스크 쓴 모습을 담았다.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던 2020년 가장 흔했던 모습 속에는 현재의 불편함과 미래에 닥칠 고통을 염려하는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다. 불편한 위치에 달랑거리며 붙어있는 눈, 귀까지 팽팽히 당겨진 밴드, 입과 코 어느 것 하나 가리지 못할 만큼 작은 마스크는 외출과 만남이 제한된 삶을 표현한다. 전희수 작가는 짝짝이 눈과 쏠린 마스크로 해학적인 요소를 살리면서, 자를 사용한 일관성을 부여함으로써 드로잉 작업에 규칙을 더한다.

      

 <Isolation> 종이에 색연필, 23x30.5cm, 2020


드로잉이 감정과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신속하게 하는 활동이라면, 페인팅은 드로잉 이미지를 회화로 가져와 작가적 해석을 확장하고 방식과 기법을 탐구하는 긴 호흡의 행위다. 이 씨름을 위해 전희수는 10호 크기의 작은 그림부터 5m가 넘는 대형 작품까지 다양한 형태적 실험을 이어간다. <Dungeons and tables>에는 사람, 동물, 외계인을 닮은 존재 등 열댓 명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이들 앞에 놓인 긴 테이블에는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 아마존 배송 상자, 포장을 벗긴 햄버거, 불붙은 채 누워있는 촛대, 양피지, 장난감 자동차, 에너지 음료 캔, 플레이보이 토끼가 그려진 잡지… 생활밀착형 사물을 전 작가의 세계로 옮겨 놓으니 혼돈과 질서가 생기며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걸음을 옮기며 관람해야할 만큼 큰 작품 <Dungeons and tables>은 술래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대상을 맞추는 그림 찾기 게임 I Spy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혼자 전시장을 방문했지만, 작품 앞에서 아이들과 I Spy를 하며 놀이처럼 미술관을 방문한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미술관 담당자는 어떤 이유로 원근감이 주제인 어린이미술기획전에 전희수 작가를 초대했을까? 원근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작품을 보며 의아함을 가졌던 나는 전시실에 비치된 보호자 가이드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원근법은 가까운 것은 크고,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리게 표현하여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작가는 전통적인 원근법의 사용보다는 자신에게 친숙하고 흥미로운 것을 자유로운 크기와 친숙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요. 마음 거리로 거리감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보호자 가이드 중에서 -


전시 기획자는 만화적 요소를 그리고 원근을 무시하는 자유로운 표현 방식으로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전희수의 작품을 통해, 눈으로 재는 객관적 거리와 마음으로 재는 주관적 거리의 차이를 어린이 스스로 느껴보길 바란듯하다.

<Dungeons and tables> 캔버스 배너에 아크릴, 214x520cm, 2019


이번 전시는 캔버스 배너에 그린 작품을 여러 개 포함한다. 그가 사용하는 캔버스 배너는 가장자리에 끈 꿰는 구멍을 만들어 금속 그로멧을 부착한 형태다. 이는 캔버스처럼 단단한 뒷면이 없기에 전 작가는 아크릴 물감을 천에 비비듯이 작업한다. 이 과정에서 파스텔화 같은 중첩이 가미되어 작품에 차분함이 생긴다. 전희수 작가가 처음부터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뜨릴 수 있는 확장성과 꺾어진 벽을 감싸듯이 전시할 수 있는 가변성이 있는 캔버스 배너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만화의 컷 프레임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던 그가 네모난 틀 밖에서 그리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캔버스 배너를 만난 것인데, 이를 통해 회화적 요소를 확립하며 자신만의 톤을 찾았다. 작가에게 작품을 어떻게 보관하고 운반하는지 물었더니 ‘돌돌 말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예상한 답이었음에도, 희한한 울림이 있었다. 초현실주의화가살바도르 달리가 개념속에서 흘러내리는 시계를 가졌다면, 만화적인 회화작가 전희수는 모퉁이에도 원기둥에도 펼칠 수 있는 물리적으로 유연한 작품을 가졌다. 이런 의외성이 전 작가의 작품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의 그림에는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 <SonaLisa> 색연필화 느낌의 아크릴화로, 명화 모나리자의 화면 구성을 취하고  씨인 배우자 이름을 따서 SonaLisa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구름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투명하고 아련하게 표현된 그녀의 반려견일까 하고 짐작해본다. 작가의 아내가 <SonaLisa> 영향을 주었다면 그의 자녀는 <Jaynosaur> 흔적을 남겼다. 전희수는 아이가 자석 스케치 보드에 그린 공룡을 따와 드로잉 작으로 완성하였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삶을 일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투영되어, 작가에게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재이가 그린 공룡을 드로잉에 넣어 보았다. 이제 재이도 형체를 알아보게 그릴 수 있다.”

-전희수 작가의 SNS에서 -

<SonaLisa> 캔버스 배너에 아크릴, 114.3x152.4cm, 2017

<Jaynosaur> 종이에 색연필, 23x30.5cm, 2020


DMA아트센터는 대전시립미술관 일부이지만 미술관과 거리를 두고 엑스포시민광장 미디어큐브 2층에 섬처럼 존재한다. 광장은 미술관보다 유동 인구가 많음에도, 이곳에서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가 열린다는 점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시민과의 소통을 맡은 담당자는 전시작가의 작품을 콘텐츠로 활용하여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전시장에 방문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홍보를 해주길 기대해본다.



전시회 정보

대전시립미술관 어린이미술기획전 『눈/마음/사이』 임택 X 전희수

전시 기간: 2021.8.3.~2021.11.21.

장소: 대전시립미술관 DMA아트센터 2층 (만년동 엑스포시민광장 미디어큐브)


작가의 이전글 소박하고도 힘이 있는 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