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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부부 Jan 17. 2020

1인칭 퇴사자 시점, 손을 벌벌 떨며 퇴사하던 날.

지금은 백수 주부이자 세계여행 가이지만 예전엔 나도 퇴사자였지.

"저, 퇴사할게요."


퇴사를 고하는 날, 대표 앞에서 손을 벌벌 떨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들에게는 '돌연' 나에게는 '고민 끝'에 퇴사를 고했다. 사회초년생이던 나는 이것저것 잡 업무까지 척척해내는 게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2년 차가 접어들자 정말 바보 같은 일이 아닌가 싶어 지더라. 만약, 눈치껏 내 주된 업무가 아닌 것들은 못한다 이야기했더라면 조금 편했을까? 아니, 그 작은 회사에선 어려웠으리라.


교제 끝에 결혼을 하기로 했고 그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고 입 밖에 내는 순간 대표의 실망과 배신 섞인 한숨, 그리고 '이러려고 배짱씨한테 투자한 게 아닐 텐데..'라는 말이 귀를 얼얼하게 때렸다. 도대체 뭐가 투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머그잔에 담겨있던 뜨겁던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식어버렸고, 저 문장에 치인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래서 여자 직원을 뽑기 싫었는데.'라는 말에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은 '퇴사'하는 내가 미안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죄송하다는 말로 자리를 끝냈다.


퇴사는 당장 해야 한다던데, 나는 회사의 앞날이 걱정되던 멍청인지라 인수인계 기간을 2개월이나 두고 더 다녀야 했다. (그냥 당장 뛰쳐나왔어야 했는데...) 그 두 달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지 싶다. 나가는 날까지 신규 직원은 채용되지 않았고, 월급에 포함된 복지금액 명목으로 주는 급여들은 다 삭감되어 없어진 이상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마케팅 사원이었지만 외부 영업 업무가 더 많았던 나에게 주어지던 법인카드도 뺏겼다. 그래, 나한테 주어지던 '투자'가 이런 의미겠지 싶어 억울한 마음도 꾹 눌러내 2개월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배짱씨, 잘 지내요?"


퇴사 5개월 후 오랜만에 온 대표의 메시지에 답장하기가 꺼려졌지만 그래도 예의상 답장은 해야 할 거 같아 말을 이어 갔다. 이 연락은 지금까지 받아본 연락 중 가장 최악의 메시지로 여전히 금메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퇴직금 정산할 때 5만 원이 더 들어갔는데, 그거 돌려줄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다.


퇴직금 정산도 몇 개월 뒤에 해줘 놓고 계좌번호까지 꾸역꾸역 적어 '나중에 갚을 기회를 주세요^^, 결혼은 언제 해요?' 라니... 착한 척 가득한 메시지에 자동으로 소름이 돋아 5초 정도 '그냥 씹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지만 고작 겨우 5만 원인걸...?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바다 위에서 5만 원을 재빠르게 송부한 후, '결혼식은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마쳤습니다.'로 대화를 마쳤다. 5만 원은 5만 원이 아쉬운 사람 손으로 들어갔고, '여행 잘하고 나중에 한국에서 봅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치장 가득한 답변에 소소하고 소심하게 카톡 차단으로 화답하였다.


분명 돌려줘야 될 5만 원이 맞긴 하지만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대표님 정말 멋진 분이야!'라며 그를 높게 우러러보던 나의 실망감이 아닐까 싶다. 5만 원으로 2년을 요약할 수 있다니. 흠... 뭔가 구린 걸 맞은 기분인데 구린 걸 피한 듯한 기분이기도... 역시, 벗어나길 잘했어.




"뭐가 무서웠길래 퇴사할 때 그렇게 벌벌 떨었지?"

나는 '거절감''부정당함'에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개인의 목표가 아닌 누군가의 만족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무언가를 성취해왔다. 나는 한 마디로 능동적인 척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잘 해내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지만 개인의 목표가 아닌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 그게 내가 잘하는 일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해 그렇게 악을 쓰고 예쁨 받고 싶었다.


퇴사를 고하던 날, 내 손이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마르던 이유는 지금까지 잘 보여왔던 대상에게 미움받는 행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한 마디로 내가 가진 모든 수식어가 부정당할걸 걱정했기 때문에... 더불어 내 퇴사를 거절하면 어쩌지 싶은 우려도 살짝 포함되어 있었다. (퇴사를 고하는 내가 왜 을이 되어야 했을까?)


내심 나의 결혼 소식과 새 시작에 대한 응원과 축하의 말이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그 날의 대화는 내가 2년간 해온 모든 것과 미래의 나 전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대화를 마친 자리에 홀로 남아 식어버린 커피잔을 만지던 그 손은 여전히 덜덜 떨렸고, 맞은편 거울로 바라본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하지만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거절감과 부정당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년 이상을 옭아매던 이상한 올가미를 끊어낸 기분이라 오히려 묘한 쾌감이 발 끝에서 슬며시 올라왔다.


쾌감이 머리 끝까지 올라 내 몸을 완벽히 적시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퇴사를 앞둔 파괴왕이 되어버린다. 방 안의 코끼리라고, 2년 간 알면서도 모른 척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9 to 6는 무슨, 8시 50분 출근을 강조하고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다 마쳐도 6시 20분 이후에 퇴근하라는 압박. 남녀평등하다고 사람 좋게 이야기 하지만 은연중 분리하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 중략... 당연하게끔 세뇌되었던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니 나는 그것들을 소소하게 파괴하고 다녔다. 이를테면 내가 할 일을 마쳤다면 눈치를 줘도 칼퇴를 한다던지, 차를 내어야 하는 순간에 자리를 슬며시 피한다던지, 사적인 심부름은 최대한 피하고 내 포지션에 맞는 업무만 한다던지, 여자가 어쩌고 남자가 어쩌고 하면 여자 남자가 어딨냐며 장난스레 말한다던지...


그렇게 2년 동안 열심히 다니던 회사에서 나는 어쩌면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회사도 꼴도 보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지만... 좋은 점? 물론 있겠지만 다니기 싫은 마음으로 가득 차 버렸을 땐 부정적인 것들로만 가득 차 버린다. 그래서 퇴사는 좋게 좋게, 빨리빨리 하라는 걸 빨리 알았어야 했는데.


회사에서 잘 배운 거? 메일을 공손하고 정갈하게 쓰는 방법 정도?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래?"


퇴사하고 남편과 세계여행을 한다고 하니 주변은 내 아주 먼 미래의 인생까지 걱정해준다. 내가 모아둔 돈은 왜 궁금한 거고, 남편 직업은 왜 중요하고, 결혼 후 살 집은 왜 궁금한 건지... 몇 년 동안 집이 없을 예정이라고 하니 나보다 더 걱정하는 눈치에 걱정스러운 말투가 이해되면서도 당사자가 되니 답답하기만 했다. 정작 우리 가족은 별 걱정 없이 잘 다녀오라고만 하는데...


나중에 어떡할지는 나도 모른다. 소소하게 벌이는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길에 나앉을지도 모르고,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쳐올지는 우리도 모른다. 다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있다는 정도? 우린 우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확신.



퇴사한 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우리의 인생은 각자 흘러가고 있단 것을

여행을 통해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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