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기자가 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느긋한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프리랜서 기자 모집 광고를 보았다.
"내가 좀 글 쓰는 걸 사랑하고 좋아한다면 우선 에세이를 한번 써보심이 어떠할까 합니다.”
대전문화예술잡지 월간 토마토에서 기자를 찾는 것이었다. 이 잡지에 실린 글은 작가의 생각과 감상이 담긴 에세이 같기도 하고 정보 전달을 위한 기사 같기도 하다. 누가 이런 장르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평소 궁금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지원해보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풀타임으로 수행하기는 어렵지만, 필요할 때만 모이는 느슨한 공동체 활동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절 내내 에세이를 쓰느라 끙끙댔는데, 얼마 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프리랜서 기자 모집에 내려고 쓴 에세이: '헌책방 나들이'
모임에는 새로 선발된 기자 6명과 출판사 직원 4명이 참석했다. 환영회를 겸한 식사를 한 후 편집장이 글쓰기 강의를 했다. 편집장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내 글이 괜찮나? 이 정도면 충분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이들이라고 했다. (흠... 듣기 좋은 말인데) 충분히 글쓰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어떤 내용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가 말한 기자 선발 기준은 이랬다. “3,000자 분량 (A4 두 장)에세이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당신들은 이 분량을 제출했으니 이 자리에 있다. 이론적으로 글쓰기 실력은 고등학교까지 성실히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이 되는데,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기본기를 갖추었으니 기자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무리가 없다.” (헐...한국 정규교육을 너무 믿는 건 아닐까) 편집장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뽑았다며, 모두가 매달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쓰지 않을 수도, 한 달에 두 개를 쓸 수도 있다고 하였다. 간단명료하면서도 개방적인 평가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후에 생각해보니 이런 유연한 사고방식은 리더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련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두 명은 개인 사정으로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없다고 하여 프래린서 필진 4명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 후 편집장은 기자들이 제출한 기사에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며 원석을 가공해서 옥석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취재는 다르게 보고 깊게 생각하는 것
편집장이 진행한 교육은 ‘취재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취재에 관한 강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1. 취재기자는 다르게 보는 사람이자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취재 글쓰기의 본질은 관찰과 사유이다.
2. 기자라는 일이 본인에게 잘 맞는지 알아보려면 자신의 일상적 고민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라.
3. 글은 현장에서 완성해야 한다. 돌아와서는 정리만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열고 쓰라는 말이 아니고 취재 장소에서 전체 기사의 윤곽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장에서 글의 제목과 소제목을 뽑아내라.
4.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을 때 글의 소재가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싶으면, 현장에 더 머물면서 인터뷰와 관찰을 하는 게 좋다.
5. 촬영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담아라. 소품, 외관, 간판, 오래 쓴 물건 등을 기록하여 기사에 활용하라.
6. 인물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는 방법은 취재에 필요하지 않은 쉬운 질문을 몇 개 하면서 상대방이 긴장하지 않게 하고, 그가 대답하는 동안 촬영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할머니! 할머니 이야기가 실린 잡지 나오면 제일 먼저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으세요?”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을 사용할 수 있다.
7. 모든 취재에서 인터뷰 대상을 소비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즉,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고 진지하게 취재에 임하라.
대중적 글쓰기
취재보다 글쓰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글쓰기는 혼자 하면 되는 것이지만 취재는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특히 취재 대상을 선정하고 인터뷰 허락을 구하는 일은 미리 준비하고 공을 들인다고 더 잘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필력보다 인간관계 기술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던가? 인간관계라는 게 기술이라기보단 그 사람 자체인데, 한 시간 수업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아리송한 마음을 접어두고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여러 가지 글을 써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기사 쓰기에 관한 강의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1. 월간 토마토에 취재 글을 쓰는 것은 ‘대중적 글쓰기’를 한다는 뜻이다.
(‘대중적 글쓰기’라는 멋있는 말을 배웠다!)
2. 글을 쓸 때는 다 넣는다는 생각보다는 잘 버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힘들던데)
3. 한 문장 한 문장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전체 내용을 걱정하라.
(숲을 보고 나무를 봐야 하는데, 나는 나무를 먼저 보는 성향이라 걱정이 되는걸)
4. 재미있는 걸 재미있다고, 예쁜 걸 예쁘다고, 감동적인 걸 감동적이라고 쓰면 안 된다. 이런 표현 대신 독자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현장에서 찾아 글 속에서 밝히는 것이다.
(이런 걸 다 빼면 글에서 무슨 형용사를 쓴담?)
5. 글을 읽는 이들이 인터뷰이의 삶에서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점을 끌어내려고 시도해보라.
(그 동안 월간토마토의 글이 이런 감성으로 나온 거구나~)
B컷 일지의 시작
짧은 강의를 듣고 곧 현장에 나가려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부딪히며 배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갈수록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추세인데다 코로나시대에는 더욱 취재 거절을 많이 당할 거라는 편집장의 경험담도 부담이 되었다. 취재기자의 업무는 ‘아이템 기획-섭외-이야기 끌어내기-문장으로 정리하기’ 활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간 나의 글쓰기 경험이 ‘문장으로 정리’에 집중한 것이었다면 취재 글쓰기를 위해서는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판사에서는 과월호를 나누어주며 사람들이 월간 토마토를 잘 모르기 때문에 취재 시 과월호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도움 된다고 하였다. 명함도 곧 준비된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프리랜서 기자가 되었다. 버릴 것은 냉정하게 버리고 기사 작성에 에너지를 쏟은 내 글이 월간 토마토에 실렸을 때의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버린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간 토마토에 실리지 않은 기사 뿐 아니라 취재하면서 느낀 감정과 기억들도 따로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마치 술을 담고 나면 남는 술지게미 같은 그것을 담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