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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Mar 07. 2022

텐션 넘치는 화상 독서모임

생방송 출연이 따로 없다 

모임 공간 만들기


화상 독서모임을 할 때 제가 머무는 공간은 저의 집 서재입니다. 외출 채비나 이동에 시간을 쓰지 않지만, 온라인 만남을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먼저 따뜻한 차를 내린 후 휴대전화는 무음으로 바꾸고 서재에 있는 집 전화기가 울리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독서모임에 간다고(?) 알린 후 방문을 닫습니다. 혼자 있을 때 시작한 경우는 귀가한 가족이 찾을 수 있으니 포스트잇에 “독서모임 중. 00시에 끝나요~” 라고 적어서 붙여놓습니다. 방송실 온에어 불빛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듯, 저도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또한, 모임 중에 제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두 시간 동안 필요한 것을 손 닿는 곳에 챙겨 놓습니다.     


온라인 공간의 실재감

가족들은 문밖으로 들리는 소리로 그날 제가 독서모임을 진행했는지 아닌지 알아차립니다. 언젠가 모임을 마치고 거실에 나왔더니 둘째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 진행자였어?” (어떻게 알았지?) 

“진행할 땐 엄마가 화이팅 넘치잖아. 잘 끝났어?” (목소리가 크다고?) 

다른 가족들도 비슷하게 말하였습니다. 진행할 때뿐만 아니라 참여할 때도 목소리가 커서 방문 너머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물리적인 접촉이 없는 화상 공간에서는 실재감 presence 이 중요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독서모임 ‘수북수북’과 ‘일오’는 골고루 의견을 나누는 성인 학습자들의 모임인데, 특별히 총괄 진행을 맡은 회원이 일일 교수자가 됩니다. 실재감의 요소인 ‘협업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느낌’과 ‘동시 접속 중일 때 소통을 통해 주변 환경에 대해 받는 긍정적인 느낌’은 진행자의 역량과 기획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재감에 대해 알고 나니 제가 화상 모임에서 크게 말하고 양손을 사용했던 이유가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모임에 가입했을 때 저는 조곤조곤 말하는 회원이었는데요. 화상 모임에 적응하면서 활력과 재미를 추구하게 된 것이지요.     


유명 인터넷 강사 중에는 웅변 수준의 발화법을 구사하고 상체를 다양하게 움직이는 이가 있습니다. 영상 강의임에도 청중이 바로 앞에서 듣는 것처럼 느낄 때, 말하는 사람의 텐션이 높다고 하지요. 영어권에서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신나고 흥이 넘치는 사람을 표현할 때 하이 텐션 high tension이라고 합니다. 미디어에는 텐션 올리는 음악과 게임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저의 독서모임 회원들은 점잖은 성향으로 한 명 한 명은 하이 텐션과 거리가 먼데, 화상 모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텐션 조절을 합니다.       


경매인가 오락인가

매월 15일에 경영·자기계발서를 읽는 독서모임 ‘일오’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모임을 진행합니다. 1월에는 제 차례여서 자기소개, 독서 토론, 월별 진행자 정하기를 했는데요. 누가 어떤 책을 고를지 결정하는 일은 변수가 많기에 긴장되었습니다. 먼저 희망하는 도서가 분명한 사람들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도서 목록의 ⅓은 회원들의 관심사가 골고루 반영되었습니다. 같은 책을 원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으면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경쟁 없이 수월하게 조율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무작위로 정하고, 일정이 맞지 않거나 뽑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이날 회원 한 명은 참석이 어려워 어떤 것이든 정해준 책을 진행하겠다고 하였는데, 한 구성원이 이 기회를 포착, 자신이 뽑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불참한 회원의 도서와 바꾸고 싶다고 말하여 모두를 웃게 하였습니다. 빠르게 이견을 조율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와, 우리 방금 10분 동안 경매한 것 같아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회원들의 참여를 위해 재촉하는 말투를 쓴 점과 최선과 차선을 견주어가며 결정을 내린 것이 하이 텐션을 유발했나 봅니다.      


이날 둘째도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은 왜 그렇게 웃었어? 책 안 읽고 노는 거 같던데. 가위바위보 같은 것하고 논 거야?” 

제가 설명할 단어를 찾고 있는 동안 둘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친구들이랑 컴퓨터 게임 할 때 엄마가 나한테 시끄럽다고 하잖아. 오늘은 엄마가 방에서 컴퓨터 게임 하는 것 같았어.” 

중학생인 둘째가 종종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는데, 상대방과 대화하는 소리가 제법 커서 주의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둘째의 설명으로 방문 밖의 사람들에게 저의 모임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화상 독서모임은 초대받은 소수의 인원이 함께 만드는 송출하지 않는 생방송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만나는 시간 동안 몰입도가 높고 긴장됩니다. 진행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양쪽 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평소보다 텐션을 높여 참가합니다. 실수가 생기면 순발력을 발휘해 대처하고 그 와중에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화상 독서모임에서 무겁고 힘든 책을 읽어도 끝난 후에 ‘아, 오늘도 재미있었다.’라고 하는 이유는 두 시간의 하이 텐션 대화 시간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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