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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Mar 28. 2022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전시

민보라 개인전 『우리는 공존을 걸어가고 있다』 전시 리뷰

   인천아트플랫폼은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근현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전시 공간으로 삼은 이곳에 세월의 흔적을 표현한 민보라의 전시 『우리는 공존을 걸어가고 있다』가 열렸다. 민보라 작가는 동양화에 바탕을 두고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낮의 자연채광과 그림자가 만드는 화려한 대비를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면, 밤의 어슴푸레함과 조명의 온기를 담는 작가도 있다. 민보라는 후자이다. 작가는 그간 순지와 먹, LED를 이용해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정서를 전달했다. 이번 전시에는 기존 작업에 자성유체와 아두이노를 더해 시간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작품<공존>은 인천아트플랫폼 C동의 전경을 담았다. 관객은 작가가 전시 공간이나 지역에 영감받아 제작한 작품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다. 관람객이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지역과 장소를 작가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가로 폭 6m의 대형작으로, 1930-40년대 건축물의 구성 요소가 세밀하게 보이는 곳과 희미하게 나타난 곳으로 나뉜다. 그간 작가는 작가의 감정과는 별개로 관객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공존>을 기점으로 새로운 기틀을 다졌다. 민보라는 작가와 관객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적 경험을 공유하기에 우리 모두의 삶을 휘감고 있는 세월을 같이 마주보면 좋겠다고 하였다. 즉,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세월의 존재를 ‘함께’ 느껴보자고 제안한다.     


   그의 또 다른 대형작 <시든 세월>은 유럽에서 만난 인적 드문 길가를 담았다. 마모된 외벽과 굳게 닫혀있는 문틈으로 긴장감이 흐르지만, 건물 위로 빛나는 밝은 빛은 경계 안쪽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를 일으킨다. 작가는 작품이 전시된 공간 바닥에 납작하고 얕은 검은색 설치물을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았다. 물에 비친 작품은 호숫가에 비친 풍경처럼 아련하다.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 『우리는 공존을 걸어가고 있다』에서 민보라는 그간 시도해보고 싶었던 실험적인 배치와 공간 해석을 구현했다. 이로써 관객들은 밤 풍경으로의 몰입에 한걸음 가까워진다.           

시든 세월  순지에 먹, LED, 가변 설치 133.5 X 531.9 cm 2020 

   작가의 모티브인 세월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민보라는 추상적인 것을 시각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액체 자석을 이용한 키네틱 작품 <세월을 보고 있노라>는 꾸준한 실험 결과 중 하나다. 아두이노 프로그램에 맞추어 자성유체의 모양은 변한다. 액체 자석의 느린 속도와 검은 퍼짐은 먹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민보라의 작품과 상호보완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고 싶은, 이 작고 소중한 집 앞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불멍에서 치유적 힘을 느낀 것처럼 따뜻한 불빛과 자석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몇 분이고 머물게 된다.   


 “액체 자석의 움직임은 반복되는 나날들 속, 단 하루도 반복될 수 없는 새로운 나날들의 쌓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입자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작가 일기 중-        


세월을 보고 있노라  자성유체, 아두이노, 순지에 먹, LED  70 X 105 cm  2020 

   이번 전시는 민보라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 전시를 진행하며 그녀는 기획, 디자인, 홍보, 도록 제작 등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소개되기까지 모든 진행을 직접 수행했다. 도록 맨 마지막 장 사진인 전시 현수막을 벽에 걸고 있는 뒷모습이 그 과정의 한 단면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전시 엽서에 나온 <세월의 눈> 스틸컷은 같은 모양이 반복되지 않는 자성유체의 퍼짐이 있던 한순간을 담았다. 자유롭고도 아련한 모습인 이 장면이 매일 소비하고 절대 반복할 수 없는 세월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2021년을 마무리하는 민보라의 개인전 『우리는 공존을 걸어가고 있다』는 새로운 시도와 진지한 메시지로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가의 저력과 위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 정보

민보라 개인전 『우리는 공존을 걸어가고 있다』 

2021.12.14.~12.25.

인천아트플랫폼 A동 갤러리 디딤, H동 프로젝트룸 


In Berlin  순지에 먹, LED,  PIR 감지센서 105 X 70.5 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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