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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자연인과 뇌 과학자

 서울에서 부천으로 10년을 출퇴근했던 나는 체력에 부담이 될 무렵부터 승용차로 출근했다. 이후 삶의 태도를 바꾸는 중요한 변화를 경험했다. 애정표현이 서툰 팔순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내 차가 골목 어귀를 돌아 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계셨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주고받지 못한 뻣뻣했던 우리였다. 평생 노동현장에서 힘들게 일해 가정을 꾸려 오신 아버지는 양복을 차려입으실 일도, 멋진 차를 운전해 출근하실 일도 없었다. 그의 평생 승용차는 자전거 한 대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들이 그가 꿈꾸던 모습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배웅하는 것이 낙이 되셨다. 자동차 뒤 유리가 캔버스가 되고, 손을 흔드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의 그림으로 남았다. 마법 같다면 과장일까? 그날 이후 피곤함으로 지루하게 반복하던 출근길을 ‘헛되이 살지 말자’는 다짐으로 시작한다.

 휴대폰 배경 화면의 아들딸 사진, 손주의 사진, 달리는 택배 차와 퀵서비스 오토바이에 매달려 흔들리는 작은 액자의 가족사진, 이 모든 것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언어들이다. 열심히 살자고, 가족을 위해 다치지 말자고, 돈 많이 벌어 집으로 돌아가자는 목표를 위해 스스로 설치한 미장센이다. 이처럼 스스로 의도한 외부 자극은 구체적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의 언어가 된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미리 보여준 시간을 살고 있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쳐야 하는 우리나라의 2020년 평균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이대별 행복지수는 어떨까? 취업난으로 우울한 20대와 육체적으로 쇠락하고 사회적으로 외로운 70대가 가장 낮았고, 30대부터 60대까지는 상승 곡선을 보이며 60대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 100세 시대, 정년퇴직이 다소 늦춰지긴 했어도 60대는 경제의 주축은 아니다. 동안 열풍과 자기 관리가 필수인 시대에도 육체의 쇠락함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 다시 말해 외부 세계의 속성들을 그대로 내부적 동기부여로 연결시킬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하려는 의지를 신체적 노화로 인한 이유들로 꺾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에 비해 의도적으로 행복감을 주는 장소를 찾고, 과거의 좋았던 기억에 집중하며,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외부 정보에 반응한다.

 그룹 SG워너비의 멤버 김진호의 노래 중에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곡이 있다. 김진호의 어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아들과 오랜 시간 살아왔다. 홀로 자식을 키웠던 그 고단함은 직접 겪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여성으로 매력적인 중년의 시간을 먹고살기 위해 악착 같이 살아내고, 아들이 장성하고 나서 보니 이미 육체적으로 쇠락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우리들 어머니 모두 마찬가지다. 혹여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건강하며 불행하고는 먼 삶을 살아온 여성 일지라도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 앞에선 같은 감정이다. 그렇다고 외적 변화 요인에 휘둘려 남은 삶을 우울하게 살 수는 없다. 인간의 정신 기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겨울보다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좋고, 그 봄 지천에 피어나는 꽃이 좋다. 그것을 보면 행복하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어머니의 휴대폰에 사진으로 남겨진다.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센Laura Carstensen에 따르면 젊은 층이 부정적 사진을 더 잘 기억하는 것과 달리 노인들은 긍정적인 사진을 더 잘 기억한다. 스스로가 선택적 주의와 이를 조절하는 행위를 통해 행복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특성보다는 노인들의 보편적 성향이라는 것이 국내 논문을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젊은이와 노인들에게 부정 정서를 유도하는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며 일정 시간 간격으로 기분 상태를 평가해 봤더니, 노인은 대학생에 비해 긍정적 정서로 더 빠르게 변화했다.


 종합편성 채널 MBN의 효자이자 장수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흔한 말로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실제로 2019년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조사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며 버들치를 잡아 된장찌개도 끓인다. 매회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새로울 것 없는 산속 혹은 외딴섬 생활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의 나이도 주 시청자의 나이도 40대 이상이다. 단순히 자연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로망을 반영한 결과일까?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회에 있을 때는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산에 들어와 하는 모든 일들, 주변 자연의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어요.”

 어머니들의 프로필 사진이 꽃밭이듯 아버지들의 마음속엔 자연과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자연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 자연에서의 삶 또는 자연 그 자체가 시청의 목적이다. 스스로가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 선택한 공감의 미장센이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같다.

 “이제와 이곳에서 더 필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다만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연과 더불어 변함없이 살고 싶어요.”

 노년기의 남은 시간이 제한적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에 따라 우선하는 목표가 정서조절로 이동한다. 그러나 생각을 확장해 보면 ‘시간’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유한하다. 늙고 젊음의 차이가 아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는 게 인간의 삶이다.


 젊은이들 사이의 신조어 ‘정신승리’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닌데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비아냥댐이나 스스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이는 젊은이들이 부정적 사진을 더 잘 기억하고, 부정적 정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부정적 상황은 부정적 기억으로 남기고 그에 따라 좌절하거나 비관하는 것이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다. 안타깝지만 젊은 층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기도 하다. 노화의 역설이 아닌 젊음의 역설이다. 기회는 분명 더 많을 터인데 말이다.

 물론 MZ세대 청춘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예를 들어, 높은 자존감에 비해 취업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들에서 비롯한 슬픈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본인은 말할 것 없고 주변인들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삶에서 남은 시간이라 함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지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젊을 줄 알아?”

 감정 담은 이런 꼰대의 발언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100년의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해도, 그의 삶엔 검은 돌(불행)과 흰 돌(행복)이 공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 돌을 꺼내 든 순간을 흰 돌로 바꿀 수 있는 마술과 스스로 더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은 모두에게 있다. 그것이 설령 정신승리일지라도 말이다.


 국민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어 가장 아쉬운 점은 줄어든 기회라 했다. 한창 젊은 날인 MZ세대에게 기회란 스스로 만들 수조차 없는 것이 되었다. 상대적 박탈감은 결국 무엇인가와의 비교에서 시작한다. 비교는 삶의 중심을 타인에게 두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에서 순간의 기쁨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나 무작정 깎아 내리는 ‘뒷담화’는 스스로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긍정적으로 살자고 다짐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다. 행복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선두 주자인 김주환 교수는 행복이 능력이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노력과 훈련으로 긍정적 정서를 키우는 자기 통제력을 제시한다.

 영화 속 근육질의 주인공을 보고 그와 닮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소위 ‘몸짱’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 즐겨먹던 치킨과 맥주도 자제하며 체지방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고, 최소 6개월 동안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키워야 한다. 다들 몸짱이 되기 위해 얼마나 큰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지 한 번쯤 도전해보지 않았는가? 긴 호흡을 통한 꾸준한 훈련만이 당신을 몸짱으로 만들어 준다.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도 몸짱이 되는 것과 같다. 뇌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정보처리 루트를 약화시키고 긍정적인 루트가 강화되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긍정적 심리의 미장센은 꾸준하고 체계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뇌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찰흙처럼 말랑말랑해 얼마든지 변형 가능하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다른 감각이 더 뛰어나게 발달하는 경우이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맹인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시각피질이 청각 신호를 처리하도록 스스로 변화해 간다. 수학자 오일러Leonhard Euler는 20대에 한쪽 눈을 실명하고 나서 스스로 모든 현상이 더 또렷이 보인다고 말했다. 60대에 한쪽 눈마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뛰어난 기억력으로 수학사에 가장 다작을 한 학자로 남았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또 어떤가? 음악가로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 상실이 30대에 시작되었고 40대엔 완전히 듣지 못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대표작인 제9번 <합창 교향곡>을 이 시기에 작곡했다. 그 역시 청각을 잃은 덕에 정적 속에 울리는 더 깊은 내면의 선율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뇌의 가소성과 신체효능감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어떤 일을 통해 스스로 특정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이다. 다이어트나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은 성별과 연령을 막논 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속된 말로 ‘눈 바디(인바디라는 신체 지수 앱의 패러디)’를 통해 달라진 체형은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또한 이렇게 향상된 정신건강은 다시 신체효능감을 증가시킨다. 실제로 고령자들에게 에어로빅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했을 때 고독감이나 우울감이 줄어들었고 활동량도 증가했다.

 우리의 뇌는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가진 셈이다. 적절한 학습과 훈련은 우리의 뇌를 건강하게도 하고 젊어지게도 한다. 긍정적 사고의 루트를 강화한 심리적 미장센은 신체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형성된 건강한 신체는 물리적 미장센이 되어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 사고가 당신 자체를 밝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여유로운 미소와 맑은 표정 그리고 밝은 목소리와 통통 튀는 언어의 속도감은 주변인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든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동화되어 가며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당신은 직접 산에 들어갈 필요도,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당신의 뇌는 이미 스스로 동화되어갈 준비를 마쳤다. 단지 당신은 그 방향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당신의 선택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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