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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컷 일지

식물은 재택근무로 돌볼 수가 없어요

by 반고

화상 기획 회의

월간 토마토 2월호 기획 회의를 온라인으로 했다. 12월 말이라 다 같이 모여서 송년회 겸 회의를 하면 좋았을 테지만,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화상으로 만난 것이다. 출판사에서 접속한 사람들과 각자의 공간에서 참석한 프리랜서 기자들까지 총 8명이 줌에서 만났다. 서로의 근황을 소개하는 시간에 나는 공저자로 참여한 책 <화상 독서 모임 어떻게 시작할까>의 출판 소식을 알렸다.


이번 호는 종합지 형식으로 발간한다고 하였다. 종합지가 어떤 건지 몰랐는데, 이런저런 소식이 들어 있는 일반적인 잡지가 종합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간 토마토 과월호 중에도 이런 형태가 있어서 pdf로 예시를 받아보았다. 편집장은 종합지의 경우 다양하고 짤막한 내용이 주를 이루어 독자들이 읽기가 편한 데 반해, 기자들은 글을 여러 개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기고한 월간 토마토 161, 162호는 한 권이 하나의 테마로 이루어져 기자마다 긴 글을 한 개씩 썼었는데, 종합지는 좀 더 대중적인 건가 싶었다.


취잿거리가 많이 필요한 만큼 편집장은 종합지 성격에 맞는 기사 아이템을 준비하여 미팅에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과월호 목차를 보니 사람 소개, 공간 소개, 대전의 현안, 서평 등 다방면의 소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7가지 의견을 냈는데, 그중 대전광역시청에 위치한 화분병원을 취재하기로 했다. 그 밖에는 국립대전숲체원도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좋은 기삿거리가 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다른 기자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대전에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만드는 공방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다는 기자, 요즘 채식 재료로 만드는 빵집이 부쩍 많아졌다며 이를 취재하고 싶다는 동료도 있었다. 우리는 취재지 후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업무 범위를 확정 지었다.


공간과 사람 vs. 사람과 공간

오늘 회의에서 편집장은 초보 기자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어떤 공간을 방문했을 때, 그 공간을 소개하는 내용을 주 소재로 삼고 거기에 속한 사람을 부수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쓸지, 아니면 반대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공간을 부수적으로 소개할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섞여 있으면 글이 어수선하고 붕 뜬다고 했다. “둘 중 어떤 방향으로 갈지 그걸 어떻게 아나요?” 하고 물었더니, “미리 준비해서 취재지에 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현장에 가보면 제일 잘 압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취재 하다 보면 사람에 중심을 둘지 공간에 중심을 둘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취재 경험이 몇 번 되지 않는 나로서는 그 감을 잘 읽을 수 있을지 아리송하게 들렸다.


편집장은 회의 말미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온라인으로 회의하는 게 어색하다고 하였다. 내가 화상으로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걸 아는 그는 줌에서 독서 모임을 할 때는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독서 모임은 아무래도 토론 중심이라서 금방 모임이 훈훈해진다고 말하며, 업무용 기획 회의를 이 정도로 마무리 하는 것은 처음 하는 것치고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편집장은 전문가가 그렇게 평가를 하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고 했다. 내가 화상 모임 전문가라니? 책을 쓰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전문성을 부여하고 나의 피드백을 기대한다는 걸 느꼈다.


식물은 재택근무로 돌볼 수가 없잖아요.

나는 자료를 조사하기 전부터 화분 병원을 알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벵갈고무나무가 화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고무나무의 건강 상태를 묻고 취재 허락도 구할 겸 전화를 걸었다. 원예사님은 내 이름과 나무 종류를 듣고 금방 기억해냈다. 집에 가도 될 정도로 자랐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다음 날 화분을 퇴원시키기로 했다. 이어서 내가 기고하고 있는 매체를 소개하며 원예사님을 2월호 취재 대상으로 인터뷰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원예사님은 홍보 인터뷰는 어렵다고 했다. 얼마 전에 교통방송에서 화분병원을 취재했는데, 이로 인해 사람이 몰리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였다. 방문자 중에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있어서 며칠 동안 화분병원을 폐쇄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여기 식물들은 매일 물을 주어야 하는데 문을 닫아야 되니 정말 곤란했어요. 식물은 재택근무로 돌볼 수가 없잖아요.”


편집장이 회의에서 공간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 사람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를 설명했었는데, 전화로 대화를 하고 보니 알 것 같았다. 화분 병원은 사람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인터뷰가 될 것이었다. 이곳의 모습은 유리로 된 여느 온실과 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 공간을 가꾸는 사람의 특별함이 있는 곳이다. 식물들을 돌보려면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는 원예사님의 말이 내가 왜 화분병원을 특별하게 느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벵갈고무나무를 입원 시키고 돌아오던 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보러오셔도 돼요.” 입원 중인 화분을 살피러 방문해도 좋다는 말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래도 되나요? 주인이 문병 오면 화분이 알까요?” 원예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럼요. 좋아해요.”

나는 정말 몇 주 후에 나무를 보러 갔다. 원예사님은 깍지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약을 두 번 뿌린 후 분갈이를 하고 조그만 돌 하나를 젠 스타일로 얹어두었다. 시내에 나온 김에 나무가 잘 있는지 보러왔다고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동안 집중 관리 받다가 차도가 있어서 같은 종류의 나무 곁으로 옮겼다고, 친구들 사이에 두면 더 잘 자랄까 해서 그렇게 해보았다며 웃었다. 식물을 사랑하고, 식물과 교감하며, 옆에서 한결같이 돌보면서 화초에 관심을 주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그녀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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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병원 팻말과 입원중인 벵갈고무나무

취재거절

정말 아쉽지만 원예사님께 코로나-19가 물러나면 다시 부탁하겠다는 말을 하고 2월호 섭외를 포기했다. 월간 토마토는 인지도가 높은 매체가 아니라서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인파가 몰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직업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전염병이 잦아들면 고려해보겠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도 원망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취재대상자를 소비하지 말라는 편집장의 말이 떠올랐다. 더 좋은 때를 기다리며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그렇게 취재 1순위였던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기획회의에서 차순위로 논의되었던 국립대전숲체원에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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