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종묘사 방문기
오래되고 신기한 상점 찾기
취재 및 글쓰기 교육 후 첫 번째 과업을 받았다. 대전의 오래된 상점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오래됨이라 함은 얼마나 된 것일까요?” 라고 물었더니 편집장은 30년 이상이라고 하였다. 몇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업을 이어온 장소를 취재할 기회가 생기다니! 예스럽고 역사가 깊은 곳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구미가 당겼다. 편집장은 원도심을 구석구석 살펴보면 오래된 곳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어지간한 곳은 지난 14년 동안 월간 토마토에서 취재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각자가 관심이 있는 분야를 취재하는 것이 좋다면서, 가능한 상황이라면 작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며 자연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환영회 때 배달시킨 중식 태화장도 알고 보면 굉장히 역사가 깊은 곳이다.
-약재 거리에 가면 환약만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오래된 상점도 있다.
-잘 둘러보면 동네마다 터줏대감 같은 방앗간이 있다.
-유성에서 오랫동안 오카리나를 만드는 분이 있는데, 이미 취재했다.
나는 재작년에 방문했던 표구집이 떠올랐다. 액자의 속지가 오염되어 찾아갔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사장님이 종이를 교체해주었었다. 수고비를 천원만 달라고 하기에 너무 싸서 죄송하다고 하였더니, 나중에 대형 작품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내부 모습으로 보아 오래된 상점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30여 년 넘게 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전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관계가 형성되기도 전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지난번에 잘해주셔서 다시 왔다며 인사드리고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첫 번째 명함은 부동산에서
월간 토마토 한 권과 명함을 챙겨서 구암역 인근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상점이 비어있었다. 병풍, 액자, 족자라고 쓰인 간판은 그대로인데 ‘부동산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에 적힌 부동산을 찾아갔다. 표구집 사장님이 다른 데로 이사했는지 물었더니, 얼마 전에 은퇴했다고 알려준다. 표구사는 대흥동에 가서 찾아보면 있을 거라고 하였다. 새로운 취재대상을 찾아야 함을 직감하고 나는 명함을 꺼내 부동산 사장님께 드렸다.
“사장님,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요. 유성시장 일대에 오래된 가게를 취재하려고 하거든요. 한 30~40년 된 곳이요. 예전에 옆에 있는 표구사를 가 본 적이 있어서 다시 찾아왔는데 아쉽게도 없어졌네요. 혹시 인근에 오래된 상점하면 떠오르는 곳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사장님은 고민 끝에 대광종묘사에 가보라고 하였다. 얼마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동산이 이곳에 자리 잡기 전부터 대광이 이 동네에 있었으니 아무튼 오래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 건물이었는데, 안쪽 골목으로 이사를 했다는 말도 해주었다. 부동산에서는 걸어갈 만한 거리라고 했지만, 초행길이라 그런지 멀게 느껴졌다.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대광농약종묘사 이전 50m’라고 쓴 표지판을 만났다. 세워 놓는 노란색 간판을 데크로드 울타리에 묶어둔 것이다.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을 보니 목적지가 보였다. 종묘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씨앗, 모종 같은 걸 파는 곳이겠구나 싶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농약종묘사였다. 편집장의 조언과 다르게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주제를 취재하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상점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건넸다. 앞치마를 한 점원이 무엇을 찾는지 묻는다. 사러 온 건 아니고 뭘 좀 여쭈러 왔다고 했더니 간단한 건 본인에게 묻고 어려운 건 사장님께 물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통화 중인 사장님을 기다리며 상점을 둘러보는데 오래된 상점이라는 느낌이 없다. 새 공간으로 이사하면서 그런 흔적이 지워졌을 것이다.
사장님의 통화가 끝나고 방문 목적을 알렸다. 부동산에 가서 오래된 상점을 문의했더니 1순위로 이곳을 추천해주셨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오래 하긴 했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월간 토마토를 보여드리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장님은 성수기인 봄에는 상점 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 않으니 가능할 것도 같다고 하였다.
바쁘지 않은 때라고는 하지만 상점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렸다. 사장님은 계속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나는 옆에서 관찰하며 질문을 하게 되니 서서 사장님을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노트를 공중에 띄어놓고 필기하는 것도 어려워서 앉을 만한 의자를 찾아보았다. 상점 안을 둘러보다 빨간색 업소용 의자를 발견했다. 사장님께 큰 소리로 “이거 가져다 앉아도 될까요?” 물으며 이미 몸은 의자를 들어서 옮기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권하지도 않는 상점 안의 의자를 끌어다 쓰는 나를 보며, 내가 의외로 얼굴이 두껍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담스럽지 않게
농약종묘사에 머무는 한 시간 동안 외상으로 물건을 사 간 사람이 세 명 있었다. 사람들이 외상을 자주 하는지 질문했더니 대답 대신 전산시스템에서 고객들의 누적 미지급액이 얼마인지 보여주었다. 금액이 너무 커서 놀란 나는 이렇게 거래하면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외상을 해주면 당연히 본인이 어렵지만, 농민들은 더 어려워서 일단 물건을 가져가고 돈 생기면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집에 와서 외상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파는 일’이었다. 카드가 보급된 이후에는 외상이 거의 없어져 요즈음은 일반 가게에서는 외상이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외상이 가능한 대광농약종묘사는 농사에 필요한 재료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장님의 외상거래 기록 방식을 직접 보고 나니 오랜 단골들이 들르는 상점이기에 이런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상점이 현재 위치로 옮긴 지는 2년이 넘었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는 바로 얼마 전까지 옆 건물에 있었다 하였고, 길에서 이전 안내판도 보았던 터라, 근래에 이사했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이었다. 어쩌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영업해온 대광농약종묘사의 역사에 비하면 2년 전은 최근일 수도 있겠다. 사장님은 상점 밖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써달라고 하였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글을 읽는 이들이 오랜 세월 농약종묘사를 일궈온 사장님의 삶에서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을 지면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