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구니 쟁탈전

by 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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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은 결혼기념일을 열심히 챙기는 편이 아니다. 한 명이 출장 중이라 함께 하지 못한 때도 있고, 선물 없이 축하 인사만 건넨 적도 있다.


몇 년 전, 결혼기념일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해였다.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이벤트를 하지 않았지만, 그해에는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마 오랫동안 부부로 산 우리가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학원에 가니 남편과 나 둘이 늦은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퇴근 후 집콕을 선호하는 배우자를 위해 나는 거실에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편하고 오붓하게 즐기는 코스요리 식사였다.


남편이 나에게 선물로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꽃바구니라고 답했다. 이런 날, 꽃다발은 약소하고, 화분은 과하니 꽃바구니가 딱 좋을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화분이 낫지 않냐며 재차 의사를 확인했다.


화분이 꽃바구니보다 오래간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화분은 선물 받은 즉시 일이 되기에 즐긴다는 느낌이 없다. 나는 남편에게, 화분이 배달 오면 수취 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겨우 엎드려 절 받기에 성공한 날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아이템이 있는지 묻는다. 그때보다 조금 여유가 생긴 지금은 기념일에 짧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 것도 있겠으나,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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