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지 말고 해, 평소처럼만 해”
모든 부모들이 중요한 시험을 앞둔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부모님 말씀대로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떨지 않는 게 목표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이 말은 남들처럼만 하라는 의미로 평균에 준한 것이 최선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다 긴다 하는 잘난 애들 다 모일 텐데, 네가 되겠어?”
아나운서 시험을 보겠다고 처음 말을 꺼냈을 때의 반응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소위 튀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이 있는 대한민국은 ‘중간만 가라’는 말이 대변하는 평준화의 사회다. 12년간의 의무교육도 평준화에 초점이 맞춰졌고, 학교와 군대를 통해 튀면 절대 안 되고 무엇이든 거부할 수 없는 복종의 계급사회를 경험한다. 이는 직장과 사회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나 ‘튀는 것’은 단어에 이미 부정적 의미를 내포했다. 방송인을 꿈꾸는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대중의 앞에 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정보를 전해야 하는 직업을 꿈꾸면서 교수 한 명을 앞에 두고도 적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발표불안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불안 자체는 이미 차별화를 포기한 극복해야 할 약점에 불과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에는 다른 의미도 담겨 있다. 바로 ‘너무 뛰어난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기 쉽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미움받는 데 용기까지 필요하겠는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장점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것은 ‘잘난 척하는’ 혹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라 치부된다. TV 프로그램에 영재로 주목받아 출연했던 각 영역의 수많은 수재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천재성과 독창성을 유지하고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다름을 숨기고 우물쭈물하다 20대가 되고, 그 제야 자신을 세상에 좀 내보이고 싶은데 눈 깜짝할 사이 중년이 되어버린다. 이후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이다.
영화 <빅 아이즈>의 배경이 된 시기는 모던의 말기에서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던 1950년대다. 2차 세계 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던 시대. 카메라와 인쇄술의 발달은 예술계에도 엄청난 혼란과 변화를 가져왔다. 사물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남자 주인공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 분)의 그림은 더 이상 상품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받았다. 우연히 월터 킨은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마가렛(에이미 아담스 분)과 사랑에 빠진다. 딸의 이미지에 유난히 큰 눈을 그려 넣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그녀의 독특한 그림 'Big Eyes’가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자, 월터는 이를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행세하며 두 사람의 갈등은 시작된다. 마가렛 킨은 수많은 팬을 보유한 실존 인물로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이 사랑한 미술가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당시 미술계를 풍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의 절친 화가가 식당에서 일하는 청년의 그림을 보고 말한다.
“솜씨 좋네요.”
“사진보다는 못하지만!”
현실 그대로를 그려내는 것은 사진보다 정교하지 못해 가치를 잃었고 대량으로 인쇄되어 여기저기 걸린 인테리어 액자보다 새로울 것 없는 기존 화풍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미술계는 작가의 내면을 중요시하는 형태나 무의식에서 생겨난 우연한 결과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를 추상표현주의라 불렀다.
너도 나도 실사를 표방하던 미술계에 모던 시대의 기술 발달이 가져온 사진과 인쇄술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서, 눈이 비정상적으로 큰 인물을 내세운 그림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인기를 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마가렛 킨의 ‘빅 아이즈’는 차별화를 염두에 둔 전략적 화풍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철학이 녹아든 개성이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팬덤fandom을 형성하며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대중예술의 상업화에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관심의 시작은 차별화다. 그러나 차별화는 모두가 쓰는 편안한 쿠션 대신 견고한 프레임을 가진 특특한 소파를 내놓아 주목을 받는 전략적 마케팅이나 그저 남이 하지 않는 말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창성(originality)은 진정성과 꾸준한 노력을 요한다.
세상 누구도 독창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멋이 중헌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영화 <곡성>에서 걸출한 연기파 배우들 속 존재감을 뽐내던 아역배우가 외친 대사다. 김환희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어린 배우의 성공에는 꾸준히 쌓아온 필모그래피에 더해 남다른 노력이 더해졌다. 작은 키를 키우기 위해 매일 우유 1리터를 마시며 3,000번의 줄넘기를 빼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이루어낸 것에 있다. 빙의되어 사지를 기이하게 뒤트는 단 한 컷의 존재감을 위해 6개월을 안무가와 함께 땀을 흘렸다. 뭣이 중한지를 아는 친구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으로는 남들과 같은 선상에서 더 이상 올라설 수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 차별화다. 그냥 남과 다른 것이 차별화이고,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것이 독창성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박나래와 같은 재치 있는 방송인이 이영애를 동경해 배우처럼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 트로트가 대세라고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 가수 박효신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즈싱어 나윤선이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에 도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던 일과 완전히 단절된 분야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잘하는 일을 발전시켜왔거나 하던 일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독창성은 당신의 모습 안에서 장점을 찾고 이를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그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듯, 독창성은 단순히 타인의 것을 좇아선 구할 수 없다. 애플의 혁신에 대중이 열광한다고 해서 혁신적인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어 놓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인사이드 스토리’라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매주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그들의 삶 전체를 축약해 들여다본다. 준비된 원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항상 출연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것들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내 방송 철학이다. 그래서 나 역시 평범한 시청자의 눈높이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다양한 출연자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온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뭇 다른 결을 느낄 때도 있지만 반면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삶의 과정에서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순간의 사건이나 깨달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지, 대단한 철학과 엄청난 고난의 결과물인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들의 기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디어나 독창성 또한 특별한 것을 보고 남과 다른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기억 파일 중 어딘가에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단지 금이나 다이아 원석을 캐듯 발굴해 내지 못할 뿐이다. 개인의 삶에서 느낀 온갖 감정과 경험들의 기억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대한민국 역사를 넘어 전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비롯해 다양한 자리에서 봉 감독이 인용한 이 말은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이 1994년 발간한 <마틴 스콜세지: 영화로서의 삶-비열한 거리>에 담겨 있는 표현이다. 같은 맥락의 철학으로 정 반대의 비전을 제시한 두 가수 겸 제작자가 있다. 바로 박진영과 싸이다.
박진영은 미국 음악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며 몇몇 성공을 이끌어 냈다. 또한 가수 싸이는 ‘강남 스타일’로 말 그대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단번에 올라섰다. 둘은 하나의 철학을 두고 대립적 인식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꼭 세계적인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싸이의 대 성공은 적어도 이 논쟁에서는 완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싸이의 곡들은 데뷔 이후 줄곤 한국인 정서와 사회상에 특화된 가사와 개성적인 멜로디 그리고 개성을 담은 랩 창법 등으로 자신만의 명확한 장르를 구축해 왔다. 스스로는 토속적 외모도 한국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말하지만, 결국 그만의 것으로 세계인의 눈과 귀에 독창성을 어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나는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나는 싸이스타일’을 통해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인들에게 ‘봉준호 스타일’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설국열차>에서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 역사를 때로는 격렬한 액션으로 때로는 블랙코미디로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그만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반 지하 월세’라는 독특한 생활 문화와 한국어로 된 대사, 심지어 ‘짜빠구리’라는 인스턴트식품 제조법마저도 외국인들의 찬사를 막는 장벽이 되지는 못했다. 가장 봉준호 다운 것이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독창적인 것을 넘어 세계적인 추세를 만들어 내며 역사의 한 장을 멋지게 장식했다.
봉준호식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하이콘셉트는 모든 인간이 공감하는 주제다. 하나의 사회를 이끈다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가장 큰 덕목으로 공감을 꼽는다. 결국 새로운 것은 눈에 띄고, 눈에 띌수록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 새로움의 이면에 공감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것이 무엇이든 지속할 수 없다.
독창성은 혁신의 동의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