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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컷 일지

신년호 기획회의

by 반고

신년 호 준비

취재하러 다녀온 후 처음으로 월간 토마토 사무실에 갔다. 아직 잡지가 나오기 전이라 글이 실린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12월호 업무는 끝났다. 오늘은 내년 1월호 취재를 위한 기획 회의가 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편집장이 한 말이 기억났다. 매체를 만드는 사람은 최소 두 달, 어떤 때는 한 계절을 앞서 준비한다고 한다. 아직 연말 느낌도 나지 않는 11월 초순에 신년호를 준비한다는 게 낯설었다. 월간 토마토는 흑백판과 컬러판을 번갈아서 만든다. 흑백판은 출판사 사무실에서 직접 인쇄하고 재봉틀로 한 땀 한 땀 꿰어 만드는 특별함이 있고, 컬러판은 인쇄소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잡지 모양이다. 나는 수작업 같은 감성이 좋아서 연중 흑백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월간 토마토가 이런 방식으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신년 호는 컬러판이 나올 순서라서 사진의 장점을 살리는 기획이 핵심이었다. 편집장은 LIFE 매거진을 참고해서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준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활자중심이 아닌 사진 중심으로 2021년 1월호를 만드는 것이다. 월간 토마토 과월호 중에는 포토에세이라는 코너를 실은 것이 있는데 이를 함께 살펴보며 느낌을 파악해 보았다. 글은 적게 쓰고 사진을 많이 싣는다니 왠지 취재도 더 쉬울 것 같았다.


기획 회의

회의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나는 우리 동네 맛집에서 도넛을 사 갔고, 다른 프리랜서 기자 한 명은 직접 빵을 구워왔다. 잡지출판사의 기획 회의가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이 정도 분위기라면 즐겁게 올 수 있겠다 싶었다. 예상하지 않게 간식 파티를 하게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빵 사진을 찍었다. 편집장은 다들 사진 찍는 것이 익숙한지 물었다. 나를 제외한 기자들은 20대인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찍는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몇 년 전까지 업무와 기록용으로만 사진을 찍고 예쁘게 찍거나 잘 찍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면서 세상에 멋진 사진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배우고 싶어서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강사가 알려준 여러 가지 기법과 장비 사용법은 필기 공책에 남았지만, 이 한 마디는 가슴에 깊이 새겼다.

“촬영은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인터뷰할 때 대상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몰입하여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는 활동인데, 사진도 마찬가지 원리였다. 엄청난 기법과 기술이 없어도 진정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임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사진찍기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사진 강의를 들을 때만해도 내가 향후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리란 것이나 취재하면서 촬영도 같이하는 과제를 받게 될 줄도 몰랐다. 조금씩이지만 다방면으로 배워둔 것이 다행이었다.


사진으로 대전을 소개하다

대전의 문화예술잡지답게 신년 호는 사진으로 대전을 소개하는 테마였다. 대전하면 떠오르는 것, 알리고 싶은 것, 잘 모르고 있지만 존재감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대전의 오래된 학교와 그 주변, 대전 사람들이 아끼는 산, 도시 전역에 흩어진 독립책방 이름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편집장은 대전의 중요한 생태자원인데 대전 사람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3대 하천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서 힌트를 얻은 나는 하천을 중심으로 기획을 해보고 싶었다. 천변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정말 많다고 느꼈던 징검다리도 떠올랐다. 대전의 징검다리를 소개한다? 어떤 스토리가 나올까? 막연하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기획 회의에서 거론된 장소는 대부분 들어는 보았지만 가보지 않았던 곳이 대부분이었다. 동료들이 낸 의견은 취재대상지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관심이 갔다. 오늘 회의는 브레인스토밍하기 위한 것이었고, 각자 집에 돌아가 기획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기획서 준비를 위해 대전의 하천을 중심으로 자료조사를 했다. 대전시 홈페이지와 하천관리사업소에 많은 정보가 있었다. 대전하천관리사업소의 담당자는 최근에 시가 관리하는 하천의 징검다리를 전수조사한 자료를 사진과 함께 보내주었다. 천천히 살펴보니 문제점이 보였다. 사진으로 본 하천의 모습이 다 비슷비슷한 거였다. 망설이다가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대화방에 올린 나의 질문

편집장은 내가 징검다리에 꽂혔다며, “동료들의 지지를 받고 싶군요.”라고 하였다. 일단 취재 기획서를 써보고 윤곽이 잡히지 않으면 다른 아이템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시작을 하였다. 나는 단체 대화방에다 취재기획서 양식이 따로 있는지, 예시를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 언론학과 학생들이 작성한 예시를 찾았다. 좋은 예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획서에는 개요, 취재 방법, 촬영 일정, 준비물을 넣는 것임을 알았다.


내 자료를 검토한 편집장은 훌륭한 기획서라는 말과 함께 징검다리 말고 세월교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하였다. 오래전 다른 취재 때문에 세월교라는 단어의 기원을 찾으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다는 일화도 알려주었다. 취재 기획서를 써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호기심과 열정은 사라지고 이건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모두 야외촬영이라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피해서 일정을 짜야 했다. 사람을 취재하지 않고 장소를 취재하는 것이다 보니 그 주변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나올지 의문이었다. 중간에 기획서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며 열흘 동안 총 스무 곳 이상의 징검다리를 방문하고 현장에 머물면서 사람들과 풍경을 관찰했다. 편집장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그렇지만 지금 내 눈앞에 월간 토마토 2021년 1월호를 두고 컬러판 페이지를 넘기며 징검다리 사진을 보고 있으니, 프로젝트의 시작이 어설펐어도 구슬을 꿰니 근사한 완성품이 됨을 실감한다.


취재 필수품은 정보원, 지도, 그리고 동행

이번 취재에서 유용했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나의 비공식 정보원이었다. 나는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오가다가 특이한 징검다리가 보이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제보와 사진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동료 기자 한명은 내가 취재를 하는 동안 지나는 곳곳의 징검다리 사진을 찍어서 전송해 주었고,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회원들도 자신이 아는 징검다리 위치와 사진을 공유해 주었다. 두 번째는 지도였다. 대전시지도, 지하철지도, 하천관리사업소 지도, 관광지도, 카카오맵 위성지도 등 지도를 노트북 사이에 끼고 살았다. 지리와 방향감각에 어두운 나로서는 지역적으로 골고루 취재하고 싶은 마음에 지도가 닳도록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세 번 째 협력자는 취재에 동행해준 아들들이었다. 갑천 취재는 첫째와, 유등천 취재는 둘째와 함께 갔는데, 즐거운 일화가 많았다. 징검다리 취재를 위해 대전 곳곳을 누빈 이야기는 다음 글에 소개하기로 한다.


월간 토마토 홈페이지 링크는 아래 참조

https://www.tomatoin.com/app/main/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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