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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영상편집 팀에 새로 온 K양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안하지만 뛰어난 미모도 호탕한 웃음 때문도 아니었다. 비결은 단아한 듯 화려하고, 단출한 듯 아기자기한 옷차림에 있었다. 계절과 날씨마다 갈아입는 개량 한복에 어느새 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녀는 흔쾌히 모델이 되어주었다. 학생운동에 열중하던 놀이패 복학생 선배나 시골 할아버지 삼베옷에서 보던 개량한복이 MZ세대에겐 개성의 연출이자 주말 모임의 이벤트가 된 지 오래다.

 불과 8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한복을 입고 생활했다. 일본은 ‘유카타’나 ‘하카마’ 같은 기모노, 중국은 ‘치파오’를 입었고, 심지어 스코틀랜드 남성들은 ‘킬트kilt’라 부르는 치마를 두루 기도 했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청바지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인쇄된 티셔츠 등 일상에서 흔히 입는 옷들은 지금 이 순간 미국에서도 남미에서도 아프리카 오지의 사람들도 입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 세계 사람들을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삶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전환된다. 기술 혁명의 시대에서 유럽은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기술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게 되는데, 그 근간의 원동력이 모더니즘Modernism이다. 유럽의 기술 발전을 근간으로 한 모더니티는 1920년대 미국 산업에 적용된다. 노동의 효율적 활용으로 생산량을 높인 테일러리즘taylorism은 경영 중심의 사회를 앞당겼고,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대량생산 시대의 막을 올렸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필연적으로 불러왔고, 부를 축적한 대기업의 등장으로 소비자를 경쟁적으로 모으기 위한 대중광고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마치 도미노처럼 ‘모던’의 기술변화를 통한 삶의 변화가 동시대 문화의 급격한 변화에 불씨를 댕긴 셈이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는 거대 자본과 대기업 그리고 강대국이 주도하는 획일화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매파(媒婆) 역할이 주어진 광고는 아이러니하게도 획일화된 제품의 뚜렷한 차별화를 위해 언어의 마술을 필요로 했다. 변화된 시대가 원하는 것은 독창성이라는 명확한 사인(signal)을 준 셈이다. 마치 MZ세대인 편집팀 K양의 개량한복이 동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농촌에 외가가 있어 명절이나 방학이면 많은 추억을 쌓았다. 고추나 상추를 텃밭에서 따 먹던 기억, 한여름 매미나 개구리, 갯벌의 망둥이를 잡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유독 두려움의 대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섭게 짖어대던 마당의 큰 개도 배추밭을 미끄러지듯 지나던 비단뱀도 아닌 바로 집 밖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던 화장실이었다.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면 별이 쏟아질 듯 떠오르지만 멀리 떨어진 화장실까지 가는 길은 마치 극기 훈련의 담력 테스트처럼 무섭기 그지없었다. 그 망설임의 긴 시간이 지나면 항상 할머니가 스윽 밀어주시던 것이 있었다. 바로 ‘요강’이었다. 요강은 놋쇠를 달궈 두드려 만들거나 흙으로 도자기처럼 빚어 만들었던 일종의 ‘간이 변기’다. MZ세대에겐 유물 같을 요강은 가정의 필수품이었고 심지어 혼수품 중 하나이던 격세지감(隔世之感)의 시대도 있었다.

 마치 구세주와 같았던 사기로 만든 요강의 바닥에는 알지 못하는 도장 모양의 직인(職印)이 있었다. 청자나 백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접 빚어 유약을 바르고 소중히 구워낸 일종의 도자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직인의 주인은 평생 몇 개의 요강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어느 곳에 몇 개나 남아 있을까?


 증기기관과 컨베이어 벨트로 이어진 대량생산품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어느 순간 저 멀리 독일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아주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단돈 2만 원의 스테인리스 요강이 시골 할머니의 집 마루 한 모퉁이에 떡 하니 자리 잡게 되었다. 옆집도 그 이웃 마을 다른 집들도 모두 같은 요강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만든 이의 낙관이 찍힌 수제 요강, 하나뿐인 도자기 요강의 가치는 어떻게 변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해 그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인들이 표를 사고 줄을 서 입장을 해도 먼발치에서 “아, 모나리자구나” 하고 다른 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 만큼 유명해졌다. 그 인기만큼 이나 이 초상화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작품 가격은 추정이 불가능하다.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을 3개월 떠나 있게 된다면 입장 수익이 450억 정도 감소한다는 추정으로 그 가치를 간신히 가늠할 정도다. 모나리자는 한차례 도난 이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패러디 그리고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대량 복제를 통해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량생산의 시대가 가져온 미디어의 변화. 대량 복제가 가능하고 전 세계로 실어 나르고 팔려 나갈 여건이 갖춰진 세상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단 하나의 모나리자 그 진품의 가치는 끝도 없이 올랐다. 그렇다면 할머니 집에 있던 도자기 요강의 가치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스테인리스 요강이 대체한 시대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이 많다.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에도 국기 맞추기에서 수많은 나라의 국기를 모두 맞추는 아이들이 있다. 나중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걸 꼭 외워야 하나 싶었다.”

 방송인 이경규가 한 교육 관련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 우리는 법적 입학 연령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의무교육인 고등학교까지 말 그대로 그냥 다녔다. 중간에 그만둔다 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지만, 우리는 그저 남들도 다 그렇게 다니니까, 부모님과 이 사회가 그래야 한다고 말하니 그렇게 했다. 물론 일찍이 서태지(펜트하우스의 히로인 배우 이지아의 남편)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홀연히 학교를 떠난 선구자들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은 학교는 꼭 다녀야만 했고 졸업장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뒷산에서 황토를 삽으로 떠 와 반죽을 하고 물레에 올려 빚어내고 다시 유약을 발라 굽기를 두어 차례 한 후에야 비로소 제 빛과 기능을 갖추게 된 할머니 집에 있던 그 하나뿐인 요강. 반면 공장에서 주물 틀에 찍혀 나와 컨베이어 벨트를 돌려 똑 같이 만든 대량 복제품 요강. 안타깝게도 우리 중 대부분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그게 당연했고 누구나가 그렇게 살았기에 몰랐다.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그 무지함을 원망해야겠다. 물론 지구 상 최고의 지성을 갖춘 존재인 인간을 단순히 요강 따위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비슷한 거주환경에 같은 옷, 음식, 음악 등 동시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심지어 의무교육 12년간의 수업 내용마저도 같다는 것은 결국 획일화의 원인이자 독창성을 키우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시골집 요강의 비교는 돈으로 매겨지는 물리적 값어치의 차원이 아닌 차별화된 지위와 그에 따른 상대적 가치이다.

 “그래서 어떻게 독창적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데?”

 이렇게 묻고 있는가? 그러나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 하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뻔하디 뻔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곤 못하겠다.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딱딱하게 굳은 두뇌를 말랑하게 하고 정형화된 사고의 전환으로 우리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신선한 사고도 가능하고 그에 따라 당신만의 색과 향을 가진 언어도 구사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 모두 수많은 복제품 속에서 끝없이 가치가 올라가는 명화인 모나리자나 손으로 빚은 단 하나의 요강도 충분히 될 수 있다. 단,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신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복제할 수 없는 당신만의 그 무엇은 무엇인가요?”



참고 : 모더니즘과 관련한 내용은 코디 최의 《20세기 문화 지형도》의 내용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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