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10
>>장용준(전 함평고 교사)
☞ 왜 열 번째 인터뷰이로 ‘고진아(경기 성사고)’를 선정했는가?
고진아 샘이 경기도로 전출을 가기 전에 고 샘과는 전남에서 함께 활동하며 정말 재미지게 잘 살았다. 그래서 고 샘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기에 내 인터뷰 목록에 진아 샘은 없었다. 그런데 <역사교육> 편집부에서 고 샘 인터뷰를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야기인즉슨, 그동안 고 샘이 기획해서 진행해온 전국모임 연수들이 참신해서 고 샘의 기획력을 회원 전체와 공유하고 싶단다. 대체나 생각해 보니, 인터뷰를 진행하면 여러 이야기가 고 샘으로 부터 나올 것 같았다. 바로 전화했더니 몇 가지 조건을 달고 응해 주었다. 그 조건들이야 소소한 것이어서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기에 그러마고 약속하고 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인터뷰 중간 중간 고 샘이 너무 잘 살아오고 있는 것 같아 선배교사로서 뿌듯하기도 했고 고민의 결이 짠하기도 해서 가슴 한 편이 아리기기도 했다. 고 샘이 진짜 인생을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터뷰였다. 이런 선생을 좀 안다는 이유로 인터뷰 목록에서 제외한 내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 초년 시절부터 지켜봐 왔기에 늘 어리게만 생각되는 고 샘이 부쩍 성장하여 역사교육계의 큰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눈으로 귀로 확인한 즐거운 만남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뻐요. 요즘 근황 질문을 받으면 매번 ‘바쁘게 지낸다.’라고 대답해요. 그 정도로 정말이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상황으로 온라인수업을 많이 하게 되었잖아요. 다른 선생님들도 느끼겠지만 온라인 수업 준비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게다가 학교 혁신부 업무로 바쁜데다 올해 우리 모임의 다양한 연수와 특강을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한해를 보낸 거 같아요.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많은 일들을 벌리며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작년 사할린 다녀온 게 언제인지 싶게 시간이 훌쩍 가버렸어요. 오호츠크해에서 물놀이 하던 게 너무 아득하네요.
역시 장콩 샘이십니다. 요즘 건강도 그렇고 두루두루 힘이 듭니다. 3년 동안 우리 모임 연수부장을 맡아서 여러 연수와 특강을 열심히 진행했고 학교생활과 수업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새로운 배움에 대한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고 해왔고요. 그러다보니 심신이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음이 제 몸에서 계속 들려옵니다. 저와 자주 만나는 선생님들은 제가 넋두리를 해도 ‘정말 지친 것 맞아?’라고 놀리지만요. 맡은 바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2020년을 떠나보내는 게 요즘 제 목표다 싶습니다.
제가 장콩 샘께 신선감이 부족하군요(웃음). 참신한 연수가 많았다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참신한 연수의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있을까요? 음... 제가 연수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우리 모임이 화두를 던지고 선도하는 연수, 특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과 내용자체에 대한 연수도 기획했지만 국가폭력, 기억문화, 평화, 젠더 문제와 관련된 연수를 기획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습니다.
또한 저는 코로나 시대가 사회, 문화 변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많이 가져왔지만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시대를 활짝 열어 제꼈다는 것, 그래서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수도권 중심의 연수와 학술적·실천적 논의들이 이제는 여러 지역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졌죠. 그래서 이제 지역에서도 지역 선생님들이 원하는 강좌와 연수를 그전보다 충분히 배치할 수 있어요.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해보시면 어떨까요?
전국모임 연수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별로 특별나지 않아요. 제가 신규 때부터 4년 동안 전남모임에서 함께한 후 경기도로 전입해왔잖아요. 광명을 거쳐 2016년부터는 고양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고양파주역사교사모임에 함께 하고 있고요. 고파 모임을 함께 한 백옥진 선생님께서 2018년에 전국모임 회장을 결심하셨을 때, 때마침 전국모임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역사교사로서의 정체성에 가장 영향을 끼친 우리 모임에 애정이 큰 만큼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더라고요. 전국 모임에 이제는 제가 보탬이 되고 싶다며 집행부에 자원했어요. 집행부 내에서 역할 분담을 할 때 제가 연수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교조 광명지회에서 교사아카데미를 여러 해 기획 본 경험도 있고, 깊이는 얕지만 새로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해서 연수부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제 적성에 딱 맞을 지를요(웃음).
새로운 연수, 특강을 조직하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성취감도 있었어요. 선생님들의 반응까지 좋으면 더 신나고요. 그렇게 벌써 3년이나 연수부 일을 했네요. 전남에 있을 때는 새내기교사였으니 장콩 샘이 보기에는 어느새 성장해서 전국모임 연수부장을 하나 신기하게 생각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웃음).
연수 기획과 운영이요? 음...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단히 말씀 드리면요, ‘연수’와 ‘특강’은 기획 과정이 조금 차이가 있어요.
연수의 경우는 저의 관심사와 선생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주제를 잡습니다. 1년에 두 번의 직무연수가 있는데요, 한국사 영역과 세계사 영역을 번갈아 배치하는 편이에요. 전체 주제를 잡고 나서 세부 강의 주제와 강사 섭외 계획을 세우는데 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해요. 예를 들면 ‘동아시아와 국가 폭력’을 준비할 때는 한신대 김민환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역사부정을 넘어서는 역사교육의 가능성’ 연수는 우리 모임 전 회장님이신 김육훈 선생님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여러 분들의 도움 속에 기획안의 윤곽이 드러나면 강의 일정을 대략 만들고 전국모임 집행부 회의에 안건을 올려서 통과되면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됩니다. 아무래도 가장 핵심은 강사 섭외와 계획서 작성이겠죠? 모시고 싶은 분들에게 대부분 전화를 걸어 섭외하는데요, 간혹 모시고 싶은 강사님이 참석하는 회의나 모임에 일부러 직접 가서 현장 섭외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이죠.
계획이 완성되면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하는 계획서를 작성합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아 이 단계에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재밌는 일은 아니지요. 연수 당일에는 집행부 전체가 결합해서 함께 운영합니다. 저는 강사님 일정을 챙기고 전체적으로 운영하면서 사회도 봅니다.
특강의 경우는 좀 다른데요.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가치와 내용을 갖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바로 특강을 제안 드려요. 틈틈이 기회를 노리고 항상 연수와 특강 기획 쪽으로 레이더를 세우고 있는 편입니다. 책으로, 혹은 다른 기회로 만나는 분들 중에 우리 모임 선생님들이 좋아하시겠다, 들려드리고 싶다는 느낌이 팍 드는 순간이 옵니다. 그냥 촉이 좀 와요(웃음).
최근에 했던 구정은 기자와 함께 한 ‘현대 세계 분쟁 특강’의 경우가 제 레이다 망에 걸려 기획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5월 어느 날 제가 개인적으로 신청한 미디어 관련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때 강사였던 구 기자님의 평화 감수성과 현대 세계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통찰력에 감탄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자님께 역사교사 대상으로 분쟁과 평화 특강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구 기자님도 바로 오케이 하셔서 9월에 세 강짜리 유튜브 라이브 특강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직무연수에서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특강으로 만드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러시아사 직무연수를 했는데 선생님들이 열렬히 호응하시며 더 깊이 듣고 싶다고 하셔서 6시간짜리 특강을 추가로 준비했습니다. 최근에 진행한 박래군 소장님의 인권 특강도 비교적 짧은 시간 준비해서 유뷰트 라이브로 송출했어요. 연수보다 특강이 좀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엄청난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임에서 하는 연수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수 기획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고, 논의를 선도하는 주제와 강사진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깊이는 얕지만 나름 다양하게 책을 읽고 문제의식을 키워나가고 있는 편인데, 특히 젠더 문제, 기억문화, 평화, 인권 등등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다양하게 보는 편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가 기획하는 연수 주제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연수 기획자는 눈과 귀가 열려있어야 하고 공부도 많이, 책도 많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년에 ‘젠더사로 보는 일제 시대’에 대한 연수를 기획했었는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관련한 역사 연구를 소개하는 야심찬 기획이었죠. 폭발적 인기가 있었던 다른 연수에 비해 참가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우리 모임이 이런 분야를 다루는 연수나 프로젝트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연수 이후 모임 내에 ‘여성사연구모임’이 만들어지는데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싶어 기분도 좋았고요. 아무튼 핵심은 연수 기획자가 많이 보고 공부하면, 그리고 선생님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면 참신한 연수가 기획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놀랍게도 이제껏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연수, 특강을 섭외 제안을 드렸을 때 거절하는 강사는 거의(단언컨대 1% 이하) 없었답니다. 전문 연구자와 교사 모두, 전국의 역사교사에게 강의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시고 듣고 싶은 강의, 연수 마구마구 기획하셨으면 합니다.
올해 하반기 직무연수 강사진(이동기, 강성현, 최호근, 김동춘, 김육훈)을 모임 선생님들께서 ‘어벤저스’라고 하시면서 섭외력을 놀라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섭외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습니다. 이분들 대부분이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와달라고 하면 무조건 간다.’고 단박에 강의를 수락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지금 당장 섭외 전화를 합시다!(웃음)
그런데 강사를 어떻게 섭외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어서 난감한 적도 분명 있었습니다. 연수는 아니었지만 최근 서울대 동북아센터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심포지움을 공동주최하면서 일정을 만들 때 섭외하고 싶었던 발표자 중에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있었습니다. 위안부 소녀상 훼손 문제를 다룬 ‘그알’이 참 잘 만들어져서 그 이야기를 발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 해당 편을 제작한 PD를 섭외하고 싶었는데 어디로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무작정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잘 안되고요. 초인적인 힘으로 연락처를 찾아 헤맸습니다. 결국 연결이 되었지만 다른 프로젝트 중이시라 발표가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섭외하기 가장 어려웠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이처럼 연수를 기획할 때 어떤 분을 섭외해야 할지, 어디다 연락해야 할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수 기획 시 참고할 수 있는 자료와 강사풀이 구축될 필요가 있어요. 더불어 온라인 연수 환경을 구축하는 매뉴얼도 정비되면 여러 지역 선생님들께 실제적인 도움이 되겠지요?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닌데요, 자료와 강사 풀, 매뉴얼 등이 구축되기 전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지역 모임에서는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제가 만능박사는 아니기에 큰 기대 없이 전화 주시면 도움 드리겠습니다. 아는 한 최선을 다해 힘이 되어볼게요.
올해는 모든 연수와 특강을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대면 연수에 비해서는 확실히 비대면 연수가 기획과 진행 측면에서는 번거롭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올해 연수들도 애초에는 대면 연수를 염두에 두고 기획됐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준비했던 여러 연수가 좌절되거나 온라인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연하여 의식하지 못했던 대면 연수의 소중함이었습니다. 현장 연수의 소중함을 그것을 하지 못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죠.
비대면 연수 환경 자체가 저에게 낯설기도 했지만 진행상의 어려움도 대면연수보다 훨씬 컸습니다. 연수 일정 자체에도 신경 써야 하고 강의 환경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해서 작년 보다 올해 연수가 기획 측면에서는 더 힘들었습니다. 상반기 직무연수를 주말 3일 동안 ZOOM으로 운영하고 나서는 몸살에 걸려 18년 교직 인생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몸져누웠으니까요(웃음).
하반기에는 새롭게 유튜브 라이브도 해보았는데, 강의 진행 자체뿐만 아니라 생소한 장비와 환경 때문에 진행의 어려움이 ZOOM보다 더 크더라고요.
온라인 연수 장점은 즉각적으로 드러나요. 강사나 참가자의 공간 제약이 확실히 없습니다. 예를 들면 올해 초보교사연수가 열리지 못한 대신 ‘수업비법 나눔 페스티벌’을 했는데 전남 의 박래훈 선생님, 대구의 차경호 선생님은 집과 학교 교실에서 ZOOM 강의를 했고 가거도 분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 일본 교토와 베트남 호찌민에 계시는 선생님은 집에서 실시간으로 연수를 들었습니다. 서울 중심의 연수를 극복하기 위해 주말에 연수를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그동안 했지만 이번만큼 그 공간이 확장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국을 넘어서서 세계 각 지역과 네트워크가 연결된 글로벌 스케일의 연수였죠(웃음). 연수의 취지와 의미를 생각한다면 연수 참가의 물리적, 시간 장벽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도 있어요. 무엇보다 온라인은 오랜 시간 집중, 몰입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공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배운다는 측면이 약해지고 홀로 자기만의 공간 속에 고립되어 배운다는 느낌이 강해지면서 공허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어찌되었건 비대면 연수의 장점도 있으니, 아마 이후에도 계속 비대면 연수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인력풀은 대단한 게 아니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시면 아는 한에서 도울게요. 역사교육과 관련한 연수의 주제는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제가 다양한 인력풀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동아시아사 관련, 평화와 젠더사 관련 인력풀은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불발되기는 했는데요, 애초 올해 하반기에 하려고 했던 연수 주제는 ‘역사부정현상’이 아니라 ‘실크로드’였어요. 관련 강의 주제를 짜고 강사 섭외를 하려는데 좀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실크로드’관련으로 저명한 교수님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도 연락해보고 중앙아시아 학회에도 연락을 시도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실 인력풀 구축은 중요하지만 모든 영역과 주제를 망라하기는 쉽지 않아요. 연수 기획자가 조금 발품을 더 팔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필요할 듯싶어요. 여담이지만, 역사부정 현상이 심화되고 이것과 관련된 역사교육의 모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연수 주제를 실크로드에서 역사부정현상으로 바꾸었는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실크로드, 어떻게 가르칠까’를 주제로 연수가 생기면 좋겠어요. 제 사심입니다만.(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수는 첫 번째로 기획한 연수입니다. 연수부 일에 대해 잘 모르고 버벅거리면서 준비한 첫 연수이기 때문에. 제가 동아시아사, 특히 국가폭력, 평화를 위한 노력 등에 관심이 많아서 첫 연수 주제를 ‘동아시아와 국가폭력’으로 기획했는데, 선생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서 이때부터 자신감이랄까 뭐 그런 것이 조금 생긴 거 같아요.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금(저녁), 토·일(오전, 오후)에 걸쳐 연수를 진행해보았어요. 일반적으로 직무연수는 평일 저녁 닷새에 걸쳐 실시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지역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참석 자체가 불가능하고 수도권에 계시는 분들도 주중에 닷새나 퇴근하고 제기동 관지헌에 오고는 해서 꼭 듣고 싶은 연수가 있어도 포기하고는 했어요. 저도 화, 목, 화, 목, 화로 연결되는 직무연수를 한번 신청해서 퇴근하고 와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더라고요. 연수를 주말에 배치하면 참석 가능성이 한결 높아질 것 같아 주말로 변경했는데 역시나 많은 지역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어요.
한편 모두 연수는 저마다 몇 가지씩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젠더사 연수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연수에 비해 참가자가 적었는데요. 이유를 나름 분석해보니 다른 연수 대비 남자 선생님 참가가 유난히 적었어요. 아마 남자 선생님들께는 별 관심이 없거나 불편한 주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젠더사에 대한 고민이 우리 모임에서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러시아사 연수도 참 좋았고 참가자들의 호응도 열광적이었는데요. 다만 아쉬웠던 것은 우리가 잘 몰랐던 러시아사 내용 자체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사를 그전보다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주제 설정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세계사 영역의 연수가 대체로 내용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심도 깊은 연수로 이어지면 좋겠어요. 이건 연수기획자인 제가 그 분야에 많이 알지 못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주제 설정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9월에 있었던 구정은 기자의 ‘세계분쟁 특강’이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강이었다고 생각해요. 내용에도 집중했지만 중요한 주제를 놓치지 않는 측면도 있었으니까요.
올해는 너무 일을 많이 기획하고 운영해서 연말쯤 되니깐 과부하가 오더라고요. 제가 연수 일만 하는 게 아니니 매일 매일이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멀티가 안 되는 단방향 인물이니 오죽 했겠어요. 그래서 올해까지만 저를 불태우고(?) 내년에는 휴식하려고 해요. 저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 없이 너무 앞만 보고 달린 거 같아요. 별명이 ‘직진 고진아’가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잠시휴식 고진아’가 되고 싶어요. 다른 분들이 성숙의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저는 일은 빨리 추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는 몰라도 내적 성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른 능력자 선생님들은 일도 하고 자아성찰도 함께 하시겠지만 저는 멀티가 잘 되지 않은데다 너무 과업 중심으로 몰입하다보니 ‘인간 고진아’가 없었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들어요.
장콩 샘이 기억하시듯이 20대 때는 잠수도 곧잘 탔던 거 같아요. 갈등 상황이 생길 때 회피하는 성향이 커요.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저를 다그치고 직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하려는 것은 ‘잠수’가 아니라 ‘휴식’이에요(웃음). 내년에도 연수부장을 계속 하냐는 질문을 요즘 많이 받고 있는데요. 말씀드렸듯이 제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 지치기도 했고 아이디어가 살짝 고갈되기도 했고, 다른 연수부장님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더 나은 연수가 나올 테니 저는 휴식에 들어가도 될 듯합니다.ㅎㅎ
혁신학교에서 근무한 지 벌써 십년 째입니다. 새로운 도전, 배움, 협력, 성장이 이루어지고 가능한 곳이 혁신학교가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 학생들 속에서 많이 배우고 조금이나마 성장했지요. 동시에 그 안에서 여러 번 좌절하고 회의하기도 했어요. 제가 과 몰입하고 새로운 즐거움에 기꺼이 뛰어드는 편인데 반대로 싫증을 빨리 느껴요. 그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활동했어도 저에게 깊이가 부족했던 것이 싫증을 빨리 느끼는 것 때문인가 봐요. 또 ‘삶은 여행이야’라며 오래 머물지 않고 겅중겅중 건너뛰듯이 삶을 사는 거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심신이 지쳐서인지 학교생활에 싫증이 난 탓인지 요즘은 학교생활을 건조하게 하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으로 온라인 접촉이 늘면서 더 그렇게 된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학교를 잠시 떠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이렇듯 늘 떠날 궁리를 하는 저입니다. 이번에 새 학교로 옮기는데요. 새 학교에 몰입하다보면 지금의 건조함을 넘어설 수 있겠죠?
그러게요. 이제 중견 교사더라고요. 아직 철도 덜 들었는데 어느새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였어요.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어린이 마인드’인지라 회지에 교육관과 인생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워요. 제가 갈 길이 멀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잘 알거든요. 다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저는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고 싶어요. 카뮈는 『페스트』에서 ‘다 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했다죠. 리영희 선생님은 자신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는 것이 ‘진실’이라고 했고요. 그들의 사상, 감성, 통찰력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저에게 영감을 준 ‘진실’과 ‘성실’이라는 두 단어만이라도 지키며 살아가고 싶어요.
어린 시절 인생관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어렸을 때부터 농담 삼아 제 신조라고 내뱉어왔던 두 가지는 ‘인생은 여행’과 ‘돈은 빌릴 수 있지만 시간은 빌릴 수 없다’였어요. 인생은 여행이니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삶을 살아보자 싶었고요. 시간을 빌릴 수 없으니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참! 제 어린 시절부터 신조라고 했던 것 중에 ‘자동차를 사지 않기(운전하지 않기)’가 있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갈 예정인 학교가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이라 차를 사야하나 고민을 난생 처음 하고 있어요. 운전하려면 겨울방학에 운전면허부터 따야하는데요. 근데 이건 내 신념을 저버리는 것이라 고민이 되었는데... 어느 자리에서 이 고민을 말했더니 누군가가 ‘어린 시절의 신념을 나이 먹어서도 지키는 것은 바보’라고 하더군요. 정말 바보인가요? 아무튼 저를 추동했던 신조와 신념은 이런 것들이었답니다.
장콩 샘이 해주시는 조언은 아주 소중해요. 많이 해주세요. 생각해보면 전 늘 늦게 깨닫는 것이 많더라고요. 그러니 훌륭한 인생 선배님의 소중한 조언을 잘 새겨들어야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음... ‘가장’이라는 말이 매번 어려워요. 계속 망설이게 하는 말이에요. ‘가장’은 아니고 ‘처음’ 떠오른 순간은 ‘2008년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때에요. 생물 교사 출신 교장이 당시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편향되었으니 다른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그것을 충실히 부역했던 사람이 (우리 모임이었던) 역사교사 출신 교감이라는 행태에 극도로 분노했던 순간, 그래서 그야말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싸웠던 기억이 떠올라요. 역사교사가 모두 반대했는데도 결국 학운위 표결로 교과서가 바뀌고 말았어요. 제가 학운위 회의 때 학운위 위원들에게 ‘역사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당신들은 벌 받을 것’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픈 말이에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벌 안 받더라고요. 아무튼 2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일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요. 추운 겨울 아침 벌벌 떨며 서 있으면 등교하던 많은 학생들이 응원해줬어요. 그때 차가운 손에 전해졌던 캔 커피의 온기가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캔 커피를 건네던 그 학생들은 나중에 교과서 교체 반대 학생 성명서도 만들어 발표했는데 교장은 제가 학생들을 사주했다고 길길이 뛰기도 했었죠. 저는 전혀 사주하지 않았고 그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실천한 것이었어요. 그 학생 중 한 명은 현재 자랑스런 역사교사 동료가 되었답니다.
전남에서의 저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되묻고 싶어요.(웃음)
첫 발령지는 전남이었지만 섬이나 오지가 아닌 전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여수였어요. 교무실 창밖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와 아름다운 오동도가 펼쳐져 있던 멋진 학교에서 4년 근무했어요. 그러다 경기도로 옮겼는데요 이미 그게 벌써 14년 전이라 기억이 벌써 희미해져 버렸어요(웃음). 여수는 수도권보다 더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생활 여건도 부족했지만 교사들 간의 관계는 더 끈끈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를 떠날 때 했던 송별회에서 친했던 나이 많으신 남자 체육선생님이 저 떠난다고 눈물까지 흘리셨을 정도였어요.
전남에 근무할 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전남역사교사모임이었어요. 2주에 한 번씩 토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점심도 안 먹고 여수터미널로 곧장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모임 장소였던 광주를 갔어요. 전남모임의 여러 공부모임과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그 여정들을 주변에서는 힘들지 않냐고 했는데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좋아서 매번 고속버스에 올랐지요. 그곳에서 장콩 샘을 비롯한 전남 모임 선생님들에게 저는 늘 배우고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부족한 저를 아껴주고 챙겨주었던 선배교사들이 계셔서 정말이지 감사한 곳이에요. 경기도로 옮기고 나서 한동안은 전남에서처럼 행동하다 차갑고 냉랭한 느낌을 받고는 까불던 제가 얌전해졌답니다(웃음). 저를 오랜만에 보신 분들은 경기도 가서 왜 이렇게 진지해졌냐고 묻기도 해요. 전남은 제게 늘 그리운 곳입니다.
그 ‘앞으로’가 내년일까요? 내년이라면, 많이 고민하고 준비하여 수업을 좀 더 잘하고 싶고, 책도 더 많이 읽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더 고민하고 싶고, 제가 도움이 되는 곳에서 부족하나마 힘이 되고 싶고 등등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러려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더 단련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앞으로’가 내년보다는 좀 더 먼 미래라면, 늘 제 마음의 안식처였던 전남으로 학교를 옮기고 싶어요. 유목민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유목민은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에 맞게 일정한 지역을 오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계절, 세월의 순환에 맞춰 다시 내려갈 계획입니다. 제가 경기도로 간 것은 ‘삶은 여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고 경기도 안에서 계속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 새로 배우는 중인데요. 조만간 다시 전남으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또 시작하고 싶어요.
그 ‘앞으로’가 그보다 더 먼 미래라면, 학교가 아닌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서점이나 북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직접 만든 좋은 비누를 파는 가게를 해보고 싶기도 해요. 그리고 무모하게 내뱉는 수준이지만 1인 출판사를 해보고 싶기도 해요. 출판사 이름은 “지나고” 어때요? ‘지나고’는 제 이름이기도 하고, 시간이 이미 ‘지나고’ 역사가 된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내는 출판사라는 뜻으로요. 근사하죠?(웃음) 베스트셀러 작가 장콩 샘! 저희 ‘지나고’에서 함께 책 작업해보실래요?
고진아는 명령이 입력되면 그대로 실행한다. 사할린 오호츠크해에서 있었던 일이다. 발뒤꿈치로 비비면 조개가 나온다고 했다. 조개를 잡으러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은 조개만 잡지 않고 놀기도 하고 그러는데, 딱 한 사람! 고진아는 로봇 청소기처럼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려 두 시간 동안 뒤꿈치를 돌려가며 계속 조개를 잡고 있었다. 그 때 고진아의 머리에 입력된 명령어는 ‘조개를 잡아라’였던 것!
평소에는 일정이 입력된 대로 실행한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바쁜 일이 있어도 입력된 일은 실행한다. 약속시간에 늦는 법도 없다. 많이 바쁘거나 몸이 안 좋을 땐 집행부 회의에 한두 번은 빠질 수도 있는데 고진아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고진아의 머리에 입력된 또 다른 명령어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인가보다. 누가 그 명령어를 입력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스스로 입력한 것일 게다.(다른 사람이 내린 명령어를 잘 듣지 않는 로봇이니.) 전역모를 위해서, 전역모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주저 없이 실행한다. 회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특강이나 연수의 기회를 마련해서 모임의 존재를 계속 알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고진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진 이 때 끊임없이 온라인 직무연수, 특강, 번개 특강 등을 만들어냈다. 몸이 버텨내지 못할 정도로 많이!
그런데 고진아가 로봇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리던 고진아가 12월이 되니 지쳤다고 하니 말이다. 로봇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밧데리를 교체해줘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일까?
<부록> 고진아로봇 사용 설명서
1. ‘계획’을 아주 좋아한다. 다이어리에 맨 날 뭘 그렇게 적는다. 내일 뭐할꺼냐고 늘 묻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계획 짜는 것을 좋아한다. 또 묻는다. “뭐 할꺼에요 이제?”
아마도 이런 플랜 고진아로봇이라 전역모 연수들이 열었다 하면 초히트일지도!
2. ‘직진’을 좋아한다. 뒤에 뒤쳐지는 법이 없다. 항상 우리 앞을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빨리 와요~” 늘 앞에서 사람들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앞서 걸어가는 이런 로봇이 있어 다행이다.
3. 활자 중독이다. 글자 읽는 것을 좋아하다. 종이 신문을 아직도 구독하고, 늘 책을 읽는다. 정말 다양하고 넓은 주제의 책을 본다. 바쁜데 언제 그 책을 다 읽는지 모를 정도로 신기하다.
4. 가성비 좋은 음주인이다. 맥주 캔 2개면 흥이 나 밤새 놀자고 한다. 밤새 가무는 모르지만 밤새 음주를 하면서 놀자고 한다. 밤새 음주하고 싶으신 분들은 고진아로봇 사용을 적극 권한다.
5.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주변인들의 조언을 끝없이 구하지만, 절대 그 조언들이 먹힌 적은 없어 보인다. 결론, ‘우리말 안 들을 건데, 왜 물어? 너 맘대로 해!!’
진아 샘 은 자주연수에서 만나는 사이였는데, 어쩌다 최근 이삼년 사이에 거의 울역모 회원 수준으로 종종 만나는 일이 생겼었다. 전역모 각종 연수, 답사, 여행 등으로 만나면서 <내가 만난 진아 샘>은 이렇다.
진아 샘!! 그냥 직진해요!!! 고고씽!!! 무얼 해도 우린 샘을 응원해요! 대신 가끔씩 쉬어요. 제발~ㅋ 언젠가 진아 샘이 만든 작은 책방에 우리 모두 옹기종기 수다 떨고 있을 그날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