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석사논문을 통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남녀 각 2명씩 모두 4명의 취업 지원자를 섭외하고 이들에게 각각 두 개의 답변을 미리 작성해 숙지시켰다. 그리고 이를 면접 상황으로 연출해 영상으로 촬영하고 서로 다른 청중 집단에게 보여준 후 설문을 실시했다. 질문은 ‘해당 회사를 지원한 동기와 살아오며 어려움을 극복한 기억’이었다. 다음은 남성 지원자가 답변한 두 가지 버전을 축약한 내용이다.
A. 제가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어떤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희망과 비전을 가진 회사! 바로 제가 살아온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에서 자라며 저는 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갈 여력조차 없었지만, 빈 음악실에서 틈틈이 혼자 공부하며 저는 결국 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제 희망이 만들어낸 작은 성공, 전 어느 분야에서건 꿈을 가진 사람만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실을 탓하기보다 작은 행복을 찾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B. 제가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최고는 아니지만 어떤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근성을 가진 회사! 바로 제가 살아온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에서 자라며 저는 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저의 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권도를 배울 돈조차 없었지만, 학교 뒤편에서 틈틈이 한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저는 결국 학교 싸움짱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제 힘으로 이루어낸 최고의 자리, 전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못난 자에게 냉혹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기와 깡으로 그렇게 저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어떤 차이점을 발견했는가? 첫 답변은 긍정적 자기노출의 경우로 어려운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와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호의적이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성했다. 반면 부정적 자기노출의 경우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비호의적이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희망과 비전’, ‘꿈’, ‘기적’, ‘교훈’, ‘성실’, ‘행복’ 등의 표현에 대비해 ‘근성과 오기’, ‘찢어지게 가난’, ‘싸움짱’, ‘못난 자’, ‘냉혹’, ‘오기와 깡’ 등의 단어를 배치했다. 현실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긍정형과 부정형의 형용사와 수식어로 구성한 것이다.
사실 이 실험의 두 실험자 간에는 신체적 매력의 차이, 즉 외모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우열이 존재하게 설정했다. 첫인상에서 지배적인 고려 요소인 비언어적 요소와 스피치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신체적 매력도와는 상관없이 부정형의 자기소개와 답변을 했을 경우 호감도와 신뢰도가 모두 하락했다. 첫인상에서 외모가 주는 후광효과는 화자의 초반 스피치 내용에 따라 상쇄됨을 보여주는 결과다.
첫인상은 당신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며 이는 상당한 파급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바꾸는 데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자기노출을 통해 배웠다. 상대와의 첫 만남과 대화가 중요한 이유다. 철강회사의 영업사원이 첫 만남에 그저 습관처럼 명함을 건네며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것과 “어떤 경우든 원하는 철강재를 필요한 시간에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OO재강 OOO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청중이 궁금한 것은 당신의 이름이 아니다. “자기소개 한 번 해 보실래요?”와 같이 친절하게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경우는 오히려 면접의 미덕인 셈이다.
자기소개를 제일 첫 질문으로 던지는 것은 그것이 ‘초두효과(primacy effect)’를 스스로 누릴 기회이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강력한 정보가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맛 집들이 너도나도 어필하는 ‘원조’ 간판이나 가게 입구에 붙은 TV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됐음을 증명하는 방송 캡처 사진 등을 보면 왠지 더 맛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생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은 SNS상에서 누군가를 접하는 첫 이미지다. 소위 인생 사진이라 하는 잘 나온 사진을 올리는 심리도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의 말도 얼굴의 잡티를 지워내고 뽀얗게 화장까지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처럼 정갈하게 만들어주는 번역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당신에게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중심에 항상 청자가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정치인이기보다는 기업가다. 아니 훌륭한 설득 전문가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수많은 방송과 유세 현장에서의 모습이 이를 증명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이 이기는 싸움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둘러싼 추문과 미천한 정치 이력을 단번에 잠식시키고 새로운 하이콘셉트를 만들어 청중과 미국인들의 초점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의 장벽(심리적 장벽)이 놓인 지점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전혀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물리적 장벽)을 세우겠다는 공약이었다. 현실적으로 멕시코 국경 전체를 단단한 콘크리트로 다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론이 이 공약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트럼프를 둘러싼 의혹의 시선이 미국 안보라는 더 큰 이슈로 옮겨가게 됐다. 애국과 안보라는 국가 이미지의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었다.
미국인들의 안보에 대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멕시코 국경 장벽이라는 특정 자극을 적용한 전략이었음은 곧 드러났다. 정작 대통령이 된 이후 장벽은 감시 장비 위주로 구축되며 생각보다 훨씬 예산이 적게 들어갔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렸던 만리장성과 같은 성벽이 아닌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 위주의 다소 단출한 분리 철조망 수준이었다. 묘하게도 사람들 마음속의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심리 장벽을 멕시코 국경에 물리적 장벽을 세우며 안보 대통령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판 자체를 옮겨 놨다. 방송 연설 한 번에 우위 전략과 앵커링 효과를 모두 취한 트럼프의 설득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흔히 뉴스 진행자를 앵커라 부른다. ‘앵커anchor’는 용어의 뜻 그대로 ‘닻’을 의미한다. 조류나 파도에 배가 쓸려가거나 좌우로 흔들리지 않게 바닥에 단단히 내리는 갈고리 모양의 쇳덩이가 바로 닻이다. 이는 좌우(左右)와 찬반(贊反)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지키라는 일종의 명령과 같은 지칭이다.
또한 닻을 중심으로 배의 이동이 극히 제한되듯 행동이나 사고 반경이 제한되는 의미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판단하거나 스스로에 유리한 기준으로 결정한다. 반면 가치 판단을 내리기 모호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기 이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처음 주어진 조건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때 특정 반응을 노리고 앵커(닻)를 적용하는 것을 행동주의 심리학에선 ‘앵커링anchoring’이라 한다. 넓은 범주에선 교육이나 치료 그리고 자신과 상대의 변화를 목적으로 앵커링을 활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즈니스나 마케팅, 심지어 누군가를 평가하는 상황까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좌판 위의 뛰어난 장사꾼은 애초 목도리의 가격을 만원이라고 써 붙여두고는 덤으로 하나를 더 주거나 금액을 깎아 주는 전략적 선심을 쓴다. 편의점에선 두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는 안내표지 상품에 더 손이 간다. 4캔에 만원인 편의점 수입맥주에 익숙해지면 한잔에 만원인 수제 맥주를 선뜻 주문하기 어려움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작 제품 간 퀄리티 비교나 개인 선호도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주식 명언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매수 매도 가격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지키지만, 180센티미터에 익숙한 눈높이는 1미터를 갓 넘긴 아이나 2미터를 훌쩍 넘기는 서장훈 선수 같은 키가 있음을 망각하게 한다.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딱히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침묵이나 답하기 애매해 얼버무린 경우 거짓말이 되곤 한다. 대부분은 선의의 거짓인 경우가 많지만, 여하튼 거짓말인 셈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말을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인다. 거의 대부분의 상황과 대화에서 말이다. 내가 뉴스 앵커로 20년 가까이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이전 세대(아마 X세대쯤까지)들은 뉴스를 믿었다. 앵커와 기자가 하는 말을 믿었다. 나 스스로 첫인상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스스로가 어떤 이슈에 닻을 내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MZ세대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앵커인 나 역시 닻을 명확히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인지 자체를 의심받는다. 하물며 개인은 어떨까?
어디에 닻을 내릴지 스스로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꾸준히 실천하라. 그리고 풍파에 흔들리지 말라. 그게 당신의 첫인상을 좌우하고 이미지가 되며 타인이 당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자, 당신은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