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5 - 김선옥(前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 왜 다섯 번째 인터뷰이로 ‘김선옥’을 선정했는가?
이번 호 인터뷰이 김선옥은 현재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이다. 전국에서 역사로 한 가닥 하는 교사들이 많고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담자로 장학사를 모신 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지금보다는 전문직이나 관리자로 진출하는 역사교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특히 바른 생각 속에 강단 있게 시대를 보며 사물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샘들이 우리 교육의 전면에서 미래 한국 교육을 기름지게 했으면 하는 원(願) 때문이다.
학교 교무회의 석상에서 벌떡 일어나 하는 ‘따따부따’는 맘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교사가 학교를, 교육의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전문직이나 관리자가 되면 굳게 맘먹지 않더라도 교육의 물줄기를(최소한 학교만이라도) 곧고 바른 방향으로 지향하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속성상 ‘비겁과 비굴함, 명예욕’이 몸속 깊이 배어 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시대가 바뀌면 국정화 찬성론자 같은 사이비 교육자들은 다시 곧추 서서 요사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펼쳐낼 것이다. 앞으로 그런 자들이 드러내놓고 활개 치지 못하게 하려면, 바른 생각 속에 역사의 물줄기를 딱 부여잡고 당당하게 헤쳐 가는 교사들이 정책결정권자의 위치에서 중심을 잡고 튼실하게 버텨줘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학사 김선옥을 인터뷰이로 어렵게 모셨다. 뚝심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전문직이나 관리자로의 꿈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자.
☞ 절친 교사 김애경이 본 ‘김선옥’
김선옥 선생님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초보교사 연수 때였다. 나는 연수생, 그녀는 강사로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때 그녀는 경력이 많지 않았지만 참 노련해보였고 나는 언제쯤이면 저렇게 수업을 설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될까 생각했었다.(그 능력은 시간이 흐른다고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그리고 2013년 한신대 “민주주의적 역사수업 디자인하기” 직무연수에서 다시 만났다. 수업을 설계할 때는 흰 종이를 먼저 펼치고, 이 수업에서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를 먼저 적으라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수업 준비 전 노트북을 켜고 남의 자료를 뒤적거리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던 내 모습 때문이었다. ‘이 수업을 왜 하는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는 내 수업 준비 패턴을 바꿔놓았다. 그렇듯 그녀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쿵! 뭔가에 부딪힌 것처럼 큰 영감을.
그녀와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건 2014년 4월 16일 이후였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부터 뭐라도 해야겠기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별다른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녀도 매주 광화문에 나왔고, 그 후로 우리는 2017년 촛불항쟁이 있기까지 3년 동안 주말을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보냈다. 그녀는 중학교에서 사회 수업을 하며 사회참여, 민주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다보니 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생각한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고 국정교과서 부역자 정리 작업에 누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역사의 부름 앞에 주저함이 없었다. 교육부에서 그 일을 하며 그녀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땐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며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고 회복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했던 말, 세월호 사건 이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 그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늘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을 엮어내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간다. ‘흥부전’ 영화에 나온 “꿈을 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는가” 대사처럼. 앞으로도 그녀가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그녀가 몸과 마음이 조금 덜 다치면서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