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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년 1월-2009년 1월)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2009년 1월-2017년 1월)를 비교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야말로 북한위협론을 꽃놀이패로 적극 활용했었다. 대북 협상을 중단하고 북한 위협을 이유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밀어붙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랬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 여파로 네오콘이 줄줄이 물러나자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섰다. 이는 6자회담과 선순환을 형성하면서 짧게나마 한반도 정세의 호전을 가져왔다. 부시는 퇴임 직전에 이렇게 자평했다.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반면 오바마는 2008년 대선 유세 때 부시의 대북정책에 맹공을 퍼부으면서 북한과의 직접대화, 특히 북미정상회담 의사까지 피력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전략적 인내’로 후퇴했다. 그 결과 북미 직접대화도 별로 없었고 6자회담은 그의 재임 기간에 한 번도 열리지 않았었다. 이 사이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오바마는 집권 첫해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의 임기 동안 사실상 핵보유국이 하나 늘어나는 결과를 목도해야만 했다. 오바마는 후임자인 트럼프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백악관을 떠났다. “미국의 최대 도전은 북핵 문제가 될 겁니다.”
이처럼 ‘가능성의 영역’인 정치외교에선 ‘정해진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든 시대의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시 2021년 상반기까지 북미대화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이 대북정책 재검토와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책팀을 구성하는 데에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예를 들어보자. 2009년 1월 20일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출범 직후엔 대화파인 스티븐 보즈워스를 대북정책 특별정책으로 임명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월 하순 동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즈워스를 대북 특사로 파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난색 표명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그리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유엔 안보리 회부 등이 맞물리면서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공백기가 2021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하나의 가능성’이지 ‘정해진 미래’는 아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때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 안팎에선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북한의 핵 능력이 미국 본토에 위협을 가할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택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주된 근거이다. 또한 미국 조야에서도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무장관으로 기용된 토니 블링컨은 2019년 1월에 “과거 행정부들이 추구했던 정책은 효과가 없었다”며 새로운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전략적 인내’를 주문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인 대북 협상을 희망하고 있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공식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이를 답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바이든이 대선 후보 때 밝힌 대북정책 방향이 전략적 인내와 흡사하다. 그의 대북정책 방향은 2020년 3월 <뉴욕타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외교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다만 “트럼프처럼 보여주기식 헛된 만남이 아니라 비핵화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김정은을 만날 의사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0월 22일 마지막 TV 토론에서도 “김정은이 북한의 핵 능력을 감축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정상회담은 임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정상회담을 통해 성과를 만들려고 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강력한 제재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이 시도했던 것처럼,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동결할 경우 상응조치로 점진적인 제재 완화를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제재 완화에 앞서 북한이 중대한 핵폐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2020년 7월 미국 외교협회(CFR)에 보낸 입장문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
** https://www.cfr.org/article/joe-biden
이러한 답변 내용은 전략적 인내와 친화성을 갖는다.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었던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제재를 유지·강화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믿거나 믿는 척 하면서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말았다. 그 결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그런데 바이든이 지금까지 밝혀온 대북정책의 방향은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은 김정은을 “잔인한 독재자”, “고립된 부랑아”, “폭력배” 등으로 불러왔는데, 이러한 북한에 대한 ‘악마화’ 화법은 전략적 인내의 토대 가운데 하나였다.
바이든과 그의 참모진이 아시아에서 현상 유지를 선호해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부통령으로 있었고 그의 참모진이 외교안보 고위 관리를 맡고 있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전략적 인내’로 압축된다. 그런데 전략적 인내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두 정책은 2010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북한 위협을 구실로 삼아 한미·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포위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전략적 인내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미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진영이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초점도 여기에 맞춰졌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우선시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 집권시 미국은 적극적인 대북 협상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동맹 강화 및 한미일 군사협력 복원에 중점을 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핵 능력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더욱 높아졌기에 이러한 전망은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기회로 인식한 기류도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준 장면이 2009년 7월 한미일 국방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마이클 쉬퍼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춘 핵보유국이 되려고” 한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협력이란 MD를 기반으로 삼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였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에드워드 라이스 주일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은 “3자 MD 협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good chance)”라고까지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국무장관에서 퇴임한 직후인 2013년 6월 4일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비공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북한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는 굳이 나쁘게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클린턴은 트럼프와 맞붙은 2016년 대선에서도 “나는 국무장관 시절 우리의 동맹인 일본, 한국과 함께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MD를 구축했다”며, “이것이 동맹의 힘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핵심 참모였던 제이크 설리번이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계의 안보 분야 실력자인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주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북미간에 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 8월 10일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이 금지선을 넘지 않는 한” 북한의 핵무장을 감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천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소련을 감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보다 핵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북한의 핵보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스가 이런 주장을 한 데에는 북핵 감내가 전쟁보다는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었다. 동시에 북핵 대처 방안으로 대북 억제력 강화, 미국의 호전적인 언사 자제, 동맹국들과 MD 능력 및 대북 제재 강화, 중국과의 협의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 제안은 전략적 인내 시기의 대북정책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과의 협의 과정 및 미중 관계의 변동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반응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올 때마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전략적 도발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하나의 공식처럼 거론되어왔다. 그리고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과연 그럴까?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 행정부는 클린턴-부시-오바마-트럼프를 거쳐 바이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클린턴 행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 선언은 미국의 신임 행정부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하지만 북한이 다짜고짜 이런 선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이 NPT 탈퇴 결정에는 한미동맹의 도발적 행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1월 한미연합군사훈련 ‘팀 스피릿’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 한미 국방장관들이 이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하고 말았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선 조지 W. 부시가 앨 고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도발을 한 쪽은 북한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였다. 부시 행정부는 취임 직후 북미 미사일 협상을 중단하고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삼아 MD 구축을 선언했다. 또한 2001년 하반기에 작성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선 북한을 핵선제 공격 대상에 올려놓았고 2002년에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에는 어땠을까?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경고와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4월 5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위성의 탈을 쓴 탄도미사일’로 간주하고 유엔 안보리로 가져갔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북미 대화를 추진했지만 북한은 로켓 발사로 응수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전 상황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 북미간의 신뢰 구축 차원에서 2-3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강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군사 훈련을 강행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한미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를 ‘북한급변사태’ 범주에 포함시키고선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무력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한미 연합훈련에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상황은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지도자가 뇌관련 질환으로 쓰려져 와병 상태에 있는데, 한미가 김정일이 사망하면 무력통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발언과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북한은 이 시기에 핵무장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불과 50일 만에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종언”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2021년에 2009년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및 무너진 남북관계 회복의 풍향계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삼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2020년에 한미군사훈련이 실시되면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2009년과 흡사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ICBM 시험발사부터 단거리 발사체 시험 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사적 대응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식 전략적 인내’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는 미국만의 선택지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 차례에 걸쳐 미국 대통령을 만났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약속한 것들 가운데 지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며 “장기전”을 예고한 상황이다. “자력갱생”으로 인내하면서 한미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기다리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북한의 눈에는 한미연합훈련 실시가 적대시 정책의 철회가 아니라 강화로 비춰지게 된다. 한국과 미국이 대화하자고 해도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21년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인 변수는 한미 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될 것이다. 특히 연합훈련을 강행할 경우 교착 상태는 장기화되고 그 사이에 한국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2022년 3월에 실시되는 한국의 대선 경쟁은 2021년 여름부터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미연합훈련 취소 결정을 내리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대통령 당선 직후 바이든이 외교정책 정신으로 가장 강조한 말은 “신선한 사고(fresh thinking)”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적어도 그가 대선 유세 때 밝힌 한반도 정책 방향에 있어서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여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한 “신선한 사고”는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영역이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이 핵 군비통제를 강력히 옹호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와 관련해 불안한 요소와 유망한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부통령 재직시였던 2010년 2월에 “핵무기 확산은 미국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핵 확산을 저지하고 점진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 투하 75년째였던 2020년 8월 6일에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군비통제와 비확산에 관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글로벌 리더십의 중추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바이든의 핵확산에 대한 위협 인식과 비확산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북핵 문제 대처에 있어서 ‘불안한 요소’를 품고 있다. 북한의 핵포기를 강제하기 위해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안한 요소라는 점은 자명하다. 제재 대상인 북한은 제재에 굴복하는 것을 나라의 존엄을 파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재는 실패한 정책의 되풀이가 될 수밖에 없다. 대북 제제가 유지되거나 강화되면 남북관계의 회복도 어려워진다. 하여 제재 위주의 접근은 결코 “신선한 사고”가 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로 하여금 이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반면 바이든의 핵무기에 관한 철학과 정책 방향에서 ‘유망한 요소’도 찾을 수 있다. 타자의 핵무기는 악마화하고 미국의 핵무기는 신성시하는 일방주의적 핵 패권주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통령 퇴임 직전인 2017년 1월에 “미국의 비핵 능력과 오늘날 위협의 성격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어렵다”며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자 “위험하고도 무모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이든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바이든의 미국 핵무기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인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있어서 ‘유망한 요소’를 품고 있다. 북한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위협 감소’의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포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 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의 균형적인 핵무기에 관한 철학은 “신선한 사고”가 될 수 있다. 이를 가시화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지만 말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일부 현실적인 사고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블링컨은 “단기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희박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은 우선 군비통제에 착수하고 군축 프로세스는 시간을 가지고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를 단기적인 목표로 추구했던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 것이다. 또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방식”과 일부 유사한 측면도 품고 있다. 그러나 블링컨은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충분한 압박이 요구된다”고도 강조했다.
바이든이 외교정책 정신으로 강조한 “신선한 사고”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어떻게 발현될지는 알 수 없다. 정치적 수사로 끝날 수도 있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미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리고 최선의 전망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신선한 사고”를 발휘해야 하는 주체는 바이든 행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들과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영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제부터 소개할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토론해볼 가치가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한반도 비핵지대를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로 삼는 것을 ‘출발점’으로, 비핵지대 조약을 ‘도착지’로 삼으면서 이 사이에 3단계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1단계는 북한의 중대한 핵 동결 조치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이다. 중대한 핵 동결 조치로는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의 실질적인 폐기와 핵물질 저장 시설 및 핵무기 제조 시설 봉인을 핵심으로 한다.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는 대북 경제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2단계는 북한의 모든 핵물질 처리와 부분적인 핵무기 폐기(가령 핵무기 신고량의 50%)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 완화 및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의 상응조치이다. 3단계는 북한의 잔여 핵무기의 완전 폐기와 대북 제재와 완전 해제 및 북미수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