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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컷 일지

징검다리를 놓다

by 반고

취재 연습

취재 목적지가 대전 곳곳에 흩어져있어 마음이 급했다. 취재 기간을 열흘 정도로 잡고 일 보러 나갈 때마다 목적지에서 가까운 징검다리에 가보기로 했다. 먼저 연습 삼아 집 앞 반석천에 나가 보았다. 사진 구도를 살펴보고 준비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둘째가 우리 동네에 신기한 대왕 돌다리가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했다. 정말 고인돌 무덤에 쓰일 것 같은 큰 돌로 만든 다리였다. 징검다리는 여러 개의 돌을 놓아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통으로 된 돌다리도 징검다리인지, 취재 대상이 맞는지 검열에 들어갔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보려는 나의 현미경증이 재발하고 있었다. 징검다리의 사전적 의미가 중요한가? 다리의 구조적 형태가 나의 관심사인가? 아니다. 나는 대전을 소개하기 위한 매개체로 징검다리와 주변 환경을 탐사 중이다. 천변을 걸으며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보고 이용자를 관찰하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는 누군가가 취재에 동행하여 다리를 건너는 모델이 되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늘은 혼자였다. 침례신학대학교 부근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성인 남자 둘이 징검다리로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가서 사진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다리를 건너가는 뒷모습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중년의 행인은 대답 대신 발걸음을 계속 옮겼고, 젊은 행인은 승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다리라서 금방 지나갈세라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중간에 사진기 구도를 한 번 바꾸었는데, 그 사이 그들은 반대편에 도착했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잘 찍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실습해보니 움직이는 사람을 재빨리 카메라에 담는 것이 어려웠다. 더 어려운 점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협조를 구하는 일이었다. 지난번에 얼굴이 두꺼우면 취재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썼는데, 취재하다 보면 얼굴이 두꺼워지기도 하겠다.

집 앞 반석천에서 만난 통 돌다리


대전현충원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보면 알려달라고 소문을 냈더니, 친구가 대전현충원에 징검다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현충원 징검다리로 검색을 해 보았다. 원래 있던 다리를 철거하고 2020년에 재단장한 다리 기사가 떴다.


평일 아침 현충원은 조용했다. 일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만 간혹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초소에서 지도를 얻었다. 근무자는 현충원 안에는 연못이 세 개 있는데, 그중 한 곳에 징검다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지도를 손에 들고 현충원을 걷기 시작했다. 현충원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고 벌인 일이었는데, 처음 간 연못 두 곳에 징검다리가 없자 차를 놓고 온 것을 후회했다. 세 번째로 간 연못에서 발견하긴 했는데, 다리라고 할 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여기가 아닌 것 같아 얼른 사진을 찍고 물어볼 사람을 찾았다. 마침 행인이 있어 다가갔다. 그녀는 방금 내가 다녀온 곳을 가리키며, 징검다리가 있긴 있었는데 폐쇄되어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분명 지인이 징검다리를 건넜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내가 찾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일단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이동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거의 다 왔을 때 보훈 둘레길 표지판이 보였다. 이 단어를 본 기억이 떠올라, 그 자리에 서서 검색했다. 대전 현충원 보훈둘레길 중 ‘보라길’ 구간에 징검다리 돌 교체공사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내가 찾는 곳은 바로 여기였다. 심지어 보라길은 내가 차를 주차해둔 곳에 가까웠다.


현충원을 감싸고 있는 보훈둘레길은 국립대전현충원이 관리하는 곳이지만 현충원 ‘안’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현충원 안에 있는 징검다리를 찾고 있어요.”라고 했을 때, 두 명이나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징검다리를 알려준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보라길 징검다리는 현충원 초입에 있고 전용 팻말까지 달린 다리였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현충원에서 볼 수 있는 다리로 각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힘들게 찾은 데다가 가장 최근에 보수 공사한 다리인 만큼 꼭 기사에 넣고 싶었는데, 대전을 소개하는 맥락에서 그 위치를 가늠하기가 애매하여 최종 원고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이런 것임을 실감했다.


현재 사용 금지인 징검다리 (좌)와 새롭게 변신한 둘레길 징검다리 (우)


첫째와 동행한 취재

취재 동안 나의 대화 주제는 징검다리 풍경이었다. 생각보다 긴 다리를 찾기 어렵다고 했더니, 고 1인 첫째가 자전거로 대청호까지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맞으면 동행하겠다는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둘은 일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부터 일하는 것인지 묻는 남편에게, 프리랜서는 그런 거 없다는 말과 함께 금방 돌아오겠다고 답하였다. 나에겐 길잡이가 가능한 시간에 맞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카카오맵과 지형지물을 꼼꼼히 살핀 첫째 덕분에 갑천에 있는 신대돌보 징검다리는 금방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다리가 무척 길고, 일부 물에 잠긴 노둣돌이 있어서 겁이 났다. 유등천, 대전천보다 갑천의 폭이 훨씬 넓기에 다리가 긴 것이 당연했다. 유성구에서 시작해 다리를 건너 대덕구로 갔다. 첫째는 앞서가고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건너느라 천천히 도착했다. 내가 대덕구 쪽에 다다르자 아들이 이 징검다리에 쓰인 노둣돌이 140여 개이며, 손으로 측량해보니 돌 하나의 크기는 약 얼마라고 알려주었다. ‘답사한 곳 중에서 가장 긴 징검다리였다’고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숫자로 환산하니 이 다리의 규모가 와 닿았다. 어떤 사람들이 이 길을 건너는지? 이곳 이름은 왜 신대돌보인지? 사람들은 어떤 용무로 이 길을 건너는지? 인문학적 생각에 몰입해있는 나에게 이과적인 사고를 하는 동행인이 자기의 시각을 보태주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음료를 사서 손난로 삼아 들고 걸었다.


천변은 놀러 가는 곳

첫째와 함께 갑천 취재를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나는 유등천 취재에도 동행인이 있었으면 싶었다. 둘째에게 자전거를 타고 대전을 돌아다닐 건데 같이 가자고 하니 흔쾌히 따라나섰다. 우리는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주말을 골라 유등천변으로 갔다. 중1인 둘째는 내가 취재를 하는 동안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겨울 나들이를 즐기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강아지와 산책 중인 행인을 만났다. 둘째가 반려견 보호자에게 강아지가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잘 못 건너지. 안 가려고 하는 걸 내가 시키는 거지.”라고 답하였다.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아래를 보며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조심 걷는데, 네발 동물에게도 징검다리가 만만한 존재는 아닌가 싶었다. 오늘 본 강아지보다 체구가 작은 우리 집 반려견은 징검다리 산책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유등천 징검다리를 산책 중인 시민과 강아지 그 옆에 서 있는 둘째

중구 쪽으로 이동하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본 것이다. 나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둘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봤어? 봤지? 엄마도 봤지?”를 연발했다. 나는 보긴 보았는데, 뭘 보았는지 혼란스러웠다. 이 징검다리에는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있는 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대신 자전거에 탄 채로 다리를 건너간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둘째가 설명해주었다. 풀서스펜션이 장착된 고급 MTB를 타면 저런 게 가능하다고. 본인 자전거가 저런 거였으면 본인도 건널 수 있다고. 내게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의 재주로 보였고, 둘째에게는 돈이 많은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재주로 보였는데, 실은 담력과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취재를 마치고 용문역으로 돌아오면서 춥고 배가 고프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마침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전, 연기를 뿜으며 붕어빵과 계란빵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둘째는 처음 먹어본다며 계란빵을 사자고 했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호 불며 간식을 먹었다. 아들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는데, 계란빵에는 계란이 있구나.’라며 아재 개그 같은 말을 했다. 중학교 1학년에게 징검다리를 취재하는 일이 재미있을 리 없지만, 자전거로 도심을 돌아보자는 제안에 동행해준 마음이 고마웠다.


취재는 재밌었는데 기사 쓰기는 어렵다.

언젠가 편집장이 취재가 재미있으면 원고도 재미있다고 했는데, 그건 독자 관점에서만 맞는 말이다. 분명히 징검다리 취재는 재미있었는데, 기사를 쓰는 일은 어려웠다. 제목을 여러 차례 고치고, 사진 편집도 무한 반복했다.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가 독촉 문자가 오니 퇴고를 얼른 마치고 글을 보냈다. 편집장은 글이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하였다. 글이 무미건조하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더불어 몇 가지 피드백을 주었다. 우리의 기획 의도가 사진으로 대전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인 만큼, 왜 하천 징검다리를 취재하게 되었는지 와 3대 하천의 발원지나 흐르는 경로와 같은 정보를 짧게 넣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글로 쓰려고 보니 왜 징검다리를 취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했지만, 징검다리에서 보면 대전을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노라고 표현해보았다. 편집장의 조언대로 글을 보완하니 전체 맥락이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전문가의 지적은 달랐다.


책이 완성되고 월간 토마토 162호를 우편으로 받았다. 읽다가 편집장 편지 코너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이번 호 《월간 토마토》는 단편적이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대전이라는 도시가 지닌 단면을 모았습니다. 대전의 본질을 설명하거나 전체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 도시 대전을 새롭게 바라보며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첫 달에 하기 좋은 놀이라는 생각입니다.” (5쪽)


왜 대전의 징검다리를 취재하게 되었나? 편집장의 의도가 정확히 내 의도와 일치 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도 말로 쓰는 법을 몰랐다. 그의 표현을 접하고 나니 ‘아하!’ 하며 수긍이 갔다. 자유기고가로서 내가 받은 임무는 한 달에 한 개 글쓰고 원고료를 받는 것이지만, 내가 속한 매체를 꼼꼼히 살펴보고 동료들의 글을 통해 배우며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수입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능가하는 것이다. 초보 프리랜서 기자에게는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기 때문이다. 글 한 개 쓸 때마다 작가로 가는 징검다리를 한 개씩 놓고 있다고 말해본다. 일 년이면 벌써 열두 개의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라고.

월간 토마토 vol 162 도시 '대전' 표지와 내가 취재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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