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의
교실 속 역사부정 접근법

특집 - 교실 속 역사부정(1/2)

>> 강화정 (부산교육정책연구소)


‘역사부정/역사부인’. 처음에는 역사전쟁의 한편에서 울리는 소음과 같이 느껴졌다. 갈등이 첨예한 한국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황당한 현상, 그 자체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몇몇 소동과 함께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들에게 충격과 고민을 주고 있다. ‘인헌고 사태’, ‘<반일종족주의>의 출간’,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한 역사 부정 사례들’, ‘역사부정처벌법 제정 논란’. 2019년 한해 동안 일어난 이러한 소동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러한 역사부정과 역사부인의 사례는 여전히 일탈적이며 예외적이다. 그러나 하나의 경고로 여기며 되짚어보고 고민해보기에는 충분한 사안일테다. 교실 속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역사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교실 속의 역사부정’이라는 이름의 특집을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하고자 하는 이유다. 첫 번째로는 강화정 선생님의 글을 통해 ‘역사부정’의 개념과 접근 방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특집 싣는 순서>

2020 가을호(130호) - 역사교사의 교실 속 역사부정 접근법(강화정)

2020 겨울호(131호) - 리서치 : 현황&역사교사의 대응과 인식(편집부 정리)




- 목 차 -
1.들어가며
2.마주하기 - 교사들이 인식하는 역사부정과 부인(denial) 문제
3.해석하기 - 교실 속 역사부정의 접근 방향
4.함께 풀기 - 역사부정에 맞서는 역사수업 모색
5.나오며



1. 들어가며


팩트체크(fact-check)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행위이다. 진실에 기반한 사실을 거짓 혹은 허위와 구별하는 과정이다. 최근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가짜뉴스가 폭증하면서 팩트체크는 언론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한 언론사 뉴스에서 팩트체크가 프로그램의 일부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팩트체크 뉴스의 ‘편파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를 공격하는 팩트체크 뉴스에 항의했다.1) 매우 편파적 방식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확증편향의 태도를 지닌 채 말이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사실만 받아드리고자 하는 확증편향의 태도야 말로 가짜뉴스가 자라기 쉬운 최적의 조건이다.2)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거나 거짓과 진실, 사실과 허위의 구분이 일도양단으로 분명하지도 않다는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나 분명 오늘날 가짜뉴스를 둘러싼 논의는 새롭고, 심각하며 동시에 글로벌한 현상이다.

미국의 한 비평가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며 현 상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3) ‘가짜뉴스’, ‘대안사실(alternative fact)’ 같은 용어들이 트럼프 집권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며 ‘진실의 쇠퇴(truth decay)’가 가속화되는 ‘탈진실(post-truth)’이 중요한 현상이자 흐름으로 등장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진실이 개인의 입장에 종속되는 것이다. 탈진실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튜브나 SNS, 메신저앱을 통해 돌아다니는 가짜뉴스가 전체 여론 지형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론장의 논의가 진실에 기반하지 않고 진영논리, 정파적 입장에 따라 진행되면서 논쟁을 협소화시키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탈진실 현상은 정치적 지형과 역사적 맥락이 만든 인식의 지평 위에서 심화되어 간다. 2019년 <반일종족주의> 출간 이후의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TV라는 극우 유튜브 채널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반일종족주의>는 학문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역사부정의 논리를 드러내며 탈진실 현상에 조응한다. <반일종족주의>를 역사부정으로 명명할 수 있는 까닭은 한국의 반일정서를 맹목적인 샤머니즘에 비유하며, 정파적 입장에서 역사적 맥락을 거세하고 본인이 드러내고 싶은 역사적 사실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자료의 맥락을 찬탈하고, 증언을 교묘하게 해석하는 방식의 연구를 진행한다.4)

반일종족주의의 오류와 왜곡을 지적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전문성에 냉소적이거나 회피하는 반지성주의가 팽배해진다. 무엇보다 반일종족주의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은 역사부정론과 여성 혐오에 기반한 거대한 백래쉬의 연결고리로 존재했다.5) 같은 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극우 성향의 학생 단체가 생겨나, 학교 체육대회 때 등장한 구호를 두고 반일 ‘사상을 강요’한 ‘사상독재’라며 학교를 몰아붙이고, 학교 밖 극우세력들과 연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 역사부정을 주장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특정한 세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학교에서도 존재하고 조직화되었다. 이는 학교 공동체에게 큰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표출된 극단적 형태였으나, 학교가 역사부정의 사회적 인식, 정치 문제와 무관한 진공상태로 존재할 수 없음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역사부정의 문제는 현재 탈진실의 조류에 조응하며 더욱 확대되어 가는 듯 보인다.


1) 김준일, 「무엇이 팩트를 가리나, 주범은 정파적 뉴스 소비」, <월간 신문과 방송 7호>. 2020.

2) 가짜뉴스는 단순히 거짓을 보도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거짓을 유포하는 것이다. 고의로 허위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가짜뉴스로 정의할 수 있다. 리 매킨타이어,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두리반, 2019, pp.143.

3) 미치코 가쿠타니, <진실따위는 두렵지 않다>, 돌베개, 2019.

4) 강성현,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푸른역사, 2020, pp.70-90.

5) 조경희, 「부정의 시대에 어떻게 역사를 듣는가」,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푸른역사, 2020, p.250-264.



역사교실에서 마주하는 역사부정의 문제가 본고의 주된 관심이다. 역사부정의 문제는 주로 학생의 질문과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기존 교육과정의 역사 지식과 구별되는 다른 서사와 의미를 가지는 역사부정의 논리는 학생들의 언설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 때로 학생들의 발언과 질문은 강한 의도를 짙게 내포한다. 궁금해 묻기보다 교사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의도로, 때로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질문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사의 대응은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고, 교육적으로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가 학생의 발언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고 대응할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동시에 학생의 발언 속 역사 부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단순한 시비의 문제, 가짜와 진실을 가리는 문제를 넘어 어떤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것인지, 누구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왜 지금 이 문제를 교육해야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역사부정의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역사부정을 역사교실에서 논의해야 하는 이유를 숙고하다보면 역사수업 속에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나아가 어떻게 역사부정 문제에 맞서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교실 속 역사부정 문제를 만나고,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3개의 국면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2. 마주하기 - 교사들이 인식하는 역사부정과 부인(denial)의 문제


1) 역사교사들이 인식하는 역사부정

‘학생의 질문/발언에서 역사부정을 만난다’는 말은 2가지 상황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첫째,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사회문제와 관련해 자신만의 인식을 가진 채 역사교실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통념상 학생을 순진무구한 오염되지 않은 존재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그렇지는 않다. 학생들은 시사적 이슈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인식 구조 위에서 정보를 수용하고 가치판단을 내린다. 더구나 유튜브나 SNS등 정보수용의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학생들이 만나는 정보의 유통과 수용, 이해에 대한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확장되었다. 둘째, 학생 질문에 역사부정의 논리가 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주체는 역사교사이다. 역사교사가 학생의 사소하고 돌출적 질문에서 역사부정의 논리를 파악할 때라야 새로운 역사수업이 펼쳐질 수 있다. 역사교사가 역사부정이 무엇이고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알고 있을 때 질문 속 역사부정 내용도 포착 가능하다.

이 글은 교실 속 역사부정에 관한 역사교사의 인식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역사교사들은 ‘역사부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6) 역사부정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단어를 묻자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단연 많았고, ‘이영훈’과 ‘반일종족주의’, ‘일본’과 ‘아베’, 역사부정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서 ‘5·18’을 서술한 경우도 있었다. 눈길를 끄는 것은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고 밝힌 이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6) 2020년 하계 역사과 1급 정교사 자격 연수에 참여한 60여명이 교사를 대상으로 관련 내용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받은 응답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일베(10), 잘 모르겠다(5), 반일종족주의/이영훈(5), 역사 왜곡(3), 일본/아베(2), 5·18(2),

대한민국 사람 맞나. 인터넷에 만연한 현상, 상대가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아님을 알려주는 명명, 역사적 근거를 무시한 자의적 해석, 한단고기, 이기심, 극우, 뉴라이트, 미통당, 현실비판 (각1)


<표1 - ‘역사부정’을 듣고 연상되는 단어 (괄호 안 응답자수)>



역사교사들에게 ‘역사부정’이란 단어는 익숙하지 않았고 의미도 명확하지 않았다. 부정이 의미하는바 진실이 아닌 거짓, 거짓주장으로 이해했으며,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는 역사부정의 사례를 떠올렸다. 역사교사들에게 본인의 역사교실에서 역사부정 관련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없다’고 대답했다.(응답자 41명중 27명이 없다고 대답)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경우 관련한 학생들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표2 - 역사교사들이 자각하는 역사부정 관련 경험사례

A – 일베식 역사인식과 용어를 경험한 경우

선생님 문빠에요? / 좌쪽이시네요/ 좌빨인가요?
5·18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짓이다
(동학농민운동 수업 당시) 역시 전라도는 어쩔 수 없다
빨갱이란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는 학생을 만난 경우


B – 편향성 시비를 경험한 경우

수업 내용을 녹음해서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
퀴어 축제를 언급한 것을 두고 동성애를 두둔했다고 항의
현대사 수업 중에 왜곡된 자료만 보여준다고 항의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이승만의 부정적 측면을 언급한 것에 항의한 학생
하나의 경험이라고 하기에 의외로 일상적으로 퍼져 있다고 생각해요


교실에서 역사부정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사례에는 다양한 인식이 엉켜 존재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일베식 역사인식 7)과 용어를 경험한 경우(A)와 편향성 시비에 휘말린 경우(B)이다.

일베식 역사인식과 용어를 경험한 경우(A의 경우), 5·18을 북한 사주에 의한 폭도들의 소행으로 인식하는 것은 일베식 역사인식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정치 성향을 극단적 이분법으로 분류하고 ‘좌쪽, 좌빨, 빨갱이’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전라도나 진보정부에 대한 혐오 감정을 드러내는 발언도 교실 속에서 만나는 역사부정의 대표적 예로 생각된다.

문제는 편향성 시비에 휘말린 경우(B의 경우)이다. B는 수업이 편향적이라며 항의하거나 상급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학생으로 인해 당혹스러운 경험을 가진 교사들이다. B와 같이 응답한 교사들은 이런 사태를 불러온 이들이 A와 유사한, 일베식의 극단적 역사인식을 가진 학생일 것이라 추측하고 역사부정의 사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당 교사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교사의 개인적 경험 속에서 편향성 운운하며 교사의 발언을 막아선 학생들이 극우적 성향을 가진 학생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향성의 문제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교사와 학생의 문제로만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한국의 학교 문화가 가진 억압성과 관련된다.

교육의 중립성에 대한 신화가 견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교실 속 다양한 정치적 견해의 표출을 금기하고 불온시하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교과서 서사만을 배워온 학생들의 경우 교사가 제시하는 다른 자료나 역사적 평가를 불편해하는 학생도 존재한다.


7) ‘일베식 역사인식’은 2015년 사회적 이슈가 된 ‘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보이는 극우적/극단적 역사인식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관련하여 다음 글이 도움이 될 듯하다. 강화정, 「고등학생의 민주주의 이해 양상 : 5·16과 5·18을 중심으로」, 『역사와 세계』25, 2014.



또, 교사의 견해와 다르나 충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와 내용에 관해서 학생이 문제제기를 했다가 면박을 당하거나 일베로 낙인찍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교사들이 유연하게 논쟁을 열어가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편향성 시비를 역사부정의 사례로 여기는 교사들의 답변은 역설적으로 역사교실 속에서 서로 다른 인식이 더 치열하게 경합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역사부정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대답한 교사의 인식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교사가 학생의 발언을 포착하지 못했을 가능성, 학생들이 자기 인식을 표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학생이 표현하지 않았다면 수업 속 역사인식을 수긍했을지 무시했을지 반발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또, 교사가 역사부정을 어떻게 개념화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답변도 가능하다. 이 설문에서 교사들이 인식하는 역사부정은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몇몇 특정한 세력들 - 일베, 일본과 한국의 극우 – 로 한정해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부정의 개념을 확장하여 가해 사실을 부인하려는 문화와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를 포괄한다면 역사부정이 몇몇 악당들에 의한 진실 가리기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부정(negation)은 부인(denial)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홀로코스트 부인을 생각해보자. 홀로코스트 부인은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었다. 홀로코스트 부인자들은 히틀러의 학살 명령서를 포함해 나치의 집단 학살을 증명할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를 전면 부인하거나 집단 학살을 정당화했다. 또, 집단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통해 역사부인을 시도하였다.8) 이처럼 ‘부인’은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이때 부인의 행위 주체는 가해자 개인에 한정되지 않고 국가나 이를 방관한 일반 대중까지를 포함한다. 수동적 관찰자, 방관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인권 침해에 눈감는 행위가 실은 수동적 형태의 연루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9)

폭력의 장에 존재했던 폭력의 주도자, 지지자(서포터즈), 구경꾼(관객) 간에 일어난 폭발적 감정적 동승 작용 탓에 폭력은 더 커지고 강화되어 가기에 구경꾼인 관찰자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10) ‘부인’의 프레임은 부인행위의 대상을 확장하고 ‘부인의 문화’까지도 포괄하여 역사부정의 범주를 확대시킨다. ‘부인 문화’는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강간했다는 식의 부인이 이뤄졌을 때 해당 사회의 문화와 권력이 이를 용인하는가11) 아닌가의 문제이다. 이를 용인한다면 그 사회에 부인문화가 만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부인 문화’는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냉전적 질서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민주화 이후 과거사 청산의 불철저함에 기인하여 더욱 성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폭력의 공간이 열리고 각각의 행위주체들이 자가 상승하는 과정을 떠올릴 때12),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과 가해는 공동체에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극단적 인간성 말살을 경험하게 했다. 다양한 가해 논리가 중첩되면서 폭력의 양상은 심화되고, 이후 분단을 통해 폭력은 한층 구조적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8) 이재승, <국가범죄>, 2010, 앨피, p.547-549.

9) 스탠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2009, 창비, p.174.

10) 김학이, 「폭력사회학 이론과 나치 폭력 연구」, <서양사론> 134, 2017, p.264-265.

11) 스탠리 코언, 위의 책, p.213.

12) 조갑상, <밤의 눈>, 산지니, 2012.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서 사회에서 배제되었고, 연좌제를 통해 지속적 인권 침해를 당해왔다. 이 같은 배제의 논리는 한국전쟁 당시 피학살자 유족 뿐 아니라 이후 의문사,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여전히 지속되는 빨갱이에 대한 혐오, 종북에 대한 적대감 역시 큰 범위에서 부인 문화의 또 다른 형태로 결과물로 생각된다. 이처럼 부인 문화가 지속되는 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피해자들의 ‘회복’과 공동체 내부의 ‘화해’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현 상황은 역사부정이 싹트기 쉬운 토양이기에 탈진실의 흐름과도 조응하여 더 큰 파급력을 내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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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은 역사부인과 명확히 구별되지 않으나 역사부인과 함께 부인문화, 역사왜곡과 배제의 논리마저도 포함한 용어로 생각된다. ‘부인’이 개인과 국가의 부인 ‘행위’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인이 그에 대비되는 단어라면, ‘부정’은 진실과 대조되는 단어로 부인의 사회적 측면을 한층 강조하면서 부정, 거짓, 가짜에 맞서는 실천성을 강조하는 용어로 생각된다. 법학자들은 역사부정죄를 정의하기 위해 역사부정을 개념화하는데 13) 이재승과 홍성수는 역사부정을 조작적으로 정의하며,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다만, 이재승은 인권 침해의 주체가 권위주의적 공권력임을 명백히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역사부정을 정의했을 때 전쟁범죄, 집단살인, 인도에 반하는 범죄 등 국제법상의 중대한 범죄가 부정의 대상이 되고 법률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13) 법학자들이 정의하는 역사부정은 다음과 같다.

· 전시 또는 평시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중대한 인권 침해사건의 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 (이재승, 「기억과 법:홀로코스트 부정」, 『법철학연구』11, 2008)

· 반인륜적 범죄 등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행위

홍성수, 「역사부정죄의 정당성 근거」, 『법학논총』39, 2019, p.174-175)



2) 역사부정 문제를 역사교실에서 논의해야 하는 이유

부정주의자들이 부정하려는 역사는 전시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 인권이 유린당한 가학적 폭력의 역사이다. 문제는 가해 사실을 갖가지 논리로 부정하고 부인하면서 과거의 불의하고 부정의한 상황을 현재에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나 유가족들의 상처를 건드리고 고통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공동체가 어렵게 규명하고 추진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얻은 ‘회복과 화해’의 가치를 훼손하기에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역사부정은 사회가 공공기억을 형성해 가는데 등장하게 될 ‘상수’로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오늘날, ‘현재’의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부정의 문제를 역사수업에서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사수업에서 역사부정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서는 3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으나, 이것이 단순히 역사부정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부정을 다루는 일이 현재 학생들의 삶과 연관해 어떤 지점에서 고민과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다음의 2가지 문제에 천착해볼 수 있다.

첫째, 역사부정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이 재현되고, 부인의 문화가 확산되는 방식으로서 언어와 혐오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역사부정 세력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망언’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데 그들의 언어 속에서 상대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일베가 우리 사회 던졌던 충격 중 하나는 상대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혐오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베 용어는 재미와 놀이의 의미로 또래 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현재도 다양한 형태로 변이되면서 소비된다. 14)

이 같은 망언과 혐오발화는 ‘표현’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부인문화와 담론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기에 더 큰 문제이다. 김명희는 5·18 자살자들을 추적 연구를 통해 부인 문화가 5·18 피해자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효과를 가져 오면서 수치심과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여 자살유발충돌을 강화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5·18 당시 구타, 고문, 학대, 성폭력 등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자살하는 양상 외에도 1990년대 광주보상법이(<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이뤄진 이후, 자살이 증가한 양상을 지적한다. 그는 이 시기 자살을 국가폭력 피해자의 ‘재희생자화(revictimization)’ 로 명명하는데, 보상 중심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내부 공동체의 균열, 사회적 지지의 저하, 가족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자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15) 보상 이후 역사부정주의자가 만들어낸 혐오의 논리는 5·18에 참여한 시민을 ‘폭도’로 몰아가던 것에서 더 나아가 보상을 받은 ‘특혜, 특권집단’으로서 ‘5·18 유공자’를 파렴치한으로 몰며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갔다. 16)

혐오표현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을 경계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 절멸의 기초가 실은 ‘언어의 비인간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은 문화 민족에서 가장 본질적인 필수요소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 유대인은 유해한 세균처럼 자기에게 호의적인 지역이라면 거기에 널리 퍼지는 기생충, 식충이이다. 유대인은 다른 사람들의 피를 타락시킨다”고 말했다. 유대인이 사회적 해충으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비인간화는 절멸을 동기화하거나 정당화하는데 사용된 언어였다.17)

혐오는(disgust) 매우 정서적 반응이지만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공유된 인식이기도 하다. 스탠리 코언은 인권침해가 어떤 개념이나 마음 상태가 아니라 제도이자 구체적인 사회적 관행임을 지적하면서 특정한 인권침해 관행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이후 유지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접근할 때 ‘감수성’의 문제를 고려하면서도, 부인의 언어들을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며 무효화하려는 언어의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 언어적 도덕성(lingustic morality)의 문제가 혐오의 논리와 어떻게 만날지 숙고해봐야 한다.


14) 김학준의 석사논문에 수록된 일베 용어사전에서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는 일베 용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학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2014.)

7시(지도상 전라도의 위치가 7시 방향이라는 것을 빗댄 말), 까보전(알고 보니 전라도 사람), 라디언(전라도 출신자를 비하하는 말), 슨상님(호남 사람들이 고 김대중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비하하는 말), 홍어(전라도 출신자들을 비하하는 말)

15) 김명희, 「5・18 자살의 계보학」, <경제와 사회> 126, p.92.

16)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2019.02.08. 자유한국당 김순례 5・18 망언)

17) 허버트 허시,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책세상, 2009, p.167-168.




둘째, 역사교육에서 역사부정 문제를 다루는 일은 무엇을 우리 사회의 기억으로 가져가는가와 연관된다. 공공기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역사교육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누구의 시선’으로 기억할지에 관한 문제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문제와 만날 수밖에 없다.



인식과 회상은 진실에 대한 고려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고통받아온 사람들에게 동정과 인간으로서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들에게 행해진 부정의에 대한 반발을 표현한다.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의 인식과 회상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와 관련돼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사회가 무엇이며 삶과 공동체를 파괴할 시각에 저항해 그 둘이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관련돼 있다. 우리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자신(우리의 관심사, 공동체에 참여하는 우리의 능력,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의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과 선견지명에 대한 우리의 능력을 통해서 공동체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해야 한다. (Smith, 1992)


스미스의 말대로, 기억(회상)은 진실 이상의 것을 말한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 우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문’이며, 인간의 존엄과 정의와 같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 독일 홀로코스트 교육이 기억의 주체를 다양화하고 소수자의 시선(집시나 동성애자까지)을 담아내는 ‘진화’의 과정을 거듭하는 것도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의 지향과 노력의 반영이다. 또, 최근 사회적 이슈인 역사부정죄 논의에서 자주 언급되는 홀로코스트 부정처벌법을 보자. 홀로코스트 부정은 ‘현재’의 차별, 혐오와 연결되기에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단순히 과거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피해 관련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인간 존엄이라는 헌법정신을 파괴하며, 집단으로서의 소수자를 차별하는 ‘현재성’을 가진 문제라는 점에서 역사부정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18)


역사부정과 관련해 우리가 숙고해야 할 기억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다시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끔찍한 과거의 반복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어둡고 끔찍한 ‘과거사’를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다시는 폭력과 야만의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한 ‘현재’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묻고 있다. 역사교육은 무엇을 기억함으로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하나의 방안은 이 끔찍한 반복을 막기 위한 ‘노력’ 즉, 과거사 청산의 과정과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다. 방지원은 과거사 교육을 통해 역사교육이 화해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한 진상을 규명하고 이후 사과, 처벌, 보상의 문제를 국가가 제도화하는 과정을 교과서에 싣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또, 과거사 문제를 드러내고 회복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이 같은 과정이 가능할 수 있었음을 말하는 과정도 또 하나의 화해 과정이다. 19)

명하고 이후 사과, 처벌, 보상의 문제를 국가가 제도화하는 과정을 교과서에 싣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또, 과거사 문제를 드러내고 회복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이 같은 과정이 가능할 수 있었음을 말하는 과정도 또 하나의 화해 과정이다.

두 번째 방안은 누군가에게 이 끔찍한 과거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역사부정의 맥락에서 기억의 문제를 다룰 필요성을 제기한다. 역사부정을 역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일은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전면화하고, 현재까지 그들이 겪은 고통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현재의 고통이 시작된 인권 침해의 역사, 폭력의 역사를 드러내고 그 같은 폭력이 작동할 수 있었던 구조와 다양한 행위 주체를 서술하며 권력기관의 역할, 대중의 침묵과 방관의 문화를 서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부정과 관련한 기억은 폭력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언제든 폭력의 장이 다시 열리고 상정된 적을 향해 질주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18) 홍성수, 「역사부정죄의 정당성 근거」, <법학논총> 39, 2019, p.175-193.

19) 방지원, 「공감과 연대의 역사교육과 ‘과거사’문제」, <역사교육연구> 28, 2017, p.123.

20) ‘고문의 현실을 시인하려면 피해자의 비명이나 고문자의 정당화 논리를 수집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문체제 전반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 고문을 뒷받침하는 자체 법률, 법리 구조, 관료제, 교육, 언어, 문화적 표현 방식, 정치적 정당화 등을 갖추고 있게 마련이다’ 스탠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2009, 창비, p.487.



3. 해석하기 - 교실 속 역사부정의 접근 방향


1) 역사부정을 포함한 질문 만들기

교사들이 역사부정을 인식하는 보다 구체적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 ①일본군 위안부, ②5·18, ③세월호 참사 ④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였다. 대표적 역사부정으로 꼽히는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부인의 맥락에서 질문을 만들었다. 아래 그림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인은 크게 3가지 유형과 세부적인 방식(전략)으로 구분된다.


‧ 문자적 부인 – 엄연한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해석적 부인 –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 함축적 부인 – 어떤 사건에 따라오는 심리적, 정치적, 도덕적 함의를 부정하거나 축소한다


캡처.JPG 그림 2 - 부인(denial)의 유형

이때 질문은 역사교실에서 학생들이 묻거나 말하는 형태를 띤다. 우선, 질문의 내용과 구성 의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질문. ‘선생님. 일본군 ’위안부‘로 가면 돈을 많이 벌었데요.’ (문자적 부인)


2019년 <반일종족주의>의 출간, 2020년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비리 의혹 문제 등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들이 계속되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려는 일본 극우의 논리가 한국 사회 내에서도 점차 부상했는데 소녀상을 훼손하거나 수요시위에 훼방을 놓는 부정론자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는 남경대학살과 함께 자학 사관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세력’21)의 핵심의제이다. 일본 내 부정주의자들은 민족/인종 차별주의에 여성 차별주의까지 결합된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접근한다. 대표적 인물인 후지오카 노부가츠는 위안부의 증언을 모두 거짓이나 꾸며낸 이야기로,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을 모두 돈을 노린 거짓으로 여긴다. 그 배후에 국내외 반일세력이 존재한다고 단정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은 조직적 성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연행 형태가 강제인지 여부와 강제였다면 왜 조선 여성 연행에 대한 명령서가 남아 있지 않은지를 따진다. 생존자 증언이 가진 불완전성을 마치 진실이 아닌 양 호도하기도 한다.22) 위 질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발언은 조선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에 종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매우 대표적 형태의 역사부정 사례이다.


21) 일본극우세력이 스스로를 ‘수정주의’로 규정하나 이들의 주장이 학문적 영역에서 논쟁할만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 힘들다. 본고

에서는 ‘수정주의자’들을 부정론자로 명명하려 한다.

22) 다카하시 데츠야, 「부정론의 시대」, �국가주의를 넘어서�, 삼인, 1999, p.263-273.



○ 두 번째 질문. 2-1 ‘5·18사태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나요? 논란이 많은데 ‘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해석적 부인) / 2-2. 저는 균형감 있게 가르칩니다. 5·18민주화운동과 폭동설을 함께 가르쳐요(초등교사A)

5·18과 관련한 역사부정은 사건 발발 직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지속· 유지되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5·18왜곡 제보를 상시적으로 받고 있고 진상규명과 함께 왜곡 대응을 주요사업으로 삼아 현재 전두환과 지만원을 법정에 고소한 상태이다. 역사부정의 핵심적 고리로서 5·18이 존재한다. 김보경은 5·18 부인 논리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유형화하여 소개하고 있다.23)

캡처.JPG 표 3 - 5・18 가해자의 부인 전략

5·18 역사부인에서 가해자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대상은 지지자들이다. 그들의 부인 방법과 전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광주사태를 ‘객관적’ 역사인식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민주화운동 담론을 부인하는 ‘해석적 부인’으로, 역사부정 사례이다.(표4의 명암 처리된 부분)

질문2-2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발언을 각색한 것이다. 해당 교사는 실존 인물로 한 교사단체의 SNS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해 꽤 큰 논란이 되었다. 역사부정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교사가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정보의 양과 논리에 기대에 5·18을 ‘사태’와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는 각 측의 논리를 모두 ‘균형감 있게’ 수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캡처.JPG
캡처2.JPG 표 4 - 5・18 가해자 측 지지자의 부인 전략

23) 김보경, 「누가 역사를 부인하는가」,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 역사비평사, 2014, p.332-351.

24)북한 특수부대 개입을 강조하는 사례로서 ‘신원 미상 시체들의 정체, 카빈소총 사망자가 시민총상자 70%를 차지, 무장시위대의 광주교도소 습격, 38개 무기고의 사전 파악, 시민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윤기권 월북, 복명 정체의 제기’ (앞의 4가지는 거짓, 뒤의 2가지는 논리적 비약), 김보경, 위의 글, p.345.



○ 세 번째 질문. 학교에서 세월호는 추모하면서 왜 천안함은 추모하지 않나요? (함축적 부인)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구조의 책임을 가진 해경과 청와대는 무능했고 끝까지 무책임했다. 때로는 악의적이어서 경찰국 정보국과 기무사령부는 유가족을 시찰하고 비난하는 여론을 조성해갔다. 언론도 함께 앞장섰다. 세월호와 관련한 숱한 ‘사회적 혐오’를 형성되고 확산되었다. ‘세월호 특별전형’에 대한 불만,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 나타난 극우청년들의 ‘폭식 퍼포먼스’, ‘세월호 피로감’, ‘세월호 어묵’, ‘4.16생명안전공원’이 납골당으로 폄하되기까지 하며 그 형태도 내용도 끔찍하다. 문제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자를 처벌을 통한 사법적 정의의 구현이나 기억기념 문화의 조성은 요원해 보인다.

천안함 참사는 다른 종류의 사건임에도 언론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배·보상 금액을 인용하며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 희생자의 보상 규모를 비교하고는 했다. 반면, 천안함 생존 장병 대다수가 트라우마 치료비조차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보건의료학자 김승섭은 천안함 피해자의 상처를 정치적으로 소비할 뿐 누구도 그들의 고통에 주목하지 않았음에 비판한다26). 세월호 참사는 분명 규명되고 청산되어야 할 중요한 과거사임에도27) 세월호 유가족을 ‘떼쓰는 자들’, ‘무임승차하려는 자’로 여기는 이들이 그 대척점에 천안함을 두고 서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역사부정의 핵심 기제로서 혐오표현의 문제를 고려할 때 세월호 참사를 세 번째 질문에 포함시켰다.


25)박소진, 「세월호 참사를 통한 폭력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재사유」, 『문화와 사회』26, 2018, p.163-167.

26)김승섭, 「세월호 5년…연민·슬픔 넘어 기억하기 위해 애도하겠습니다」. 2019.4.16. 한겨레 신문기사

27)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한국의 과거사 청산 맥락에서 살펴본 글로 강성현의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 강성현, 「과거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둘러싼 쟁점과 평가」, 『역사비평』, 2014.



○ 네 번째 질문.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전쟁에서 베트콩과 민간인이랑 어떻게 구분해요? 민간인 피해는 불가피한 거 아닌가요?” (함축적 부인)

베트남전 참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대체로 80여건, 9000여명의 희생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한겨레, 2016/10/26) 이 추정치는 베트남과 한국 두 정부 중 어느 곳도 아닌, 한국 시민사회의 노력과 발굴로 밝혀낸 수치이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오랫동안 답보 상태로 유지되다 2018년 4월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리면서 재공론화 되었다. 그러나 참전군인 및 관련 단체의 강한 반발이 존재하고,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은 반공, 경제발전을 위한 기회였다는 인식이 강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대, 이념, 국가 간 경계를 나뉘면서 역사 부인의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28). 아래 표는 2009년 ‘교과서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실어야 한다’는 아고라 청원에 달린 반대 댓글을 분석한 자료로, ‘부인’을 종류별로 재분류한 것이다29).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고, 이때 민간인 피해의 불가피함을 강조한 발언은 함축적 부인의 한 유형이다.

캡처.JPG 표 5 -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부인 전략

28)윤충로, 「한국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과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 『사회와 역사』120, 2018.

29) 2009년 미디어다음의 아고라의 청원 <교육청에 고합니다.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 교과서에 실어주세요>라는 청원에 달린 반대 댓글의 논리를 분석한 것을(김성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민주주의와 인권11, 2011.p. 222.) 필자가 '부인'의 유형에 맡게 아래와 같이 정리한 것이다.


○ 다섯 번째 질문. 이 글을 읽고 당신이 든 생각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의 사실에 전시 내용에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전투와 무기 중심의 전시는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느끼며 전쟁으로 인한 고통보다 오히려 친근감과 흥미를 고취시킵니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에 기반한 힘을 통한 평화라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안보제일주의와 군사력 강화의 명분이 됩니다.” - <용산전쟁기념관 한국전쟁 전시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자료집 중에서


다섯 번째 질문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민간인 학살을 배제한 채 한국전쟁을 재현하는 논리가 실은 역사부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교사들에게 자신의 한국전쟁 수업을 돌아보게 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노근리 사건’, ‘대전 형무소 사건’, ‘국민 보도연맹’ 등이 수록되어 있으나 사건을 규정하는 용어는 출판사에 따라 ‘전쟁 중 집단 학살’, ‘민간인 학살’, ‘민간인 희생사건’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2) 교사들의 답변을 통해 본 역사부정 문제


위 다섯 가지 질문과 관련해 조사 대상자인 역사교사들에게 적절한 반응과 대응을 물었다30). 먼저 역사교사들은 이 질문을 역사부정의 맥락에서 인지하는지, 역사부정의 논리를 파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였다. 역사부정의 내용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학생의 발언과 질문에 대한 대응이니 만큼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고 있는가. 5개 답안이 가지는 다른 의미 맥락과 층위를 이해하고 있는가. 기타 다른 특징은 없는가 등을 파악하려 하였다.

교사들이 해당 질문을 역사부정의 맥락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질문한 학생의 발화 의도와 맥락을 먼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대의 논리가 어떤 논리적 오류를 가지는지도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 관련한 교사들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30)2020년 부산대 1정 하계 1정 연수 대상자들의 강의 중 소모둠별로 이루어진 토론 내용을 녹취하여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았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 더 나아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전체를 봐야지 피해를 받았다 말았다로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1번 질문에 대한 B의 답)


질문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인지, 순수하게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지 반응이 달라야 한다. 5·18 ‘사태’는 자주 나오는 말인데, 기계적인 중립에 머무르는 것이 옳은가 (2번 질문에 대한 E의 답)


○ 세월호와 천안함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가 학생들을 구조하는데 실패한 것이고 특히 공교육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 학교가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약속을 되새기기 위해 추모하는 것인데. … 애초에 2가지 사건을 계속 비교하는 것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이다. … 왜 정치적인 색깔을 붙이려고 하는가 하는 지적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3번 질문에 대한 B의 답)


○ 이런 식으로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어렵다고 발언을 하면. 민간인인줄 알고 저지른 학살과 전쟁 중에 우연히 있었던 민간인 피해를 혼용하는 것으로 학살에 대한 의도성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4번 질문에 대한 B의 답)


○ 중학교는 현대사가 소략하다보니까 6.25전쟁에 대해서는 전쟁과정에 대한 진술은 많으면서 학살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료가 없다보니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료를 추가적으로 많이 구해서 수업을 하셨다. (5번 질문에 대한 A의 답)



질문에 따라 편차가 있었으나 역사부정의 맥락에서 질문을 파악하기보다 질문이 설정한 프레임에 따라 성실하게 대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령,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할머니의 삶과 고통을 묘사하면서 답한 경우,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서사이고 크게 틀리지 않은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서 할머니라는 존재를 강조하며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그러나 부정주의자들이 증언의 불완전성을 바탕으로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의 거짓 주장을 지적하는 형태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강성현 교수의 도서를 바탕으로 위안부에게 배부된 티켓이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휴지조작이 되었다거나, 전시 인플레가 너무 높아서 화폐가치가 전혀 없었다는 기본 사실을 지적하는데서 시작해야‘ 라는 지적이 보다 설득력 있는 대응 태도로 생각된다.

세월호와 천안함 두 참사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천안함 관련 의혹들을 제시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이 때 교사의 발언 자체가 논란거리로 비하될 위험이 있음으로 유의해야 한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천안함과 세월호를 비교 문법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기에 천안함 사건의 성격규정과 관련 의혹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가져올 여지가 크다.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보다 양비/양시론 (둘다 옳다, 둘다 틀렸다)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도덕적 훈계로 답변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두루뭉술하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인도적 책임’을 말하기도 했다. 전시의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배치되는 답변이다.


(민간인 피해) 불가피하다. 그런데 잘했다 잘못했다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저지른 일이고 누군가 죽었으니,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인도적인 책임은 져야 하지 않을까


역사부정과 관련한 질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역사교사들이 사실과 가치,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도 중요한 주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 중 가장 정확한 진술은 무엇인가.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1) 그 나라의 인구가 줄었다
2)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3)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4) 수백만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4번째 ‘학살당했다’는 답안이다. 네 번째 진술이 가장 평가적이며 정확하고 정교하며 가장 많은 진리를 제공한다. 4번을 제외한 3개의 진술도 실은 가치를 포함한다. 1,2,3의 진술은 사망자의 규모, 죽음의 이유를 교묘히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채 진술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실들(facts)은 이미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들(historical facts)로 ‘실재’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견-합리적 평가와 판단에 충족되는- 또한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31) 균형감 있는 수업을 강조했던 질문 2-2 한 초등 교사의 발언에 대한 교사들의 답변을 살펴보자. 가치판단을 포함한 용어나 진술은 주관적인 까닭에 다 다를 수 있고 이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상대주의적 논리로 이 문제를 인식하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평가를 포함하는 ‘민주화운동’은 가치를 포함하기에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알려주는 용어라는 인식이 대다수였다.


31)김명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부인(denial)의 정치학, 한국여성학33, 2017, p.264-265.




기계적 중립의 위험함도 지적해야 한다. 항일 의거의 경우도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라고 가르치는데 … 그런 테러라고도 가르치고 의거라고도 가르쳐야 하는가. … 진상규명이 끝난 이후에도 중립적인 교육, 중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2번 질문에 대한 B의 대답)


○ 초등 교사의 답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냐면. 폭동설은 역사부정과 관련되어 있고 거짓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균형감 있는 수업이 아니라 잘못된 사실 제시에 불과하다. 라고 이야기가 나오면서 기계적인 사실의 중립성이기 보다는 민주화운동이라고 바르게 명명 하고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폭동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것으로 이용이 되어야 한다. 김군이라는 영화에서 지만원에 대해 반박해가는 것을 5·18 수업에서 다를수 있듯이 폭동설은 민주화운동을 더 각인시키고 역사부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균형감을 넘어서서 더 심화된 인식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2번 질문에 대한 C의 대답)


○ 5·18의 배경이 무엇인지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5·18은 결국 신군부의 권력 장악에 저항해서 민중들이 힘을 모은 운동이었다고 정리해줄 수 있다. (2-2질문에 대한 E의 대답)


역사부정 관련 답변에서 역사교사들의 ‘교육적’ 전문성이 돋보이기도 했다. 역사교실에서 학생들이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논쟁하고 판단하며 인지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존중’받고 있다는 정서적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지점에서 역사부정은 학생들을 만나는 역사교사는 민감하고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언급하고 경계하되 학생들이 무시당했다고 느낄만한 상황 – 너 일베니 라는 식의 낙인찍는 발언-은 연출하지 않아야 한다. 인헌고 사태에서 보듯 조직화된 청년단체가 학교 밖 조직과 함께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이라면 교육적 가치 수호의 차원에서 더 단호할 필요가 있겠지만 단순한 궁금증이나 10대 청소년 특유의 튀고 싶어 시작한 발언에 대해서는 포용의 폭을 좁힐 이유가 없다.



○ 학생이 왜 사태나 폭동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먼저 물어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교사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주어야 한다

○ 학생의 역사문제 제기 자체는 칭찬을 하고, 좋은 질문이네. 날카로운 질문이네 칭찬해주고 감정적인 질문은 삼가면서 사태로 생각하는 학생의 질문도 청취를 할 것 같다.


그러나 교사-학생 간 관계를 고려하기보다 학생 발언의 내용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너라면 돈 벌러 그렇게 갈래(질문1에 대한 답변)’, ‘이미 다 추모하고 있잖아(질문3에 대한 답변)’, ‘비겁한 변명이야(질문4에 대한 답변)’라는 답변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권위를 빌려 학생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과서에 쓰여 있잖아’, ‘학자들이 그렇게 정했어.’ ‘시험에 그렇게 나온다’는 식의 대답이 그러하다. 권위자가 평가하고 해석한 내용을 받아들이라는 발언은 학생들의 문제제기 자체를 무안하게 만들 여지가 크다. 이런 장면에서 학생들은 입을 닫고 생각하기를 멈춘다.

5가지 질문은 나름 다른 층위와 논리를 가진다. 일본군 ‘위안부’와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부정은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가 된 바 있어 교사들의 대응 방식 또한 비교적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세월호 참사 관련한 질문은 예민한 이슈이긴 하지만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이란 측면을 강조하면서 세월호 기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큰 이견이 없었고 다만 천안함을 설명하는 방식은 교사마다 차이가 났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전쟁박물관의 서사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교사마다 생각의 차이가 꽤 컸다.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은 한국정부가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역사부정의 논리에 대한 반응은 꽤 달랐다. 질문에 제시한 바 베트콩과 민간인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논리, 전쟁에서 민간인의 대규모 희생이 불가피 했다는 반응이었다. 반면 임산부와 어린 아이 조차 민간인으로 구별할 수 없었든가 반문하는 경우부터 민간인 피해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학살과 등치시키려는 의도에 대한 의구심,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인 것은 전쟁범죄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용산 전쟁박물관에 관해 반전과 평화가 중요하지만 안보와 군사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은 무척 많았다. 힘에 기반한 평화여야 한다는 논리를 지지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4. 함께 풀기 - 역사부정에 맞서는 역사수업 모색


역사부정에 맞선다는 의미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진실과 거짓의 싸움에서 진실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기도, 역사부정주의자들에 의해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연대하겠다는 의사표현이기도, 앞서 서술한 바처럼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경계해나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맞선다’는 행위는 실천의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이 실천적 의지를 모으는 일은 실은 역사교사들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수업사례를 모으며,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능하다. 해당 장의 제목을 ‘함께 풀기(해결하기)’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부정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역사교육에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1) 즉각적인 방식


최근 한 극우 유튜버가 만든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이라는 영상이 조회수 64만을 넘으며 (2020.05.18.검색)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유튜브는 전형적인 5·18 역사부정의 논리를 가져와 강의 형식의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①톨게이트 습격, ②자동차 탈취, ③무기고 탈취, ④교도소 습격이라는 4가지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한다. 이 4가지 행위의 주체는 광주시민(혹은 시민군)으로 ‘멀쩡한’ 시민이 그럴 리가 없다는 전제로 갖은 의혹을 제기한다. 문제는 이 유튜브가 제기하는 역사적 사실이 교과서의 전형적인 5·18 서사에서 비껴난 사실이라는 점이다. 낯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5·18의 진실을 묻는 학생이 존재한다면 역사교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런데 얼마 후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우 유튜브와 똑같은 형식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5·18이 왜 민주화운동인지를 알리는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가 되었다. 이 초등교사는 제기된 역사적 사실을 ‘맥락적’으로 설명하면서 역사부정에 대처해나갔다.

부정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는 ‘사이비 역사’로 그 존재의 근거가 허약하다32). 그들은 자료와 증언의 왜곡, 의도적으로 맥락을 잃은 자의적 해석을 통해 본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역사상만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학자들 중에는 부정주의자들의 ‘소란’을 지켜만 볼뿐 대응의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도 종종 있다. 대응하다보면 그들이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부정주의자들은 학문적 영역이 아니라 대중과 더 가까운 거리에서 의혹을 제기한다. 부정의자들이 관심을 갖는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역사부정의 대응논리를 익히고 역사교실에서 순발력 있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다만 이 즉각적인 방식을 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드릴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굴복당했다’는 감정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단기적인 처방일 수 있다. 또, 역사부정이 현안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정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설파하는 새로운 플랫폼에 주목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에서 역사부정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32)이동기는 역사부정의 대응전략으로 다음의 3가지를 제시하였다. ① 사이비 학문성 분쇄 ② 비판분석 교육 ③ 기억 문화 갱신 (2020.07.14. 식민지역사박물관 ‘역사정의와 유럽의 과거청산’ 강의록 중에서)



2) 보다 근본적인 대응


역사부정은 공공기억의 형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세계적 현상이다.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지만, 학문적 영역에서 혹은 사법적 영역이나 시민사회의 운동적 영역에서 전사회적 차원의 대응법을 고민하게 된다. 역사교육도 일익을 담당한다. 역사교실에서 역사부정을 만났을 때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핵심적 사실과 논리로 논파하는 방식이 ‘즉각적 방식’이었다면 보다 ‘근본적 방식’은 부정주의자들의 행위의 본질을 자세히 살피고 그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전적으로 역사부정의 주체는 국가권력이었다. 과거 국가권력은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억압한 물리적 가해 주체였다. 분단 상황에서의 그 수많은 정치폭력을 생각해보라! 동시에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억압한 주체도 국가권력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상국가의 모습을 찾으면서 과거 국가폭력의 과오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갔지만, 보수 정권 집권 이후에는 다시 후퇴했다. 이후 국가는 부인의 주체로 방관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국가권력은 역사교과서 서술 속에서 특정한 사실을 선택/배제하는 방식으로, 또 역사적 해석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역사부정을 실행해 갔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교학사 교과서 사태가 그 본질을 드러낸다. 가령,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하나의 역사 해석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정부가 지지하는 뉴라이트식 역사인식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최대한 수록하고 아닌 사실은 배제했다. 검인정제 하에서 교과서의 수정권고와 수정명령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역사부정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국가권력이 행해온 역사 왜곡과 오용, 남용의 과정을 밝히는 것이 근본적인 방식의 접근법이다.

또 다른 방안은 왜 역사부정이 일어나는지 그 작동 기제를 파악하고 관련 논의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기억 정치의 과정은 사회적 갈등과 논쟁을 낳고 때로는 역사부정주의자의 출현과 같은 반동적 국면을 겪으면서 공공기억을 형성/변화시켜 나간다. 민주화 과정을 통한 억압된 기억의 사회적 출현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기억정치, 기억투쟁, 역사부정과 같이 기억의 문제를 둘러싼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역사교실 속에서 재현하는 방법을 제안하려 한다. 이는 공론장을 통해 기억문화가 창출되는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례4 – 시민, 군사독재와 싸워 승리하다

○ 인물의 행위, 인과관계에 대한 논쟁 : 민주화운동 과정의 가해자 범위, 피해자의 선택, 수동적 방관자 문제
○ 역사부정에 대한 논쟁 :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부정/왜곡의 문제, 역사부정법 제정 문제에 대한 찬반
○ 역사적 이해와 관련된 기념 논쟁 : 국가 주도 의례화 이후 민주화운동 기억 방식, 지역에 관련된 기념관, 기념물 의미, 민주화운동 시기 수많은 역사들에 대한 추모 방법,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 역사적 사건을 이용하여 현재 갈등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 토론 : 무차별 폭력과 인신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다수의 힘을 모으기 위해 소외되는 소수의 요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당시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현재의 시각으로 되짚어 보는 문제 : 5·18 민주화운동에서 성폭력 문제는 왜 지금에 와서야 이야기 되었나,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는 있는데 왜 민주화운동 유공자는 정하지 않았나


역사교사인 김영주는 5·18을 교과서의 서사 속에 가두지 않고 이처럼 다양한 기억의 문제로 5·18에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33). 가령. 5·18을 부정하는 이들을 처벌하자는 ‘역사부정죄’ 신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교실 속으로 가져온다면 어떨까? 해당 법률안을 제안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찬반의 논리를 살피다보면 필연적으로 5·18 역사부정의 문제를 탐구한다. 법률로 막아야 하는 일인지, 막을 수 있는지, 다른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없는지, 다른 국가에서는 왜 실행하는지(혹은 실행하지 않는지) 다양한 질문과 학생이 만나게 된다.

5·18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지역사의 맥락에서 살피고 공공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광주 지역의 다양한 역사기념물이나 기념관의 전시 서사를 읽어내는 방식의 수업이라던가, 도청복원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의 추이를 살피고 대안을 모색해가는 학생 간 토론도 가능하다. 보수정권 아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하면서 생겨났던 논란도 하나의 소재가 된다. 공교육 속에서 이 지역 학생들이 경험한 5·18 기념 방식을 나누고 새로운 기념 방안을 제안하는 수업도 가능하다.


33)방지원 외, 『교육자치시대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과교육과정 구성방안 연구 – 역사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 2019. p.218.




역사부정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가능하다. 가령, 영화 <김군>을 보고 역사부정이 무엇인지 본질을 탐구하고 논쟁하는 방식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이들을 ‘광수’라 지칭하며 북한과 5・18의 연관성을 제기하는 지만원의 주장을 바탕으로 사진 속 김군을 찾아나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의 출발은 민주화운동으로서 5・18을 부정하려는 세력의 질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는 ‘그’ 질문을 마주해야 하는 5・18 참가자들의 참담함과 이들의 기억,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과정에 주목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차이를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지만, 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췄다34). 앞서 언급한 역사부정을 통해 희생자가 겪는 ‘고통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역사교사 문순창은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을 통해 벌어진 숙명여대 학생회 내의 논란을 중심으로 논쟁적 수업을 제안하였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동문인 김순례 의원이 부끄럽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 성명서 발표에 대한 단과대의 입장이 다 다르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교사는 이 수업에서 단과대 대표들의 입장과 함께 성명서 철회 결정 이후 유감을 표명하는 총학생회장의 페북글을 학생들에게 제시하였다. 수업과정에서 학생들은 ‘민주적 리더’라는 주제에 더 관심을 가졌으나, 김순례 의원의 발언에 반박하는 글쓰기와 함께 5·18 역사부정을 바라보는 다양한 대학생의 시선을 드러내고, 그 한계를 논의하게 하면서 역사부정의 문제에 다가갔다.

역사교사 김민정은 베트남 시민평화법정을 교실로 옮겨왔다35).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한 검사와 변호사간의 날선 공방을 학생들이 재현하는 과정에서 왜 민간인 학살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지, 생존자들의 아픔에 연대하고 기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시민평화법정을 이해해갔다. 해당 수업사례에서 놀라운 점은 이 문제를 대하는 교사의 태도였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지를 직접 답사하고, 그곳에서 만난 참전군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교내 시민법정의 또 다른 소재로 삼았으며, 또 다른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새로운 주제를 탐색해 갔다.

이 같은 수업제안과 수업사례들은 역사부정 문제를 다루는 매우 유연한 접근 방식이다. 물론 부담이 없지 않다. 기억을 둘러싼 민감하고 논쟁적 주제는 언제라도 과열될 수 있고, 날선 공격적 견해와 만날 수 있으며, 자칫 역사부정론자의 논리가 교실 속에서 재현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은 학생들의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고, 역사부정을 비롯한 기억의 문제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중요한 의제로 인식될 수 있도록 자극한다. 논쟁적 주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훈련과36) 함께 새로운 논제를 개발하는 것도 역사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근본적 대응방안으로 학생들이 역사가 구성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 하는 것이다.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사료에 접근했는지 그래서 어떤 서사를 만들어갔는지 비난 받아왔다. 역사교실에서 학생들이 역사가의 수준만큼은 아니어도 자료의 진위, 의도, 평가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 시작은 자료(사료)를 분석이다. 이때 자료는 문헌자료뿐 아니라 그림, 사진, 증언, 통계, 영상 등도 자료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헌 자료에 접근하는 매우 촘촘한 방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37)


34)강화정, 「교실에서 만난 역사부정, 어떻게 해결할까」, 『역사의식조사, 역사교육의 미래를 묻다』, 휴머니스트, 2020, pp.119-120.

35)김민정, 「베트남 전쟁을 성찰하고 수업으로 연대하기」, 『역사교육』124. 전국역사교사모임, 2019.

36)유럽평의회, 『논쟁문제 가르치기(teaching controversial issues)』, 서울시교육청, 2020.

37)배지혜, 「독일의 5, 6 학년 역사교육 /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중심으로」�교육과정평가연구�21-2, 2018.



캡처.JPG 표 6 - 문헌 자료 탐구하기


역사수업에서의 자료 분석은 개인 학습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 다시 모둠별 학습으로 학습과정을 공유할 수 있을 때 더 효과를 보인다. 또 개별 자료 뿐 아니라 자료 간 비교, 비교를 위한 적절한 발문 등이 학습에서 제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자료 분석의 수업이어도 학생들 답변은 꽤 차이가 나는데 모둠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38)

자료 분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료에 관한 ‘논쟁’ 과정을 거쳐야만 역사서사의 형성과정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역사교육에서 이 같은 경험은 무척 부족해 보인다. 자료의 분석을 마치 전근대사 수업에서 금석문이나 고전의 한 구절을 읽어나가던 <사료 학습>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듯하다. 사료를 해석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확산적 사고가 자극되기보다는 매우 한정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가들의 논쟁에 동참하는 과정이 의미 있어 보인다. 이때 역사가들의 논쟁은 제기된 자료에 대한 평가와 이해에 바탕한다. 역사가의 논쟁에 동참하는 학생들은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논쟁이 필수적이고 동시에 자신이 확인한 자료가 어떤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는 역사부정주의자들이 자의적인 방식으로 자료에 접근하고 탈맥락화된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면서 학문적 논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과 대조적인 방식이다. 아래 사례는 유럽평의회에서 출간된 <다원적 관점으로 역사 수업하기>에 제시된 하나의 수업 사례이다. 39)


38) 윤국선‧강화정, 「자료 탐구형 역사수업」, 『역사교사의 날 자료집』, 2018.

39) Robert Stradling, 『Multiperspectivity in history teaching : a guide for teachers』, Council of Europe, 2003, p.34-35.



자료 : 호스바흐 메모 (The Hossbach Memorandum) 40)


(자료 일부) 독일 정책의 목적은 인종집단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확대하는 것이다. … 우리의 유일한 해결법은 더 큰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 공업용 공간 확보의 문제.. 어디에서 가장 낮은 배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독일의 문제는 무력에 의해서만 해결 될 수 있으며 …


역사가들 사이의 논쟁

(A)호스바흐 메모는 뉘른베르트 재판에서 연합군 검사에 의해 2차 세계대전에 피고가 관여했다는 증거로 발표되었다. (B)역사가들 사이의 논쟁은 이 메모가 1937년 히틀러의 생각에 대한 분명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특히 13년전 <나의 투쟁>에서 약술한 광범위한 목표를 입증할 수 있는지 …


일부 역사가는 …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말한 확장주의 목표와 호스바흐 메모에 요약된 외교 정책 간에 일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역사가들은 … 히틀러가 미리 결정된 프로그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기다렸다가 악용하는 기회주의자임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노먼 데이비스는, 30년 후에 서술하길 …


해당 사례는 호스바흐가 작성한 메모(자료)의 원문을 안내하고, 자료를 분석한 후에, 자료가 어떤 맥락에서 이용되었는지(A), 역사가들 간의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B)를 서술한다. 다양한 역사가들의 견해를 소개한 후에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이 학습활동을 제안한다. 학생들이 사료를 읽고 역사가의 다양한 입장을 비교한 이후에 1차 2차 사료를 활용한 후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방식,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개 토론에서 하나의 입장을 제시하면서 동료 학생에게 역사가와 반대 입장의 하나의 관점을 발표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최근 논쟁적 역사수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나 이해 차이를 확인하고 토론하는 수업은 많아졌지만,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는 기반으로서 사료에 대한 숙고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사료를 평가한 역사가의 해석과 평가를 텍스트로 하여, 해당 텍스트 속에서 역사적 사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주를 주로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 방식의 수업 접근을 통해 역사부정의 문제에 다가가는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 봐야 한다.


40) 호스바흐 메모의 전문 수록 https://avalon.law.yale.edu/imt/hossbach.asp




5. 나오며


‘역사부정’이라는 낯선 현상을 교실에서 마주했을 때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 무척 당황스럽고 난감했던 기억이 났다. ‘역사부정’이 무엇인지 살피고, 어떻게 분석할지를 공부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교사의 권위로, 지식의 양으로 학생을 찍어 누르며 좌절을 안겨준 적도 있다. 이후 그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역사교사가 교실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한 덕목 중에 ‘학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임을 망각했다는 점에서 반성이 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본고의 가장 큰 한계는 4장에 있다. 역사교실에서 역사부정을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피해자의 ‘고통의 현재성’에 주목하고 끔찍한 과거가 재현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서술 했지만, 막상 이런 문제의식을 역사수업에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다. 4장에 제시된 역사수업 방안은 접근법으로는 유효하나 기술적으로 부족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많다. 역사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일이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부인이 정치언어가 될 때 ‘현재화된 역사’를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가해지는지 성찰할 수 있는 수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를 치유하기 위한 역사수업의 방안도 모색해가야 한다. 4장의 제목처럼, ‘함께 역사부정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역사교육자(초등, 중고등,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의 풍부한 경험 사례가 더 많이 생겨나고 집적되고 공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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