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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1달러짜리 터미네이터

 “사랑은 타이밍이야!”


 연예 코치를 자처하는 주변 만담가들이 사용하는 유행어 같은 표현이다. 짝사랑하는 여성의 이별을 기다리는 하이에나 같은 남자들에게도, 눈치 없이 대시하는 남성을 한심한 듯 손사래 치는 여자들에게도 타이밍은 일종의 우연 혹은 운명으로 작용한다. ‘튀케’와 같다고나 할까? 결국 제때 적합한 말을 하는 것이 만사의 시작이다.


 어느 해 봄, 개편 소식이 전해지고 7년을 해오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멈추었던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는 생각에 휴직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회사 구성원들에게서 나왔다. 혹자는 부럽다 했고, 누구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했으며, 나를 아끼던 한 선배는 왜 한창나이에 회사를 떠나는지 물었다. 급기야 부사장 H는 따로 불러 이렇게 물어 왔다.


 “지금 꼭 학교를 다녀야 하나? 원하는 프로그램이 뭔가?”


 왜 이런 각자의 해석이 나왔을까? 이유는 시점이었다. 7년간 애정을 가지고 해오던 프로그램에서 교체되는 상황, 회사의 개편 과정에 대한 불만 표출로 비쳤다. 거기에 당시는 코로나 19로 폐업과 감원, 무급휴직이 직장인들을 공포에 몰아넣던 시점이었다. 구성원들이 보기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나의 말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리라. 주변에서 나온 ‘부럽다’, ‘감정’, ‘퇴사’ 등의 단어들은 부정적 해석의 결과물인 것이다. 결국 나는 휴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에게 향하는 부정적 시각 때문이 아니었다.


 H의 제안을 받는 다면 적어도 다음 개편 때까지 내 계획은 엉망이 될지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제안을 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상황이 그렇게 흐른 시점에 서로가 최악을 피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으로 왜 휴직을 하려냐고 물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댔던 이유 중 하나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벚꽃이 흐드러지던 4월 어느 날 베르네 소하천에서 마주한 시간은 그에게는 효과적인 설득의 미장센으로 작용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표현을 빌리면 ‘특권의 순간’이 작용한 셈이다.


 타인의 반응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일시적이다. 그렇기에 ‘특권’은 강력한 치트키(게임의 제작자만 알고 있는 비밀키)와 같다. 특권이란 ‘특별한 위치에 놓인 지위’를 의미한다. 부사장은 본인에게 주어진 특권을 아주 적절히 활용했다. 그렇다면 ‘순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길지 않은 시간에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의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의 시간, 바로 카이로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설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올바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꼽았다. 수사학의 기본 목적 자체 또한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 듣는 이를 설득하는 것이다. 결국 타인을 향하는 언어는 목적과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에 더해, 적절한 타이밍의 포착이 가장 중요한 셈이다.


 아주 먼 옛날, 린다 해밀턴은 여전사의 대명사였다. 선글라스에 긴 금발을 휘날리며 해부학실에서나 볼 법한 전신 쇳덩어리 해골을 향해 부릅뜬 눈이 그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몇 해 전 <터미네이터> 4편에 백발이 성성한 아놀드와 함께 출연한 그녀는 세월의 주름을 레드 썬 한다면 과거 전사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기계인간의 공포와 강인한 여전사의 매력을 동시에 선사한 <터미네이터>가 개봉할 당시 국내에는 <우뢰매>가 아이들 사이에 인기였다. 미래에서 온 기계인간이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의 구세주를 살리고 죽이려 서로 싸운다니. 이것이야말로 저세상 독창성 아닌가. 독창성은 주관적 해석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타이밍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할리우드가 영화를 상징하는 메카로 자리하기까진 두 번의 극적 타이밍이 작용했다. 바로 두 번의 전쟁을 통해서다. 1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미국은 1920년대 이후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스튜디오들을 설립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라는 그림을 이어 붙이는 단순한 영사기로 출발한 미국 영화가 전후 자본의 힘으로 부흥의 시작을 알린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서양 문화를 이끌었던 유럽 지식인들과 보헤미안적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던 대중의 니즈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재빠른 변신을 선택한 할리우드, 그리고 유럽에서 떠밀려온 재주꾼들이 어우러지며 할리우드는 ‘영화 그 자체’가 된다.

 이후 이름 있는 회사들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 미국 영화산업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독과점은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영화산업에서 ‘투자’가 절대적 요소가 된다. 자신의 시나리오로 감독에 데뷔하는 할리우드에서 소위 ‘돈줄’은 잡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느냐 서랍 속에서 잠자고 마느냐가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문제였다.


 어떤 시장이든 마찬가지로 ‘돈’에 좌우되기 시작하는 순간 타협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결국 영화산업도 대중의 구미와 타협하고 만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죠스>와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 등의 ‘콘셉트 영화’가 등장한 배경이다. 마블의 블록버스터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쓰기 전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 1, 2위는 모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이었다. 1위는 <아바타>, 2위는 <타이타닉>이다.


 그 역시 자신의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그의 첫 영화를 <터미네이터>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힘겹게 작업한 영화 <피라냐 2>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이탈리아 공동 제작이던 이 영화를 로마에서 편집하던 그는 싸구려 호텔에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투숙객들이 먹다 남겨 놓았던 음식 찌꺼기를 뒤져 먹기에 이르렀고, 이를 본 투숙객들이 혀를 차며 젊은 그를 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급기야 독감에 걸려 침대에서 신음하던 카메론 감독은 그대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깜박 잠이든 순간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악몽 아닌 악몽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형상’을 본 그는 그 생생한 광경을 종이 위에 적으며, 언젠가 이 메모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는 직감을 한다. 그렇다. 이 꿈은 이후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토리가 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의 시나리오를 천운으로 써냈지만, 이미 수많은 감독 지망생들이 몰려든 할리우드에서 초짜 감독에게 거액을 선뜻 내줄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직접 이 엄청난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 나선 그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선택을 한다. 고작 1달러에 시나리오를 판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겠다는 조건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특권의 순간에 그저 시나리오 한 편의 가치로 끝날지 모를 ‘돈(흐로노스)’이 아닌 역사적인 ‘기회(카이로스)’를 선택하며 ‘튀케(운명 또는 행운)’의 순간을 ‘카이로스(기회)’로 만들었다.


 영화는 제작비가 100억이 들어도 1억이 들어도 관람료는 1만 원 남짓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이론과 전혀 맞지 않는 특이한 구조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으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며 영화 관람료도 못지않게 덩달아 상승해 볼멘소리를 하는 영화 팬들도 많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뿐 아니라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까지 안내하며 서민들에게 이 만큼 위로는 주고 격려하는 문화상품이 또 있을까? 어찌 보면 단 1달러에 기회를 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라는 특수한 상품의 본질을 꽤 뚫어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극장으로 관객을 모으는 일도 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를 이끌어 내는 일도 중요한 것은 결국 물질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설득의 그 순간에는 말이다. 돈을 움직이려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절한 판단과 타이밍은 필수다.


 수사학을 뜻하는 레토리케rhetorike는 ‘레토르rhetor’와 ‘이케ike’의 합성어다. 레토르는 ‘공식 석상에서 연설하는 사람’을 이케는 ‘기술’을 가리킨다. 레토리케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술’을 지칭한다. 수사학은 정치연설이나 법정다툼의 주요 전략으로 여겨졌다. 이런 태생적 특성으로 습득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역시 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마다 그 수준의 차이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특권의 순간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 수 없다면 특권이란 것 또한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설득의 언어는 결국 타이밍과 기술이 관건이다.


 태풍의 길목에 서 있으면 돼지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참고 :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미국영화산업사'와 코디 최의 《20세기 문화 지형도》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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