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역사교육의 눈으로 본 한・일 갈등> - 1. 특별대담
/ 편집부 정리(담당에디터 노슬아)
[편집자주] 지금까지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식민지배 경험으로 인한 민족(혹은 국가 간) 대립으로 바라보는 반일 민족주의 관점. 둘째, 강국과 약국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현실’주의 관점이다. 반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반응, ‘현실’주의에게선 한・일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2019년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 전쟁이 보여주는 궤적은 두 관점만으로 풀어내기에 어렵다. 2019년의 한국 시민들은 일본 아베 ‘정부’가 정치 논리로 보편 가치를 훼손한다고 본다. 그들은 일본 ‘정부’가 자유 시장 경제 그리고 강제 동원 피해자의 보편 인권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반대를 외치고 있다. 기존의 반일 민족주의 관점과 ‘현실’주의 관점에서는 읽어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경제, 그 이전에 역사 문제에서 시작되었던 이 사건은 이제 군사・외교 문제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이 사건을 역사교육의 맥락에서는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편집부에서 권유환(서울 경동고 1학년), 김유민(서울 금호고 2학년), 홍애린(인천 국제고 2학년) 그리고 박중현(서울 영등포여고), 조정아(경기 일산동고), 이재호(서울 개운중)를 만나 2019년 한・일 관계의 쟁점과 앞으로 역사교육에서 풀어낼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유민(서울 금호고 2학년)한・일‘간 분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가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으니까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의 인권은) 아무리 소수의 인권이라 해도 전체 인권 문제 해결에 걸린 문제이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애린(인천 국제고 2학년) ‘다수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만 내 의견도 (김유민 학생과) 같다. (강제 징용 문제가) 개인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한국의 역사 문제와 관련돼 있고 그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대의 시민 모두가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강제 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권유환(서울 경동고 1학년) 지금 시점에서만 본다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시야를 넓혀) 과거까지 본다면 (그 관점은) 지나친 공리주의의 오류가 아닐까. (2018년 소송의 유일한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면 ‘강제’ 징용에 배상을 요구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노리고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제 징용으로) 지금까지 희생하고 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유환 국가와 국가 간 이야기는 끝난 게 맞지만 현재 개인(피해자)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사과하였지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피해) 당사자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권유환 (피해) 당사자들이 상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저 말뿐인 사과가 아니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인 계산 없이 사과를 하였다면 그에 따른 절차가 따라와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자신의 과오를 교과서에 넣어 그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과거에 대해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유민 (피해) 당사자가 일본 정부의 사과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고 본다. 당사자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데 문제가 끝났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홍애린 일부의 사람들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온정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완벽한 사과는 아닐 수 있다. 일본 교과서에 (피해 사실이) 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선 친구들 의견처럼 나 또한 진심어린 사과 여부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결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권유환 유튜브를 통해 처음 봤다. 그리고 학교 역사 선생님이 자세하게 수업을 해주셨다. 교과과정을 벗어나 현재 한・일 갈등을 다루는 수업을 진행한다. 일본이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는데도 한국 내부에서도 일본이 옳고 한국이 그르다는 의견을 내는 신문과 시민 단체가 있다는 것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홍애린 나는 이 사건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우리학교 ‘국제정치’라는 과목에서다. 그 과목 선생님이 국제 정치 현안을 다룬 기사를 스크랩한 후 용어 정리, 기사 팩트 체크 및 자기 생각을 써보도록 하는 숙제를 내주신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지소미아 철회 등에 대해 공부하며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홍애린 조별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본 친구들이 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게 됐다며 거기에 대해 잘못 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유환 일본 친구들과 토론을 통해서나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본 친구들은 위안부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에 교과서로 배우거나 신문으로 볼 때에는 몰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본인들이 모른다는 것을) 체감해보니까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들, 진심 어린 사과라든가. 그런 걸 제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일본 친구들은 일본 정부가 진심 어린 사과를 일본 측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요즘 이야기 되고 있듯이 ‘노재팬’이 아닌 ‘노아베’를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박중현(서울 영등포여고) 한・중・일 공동 교재라든가 일본 교사들과 교류를 많이 해오며 한・중・일의 성숙한 시민 의식의 향상을 기대해 왔다. 요즘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중구청이 ‘NO 재팬’ 현수막을 걸겠다고 했을 때 시민들이 그건 아니라고 한 사건이다.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가 예전에 ‘국사’를 가르칠 때와 달리 국가 대 국가의 대립이라는 양상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일본’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 내에도 양심적으로 체제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인식들이 학생들 또는 시민들 사이에 퍼진 것은 국가주의 교육을 벗어난 결과이기도 하고, 그간 한・중・일 교류의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의 인적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 물꼬를 튼 게 87년의 민주항쟁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갇혀진 틀, 갇혀진 역사를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게 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아닌 인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소년 캠프와 같은 교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조정아(경기 일산동고) 한・중・일의 역사 갈등은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연결된다. 한국은 해방, 일본은 패전이 아닌 종전, 중국은 승리라는 다른 인식들이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뒤섞이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청산되지 못한 과제가 남겨진 채 지금까지 왔고 이제는 냉전이 해체되는 1990년대에 피해자들의 증언이 중심이 되어 ‘과거사 문제’가 드러났다.
박중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국에서는 87년 민주화 이후, 일본에서는 급격한 우경화에 대한 우려 등이 맞닿아 90년대부터 한・일 사이의 인적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2000년대에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평화를 위한 역사교육 활동이 활발해졌다. 활동을 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국가사의 틀 속에서는 풀 수 없다는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특히 5년 간 참여해 온 동아시아 ‘평화’ 캠프에서 느끼는 바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이야기하는 ‘평화’라는 개념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어떤 한 가지 방향을 두기보다는 계속 만나면서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 동아시아 삼국이 느끼는 차이점 또한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현재의 맥락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교류한다는 것은 차이를 서로 인식하고 어떻게 공통분모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인 것 같다.
홍애린 올해 캠프의 테마는 ‘핵 없는 세상으로의 길’이었다. 활동한 후 평화를 위한 핵무기 금지에 대해 토론해 봤다. 한국 학생들은 핵무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중국 학생들은 핵무기는 보호의 수단이라며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비정상간 토론인 학생 토론에서도 이렇게 의견 합의가 어려운데 정상 간의 회담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민 주체는 다르지만 나도 평화와 핵무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작년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티셔츠를 입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제가 된 티셔츠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핵폭발 장면과 (해방된) 조선 사람들이 만세를 하는 장면이 같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팬들 사이에서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니까 잘 입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나왔다. 반면 일본 측에서는 이 티셔츠가 문제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을 넣은 것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사건이기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티셔츠를 만드는 업체도 유명인이 입은 티셔츠라고 홍보하면서 상업적으로 그 이슈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 역사 문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건가, (적절한 단체에) 기부를 한다든가 하는 좋은 의미를 담은 것도 아니고. 이 사건이 많이 문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권유환 미군에 대한 인식도 조금 다르더라. 한국은 식민지 해방군 혹은 한국전쟁의 동맹군으로서 미군이 들어왔기에 미군을 나쁘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패전과 미군이 들어왔고 오키나와에서도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문제가 많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면이 강한 것 같다. 그렇기에 일본 친구들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권유환 미군에 대한 인식도 조금 다르더라. 한국은 식민지 해방군 혹은 한국전쟁의 동맹군으로서 미군이 들어왔기에 미군을 나쁘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패전과 미군이 들어왔고 오키나와에서도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문제가 많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면이 강한 것 같다. 그렇기에 일본 친구들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재호 학생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한・일 상황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 사건 발생 원인에 대해 서술해보라고 하였다. 학생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라 이해 방식이 상당히 달라진다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에서 갈등의 출발점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민족 간 갈등의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그렇지만 사실 이 문제의 출발점은 (강제 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일본 기업에게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이다. 개인 청구권의 행사 여부의 핵심은 개인의 인권이 먼저인가 아니면 국가의 판단이나 이익이 우선인가가 깔려 있었다고 본다.
일본이 주장하는 바는 국가와 국가가 65년 협정에서 합의된 바를 한국이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제법상의 해석에서는 인권 침해 요소가 강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저해하는 사건이라면 국가 간 협약보다는 개인의 인권이 우선시된다고 권고한다. 그렇기에 일본은 강제 징용에서 국가의 개입 여부, 노동이 ‘강제’ 여부, 불법성 여부 등을 중요 쟁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학생들은 이 사건을 통해 개인의 인권 영역과 국가 사이의 관계성 영역을 고민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과 개인의 연대 속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인들과의 연대가 가능한 논리 구조가 형성되지 않을까 한다.
또, 강제 징용은 피해자의 증언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법정이나 학계에서는 개인의 증언보다는 공문서를 통한 근거를 신뢰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공문서 위주로 입증하는 근거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학생들과의 수업에서는 공문서와 개인의 증언 중 어떤 것에 더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지 현상을 살피고 이 현상이 초래하는 문제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결국 이 문제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국가주의 사이의 쟁점이라고 보고 그 쟁점의 연장선상에서 평화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재호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비슷한 것으로 물산장려운동이 있을 것 같다. 1920년대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동반되었던 것이 일본 상품 보이콧 운동이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의 생각은 물산장려운동과 2019년의 불매운동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억지로 엮어서 생각하면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산장려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당시 다양한 사람들이 그 운동을 매개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운동 자체가 한계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논쟁 과정에서 당시 조선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 형성된 운동의 주체들이 이후 좌우합작운동(민족 유일당 운동)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2019년의 불매운동에서도, 그 과정 속 촉발된 담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확인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수 있을까를 논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박중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중구청의 사례를 통해서는 우리 시민 사회가 민족주의 과잉 현상을 어떻게 자정하고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합의해내는 과정들을 알아볼 수 있다. 물산장려운동 수업 또한 시민 사회의 소통 방식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싶다.
홍애린 학생으로서 대단한 책임을 지기에는 힘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과 일본 간 교류 활동에 참여한다든가, 내가 아는 것을 전파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이번에 캠프에 다녀온 것처럼 일본, 중국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각국의 관점을 이해해보면 시야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민간 교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혹은 SNS를 통해 오해가 있는 역사관의 전파를 발견하게 되면 페이지를 통하여 알리는 식으로 책임을 분담할 수 있을 것 같다.
권유환 일반적으로는 불매운동이 있을 것 같다. 혹은 자신이 동의하는 단체에 소속해서 일정량의 돈을 지원한다든가(일동 웃음) 더 넓게 간다면 학교 전체가 함께 하는 활동을 한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시민 사회가 분담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좋은 일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 불매운동 역시 취지가 좋긴 하지만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유민 일단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촉발시킨)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함께 알아가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피해에 대해 공부해보면서 일본 불매운동으로 인한 불편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박중현 언론이 한・일 관계를 다루는 맥락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시민들이 한・일 관계를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데 단순히 조회 수를 높이려는 의도로 국민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의 자극적인 기사만을 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팩트에 근거한 문제 해결 방향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결국 정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자에게 유리한 근거만을 끌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 굴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인권에 주목해야 가능하다고 본다. 인권에 주목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자연히 정치가들도 관련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기사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안 읽잖나. 재미가 없으니까.(웃음)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보기가 참 어렵다. 천편일률적으로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만 나오지, 왜 이런 운동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 결국 국경을 넘어 인권의 관점에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생각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조정아 이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큰 장벽은 한・일간 역사 인식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는 것이 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다른 관점부터 시작해서 과거사 인식의 차이가 극복되지 않고 정체돼 있다. 2019년을 계기로 교사들 역시 한국과 일본 사이 인식의 차이에 관심을 가져서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일본 내에서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공유하지 못한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마저도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천황체 폐지까지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한다. 이런 쟁점들을 역사를 통해 공통 지점을 발견할 여지를 찾아나가야 하는 것 같다.
박중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국가의 경계를 넘는 교육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대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과거에 대한 자국의 입장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두고 과거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를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첨언하자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각각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존재한다. 한국은 민족주의, 일본은 과거사 문제, 중국은 대국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각 과제에 대한 각국의 성찰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각국 시민 의식의 발전에 기대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만나 자극도 줘야 하고.
박중현 기본적으로 일본인들의 시각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다 해결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계속 청구권 문제를 거론하느냐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청구권 문제를 이렇게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실제 2018년의 대법원 판결 역시 청구권 문제가 1965년에 해결되었다고 보는 인식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나온 문제는 식민 지배가 불법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다. ‘불법’적인 식민 지배로 인해 피해를 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청구권이라기보다는 ‘위자료’를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자료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식민지 폭력에 대한 인간의 피해를 인권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실 일본에게만 위자료를 요구해야 한다기보다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 그것이 박정희 정부라 해도 어차피 한국 정부 아닌가? 한국 정부 역시도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1970년대와 2000년대 정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일부 보상을 한 적이 있다. 그 맥락에서 한국 정부 역시 일본 기업과 함께 1+1으로 책임을 지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계속하여 일본과의 대립 지점과 현상의 단편만을 다루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재호 사실 일상 속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때그때의 이슈로 역사교육을 마주한다면 많은 경우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환원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렇기에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보다 일상적인 교육 차원에서 인권. 평화 수업이 다양하게 진행된다면 휘발성 강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충분히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조정아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역사교육 강화는 당연히 국가중심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교육은 정치적인 대응의 차원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역사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강화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화시킨다고 해서 약화되는 것도 아니고.(일동 웃음) 정말 학생들의 수준에서 나눠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수업에서 반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교육을 강화한다고 할 때에 어떤 방향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가 논의가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중현 최근 상황을 보면 특히 속 터지는 것 중 하나가 이런 일이 생겼는데 너희는 뭐하느냐는 접근이다.(일동 웃음) 그러면 그 물음에 답하려면 우리 (교육계)는 교육을 통해, 활동을 통해 뭔가 더 평화와 인권의 측면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학교나 지방 자치 단체들은 그간 일본 지방 단체들과 진행하던 심포지움이나 세미나들을 끊어 버렸다. 아니 그걸 관에서 왜 끊나.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교류하도록 상황을 만들어줘야지. 물론 일본 여행을 자제해서 일본에 압박을 하자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렇지만 민간 교류에 대해서는 관의 개입을 통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변수가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국 남해군과 일본 도치현이 12년간 교류해 왔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해 올해에는 한국의 교류단을 못 보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류도 막고 수학여행을 막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정아 요새는 식민지 시대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일본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물어보면 모두 다 부정적이다. 그런데 수업 이후에도 그 생각은 잘 변하지를 않더라. 폭력, 제국, 전쟁 등에 의해 받은 피해로 인해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인류가 겪은 고통으로 인해 이를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게 됐다는 맥락으로 일제 시대를 가르쳐야하지 않는가라는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됐다.
사실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전쟁과 침략의 역사 속에서 합의된 것이다. 그 속에서 폭력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어떻게 키워갈지 우리 교사들 역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재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내부 시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사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한 총동원체제이지 않나. 전쟁 국가를 위해 일본 내부의 시민들 역시 국가에 동원되고 그들의 삶 자체도 인권이 파괴되었다. 우리가 배우는 국가사에서는 그런 부분도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생기는 것 같다.
전쟁이라는 테마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것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전쟁이 어떤 문제를 야기 시켰기에 그 이후에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내용들이 국가폭력을 비판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시키는 과정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1930, 40년대 수업을 할 때에 비는 지점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중현 동아시아사 수업을 하며 동경 재판에서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 안내하니, 어떤 학생이 “일본과 인도가 어떤 관계냐”고 묻더라.(일동 웃음) 아까 원폭 얘기도 했지만 전쟁의 피해가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가를 성찰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인간으로서 삶의 품격을 고민해보도록 하는 수업과 역사를 구상해야 수업도 살아나고 교사 역시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권유환 아까 대담을 통해 언급된 물산장려운동과 현재의 불매운동을 엮어 말한 부분을 배워보고 싶다. 학교에서 물산장려운동을 배울 때에는 3・1운동 이후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이라고만 알았는데 시민 사회 성장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학교에서도 역사의 맥락과 사회 이슈를 연계하여 배운다면 현 시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홍애린 수업 시간 때에 선생님께서 물산장려운동을 도입으로 2019년의 불매운동을 설명해주셨다. 이처럼 과거를 배울 때에 현대의 관점을 접목시킨다면 역사가 그저 지나가버린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 사고를 더욱 깊이 있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김유민 인권의 맥락에서 접근한 역사 수업에 관심이 많다. 학생들이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수업을 듣고 싶다. 친구들끼리는 인권 이야기가 나오면 갑작스레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무거운데 사실 나는 이런 문제를 더 자주 얘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고 그런 사회를 위한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18년의 대법원의 강제 노동 배상 판결, 일본 상품 불매운동, 중구청의 ‘NO재팬’ 현수막 사건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시민 정체성’을 어떻게 역사 교육에 녹여낼 수 있을까. 학생, 역사교사가 100분가량 이야기를 나눠봤음에도 여러 과제들이 남는다. 특히 현 시대 상황에 시사를 줄 수 있도록 역사 교과서 내러티브를 평화, 인권, 민주주의의 차원으로 맥락화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동아시아 3국이 과거사 문제를 두고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주파수를 맞추어 가야 한다는 점은 버거운 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사교육에서 이 과제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이니치로서 비판적 지식인인 서경식은 일본 사회가 극우화된 원인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책임에 대해 판단하는 주체, 윤리적 주체로서의 개인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책임을 분절할 줄 알고, 분절된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기에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쩌면 역사교육은 ‘버거운 과제’들을 직면하며 ‘시민 주체’라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역할로서 유의미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