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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진성과 진심의 메아리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그댈 처음 보았지~~~.”


 ‘길보드’가 가요계의 인기순위를 짐작케 하던 95년의 겨울. 번화가 한 편 카세트테이프 노래 모음을 팔던 리어카에서는 귀곡 산장과 같은 흐느낌이 여기저기 흘러나왔다. 마치 ‘늪’에 빠진 듯 그 노래에 빠져 듣고 있노라면, 횡단보도의 보행신호를 두어 번 거르기 일쑤였다. 가수 조관우의 <늪>이었다. 이제는 잘 알려진 일화지만 데뷔 당시 국악인인 아버지 조통달 씨는 아들이 하는 노래는 ‘거짓 소리’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심지어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했다 하니 그 반대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조관우가 내는 발성법은 일명 ‘카스트라토’ 혹은 ‘팔세토’ 창법이라 부르는 가성 창법이었다. 그의 대표곡인 <늪>이나 <꽃밭에서>는 거의 대부분을 가성으로 부른다. 당시 우리나라 가요계에선 보기 드문 창법이었다. 흔히 ‘진가진가’라 말하는데, 자신의 음역대 부분은 진성으로, 이 음역을 넘어서는 고음은 가성으로 부르며, 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프린스’나 ‘제럴드 졸링’과 같이 거의 한 곡 전체를 가성 창법으로 부르는 해외 가수 몇몇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그러나 득음을 이야기할 정도로 힘 있는 발성을 요하는 국악인인 아버지의 관점에선 이 가늘고 얇은 음색이 탐탁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노래 발성으로 가성 창법의 단점은 명확하다.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소리, 마이크나 음향기기의 도움 없이 오로지 육성으로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다. 몇 해 전 ‘나는 가수다’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남다른 감성과 뛰어난 기교에도 고전하던 조관우 씨를 보며 새삼 느꼈다. 당시 경연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던 가수들을 보면 진성을 쓰는 가수가 많았다. 현장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단연 힘이 느껴지는 호소력 짙은 창법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소리는 메커니즘mechanism의 문제다. 우리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공기를 들이쉬는 호흡의 단계를 시작으로, 이를 배에 가둬두었다 다시 내뱉으며 성대를 울리는 발성의 과정, 그리고 정확한 입모양과 혀의 위치를 통해 의미를 전하는 발음 단계가 수반된다. 그렇기에 어느 과정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최상의 소리를 내고 있지 못한 셈이다. 성대를 울린 소리가 인중과 윗입술이 닿은 소릿점을 통해 호흡을 담고 밀고 나올 때 대기 중의 공기와 마찰이 발생하며, 부딪힌 소리는 전방 45도의 각도로 상승해 퍼져 나간다. 이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내 달려 마침내 공중으로 비상하는 원리와 일치한다. 일명 ‘베르누이 효과’다.


 앞선 노래 발성의 예처럼 가성은 가늘고 힘이 부족하다. 김건모의 창법 같이 소릿점이 코까지 올라가 있는 비성은 답답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콧구멍은 아래를 향하고 있어 마치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말하는 것과 같이 소리가 굴절돼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신승훈과 같은 두성은 어떤가? 말을 정수리까지 끌어오려 울림을 만들어낸다면 아마 듣는 이도 힘들어서 지치고 말 것이다. 한때 목욕탕 소리라고 굵직한 울림의 발성이 아나운서를 선발하는데 선호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긴 시간 방송이나 뉴스를 듣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가진 목소리를 제대로 살리는 방법은 배에 가둔 풍부한 공기로 성대를 울려 생긴 파장과 조음을 진성으로 입 밖으로 내놓아야 한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듯 시원하게 공기를 뚫고 상승하는 소리는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한다. 긍정적 정서의 변화다. 이는 말하는 이를 믿음이 가는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으로 이어진다. 목소리 좋은 사람이 눈길을 한 번 더 받는 이유다. 뉴스 앵커나 아나운서가 신뢰의 표본처럼 착시를 주는 것도 목소리의 후광효과가 크다.

 일각에서 고객 응대 교육을 하는 강사들이 밑도 끝도 없이 ‘솔’ 음에 맞춰 인사하라고 말하는 어이없는 지도는 이를 단편적으로 해석한 오류다. “안녕하세요.”를 “도레미파솔~ 솔~”에 맞춰하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인위적인 응대인가.


 생방송 직전은 가장 긴장감이 높으면서도 오감이 살아 춤을 추는 시간이다.

 “뉴스는 노래다.”

 항상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기승전결의 흐름을 가진 내용을 완벽한 소리의 메커니즘으로 감정을 담아 전하는 노래. 마이크 따위는 잊고 완벽한 한곡 한곡을 위해 최상의 소리를 뽑아내는데 집중하는 가수처럼 말이다. 단 정해진 음이나 반주와 박자가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노래보다 더 개성을 담아낼 여지가 많고, 동시에 기계적이거나 어색함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높다. 수십 년 방송을 한 베테랑 선배들이 한 목소리로 “뉴스가 가장 어려워.”라고 말하는 이유다.


 마이크를 재킷 칼라에 부착하고 인이어in ear라 부르는 이어폰을 귓구멍에 밀착시키는 순간, 난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내가 하는 말은 스튜디오 밖 부조에 있는 십 수 명이 모두 들을 수 있으며, 반대로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내는 활약상과 숨소리가 생생하기 들려온다. 그래서 가끔 그들이 들으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들으면 안 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흠칫 놀라곤 한다.

 카메라가 프레임을 잡고 나면 이제 분장 팀의 시간이다. 부족한 생김에도 어찌 되든 최상의 시각효과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불만이기도, 때로는 한탄이, 때로는 농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서로의 침묵(천사가 날아가는 시간)이 어색해서 하는 공허한 메아리일 때도 있다.


 “역시 사람은 좀 쉬어야 해. 휴가를 다녀와서 그러신가, 농담에 신명이 담겼네.”


 생방송 직전의 긴장감도 풀고, 진행자를 위해 애쓰는 분장 팀과 소통을 통해 그간 잠깐씩 나눴던 이야기들. 나는 농담이라고 던졌지만, 그들에게는 농이 아니었나 보다. 실없는 꼰대의 말이었을까? 농담을 위한 농담이었던 셈이다. 진심이 없는, 농담할 기분과 감정이 아님에도 마치 의무방어전과 같은 사교의 말들.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던진 길을 잃은 말들이었다. 이후 카메라에 온에어on air가 들어온 후 시청자를 향한 나의 뉴스들은 과연 진정성이 있었을까? 새삼 20여 년 해온 일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 카페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에는 그 어떤 기부보다 귀하고 진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커피의 나라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 누군지 모를 그들을 위해 여분의 커피를 미리 구매하는 고객들, 분명 그 커피 향은 천리만리 퍼질 것이다.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진정성의 파장이 힘 있게 청중에게 꽂히듯 향기를 지닌 말은 그 잔향이 오래 남는다. 구각춘풍(口角春風)이라고 하던가? 꼭 좋은 말재주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즐겁게 할 수 있다. 진정성과 존중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칭찬의 말이라면 당신의 입에서 봄바람이 불어 나온다.


 진심은 생각보다 쉽게 드러난다. 산 정상에서 가성으로 “야~ 호~”를 외치듯, 진심이 결여된 말에는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기 때문이다. 진심은 온전히 다시 내게 돌아온다. 진성으로 세상에 내놓은 노래가 감동의 표정과 기립 박수 그리고 눈물로 돌아오듯, 진심을 담은 말은 상대의 반응으로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누군가의 반응에 서운함을 느꼈는가? 당신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럼 메아리를 찾아라. 힘 있게 밀고 비상하는 비행기와 같은 발성처럼, 매 순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심으로 전하라. 당신의 말에 울림을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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