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치킨 한 마리 주세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고교시절을 갓 마감하고 대학 연합 합창단에서 만난 알토 B양은 특유의 실언으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 사람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은 일상이고, 치킨 양념을 양말에 버무려 달라는 천연덕스러운 농담 아닌 진담도 태연하게 하는 그녀였다. 물론 대학로 호프집에서 자신 있게 외친 주문이기에 그날 우린 붉은 양념을 곱게 입은 수줍은 치킨을 무사히 마주 할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실언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도 어쩌면 애교로 봐야 할까? 아나운서로 입사한 첫 직장에서 동료 여자 아나운서는 한술 더 뜨는 애교 쟁이었다. 당시 프롬프터(뉴스 원고를 화면에 띄워 주는 기계)를 쓸 수 없는 날이었는데, 때 마침 생방송 뉴스를 맡았던 S양은 앵커 멘트를 외우고 청산유수처럼 풀어내다 마지막 문장에서 순간 움찔했다. 이내 평정심을 찾더니 이렇게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우리 경제에 물통이 터졌습니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깜박한 캔맥주도 아니고 느닷없이 뭐가 터졌다는 건지? 스튜디오 밖에 있던 모두는 정확히 3초의 정적 후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은 이랬다. 당시 경제 뉴스를 전하며 환율이 하락해 수출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의미의 표현이었다. 순간 ‘숨통이 트이다’와 ‘물꼬가 터지다’라는 비슷한 표현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모양이다. 물론 뉴스의 의미 전달에는 일말의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맥락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한 바와 받아들이는 바의 극명한 차이는 때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참사로 이어진다.
1990년 1월 25일 콜로비아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가 미국 롱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포함 73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기체 결함도 조종사의 운항 실수도 아닌 연료가 떨어져서였다. 아비앙카 52편은 별문제 없이 뉴욕 상공에 도달했다. 그러나 당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은 기상악화와 이로 인한 공항 혼잡으로 활주로 진입이 지연되고 있었다. 아비앙카 52편 역시 뉴욕 근처 해변 위에서 선회하며 착륙이 1시간여 지연되고 연료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판단의 시간을 놓친 탓에 근처 다른 공항으로 회항할 수도 없는 상황, 관제탑에서 상황의 위중함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관제사에게 관제를 넘기며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결국 마지막 착륙 시도마저 불운하게 윈드시어wind shear(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가 갑자기 바뀌는 현상)로 인해 실패하며 여객기는 상공에서 연료가 바닥나 롱 아일랜드 북구 한 마을에 추락한다.
전 세계 항공 역사에 어이없는 참사로 기록된 이 사고는 불명확한 의미의 단어 하나에서 비롯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관제탑에 착륙을 요청하며 사용한 단어는 ‘Priority', 관제사는 이를 우리가 아는 의미인 ‘우선’으로 받아들였다. 연료가 떨어져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왜 조종사는 더 적극적인 비상착륙 요구를 하지 않았을까? 의문의 답은 모호한 언어에 있었다.
'Priority'는 영어와 스페인어에서 분명한 의미의 차이를 갖는데, 스페인어로는 ‘비상’이라는 어감이 있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어를 쓴다. 조종사는 다급한 순간에 모국어의 ‘비상상황’이라는 의미로 'Priority'를 외쳤지만, 미국 관제사는 ‘우선’이라는 다소 덜 위중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결국 미국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결론 내렸다. 더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위급한 상황임을 밝히지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말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명확한 약속이 필요하고, 이 약속을 절대 어겨선 안 된다. 앞선 일화처럼 때로는 사회적 약속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관제사가 아래와 같이 명확히 상황을 설명했다면 73명의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관제소! 연료가 바닥났다. 지금 바로 착륙하지 않으면 추락하고 만다.”
인류는 수렵을 하기 위해 시력이 발달했으며 야생 동물들로부터의 위협을 피해 등 뒤를 경계하는 본능이 남았다. 당시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에만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그 많은 칼로리를 보충할 음식 중 하나는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는데, 바로 ‘맥주’다. 주된 에너지원으로 ‘마시는 빵’이라 불린 맥주는 우리 농촌의 새참 시간에 즐기던 막걸리처럼 노동주로도 활용되었다. ‘맥주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집트에선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일꾼들에게 하루 4리터가량의 맥주가 제공되었다 전해진다. 이는 다수의 벽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맥주를 빚거나 마시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고,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가 하면 부족 간의 동맹과 평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고대 벽화에는 맥주와 더불어 믿기 힘든 문물이 등장하는데, 다름 아닌 ‘빨대’다. 큰 단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빨대를 꼽고 무언가를 마시고 있는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맥주다. 이 벽화의 의미는 명확하고 선명하다. 동굴 입구에서 발견된 이 그림은 서로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주된 식량이자 제물이며 사후 세계까지 가지고 가는 권력의 상징인 맥주를 하나의 그릇에 담아 두 사람이 동시에 빨대로 마시는 것만큼 의심할 여지없는 ‘신뢰’의 상징이 또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각자 먹을 음식이 담긴 접시를 받지 않고, 식탁에 한 접시의 음식을 놓고 나눠서 먹었더라면 협상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일찍이 고대인들이 벽화를 통해 보여준 협상의 기술을 그들은 몰랐다. 같은 단지에 든 맥주를 서로 마주 보며 빨대로 마시는 그림은 명확한 약속으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개입하지 못한다. 서로를 믿는다는 절대 명제, 그래서 그 둘 혹은 그 두 부족은 평화를 맺은 관계임을 보여준다. 빼곡하게 적힌 협상 서류나 서로 다른 언어를 삼자의 통역으로 듣는 것보다 고대 벽화 한 장면이 협상의 성공에 더 가깝다.
언어는 오히려 그림보다 명확성이 떨어진다. 이는 ‘건배사’의 이면을 보면 명확해진다. 건배는 서양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서로가 상대의 술잔에 담긴 술을 가볍게 한 모금 마시는 습성에서 유래했다. 대항해의 시대, 교역을 위한 장시간 항해를 위해 물 대신 상하지 않는 위스키를 싣고 다녔다. 대륙 간의 교역이 빈번해지고 낯선 사람과 공존하다 보니 경계와 불신이 앞선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잔과 낯선 상대 잔의 술이 독 없는 안전한 술임을 증명하는 건배가 통과의례가 되었다. 잔을 부딪칠 때 서로의 잔에 담긴 술이 튀어 섞여 들어가고, 이는 독이 없음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단계라는 설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회식자리에서 잔이 깨어져라 부딪치는 이유도 여기서 유래한 것일까. 여기에 더해 취기가 돌며 흥을 돋우는 추임세가 섞이기 시작했다.
영어로는 ‘Cheers'나 ’Bottoms up', 중국어로는 ‘깐뻬이’, 독일에서는 ‘Prosit' 등을 쓴다. 그런데 이런 건배사 이면의 뜻은 ‘당신의 건강과 사랑을 위하여’나 ‘당신의 돈을 위해’ 혹은 ‘당신의 행복을 기원하며’ 등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의미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독을 타지 않은 거 보니 믿을 수는 있겠군.”이라는 해석은 어찌 보면 회식자리에서 개개인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본능 이리라. 자리엔 싫어하는 상사도 미워하는 동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언어는 개인의 사고와 기억에 기인하고 그 기억은 천차만별이며 표현은 더군다나 지극히 주관적이다. 아주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자. 이성 간의 만남의 방법 중 흔히 말하는 소개팅은 성공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정보 차이와 이로 인한 이미지 장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소개팅이라 함은 보통 누군가에게 나와 가까운 사람을 소개하는 일이다. 이는 주선자 측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한 남자에게 여성을 소개하는지 여성에게 남성을 소개하는지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혼자인 내가 측은 했는지 어느 날 여자 후배 C가 물어왔다.
“선배, 소개팅하실래요?”
“응? 어떤 분인데?”
“키는 큰 편이고 조금 통통해요. 성격도 털털하니 너무 좋아요.”
어떤 여성인지 감이 오는가? 당신의 머릿속에 한번 떠올려 보라. ‘키가 큰 편’은 실제 어느 정도의 키일까? 여성의 통통함의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외모는 차라리 가늠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털털한 성격’이나 ‘좋은 성격’은 얼마나 주관적인 표현인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명확한 나는 급기야 이렇게 묻는다.
“닮은 연예인은 누구야?”
“음… 배우 OOO이요!”
오케이를 외치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고, 항상 그렇듯 만나기로 한 장소의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후배가 닮았다고 말한 그 배우를 닮은 여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개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정보차이가 해석의 차이를 낳고 이는 다시 표현의 과정에서 이미지의 벽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가변적이어서 오래 알고 지낸 주선자가 가진 이미지와 처음 소개받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이미지는 같을 수 없다. 심지어 그 정보라는 것도 주선자의 말뿐이다. 말하는 이의 머릿속 대상과 듣는 이가 상상한 인물은 같은 사람이지만 같지 않다. 마치 포토샵이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미화된 피사체와 같다. 한때 아나운서 공채 지원서에 보정(補正) 사진 금지 규정이 있었다면 믿겠는가. 잘못 형성된 이미지는 결국 만남이 시작되기 이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외적이든 신상에 관련해서든 정보를 전혀 주지 않는 것이 답이다. 직접 만나 처음부터 서로의 정보와 이미지를 형성해 가는 것이 낫다. 휴대전화 번호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스마트폰 사용을 급구 외면하던 나는 2G 폰을 서비스 종료까지 꽉 채워 사용했다. 그보다 훨씬 전 소개로 만난 어떤 여성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011로 시작하는 번호를 아직도 쓰시기에 굉장한 아재인 줄 알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으시네요?”
숫자 하나에도 이런데, 졸업한 학교나 다니는 회사, 사는 곳 등의 정보는 만남 전 상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외모에 대한 정보를 꼭 원했다면 보정 없는 전신사진 한 장이 답일지 모른다. 시각정보의 측면에선 직접 보는 게 가장 명확하다. 그러나 이도 백 퍼센트 벽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정 없는 사진이라는 옷이나 신발을 직접 보고 주문하지만, 실제로 받고 실망해 바로 반품해 보지 않았는가?
무엇을 설명하려 들지 말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전달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그냥 보여줘라.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법이다.
참고 : 아비앙카 항공 52편의 추락과 관련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