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고있는 김선옥

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5 - 김선옥(前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 장용준(객원 편집에디터, 전 함평고 교장)


☞ 왜 다섯 번째 인터뷰이로 ‘김선옥’을 선정했는가?

이번 호 인터뷰이 김선옥은 현재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이다. 전국에서 역사로 한 가닥 하는 교사들이 많고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담자로 장학사를 모신 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지금보다는 전문직이나 관리자로 진출하는 역사교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특히 바른 생각 속에 강단 있게 시대를 보며 사물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샘들이 우리 교육의 전면에서 미래 한국 교육을 기름지게 했으면 하는 원(願) 때문이다.

학교 교무회의 석상에서 벌떡 일어나 하는 ‘따따부따’는 맘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교사가 학교를, 교육의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전문직이나 관리자가 되면 굳게 맘먹지 않더라도 교육의 물줄기를(최소한 학교만이라도) 곧고 바른 방향으로 지향하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속성상 ‘비겁과 비굴함, 명예욕’이 몸속 깊이 배어 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시대가 바뀌면 국정화 찬성론자 같은 사이비 교육자들은 다시 곧추 서서 요사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펼쳐낼 것이다. 앞으로 그런 자들이 드러내놓고 활개 치지 못하게 하려면, 바른 생각 속에 역사의 물줄기를 딱 부여잡고 당당하게 헤쳐 가는 교사들이 정책결정권자의 위치에서 중심을 잡고 튼실하게 버텨줘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학사 김선옥을 인터뷰이로 어렵게 모셨다. 뚝심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전문직이나 관리자로의 꿈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자.


※ 본 인터뷰의 주인공인 김선옥 장학사는 2019년 09월 01일자로 베트남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의 교감으로 부임하였고, 또다시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원고 정리 및 가을호 제작 일정으로 인해 해당 사항은 인터뷰 내용엔 반영되지 않았음을 양해해주시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독자들의 양해 부탁 드린다./ 편집부



장학사로 직을 옮기신 이후에 사는 것이 안쓰러워 측은지심이 절로 일어나던데, 요즘은 어떠세요? 아직도 많이 힘드나요? 우선 근황 소개부터 해주세요.


김선옥 일이 힘들죠.ㅎ 점점 더 힘들어져요. 오히려 역사 담당으로 국정화 반대 싸움 할 때는 목표가 확실하고 방법도 뻔하니 재밌고 신났어요. 일을 추진해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정책화하는 것이 너무 재밌기도 했고요. 근데 작년 9월에 민주시민교육 업무담당자가 되고 나서는 재미도 있고 신나는 건 그대로인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보면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첫 길을 서울에서 대표로 내는 것이니까요.

지난 4년간도 민주시민교육이란 이름이 있었지만, 조례를 만들거나 정책연구를 진행하는 상징적인 일이 주였다면, 조희연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하고 그 주요 정책으로 학교민주시민교육을 강력히 추진하라고 하셨고 제 생각에도 그게 공교육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갈래를 잡고 개념을 잡기 위해 초반에는 무지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러느라 힘들었고, 개념을 잡고 나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또 힘들어요. 올해는 정말 체력이 딸립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어요.ㅎㅎ


저는 선생님이 전문직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외다’ 생각하며 조금은 놀랬는데, 전직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선옥 저도 의외에요.ㅎ 내가 학교를 떠나다니. 제 인생의 전환점은 세월호 참사에요. 그동안은 교실에서 교육을 바꾸겠다고 정말 나름 노력했고, 제 교실에서는 그것을 이루어내고 있었어요. 만족감도 매우 컸고요. 근데 그게 내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내 교실을 나서는 순간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세상을 맞닥뜨려야만 하죠. 그거에 불만은 있었지만 내 인생의 길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어요. 근데 세월호 참사 일련의 과정에서 내 상상 이상으로 모든 시스템이 엉망이고, 교육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전까지는 누군가 해주겠지 했다면, 아무도 안하니까 나라도 해보자. 이런 심정으로 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세월호 아이들이 만들어준 조희연 교육감이 교육청에서 일할 때, 내가 손발이 되어주자.’ 생각했어요. 역사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2014년 11월에 조교육감이 선발하는 첫 시험에 ‘민주시민교육’으로 시험 봤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역사를 가르쳐도 늘 현재가 중요했고, 사회수업을 하면서는 아예 내놓고 현실 사회와 접속했거든요. 그러면서 희망을 찾았기도 했고요. 그걸 어떻게 더 넓혀볼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교사 시절 선생님의 활동 모습을 지금 상기해 보면, 제 생각에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전문직 일보다 더 맞을 것 같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김선옥 교사일 때는 교사가 정말 잘 맞았고요, 지금은 또 나름대로 재미있어요. 물론 실무나 행정업무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남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벌써 5년차인데도 말이지요. 하지만 어떤 정책의 방향을 잡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그걸 현실의 정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정말 짜릿한 일이긴 해요. 저 같은 경우 학교에 한꺼번에 확! 퍼지게 하는 정책은 아직도 못해요.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가는 편인데, 이제 학교민주시민교육이 교육의 첫머리에 서야할 때가 왔고, 시기적으로 나이스 타이밍이라 좀 지를 것이 필요한데,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조직적으로 함께 가야할 사람들, 조직들, 교사들이 많이 필요한데. 나 혼자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힘겹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견해로는 선생님 같이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이 전문직으로 넘어가 우리 역사교육, 더 나아가 교육계 자체를 변모시키며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젊은 선생님들이 전문직으로 전직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분명 이 인터뷰를 보고 전문직으로의 전환을 꿈꿔보는 샘들이 계실 것 같아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그런 샘들을 위하여 자세한 안내 부탁드립니다. 말이 길어져도 좋습니다.


김선옥 전문직에 들어오시길 권해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거든요. 특히 민주시민교육의 지향을 가진 사람들, 교육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전문직 사회, 교육청 관료사회의 특징을 바꾸는 일도 혼자서는 안 되니 같이 하시면 좋겠어요. 해야 할 일? 수업에 지향을 담고자 노력하면서 고민하고 진짜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시면 됩니다. 왠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면, 그때 후다닥 준비해서 들어오세요.



선생님이 간혹 올리는 페이스북 글을 살피면, 전문직으로의 삶 자체가 회의적 혹은 감당할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그게 선생님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우리 교육계에서 전문직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무게일까요.


김선옥 전문직도 다 같은 지향과 삶의 방향을 가진 것은 아니니 모두 다르겠죠. 저 같은 경우는 일단 성격이 좀 모나고,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하고 싶은 일 못 참으니 그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지지만, 다른 전문직들도 또 다들 나름의 고뇌가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생각한 건데, 전문직들이 정말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요. 그들을 받아 과중한 행정업무만 주며 바보로 만들어가는 조직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러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교사들의 이야기가 교육청에 직접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적극적으로 교육정책에 참여하세요. 옛날처럼 교육청 일하면 승진이 보장되는 경로는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해받을 걱정 마시고 ‘참/여/하/라!’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서울 태생이시죠? 어때요? 학창 시절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김선옥 저 완전 평범했어요.ㅎ 서울변두리, 상계동에서 주로 살았고요. 책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이때 공부는 학교공부에요) 그냥 착한 모범생 정도? 집이 좀 어려운 때가 많아서 엄마는 나가 일하시고 제가 살림을 많이 하느라 주부습진까지 걸릴 정도였고요. 제가 중3 때 만난 세진이라는 친구가 사회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친구 덕분에 저도 개안(開眼)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진짜 입시공부에 올인 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18살인가 성당에 다시 다녔는데, 그때 신부님 한분을 만나 사상교육(!)을 받은 거 같습니다. 대학교 때는 운동권 이런 거 못해봤고요, 그냥 소설과 시를 좋아하고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집회 가는 걸 좋아해서 많이 쫓아다니기는 했고요.


대학 졸업 후에 교단에 바로 서지 않고 잠시 다른 일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을 왜 하셨나요?


김선옥 임고에 한번 떨어지고 <우리교육>에서 1년 정도? 일했어요. 편집하고 글 쓰고 교정보고 뭐 그런 일이죠. 그런데 이게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거나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이때 근무 때문일 거예요. 학교에서 학습자료 만들거나 읽기자료 만드는 것, 교육청에서 문건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도 다 그 덕인 듯 하고요.


그런데 왜 교단에 발을 디뎠나요? 또한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직접 대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김선옥 <우리교육>의 주 취재대상이 학교랑 교사잖아요. 취재를 나가거나 교사들의 수업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아! 나는 나가면 이렇게 해야지.’ 이 생각이 너무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뛰쳐나와서 다시 임고 준비했고, 또 떨어졌고, 기간제 교사 6개월 하다가 천운으로 5월에 시험이 또 있어서 거기 응시해서 성공했죠. 그러고 보니 저는 임시 시험으로 인생을 다 바꿨네요. 장학사 시험도 원래 5월인데, 2014년에만 11월에 추가시험이 있었거든요.

천운으로 교사가 되어 학교에 가서는 정말 행복했어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게 설렜다니까요. 관리자들이나 부당한 선배교사들과 댓 거리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뭐, 그렇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변해가니 좋았고요.



내가 아는 김샘은 늘 아이들 이야기, 고민꺼리 해결, 여러 수업 방법을 구안 · 실천하는 열정 가득한 교사셨는데, 교사 시절 살아왔던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김선옥 교사일 때(장학사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러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이 떠올랐어요. 그걸 실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재미있어서 한 일이에요. 언제부터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중심이 되면 더 재미있더라고요. 학급이든 수업이든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다 받아주었어요. 정답 이런 거 없다. 말해봐. 너희들 일이니까 너희가 해. 그런 분위기니까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고, 자기 이야기에 누가 또 이야기를 덧붙여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러다가 좋은 결론이 나면 다 같이 좋고. 수업자료 만든 거 2년 이상 안 써봤어요. 강의나 뭐 어디 글 쓰려면 수업자료를 어디다 모아뒀는지 몰라서 늘 제 자료를 가져간 사람에게 다시 달라고 해서 이용했어요. 학교는 늘 흥미진진하고 새로워서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요즘 생각으로는 교사 그만두길 잘한 거 같아요. 최근 들어오는 교사들의 수준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새내기 샘들은 교사 첫걸음 때 방향만 잘 잡으면 별 어려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교사연수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물론 매우 질 높은 연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다시 교사라면?’이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선생님은 어떤 답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라면 즉문즉답이 가능할 것 같아 ‘모름지기 요즘 교사란 학교 현장에서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라는 답을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능할까요?


김선옥 ‘모름지기 요즘 교사란 학교 현장에서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교단에 서는 교사들 모두가 자기 개성에 맞게, 자기가 행복한 방향으로, 단,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방향만 잡고, 자기 교실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펼쳐 가면 좋겠어요. 다만 굳이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학교 관리자의 부당한 권리행사나 교사 사이의 부당한 위계 같은 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정 안되면. 문제제기하고 주변 사람과 손만 잡을 정도라도 했으면 해요. 또, 교과교육과정 뿐 아니라 학교 자체가 민주사회가 되는 것이 아이들을 더 잘 성장하도록 돕는 빠른 길이라는 걸 기억하시고, 그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전문직에 들어선 이후, 역사보다는 시민사회 활동에 더 재미를 붙이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앞으로도 역사와 연관된 일보다는 민주가 앞에 붙은 시민사회 분야에서 더 활동하고 싶으신가요?


김선옥 제 꿈이 시민사회운동가였던 적도 있었죠. 아직도 꿈은 지속적으로 꾸고 있고요. 시민사회 활동에 재미를 붙인 것은 교사시절부터였어요. 왜냐하면, 이 사회 누구라도 시민사회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는 것이 사회단체이고, 또 거기에 가면 오랫동안 고민한 축적된 자료와 지식, 그것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요. 저는 학교와 교실이 더 자주 더 활짝 교실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봐요. 이제 지식과 기능은 총체적인 성격을 갖는데, 그것을 우리 교사가 다 해낼 수 없거든요. 문닫아 걸고 골방에서 전문가인 척하면 아이들이 미래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어요. 지식이 사회와 연결되어야 생명력이 생겨요. 역사는 민주가 앞에 붙은 시민사회분야 모두에서 기반이 됩니다. 역사를 조금 아니 도움이 되겠죠?



12. 지금 관심 분야가 ‘역사’보다 우리 교육에서 더 중요할까요?


김선옥 역사는 역사만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요. 다양한 분야와 결합되어야 역사가 가르치는 근본 목적에 맞는 힘을 갖게 되지요. 저는 모든 분야와 사람들이 자꾸 연결되어야 학생은 물론 모든 시민들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역사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시민사회단체가 살아남고 또는 새로 많이 생겨야 하는데, 후원금으로 11조하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이 살아남아야 사회가 좋아지니까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기본 바탕에는 ‘역사’가 있기에 역사교육에 대한 애정은 계속 가지고 갈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요즘 역사교육 현장을?


김선옥 아주 다양한 시도와 목소리들이 전역모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교사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요, 국정교과서 소동 이후 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이나 주체가 달라진 게 없어서 저는 그 소동을 왜 겪어냈나 싶을 때가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의 전환을 획기적으로 해야 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상상력 있는 사람이 관료 중에는 없고, 연구자들 중에는 더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사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역사교육의 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교과서를 인정제로 전환하고, 연구자들과 다각적인 콜라보를 하고, 역사 관련 담론을 주도해 나가야겠지요. 그런데, 그러려면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다방면에서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문직에도 들어오셔야 하고, 교육부에도 들어가야 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아야 하고요. ㅎㅎ 그저 내 수업만 즐겁고 재미있게 잘 꾸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 교실 넘어, 역사교육의 지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그 지향에 맞추어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이제 교사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처럼 1/n로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중심이 되어야만 역사교육, 아니 우리 교육 전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이전 세대, 선배님들이 지금까지 변화를 일구어 오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체 판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역사교육 단체나 교사단체와는 다른 전역모의 역할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역사교육계에서 국정화 싸움과 같은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정치 지형이 바뀌면 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겠지요? 그동안 전면에서 몸소 의견을 표출하며 여러 일을 겪었으니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 좀 진하게 들려주시죠.


김선옥 좀 전에 한 말과 맥락이 같긴 한데, 정치 지형이 바뀌더라도 흔들리는 일이 없으려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역사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확실히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고, 교실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한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를 바탕으로 실제 행정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많은 역사 교사들에게 그렇듯이, 반 국정화 싸움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가장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운 기억입니다. 역사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민주시민교육하겠다고 전문직으로 들어왔는데, 2016년에 본청에 들어와서 반 국정화 싸움을 맡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역사 분야에서 열심히 뭘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업무 맡고나서 교육과정 공부부터 다시 했어요. 제가 전역모의 일원임이 그때처럼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막판에는 하루에 한 번씩 보고서 자료와 성명서를 쓰고, 대항논리를 만들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당위성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싸움이 끝나고 조금 숨 돌릴 즈음에 교육부에서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 진상조사위원회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교육부라는 관료조직에서 점령군처럼 들어간 위원회가 버틸 수 있으려면 그나마 관료조직에서 일했던 제가 들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갔어요. 정말 치열히 조사하고 싸웠지만, 제가 원하는 결론은 나지 않았죠. 40명이 넘는 국정화 담당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제 정신력이 무너지는 걸 느꼈습니다. 뻔한 거짓말을 하면서도 당당한 인간들, “나는 공무원이므로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나마 내가 있어서 최악의 교과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을 마주앉아 보면서, 밤마다 소주로 영혼을 소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성립하지 않는 가설이라는 것도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단지 구실에 불과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서 법과 죄, 죄책감, 인간의 악에 대해 더 많은 책을 읽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폭력에 대해 조금 깊이 공부하게 되었어요. 세종시 원룸에서 7개월을 살았는데, 낮에는 인간과 관료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밤에는 그 환멸의 원인을 탐구하느라 책을 읽었죠. 그 시간 끝에 뭔가 성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별 성과 없이 덮어버리는 걸 보고는 우울증과 불면증까지. ㅎㅎ 이젠 괜찮습니다. 그 시간들 덕분에 공부 많이 했어요.

앞으로 우리는 ‘구조’만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원인’, ‘인간의 자기 선택’에 대해 알고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자가 공부하지 않고 착하기만 한 것은 죄악임을 확신하게 되었고요.ㅎㅎ.

최근에는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 일을 또 하나 겪었어요.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만드는 통일 평화교육 수업안을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과 정말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서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훌륭하다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결국 검열을 하더라고요. 이를 테면 이런 거예요. 한국전쟁시기 민간인학살을 통해 국가폭력을 이야기하면, “왜 북한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나?”하며 문제 삼고, 예비검속으로 집단학살 당한 사람들을 언급하며 ‘죽어야할 죄는 없다.’라고 썼더니, “왜? 나는 사형제도 찬성한다.” 이런 식인 거죠. 근데, 웃긴 것은 이러한 검열 기준들이 바로 2013년에 교학사한국사교과서를 옹호하기 위해 모든 한국사 책을 대대적으로 검토했을 때의 기준이라는 거예요. 달을 가리키는데 달에는 관심 없고, 손가락만 가지고 비난하는 거죠.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라고 할까요? 사람이 안 바뀌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지방분권, 교육부 권한 박탈을 주장하는 겁니다. 어떠한 새로운 시도도 연구도 현 체제에서는 본래 의도에 맞게 할 수 없어요.


이제 전문직으로 전환해서도 중견의 위치에 자리 잡았는데, 언젠가는 다시 교육활동 현장으로 돌아오겠지요? 그때는 어떤 관리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너무 나간 질문인 것 같지만, 그래도 꿈은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과감히 물어봅니다.


김선옥 2년 후면 교육현장으로 돌아갈 순번입니다. 전 관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습니다. 그 어려운 걸 내가 왜 맘고생하면서 감당해야 하나 싶어요.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 관리자가 된 사람으로의 책무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리자가 아닌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혁신학교에 가서 샘들 하자는 거 지원해주면서 맘 편히 지내는 게 제 꿈입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독서를, 그것도 어려운 책을 계속 읽으시던데. 혹시 남들이 읽기 싫어하는 책 읽기가 취미신가요? 저는 선생님이 읽는 책들은 1년에 한 권 소화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 . . .


김선옥 저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걸 최근 느꼈는데요, 저 책 대충 읽어요. 나중에 기억나면 다시 펼쳐서 읽곤 하죠. 하지만 사두고 안 읽은 책이 훨씬 많습니다. 대학원도 안 갔고, 공부도 얕아서 허당인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책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고 깨닫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교육청에서 일하다보면 해야 할 일, 행정 처리에 붙들리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나도 생각하는 인간이다.’ 이런 걸 느끼고 싶거든요. 그때 책을 펼치는 겁니다. 저 어려운 책은 읽다가 던져버려요. 근데 교육청 일을 하려다보면 트렌드에 대한 얇은 지식 정도는 갖추어야 정책 방향을 설정할 수 있어서 때마다 책 사고, 페북에 자랑하고, 자랑한 의무감에 읽고 그럽니다.ㅎㅎ 읽을 때는 신나게 읽는데 책장 덮고 나면 기억나지 않는 다는 것이 함정이에요.



전문직으로의 삶에 충실하면서 개인 독서도 왕성하게 하고, 거기에 술까지 나름 즐기던데? 그러다보면 결국 가정생활에서는 펑크가 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번 기회에 선생님의 가정사를 ‘사알~짝’ 조금만 엿보여 주시죠.


김선옥 이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충실하고 개인 독서가 왕성하고, 사람만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왠지 “얼굴은 예쁜데 시집은 못간 아나운서”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일은 잘하는데 가정은 포기한? 일하지 말고 집에 붙어 있을걸. 이런 대답 원하시는 거 아니죠? 그리고 가정사의 ‘펑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요즘은 무엇이 펑크고 무엇이 잘 사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서. 표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런 느낌이라면 죄송합니다. 그럼 방향을 바꾸어 다른 질문을 해보죠. 살아오시면서 본인을 다잡았던 좌우명 같은 것이 있나요?


김선옥 제가 이래봬도 성당을 열심히 다녔었거든요. 가끔 생각나는 건 성경구절이에요. 정확하지는 않을 건데,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이런 부분. 은연 중에 내가 내 인생에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뭘까?, 어떤 십자가를 지면 예수가 “그래 잘했다. 수고했어.”라고 말해주실까? 이런 걸 간혹 생각해요. 저는 신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또한 요즘은 너무 고민도 많고 할 일도 많아서 도망치고 싶은 때가 간혹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내가 이 길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뭘까?’를 자주 생각합니다. 요즘에 절 보면 예수가 말한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분란을) 주러 왔다.”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이것도 정확한 구절인지는 잘·····.) 이게 제 십자가일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반드시 했으면 하는 소망은 무엇인가요? 그 소원이 이루어지를 바라며 마지막 질문으로 던져 봅니다.


김선옥 소망은 1. 이제 20년차 채워서 ‘명퇴’ 신청 자격이 생겼으니 너무 미련두지 말고 조금 후에는 떠나고 싶다. 2. 떠나서 역사교육재단 간사를 하고 싶다. 3. 그러려면 훌륭한 전국의 선배 역사교사님들(장콩샘 포함)이 역사교육재단을 세워주셔야 한다. 4. 전국의 소장학자들과 네트워크를 맺는다. 5. 그래서 전국 시도교육청의 역사교육 및 민주시민교육 관련 연수, 포럼, 해외답사를 위탁 운영한다. 6. 이 과정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의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자연스럽게 추구한다. 7.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도 추진한다. .. 뭐 이 정도 랄까요? (농담 아닙니다.)

그냥 지금은 앞으로 해야 할 업무를 현명하게 잘 해내는 것이 계획이고 꿈입니다. 그 이후에는 훌훌 떠나서 좀 쉬고 싶어요. 대학원을 가서 학위도 따고 유학도 가면 참 좋겠다는 꿈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철학 쪽이나 민주시민교육과 역사교육을 접목하는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평생 하고 싶지 않던 공부가 왜 이제 와서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유럽과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의 민주시민교육 자료와 사이트, 교사연수와 학생교육 프로그램들을 탐구해보고, 우리나라에 맞는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민주시민교육은 우리 시대가 맞은 행운이고, 교육자의 법적 의무이니까요.



☞ 절친 교사 김애경이 본 ‘김선옥’

김선옥 선생님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초보교사 연수 때였다. 나는 연수생, 그녀는 강사로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때 그녀는 경력이 많지 않았지만 참 노련해보였고 나는 언제쯤이면 저렇게 수업을 설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될까 생각했었다.(그 능력은 시간이 흐른다고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그리고 2013년 한신대 “민주주의적 역사수업 디자인하기” 직무연수에서 다시 만났다. 수업을 설계할 때는 흰 종이를 먼저 펼치고, 이 수업에서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를 먼저 적으라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수업 준비 전 노트북을 켜고 남의 자료를 뒤적거리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던 내 모습 때문이었다. ‘이 수업을 왜 하는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는 내 수업 준비 패턴을 바꿔놓았다. 그렇듯 그녀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쿵! 뭔가에 부딪힌 것처럼 큰 영감을.

그녀와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건 2014년 4월 16일 이후였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부터 뭐라도 해야겠기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별다른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녀도 매주 광화문에 나왔고, 그 후로 우리는 2017년 촛불항쟁이 있기까지 3년 동안 주말을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보냈다. 그녀는 중학교에서 사회 수업을 하며 사회참여, 민주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다보니 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생각한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고 국정교과서 부역자 정리 작업에 누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역사의 부름 앞에 주저함이 없었다. 교육부에서 그 일을 하며 그녀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땐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며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고 회복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했던 말, 세월호 사건 이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 그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늘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을 엮어내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흥부전’ 영화에 나온 “꿈을 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는가” 대사처럼. 앞으로도 그녀가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그녀가 몸과 마음이 조금 덜 다치면서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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