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전근대 한국사 수업을 위하여

특집 :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7차) 후기

역동적인 전근대 한국사

수업을 위하여

- ‘전근대 한국사의 대안 내러티브 개발’ 세미나 후기


/ 김은미(경기 양도중학교)



역사교사에게 교육과정이 주는 무게감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어떤 과목보다도 무거울 것이다. 역사 교육과정은 교과서 속에 사실을 어떤 형식으로 담을 것인가, 어떤 내러티브로 서술할 것인가, 방대한 양을 초/중/고 학교 급별로 어떻게 차별점을 둘 것인가 등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오래된 문제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당장 내일이 급한 신규교사 입장에서는 외면하고픈 문제였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전역모 교육과정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이 모임에 친한 언니가 있기 때문에, 언니의 활동이 재밌어 보여서(?) ‘한번 참여해볼까’ 정도였지, 사실 교육과정에 대한 투철한 고민이 나를 그 곳으로 이끈 것은 아니었다. 교육과정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모임이 정기적으로 진행될 때마다 마음 속 교육과정을 외면하려했던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교사의 몫은 ‘주어진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과정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과정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토론회를 거치면서 교육과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받아들인 후 재구성할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역사교사의 입장에서 재구성된 교육과정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하게 되니, 비로소 교육과정이 수업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 교과서에 담겨있는 많은 내용요소를 주어진 시수 안에 수업해내려면 교과지식을 활용해보는 활동 수업을 자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짧은 경력 (1.8년차)안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초임 ‘생초보’ 신규교사에게 교과서는 생각보다 벗어나기 힘든 절대적인 의미였다. 보조 자료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지문을 가져와도, 색다른 수업자료를 가져와도, 결국은 교과서로 정리하게 되니 교육과정을 담는 그릇인 교과서를 성전처럼 모시게 되어버렸다.

토론회를 참여하게 되면서 교과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난날들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또한 교과서가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교육과정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게 되었다. 혼자하면 막막한 고민이었겠지만, 여러 전문가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는 토론회에 와보니 귀동냥만으로도 답답했던 속이 좀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참여하게 된 토론회는 <전근대 한국사의 대안 내러티브 개발>이라는 주제로 관지헌에서 진행되었다. 총 3파트로 구성되었으며 part1은 한국 고대사 교육과정 부분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국사편찬위원회 조영광 선생님이 발제해주시고, 구난희 교수님이 토론을 진행해주셨다. par2는 고려시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주제로 고려시대수업분과를 대표해 우주연 선생님께서 대안을 제시해주셨다. 마지막으로 part3 조선후기 교과서 서술을 주제로 임성수 교수님께서 발제해주시고, 양현승 선생님께서 토론을 진행해주셨다. 파트별로 부족하지만 감명 깊었던 부분에 대해 짧은 소회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part1. 한국 고대사 내용구성에 대한 제언


중2 <역사1>을 2년째 맡고 있는데, 석시시대부터 남북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멀고도 먼 역사를 어떻게 현장감 있게 아이들 삶 속에 의미 있는 내용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매번 고민이 되었다. 고대사에서 민주시민교육 내용요소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했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용맹한 고구려, 야무진 신라, 화려한 백제를 주제로 내용 요소 전달에만 급급했었다. (다시 생각해도 매우 부끄럽다)

조영광 선생님께서 사회가 요구하는 ‘고대사는 화려하게 대단하게!’라는 공식이 주는 문제점을 지적해주시고, 고대사로 민주시민교육을 하기에는 내용적으로 적합한 내용을 찾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보다는 학습 방법 측면에서 주제중심으로 내용을 접근하여, 심층적인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이들 삶 속에서 고대사가 의미를 지니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매우 공감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구난희 교수님 말씀대로 이 조차도 현행 입시제도하에 학생들에게 또 다른 성전이 되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되었다.


part2. 고려 시대 서사의 검토와 재구성을 위한 수업 궁리


학생시절 배운 고려시대는 늘 호족, 문벌귀족, 권문세족, 신진사대부라는 4시기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교사가 된 후 지배층 위주의 역사 서사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방법을 찾지 못해 배워왔던 방식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고, 이 밖에도 서희의 외교담판에서 배울 수 있는 사실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핵심주제로 삼지 않고 단순히 고려의 3차례 침입 중 1차 침입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가르쳤다. 재구성하고 싶었지만, ‘이걸 언제 혼자 구상해~’라는 핑계로 자신과 타협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나열하다보면 사실 끝도 없음을 알기에 나머지는 ‘이하 생략’하도록 하겠다. 교단에 선지 2년차에게는 구상한 내용을 어떻게 실현 가능한 학습지로 구체화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포기라는 버튼을 누르게 되는 듯하다. (매우 부끄럽다)

그런 나에게 고려시대수업분과 선생님들께서 오랫동안 함께 고민하신 결과로 탄생한 재구성된 수업 내러티브는 선물과도 같았다. 선생님들의 제시해준 내러티브를 보면서 당장 내 수업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얼마 전 거란의 침입부분을 가르칠 때 활용하여 수업했다. 요즘 외교로 이슈가 많은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애들의 호응도 좋았고, 외교의 본질이 무엇일지에 대해 서로 고민을 나눠볼 수 있어서 뜻깊은 수업이 되었다.

하나의 지도안을 만들기 위해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검증 후 수정하는 작업을 여러번 반복하셨다고 들었다. 이 자리를 기회 삼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part3. 한국사 교과서 변천과 조선 후기사 서술


조선 후기 교과서 서술의 큰 내러티브인 ‘내제적 발전론’에 대해서 부끄럽지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임성수 교수님의 발제문을 보고 평소 고민해본 적 없는 내용이라서 그런지 큰 충격을 받았다. 내제적 발전론에 입각한 내러티브는 사실 내 수업 속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후대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은 위안으로서 ‘우리도 경제 발전 하고 있었다’는 논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를 들으면서 교사가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계의 동향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세도정치를 역사 퇴보의 관점으로 서술한 것, 영정법과 균역법이 결과적으로 농민들의 삶을 나아지지 않게 했다는 것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가르쳐왔는데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앞으로는 교과서 서술을 늘 의심해보는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사교육론에서 배운 해체적 읽기가 이렇게 쓰이는 것임을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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