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것에 시선을 두다
이동수(경기 동탄목동중)
이번 여름 자주연수에 참여하기 전까지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온라인 유령회원이었다. 올해 신규로 임용 되면서 내가 역사교사임을 증명 받는다는 생각으로 모임에 가입한 이후 부끄럽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나였기에 처음 참여한 자주연수가 전국에 계신 선생님들이 모이는 행사라는 것을 깨닫고 적잖이 당황했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 처음엔 후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정이 진행되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혹은 보지 않고 있던 지점과 마주하게 되며, 점점 이 자주연수의 흐름에 녹아들게 되었다.
첫째 날,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 대안 찾기: 평화의 관점에서’라는 제목으로 세미나가 진행 되었고, 그 후 기지촌 문제를 중점으로 기획된 수업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갓 1학기를 끝내고 온 새내기 교사인 나에게는 어려운 말들의 향연이었고, 따라가기 벅찬 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의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와중 내가 가진 현재의 고민들로 시선이 옮겨졌다. 역사교사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그 길 한켠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날, 기지촌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동두천 답사가 진행 되었다. 상패동 공동묘지를 시작으로 보산동 거리, 낙검자 수용소등을 답사하고, 저녁에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친정이 되어준 두레방 식구들과의 간담회가 이어졌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굴절 속에 소외된 수많은 과거는 아직도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날 새롭게 알게 된 기지촌 문제도 그 중 하나였고, 더욱이 적극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까지 하였다. 둘째 날의 경험으로 인해 소외된 과거를 내 시선에서 놓치지 말자는 소박한 다짐을 가지게 되었다.
셋째 날, 회암사지와 몽실학교, 캠프 스탠리와 뺏벌로 이어지는 의정부 답사로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셋째 날은 모든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몽실학교 답사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올해 초 겨울, 면접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암기했던 ‘몽실학교’이기에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던 것 같다. 청소년 자치배움터라는 몽실학교는 미래교육의 여러 가지 구상 중 하나의 형태가 실험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곳을 거쳐 간 청년들과의 짧은 대담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서 정체모를 설렘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번 자주연수 답사기에서는 신규교사인 나의 시선에 비춰진 주관적이며 조금은 얕은 감상을 전하고자 한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근무하기 이전 수업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생각하는 역사’, ‘스스로의 역사의식을 찾는 역사’ 따위의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을 내 수업의 슬로건으로 삼으며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업방법들을 찾아보았다. 차시별 수업을 준비하고 점점 자료들이 쌓이면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수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수업부터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많이 준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결국 벅차게 진도를 맞추어 나가고 지필평가에 끼워 맞춰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답사 첫째 날의 의정부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의 수업사례발표에서 지쳐있던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다.
수업 사례발표의 주제는 ‘지역사를 활용한 세계사 수업’이었고, 미군기지와 기지촌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었다. 의정부고등학교의 맹수용 선생님과 의정부여자고등학교의 이어라 선생님이 발표를 진행하였다. 의정부 지역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세계사와 만나게 되었고, 미군은 의정부 주민의 삶에 깊게 파고들었다. 더불어 학생들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은 역사인 것이다. 이에 지역의 시선에서 세계의 역사를 해석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수업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대단한 수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가폭력에 노출되었던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드러내면서 인권과 젠더 문제도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을 설계한 두 선생님들께서도 이 지점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 이후 오가는 질문에서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었다. 열심히 그 내용을 따라가던 와중 엉뚱하게도 당시 현장의 상황이 더 눈에 들어왔다. 경력이 오래되신 선생님과 젊은 선생님이 수업을 함께 준비하여 발표하였고, 퇴직 하신 선생님이 느낀 바를 질문하고 조언을 주시는 상황은 나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수업 사례 발표를 듣곤 했었지만 항상 ‘실제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함께 했다. 수업의 내용과 주제 혹은 수업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번 수업 사례 발표에서 새롭게 느꼈던 것은 역사교사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였다. ‘완성된 수업’으로서 화려하게 발표했던 것이 아니라 수업을 준비하면서의 고민과 수업 이후의 고민들을 드러내 보였고, 많은 선생님들은 그 고민을 이어받아 두 선생님께의 질문 혹은 제안을 통해 수업을 함께 완성해 나갔다. 선생님들의 주고받는 말 속에서 역사수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쌓아올린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학기 수업을 하고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고민을 뒤로하고 지쳐 버린 나를 돌아보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도전해보자라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이날 마지막 일정에서 수업에 대해 선생님들이 내뿜은 에너지와 열정을 닮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첫째 날을 마무리 하였다.
※ 답사의 흐름 - 상패동 공동묘지 – 보산 거리 – 낙검자 수용소 – 자유수호 박물관
둘째 날 답사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중점으로 동두천을 둘러보았다. 흔히들 잊혀 진 역사를 설명할 때 소외된 과거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현대사에서는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게 들린다. 현대사의 굴절 속에 희생되고 치유 받지 못한 역사를 일컫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기지촌 여성의 문제가 바로 그러했으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외면되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날 답사했던 낙검자 수용소는 이를 잘 보여주었다. 낙검자 수용소는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성병관리소로서 성매매에 대한 위선적 금지주의를 여실히 드러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의 인권 혹은 건강 보다 성병통제를 중시하며 페니실린의 남용으로 많은 여성들이 죽어나갔다. 이러한 성병통제는 마치 정부가 나서서 미군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실제로 기지촌 여성들에게 미군 상대의 성매매는 ‘외화 달러 수입’의 애국 행위로 교육되었다.
낙검자 수용소의 또 다른 이름은 ‘몽키하우스’라고 한다. 철창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모습을 원숭이로 묘사한 것이다. 낙검자 수용소의 2층은 수용된 여성들의 생활공간이었다. 각 방마다 설치된 철창은 철저한 배제와 감금을 위한 공간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더불어 기지촌 여성들이 겪은 국가폭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철저히 배제되고 감금 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수용소 바로 옆에서 진행 되고 있던 시끌벅적한 품바 공연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수용소가 폐쇄된 이후에 사람들이 출입했던 흔적도 곳곳에 보였고, 한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낙서에는 ‘귀신 나타나서 너 잡아가..아니 들어가 너 몸속에 말이야. 여기서 죽어봤니?? 여기 있으면 안돼...ㅋㅋㅋㅋ’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낙검자 수용소 흉가’로 검색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이 흔히 접하는 1인 미디어를 통해 낙검자 수용소는 흉가로 소개되고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가 외면 받는 사이 결국 흉가체험의 명소로 소비되는 지경까지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한 점에서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나눈 앞서의 수업사례는 소중한 시도였다고 생각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두레방 식구들과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두레방은 상처받은 기지촌 여성들의 곁을 지키는 ‘친정’이었다. 그 시작은 한국으로 시집온 미국여성 문혜림이었다. 문혜림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이 국가에 의해 폭력이 묵인되는 모습을 보며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간담회에서 문혜림의 딸 문영미 선생님을 통해 그의 삶을 되돌아보았고, 김태정 활동가를 통해 현재의 두레방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태정 활동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담담하게 ‘언니’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렇듯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지속적으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날 답사를 통해 소외된 과거에 주목하고 마음을 보태야 한다는 책임감에 무거워진 하루였다.
※ 답사의 흐름 - 회암사지 – 몽실학교 – 캠프 스탠리와 뺏벌
셋째 날은 지난 밤 ‘역사교사의 밤’의 여파로 인한 피곤함과 함께했다. 하지만 정체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던 몽실학교를 가게 되어 기대가 되었다. 몽실학교는 학생들이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공간운영까지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만든 학교 밖 배움터이다. 몽실학교의 운영 방식은 미래 학교의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 되었다. 이는 길잡이 교사로서 참여한 선생님이 몽실학교의 경험을 어떻게 하면 학교 현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몽실 학교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학창시절 몽실 학교를 거쳐 갔던 분들이 다시 돌아와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그분들을 소개할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교육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통찰까지 엿볼 수 있었다. 몽실학교는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선생님들의 자발과 헌신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곳을 거쳐 간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몽실학교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래교육의 동력이 학생들로 옮겨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2박 3일 동안의 자주연수를 통해 생소했던 동두천과 의정부를 돌아보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자주연수 내내 울림이 느껴지기도 했고, 많은 고민이 뒤따라오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교사로서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렷해지는 경험도 함께 했다. 이렇듯 의미 있는 다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준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