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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아나운서 지망생 중 로맨틱 코미디가 어울릴 법한 배우 한효주를 닮은 B양이 있었다. 어느 날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니 대뜸 “저와 데이트하실래요?”라며 뜬금없는 선전포고를 날렸다. ‘방송은 데이트다’, 그 친구가 이후 진행한 자기소개는 이 은유를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데이트’라는 단어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다. ‘연인’, ‘기다림’, ‘설렘’, ‘사랑’ 등의 행복한 단어들이 돼지감자처럼 줄줄이 발굴되어 나온다. 진행자가 매일 방송에 임하는 자세로서 ‘데이트’하듯 시청자를 대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송이 있을까? 방송과 데이트의 공통점은 ‘기다림’과 ‘설렘’ ‘즐거움’이라는 개념의 고리로 연결된다.


 물이 담긴 탕에 몸은 담그는 순간 물은 넘친다. 목욕탕에 몸을 담가 본 사람은 누구나 봤을 현상. 유레카eureka의 주인공 아르키메데스는 그 순간 은이 섞인 가짜 순금 왕관을 가려냈다. 나무에 열린 모든 과일은 익으면 떨어진다. 아니 엄밀히 말해 매달린 모든 것은 결국 떨어진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듯 말이다. 그러나 뉴턴은 사과를 떨어지게 하는 힘이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인력은 결국 지구를 중심으로 한 달의 운동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아냈다.

 연상은 발견이라는 개념을 넘어 발굴의 의미를 지닌다. ‘정보 리터러시라 불리는 새로운 능력은 단순히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과 유튜브의 망망대해에서 찾아내는 것을 넘어, 관리와 가공 그리고 분석 과정까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시각화하는 능력을 요한다. 연상은 독창성의 뿌리가 되고, 새로운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것이 상대를 자극하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설득이라 부른다. 이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단서를 발견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코난도일의 추리 소설 속 인물인 셜록 홈즈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단서를 바탕으로 한 추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는 관찰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인식하는 것을 쉽게 지나쳐갈 때 그는 보이는 것이 의미하는 정보를 차곡차곡 머리에 쌓아둔다. 가치 없는 것에 가치가 부여되는 순간이다. 관찰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둘째, 이를 통찰력으로 연결할 구체적 생각의 연습이다. 나는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매 수업 자기소개를 새롭게 준비해 오라고 주문한다. 단, 자신의 이야기를 하되 개인의 역사를 나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현재와 앞으로의 자신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매번 새로운 자기소개에 대한 부담이 극에 달한 순간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서를 자신과 연결하는 고리를 찾는 단계로 발전한다.


 마지막은 스토리텔링과 시각화를 기반으로 한 스피치 훈련이다. 설득의 대상에게 시각화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연상을 자극하기 위해선 먼저 당신의 머릿속에 명확한 메시지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시각화는 설득에 필요한 최고의 도구다.


 흔히 보조적 개념을 가져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사안을 드러내는 은유는 언어의 수사적 비유법이다. “시각화는 설득에 필요한 최고의 도구다.”라는 말도 은유다. 이는 원관념과 보조 개념인 수식어로 구성되는데, ‘시각화’는 원관념이 되고 수식어인 ‘최고의 도구’가 보조 개념인 셈이다. ‘진달래꽃은 봄의 전령사’,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와 같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수사적 표현도 여기에 해당한다.


 은유는 결국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이는 청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중간에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이야기 지도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란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드러내고 비유사성을 통해 창조성이 엿보이는 천재들이 지닌 생각의 도구라 정의했다.

 은유의 진정한 면모는 낯선 의미를 낯익게 만드는 능력이다.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은유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가 존재하며, 은유는 추상적 개념을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구체적 경험으로 구현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르게 지각하고, 이는 다른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장벽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가 은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이라 한 것도 은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언어를 배우듯 은유는 학습을 통해 취할 수 있는 능력 중 하나다.


 은유가 가진 힘은 단순 시각화를 넘어 자신의 언어를 이미지화하는 데 있다. 신화 속 은유의 이미지들이 대표적이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상징하고, ‘미다스의 손’은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을 칭한다. 철학자들의 통찰은 또 어떤가. ‘데카르트의 전능한 악마’는 어떤 경우에도 진실일 수밖에 없는 절대 진리를 발견하는 가정으로, ‘플라톤의 동굴’에서는 그림자로 대변되는 가상세계에 매몰돼 이데아로 불리는 진실의 세계는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지적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의 텔레그래프’는 인간 세상의 감시와 통제를 통한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비판한다. 이 밖에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마르크스의 유령’ 등 다방면의 학자들이 사랑한 시각화 도구가 바로 은유다. 하나의 은유는 이미지화를 통해 하나의 사유 체계와 철학까지 보여준다.


 앞서 소개팅 현장으로 다시 가보자. 후배가 닮았다는 그 배우를 닮은 여성은 없었지만 여하튼 상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서로가 운명을 느끼는 반전이 일어나고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가정하자. 달콤한 신혼을 지나 아이가 태어나고 바쁘게 지내며 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랜만에 만난 주선자 Y가 묻는다.

 “아이가 벌써 많이 컸죠?”

 “응, 나를 닮아서인지 또래보다 키가 크네.”

 요즘 3살 정도 된 아이들의 키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해도 평균보다 크다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건네 온 ‘오프너’를 뭘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럼 가정 속 필자가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응, 나를 닮아서 키가 또래 아이들보다 커, 까지 발을 세워 식탁 위에 있는 그릇이며 냄비에 손을 대 놀란다니까.”

 어떤가? 식탁에 매달려 있는 아이가 떠오르지 않는가? 정확히 몇 센티미터 인지는 모르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그려진 아이의 키는 서로 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와 묘사는 단순히 특정 이미지를 왜곡 없이 전하는 수준을 넘어 때로는 철학과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일생을 빗댄 이야기는 다양하다. 축구의 전반 후반전에 비유하기도 하고 야구의 1회에서 9회까지를 인용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등짐에 담긴 검은 돌과 흰 돌 이야기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상징하는 흰 돌과 불행을 암시하는 검은 돌이 같은 수로 든 가방을 등에 지고 태어난다. 인생을 살며 검은 돌을 집어 들어 불행한 일을 겪을 때는 언젠가 집어낼 흰 돌을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고, 흰 돌을 연이어 집어 들어 행복한 일이 넘친다면 검은 돌이 나올 때를 대비하는 지혜를 겸해야 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시작과 동시에 이와 같은 철학이 담긴 대사가 등장한다.

 “엄마가 늘 말씀하시길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어떤 초콜릿을 먹을지 모르니까요.”


 비유는 묘사와 어우러질 때 하나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묘사하다’라는 단어는 ‘그림을 그린다’와 동의어다. 그러나 현재는 ‘모습을 말로 나타낸다’는 의미가 더 강화됐다.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른 모습과 같은 모습을 상대의 마음에 똑 같이 떠오르도록 말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그림이 단순히 사물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면 적절한 비유를 동반한 묘사는 상대에게 철학과 의미를 전달한다. 묘사를 동반한 비유가 성공적인 메시지로 작용하기 위해선 다음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나도 상대도 아는 사물이어야 한다.

 둘째, 그 사물이 지닌 은유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적절해야 한다.

 셋째, 시각언어를 통해 생생하게 표현돼야 한다.


 인생을 사는데 지혜를 전하는 다음의 이야기는 이 세 가지 규칙을 완벽히 구현한다.

 마늘이나 고추 장아찌를 담글 때 쓰는 사람 머리만 한 빈 유리병을 하나 준비하라. 그리고 이 병에 채울 골프공과 조약돌 그리고 모래도 준비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물질을 효율적으로 병에 담을 수 있을까? 심리학자인 유은정 박사는 이를 개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의 크기로 비유하고 있다. 골프공은 10년 뒤에도 의미를 주는 항목으로 건강이나 가족, 꿈, 종교, 가치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약돌은 1년 남짓 의미가 지속되는 것으로 취미나 운동 그리고 어떤 차를 탈 것인지 집은 어떤 형태인지 등이다. 끝으로 모래알은 지금 잠시만 자신에게 의미로 작용하는 항목이다. 유튜브 시청이나 인스타 사진 올리기 등 SNS 즐기기 혹은 쇼핑과 여행 등 당장 즐거움을 느끼는 개인 활동 들일 터이다.

 물리적 측면에서나 개인사의 가치적 측면에서나 답은 하나다. 가장 큰 것을 먼저 넣고 이어서 작은 사이즈로 담아가다 마지막에 모래를 채워야 빈틈을 최대한 줄이는 알찬 삶을 만들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가정과 가족이나 건강과 꿈을 먼저 챙겨야 그 이외의 소소한 것들을 담을 수 있다. 당장의 즐거움으로 그칠 모래만 채우고 난 후에는 조약돌이나 골프공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사라진다.

 모래는 시간과 같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 다르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지나 때를 놓치면 인생에 더 이상 가치 있는 무언가를 채울 수 없다. 카르페 디엠(carpe dime)과 워라벨(wokr-life balance) 그리고 소확행(小確幸) 등이 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대변하는 시대지만, 그 가치의 우선순위를 골프공으로 할 것인지 모래에 둘 것인 지는 온전히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렇듯 생생하게 청자에게 가 닿는 묘사를 통한 비유는 설득을 넘어 개인의 철학까지 바꿔놓을 힘을 지니고 있다. 4)


 생리학자 호레이스 발로우의 말을 빌리면 모든 창조적 행위의 이면에는 공통된 고민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사실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옮겨놓을 수 있을까? 내가 보고 알고 기억하는 어떤 것을 어떻게 상대의 마음에 수혈할 수 있는가? 그 수혈을 위해 너와 나를 연결할 고리가 다름 아닌 연상과 은유다. 그것은 그림일 수도 있으며, 몸짓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춤일 수도 있겠다.


 언어는 꼭 말(speak)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참고 : 인생을 유리병에 담는 물건으로 표현한 정의는 유은정 작가의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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