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인권-평화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을 상상하다

특집 :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8차)

민주주의-인권-평화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을 상상하다

- 한국근현대사 교육과정 대안찾기 : 평화의 관점에서


/ 양현승(경기 운암중학교)




1. 교육과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지난 7월 26일, 전국역사교사모임·역사교육연구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안교육과정 프로젝트인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의 여덟 번째 세미나가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2018년 4월 28일의 첫 세미나 참석을 시작으로, 이번까지 여섯 번을 직관하였고, 지난 7차 세미나에서는 한국사 교과서의 조선후기사 서술에 관한 주제의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고작 경력 5년차에, 중학교 한 곳에서의 경험이 전부인 제가,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던 해는 2017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3년차였던 당시, 새롭게 교육연구부로 자리를 옮기고 평가계 업무를 맡으면서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으로 영역을 분류한 <국어과 교육과정>, ‘체험’, ‘표현’, ‘감상’으로 영역을 설정한 <미술과 교육과정> 등 역사교과와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에 기반한 다채로운 평가계획 사례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자고로 <역사과 교육과정>은 연대기 흐름에 맞춘 사건・정책들로 이어진, 통사(通史)적 구조로 짜이는 것이지!”라고 저도 모르게 쌓아왔던 ‘신성한’ 고정관념들이,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겠다는 ‘신선한’ 충격들로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2017년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국정교과서>를 마침내 폐지시킨 것에 이어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차원에서의 역사교육과정 재개정을 위한 설문조사와 토론회가 긴급하게 진행되었던 해이기도 했죠. 2015년 초임 발령 이래로, 국가가 공인한 정사(正史), 일명 ‘올바른 역사’로 획일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해왔지만, “그래서 앞으로 <역사과 교육과정>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교과목의 명칭, 범위와 시수, 국정/검정 여부에만 관심을 뒀었고, 기껏해야 성취기준, 핵심성취기준을 참고하여 교과서 단원 순서와는 다르게 수업을 재구성해보는 차원에서 교육과정 문서를 들춰보는 정도의 레벨이었기 때문에, 기존 교육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안목과, 그 이상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은 몹시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사로서 “현장수업 사례 나눔이 먼저냐?” “교육과정 대안 논의가 먼저냐?” 의 이분법적으로 볼 수도 있는 논쟁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하기 보다는 한쪽이 나무라면, 다른 한쪽은 숲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2018년부터 교사모임 <교육과정 위원회>에 합류하게 되었고, 본 세미나에도 참석해온 것입니다. 현재도 그 안목과 역량을 갖췄다 말하기엔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하지만, 이번 세미나에서도 새로 듣고, 느낀 바가 있어 이곳에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2. 너무나 촉박하게 진행되었던 재개정 과정


첫 순서는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 어떻게 만들까?”를 주제로, 제가 속한 <교육과정 위원회>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계신 한국애니메이션고의 김남수 선생님께서 2018년에 새롭게 고시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역대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의 변천 과정을 훑고, 대안을 둘러싼 쟁점들, 앞으로 고민해야할 화두와 각각에 대한 의견들을 경기기계공고 김용석 선생님과 함께 제시해주셨습니다.


이름을 뭐라 붙여야 할지 애매한, 2018년에 고시된 이번 <새 2015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은 2020학년도 중・고등학교 신입생 적용을 기한으로 워낙에 급박하게 작업에 착수했기에 실질적인 개발기간이 4개월에 불과했던 촉박한 일정 속에서 개발이 이뤄졌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짧았던 개발 기간만큼 밀도 있게 논의 수준을 끌어올렸어야했는데, 그동안 국정교과서 폐지에만 몰두해 있다가, ‘교육과정의 재개정’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준비 없이 맞닥뜨리는 바람에, ‘긴급 토론회’, ‘긴급 설문조사’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우리가 너무나도 급하게, 급하게 전국의 역사 선생님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공론화를 다그치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온전히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사전연구부터 고시에 이르기까지 꼬박 4년이라는 기간을, 준비된 현장교사들의 주도로 개발했던 <2007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이 지금도 의미 있는 사례로써 회자되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합니다.


위탁기관으로서 업무연속성을 지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소속 위원들의 영향력은 큰 반면에 다른 출신 위원들 중에는 교육과정 개발 경험자・숙련자가 적었던 부분, 당초 발주된 연구사업안의 경직된 틀에 갇히다보니, 폐기된 기존안과 달리 집필기준을 최소화・대강화하기로 하였음에도 ‘중학교 역사 팀’, ‘고등학교 한국사 팀’보다도 과다하게 편성된 ‘집필기준 팀’의 연구 인력을 유연하게 재분배해주지 않았던 점, 중・고 연결체계안을 채택함에 따라 전체 연구진이 함께 소통하고, 협업해야할 필요성이 높았음에도, 연구팀들이 별도의 개별 연구로 제각각 위탁 운영되는 상황 속에서 서로의 칸막이를 넘나들 기회가 적었던 부분, 조금 더 많은 역사교육 연구자들과 교사 참여의 필요성 등 그 밖에 발표자 선생님께서 열거하신 이번 교육과정 개발과정에서의 아쉬움들을 잘 정리해두었다가 다음번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는 이를 조금 더 완화시키는데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교육과정 구성 방식을 둘러싼 쟁점들


새롭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쟁점들도 이번 발표를 통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첫째는 2015 개정교육과정으로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에 처음 들어왔지만 ‘계륵’이 되어버린 ‘학습요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타 교과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문장에서 끄집어낸 핵심단어 정도를 ‘학습요소’로 제시한다지만, 역사교과에서의 ‘학습요소’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 정책”, “해동 천하”, “독도” 등과 같이 교과서 내 소주제별로 해당 내용들은 반드시 담을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세세하게 ‘학습요소’가 나열되어 있었던 박근혜 정부의 안에 비해서는 많이 최소화시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현재와 같은 개념의 ‘학습요소’는 지면 분량이 제한된 검정교과서의 다양성을 크게 제약하는 족쇄로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역사교과목이 ‘통사’가 아닌 ‘주제사’ 체계라면 이번 주제 혹은 시대에서는 어떤 핵심역량·개념을 학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각 출판사의 집필진들은 이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내용 소재로 자유롭게 취사선택하여 구성해보도록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두 번째는 “중・고 연결체계안 vs 중・고 독자체계안” 이라는 쟁점으로 전자는 교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후자는 역사 내용학 교수들이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안이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고등학교 한국사> 내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의 비중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의 대목에서는 수능 필수이자, 모든 공무원 시험의 한국사 표본이 되는 <고등학교 한국사>만의 유일무이한 대표성에 자신들이 전공하는 영역에 대한 위상을 결부 지으면서 가뜩이나 부족했던 개발기간 동안 양측 대표 위원들 간의 첨예한 갈등과 에너지 소모를 야기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번에야 현장 교사 다수의 여론에 힘입어 전자로 관철시키기는 하였으나, 다음 교육과정 개정 때도 이와 비슷한 양측의 대치는 재현될 것이고, <2007 개정> 좌절 이래로 그래왔듯이 다시 전근대사 비중이 회복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양측이 지닌 상반된 입장을 택일하여 승자 독식하게 되는 것만 같은 현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2007 개정>에서 정착시키지 못한 <한국문화사>를 선택과목으로 부활시켜, 최근 특히 더 역사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사회・경제사 및 문화사 성과들을 ‘고교 수준의 주제사’로서 새롭게 반영하고,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는 ‘수능 필수’라는 기득권적 위상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한국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고등학교 역사>로 탈바꿈할 수 있다면 소모적인 논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고, 동시에 7차 교육과정에서는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이, <2007・2009 개정>에서는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이 그랬듯이 새로운 미답의 영역으로 고등학교 역사교육이 진일보하는 디딤돌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쟁점이었던 중학교 역사에서 한국사와 세계사의 내용 구성을 통합할지, 분리할지에 대한 의견은 현장 교사 집단 내에서도 “한국사-세계사를 현행처럼 대단원으로 나누어 구성한다(6.4%) vs 한국사와 세계사를 학년별로 나누어 구성한다(42.0%)” vs “한국사-세계사 내용을 대단원 내에 통합하여 구성한다(16.3%) + 전근대사는 한국사-세계사를 대단원으로 나누고, 근현대사는 통합하여 구성한다(28.7%)” 워낙 팽팽하게 양분 된 여론 분포를 보였습니다. ‘한국사-세계사 학년별 분책 분리구성안’이라는 이번 결정이 중학교에서는 한국사 영역 진도에 치이고, 고등학교에서는 선택률 저조라는 미비한 존재감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지라도, 앞으로 나오게 될 <중학교 역사 ①>이 그저 기존 <고등학교 세계사>의 축약판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각국 혹은 지역사를 기반으로 한 통사체제를 유지한 체 유럽-중심, 중국-부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동안의 노력들이, 사실은 의도치 않게 <세계사>를 외울 것만 많은 과목, 생소한 인명·지명·국명으로 가득한 과목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막대한 부담감을 떠안긴 것은 아니었는지요.



4. 앞으로의 교육과정(한국 근현대사) 모습에 대한 고민


7차 교육과정의 <한국 근·현대사>를 뛰어넘을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을 모색할 때 참고할만한 사례로 발표자 선생님께서 네 종류의 글을 소개해주셨는데,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시민 형성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교육과정을 고민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집니다. 토론자로 나선 김용석 선생님께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들에 덧붙이는 플러스알파로 두 가지 화두를 던지셨는데, 첫 번째는 “북한을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였습니다. 정부 수립의 정통성 내지는 경제・군사적 체제 경쟁에서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한 비교대상으로서, 혹은 뒷부분에 통일 노력을 이야기하면서 소략하게 끼워 맞추는 식으로 북한의 역사를 애매모호하게 다루기보다는 북한 또한 현대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병렬적으로 배치하거나 곁들일 것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보수 언론 측에서 우리 역사교육계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이 좌편향 되어있다 공격하는 논리로 북한의 부조리한 면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곤 하는데,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서술할 때 북한의 역사도 함께 서술해나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이승만의 장기 집권 과정에서 경쟁자 조봉암을 사형시킨 사건을 다룰 때, 같은 잣대로 김일성의 박헌영 숙청이나, 종파투쟁 평정 과정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데탕트,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박정희 정부의 10월 유신을 헌정 파괴 친위쿠데타로 비판할 때,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과 2대・3대 권력 세습 또한 같은 지면에서 다룬다면 앞서 제시한 고민들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6.25라는 전쟁의 남침 책임을 강조하는 것,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의 실패로 인한 경제 분야 낙후는 굳이 교실에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시대이지만, 민주공화국으로서의 관점에서 북한의 역사를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과 함께 살펴보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번째로는 다문화 사회, 세대 갈등, 지역 격차와 같은 뜨거운 이슈를 역사교육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화두가 있었습니다. 허구적인 ‘단일혈통’ 한국인의 전유물로써의 역사가 아닌, 우리 사회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들이 함께 담겨있는, 역사 서술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앞으로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5. 평화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전쟁사 교육


급격하고도 커다란 역사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써 ‘전쟁’은 역사교육에서 오랫동안 비중 있게 다뤄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내용 서술 대부분이 전개과정, 승패, 자국의 이해 평가로 채워지다 보니, 학생들이 ‘전쟁사를 통해 평화를 학습하기 보다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흥미’ 소재로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초등학생 시절 <사회과부도>를 펼쳐놓고, 네 컷의 한국전쟁 전개과정 지도를 매우 흥미롭게 자습(?)했던 저의 자기고백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가르쳐야 전쟁을 통해 평화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 날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 대안 찾기의 두 번째 주제로 ‘전쟁하는 인간에서 평화하는 인간으로 – Peace Builder를 세우는 한국전쟁 수업안’에 대해 송림중학교에서 근무하신 정희연 선생님께서 발표하셨고, 반송고등학교의 이정숙 선생님께서 토론에 임해주셨습니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대한 담론은 ‘전통주의’, 브루스커밍스의 ‘수정주의’, 소련 붕괴 이후의 또 다른 기밀문서의 발굴·연구와 같이 전쟁 발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가 중심이었지요. 그래서인지 교과서에 ‘남침’이라는 용어가 들어있지 않다!, 학생들이 6.25를 ‘북침’(‘북한 침입’의 줄임말로 오해 가능성 다분)으로 알고 있다! 와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분단폭력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과 ‘평화적 관점의 역사교육’ 검토와 같은 더 높은 차원의, 성숙한 사회적 논의는 꺼내보지도 못하고요. 전쟁의 행위주체를 ‘국가 vs 국가’로만 바라보다 보니, 악의 세력인 적국의 구성원들은 당연히 죽어 마땅한 나쁜 존재, 이들로부터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지키는 아군과 우군은 국민에게 그 어떤 폭력과 강요를 하더라도 용인되는, 한없이 숭상해야할 존재로 그려지진 않았던가? 그 아군이 우리가 직접 교실에서 만나는 혈기 넘치는 남학생들과 같은 또래로서, 승산 없는 사지로 내몰려야만했던 학도병이었을지라도……. 개전을 결정 혹은 이를 예방할 수 있었던 권력을 지닌 ‘소수의 주체’와 승패와 무관하게 직접 살갗으로 전쟁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던 ‘절대 다수의 당사자’가 불일치했던 답답하고, 먹먹한 현실이 인류 역사 내내 이어져온 와중에, 그동안의 전쟁서사는 ‘전자’만을 유일한 주어로 전제하지는 않았는지. 국가를 주어로 ‘전투의 승패와 직결되었던 결정적 전술들’, ‘전선의 이동과 방어선 구축, 상륙작전 단행과 같은 전략적 판단’에 주목하는 마치 사관학교의 <전사 戰史>와 같은 교육을 관성대로 하면 학생을 탁월한 지휘관 꿈나무로 기를 순 있어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시민으로 키울 순 없을 것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하나서 묶어서 평가하기에는 전쟁이 빚어내는 경험들은 너무나 많은 편차를 보이기에, 사회구성원 개개인과 다양한 집단들의 전쟁 경험을 두루 짚어보고, 이에 대처하는 능동적 선택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전쟁의 기억’을 가르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잔인한 학살의 장면과 같이 전쟁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평화교육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는 두 분의 의견도 함께 공감이 되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의 일제강점기의 고문 전시·체험이 인권의 존중과 평화의 가치 학습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전쟁의 잔혹성을 그 누구보다도 체감했을 참전군인들 모두가 전후에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가 되진 않는다는 점, 오히려 자신이 겪은 폭력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의 실행을 주창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폭력성의 적나라한 시각화’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전쟁은 직접적인 폭력이 이뤄지는 교전기간이 끝난 뒤에도 그 이상의 시간동안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지속되며, 이러한 폭력은 인간 개개인의 삶을 왜곡시키고, 한 사회의 자유로움과 정치·문화적 다양성을 크게 제약시킨다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를 희구하는 것에 만족하는 교육이 아닌, ‘모든 형태의 폭력’이 없는 적극적 개념의 평화를 위해 비판적으로 현 사회를 성찰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의 교과서에서는 전쟁의 결과로 희생된 인명이나 파괴된 가옥·산업 시설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나열했다보니 ‘피아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지난번 것보다 이번 희생은 적다.’는 식으로 숫자에 집착하며 규모를 갖고 가치를 판단하는 문제도 주의해야할 것 같습니다. ‘서부전선’은 이상 없는데, 참호 속의 ‘나’라는 개인은 그 순간 죽어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성찰로써 ‘전쟁의 숫자’를 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집2.jpg ‘전쟁하는 인간에서 평화하는 인간으로 – Peace Builder를 세우는 한국전쟁 수업안’ 을 발표하는 정희연 선생님


6. 역사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교육과정의 대안


준비된 모든 발제와 토론이 끝난 뒤 연단 아래에서 참관하셨던 선생님들께서 네, 다섯 분씩 마주 앉았습니다. 이야기 나눌 의제는 세 가지, 1) “나는 근현대사 수업을 이렇게 해봤다.”는 수업 사례, 2) 근현대사 수업을 하며 견지하려 했던 원칙과 적용해본 방법, 3) 앞으로의 새로운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 반영되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한 것으로 이번 세미나의 내용들을 교사들의 개별적인 경험 사례들로 풀어보고,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모아보고자 하는 분임토의! 지난 일곱 차례의 세미나에서도 이뤄졌듯이 이번에도 진행된 것입니다. 저는 중국 상해 한국학교 파견 중에 방학을 맞이하여 자주연수에 합류하신 최운 선생님을 비롯하여 광명 운산고의 문순창 선생님, 광명 가림중의 이은안 선생님과 의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공감을 많이 얻었던 내용으로 과거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비중이 소략했던 시절 학생이셨던 선생님들의 경험 속에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며, 감춰진 지식을 찾아내고, 금기된 지식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지적 쾌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딱 우리 세대까지였던 것 같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일베 속의 왜곡된 역사자료가 되레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미 민주화가 되어버린 체제, 민주사회의 상식을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체득한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봉인된 기존의 지식조차 없는데, 이들에게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사의 노력이 낯간지러운, 소위 오글거리는 이야기로 와 닿지는 않을까? 하나의 운동사를 강요하는 듯이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나눴습니다.


오히려 경찰에게 고문 받는 장면을 보고는, “선생님, 저라면 1초 안에 바로 불겠습니다.”, “저는 이러저러하니까 친일파 할 건데요.”라는 현실순응적인 아이들의 발언이 과거보다 더 당당하게 나오는, 친구들에게 Cool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서, 우리가 학습한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지금의 학생들에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다시 민주주의를 강조해야하는 상황인가? 민주화 다음의 지향 가치는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최운 선생님께서 상하이에서의 경험을 들며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상하이에서 수입 박람회가 개최되어 국가 주석인 시진핑이 선생님이 거주하고 있던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반경 수 킬로미터 이내의 시가지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호텔 값을 주어 집을 비우게 하고, 양꼬치 구이 포차부터 공장에 이르기까지 문을 싹 닫게 하는 모습을 보며, “리더를 언제든 구성원들이 원할 때 바꿀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데, 한국은 민주화가 특징인 반면, 동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한국의 민주주의조차도 1987년 이후에도 수없이 부침을 겪어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민주화는 여전히 유효한 주제이구나.”라는 의견에 공감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사의 권위, 혹은 수행평가의 채점권한에 스스로 “이게 맞아요?” 눈치를 보며, 민주주의 단원의 수업마저도 비민주적으로, 일방향적으로 흡수만 하려는 학생들의 모습들에 대한 고민도 나눴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모습은 결국 교사가 자초한 측면도 있는데, 역사 시기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선생님들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경향, 교과서의 후반부이다 보니 진도에 쫓겨서 강의를 하게 되고, 혹은 학생주도 학습활동을 했더라도 마지막에 결국 “이것이 의의다.”라며 최종 정리를 직접 해줬던 모습들 때문에, 이것이 학생들에게는 올바름을 강요하는 느낌으로 다가가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사가 가진 가치관을 그대로 전수해주는 교육이 되면,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 단원을 학습하는 것인가? 민주주의 단원만큼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문순창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첫 한 달 동안 스스로 짜온 커리큘럼을 갖고, 학습을 진행하는 덴마크 웁살라 대학의 교수들처럼, 우리도 아이들을 믿고 수업의 주도권을 맡김으로써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배울 수 있게, 교사의 입이 아닌, 아이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게 할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7차 교육과정의 <한국 근·현대사>의 틀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내러티브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습니다. 일례로 최운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기 수업을 하시면서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사과했던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과 우범선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농업 과학자가 되어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하고, 한반도에 일본산 품종을 대체할 김장배추를 개발한 우장춘의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기존의 민족서사, 국가주의 서사를 깨보려 했던 시도가 학생들에게도 인상 깊게 다가갔던 것 같다는 경험을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제의 억압과 수탈’ vs ‘이에 대응한 저항’과 같은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헷갈리게 하면서도 경계를 넘어서는 사유를 제공하는 수업을 고민하고 계속해서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문순창 선생님께서는 1997년경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관을 서대문 형무소 앞에 건립하려다가 “독립운동 성지에 왜 이런 것을 짓느냐!”는 광복군 할아버지들의 반발로 좌절되었던 사례를 소개하며,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역사를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재단했던 기존의 관념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의 감정을 공유하셨습니다. 특히 “그동안 1910년부터 10년 단위로 일제가 어떻게 통치했느냐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응했던 독립운동을 가르치다보니,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어디에 세워야할지가 난감해지면서 오히려 독립 운동사를 풍부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시대를 1919년(3.1운동을 계기로 새로운 공동체를 쌓아가는 기점)과 1931년(파시즘 일본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성을 폭발시키는 기점) 기준으로 재편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고민도 함께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3.1운동 때의 일본 신문의 언론 보도, 광주 5.18 때의 신군부 검열에 의해 통제받았던 언론의 보도 내용을 함께 제시하며, 부당함과 불평등, 불의를 지적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폭도’로 적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결해보기도 하고, 이를 통해 민주사회에서 ‘제4의 권력’이라 불리는 언론·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조금은 ‘사회과목’스러운 자유학기 수업 경험,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 전남도청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시민들의 사진과 ‘1973년 10월 태국 방콕’, 전승기념탑을 둘러싸고 있는 시민들의 사진을 오버랩하며 시작했던 <한국~동남아 독재와 민주화의 같지만 달랐던 평행이론>이라는 주제학습을 통해 우리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한국만의 우월한 선민의식으로만 시야를 좁히지 말고,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태국의 ‘10월 14일 민주항쟁’ 등과 함께 조망하였던 역사② 정규수업 경험들을 나눠드리기도 하였습니다.


분임토의와 발표까지 진행되며 기나긴 세미나가 끝나고, “교육과정 참 중요하다. 당면한 내 수업에서 하려니 버겁다. 그런데 아까 교육과정을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고 어떻게 타협적으로 만들고, 봉합하고, 미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봤기 때문에. 어찌되었건 교육과정은 우리 역사교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역사교육과정을 만들 때 네 레벨의 지식이 상호 작용 내지는 충돌을 하게 되는데, 첫째는 연구자들이 좋아하는 지식이 있고, 둘째는 교육과정에 담긴 지식이 있고, 셋째는 역사교사가 성심껏 가르치려는 지식이 있고, 넷째는 학생들이 흥미로워 하는 지식이다. 여기서 이 네 레벨의 지식을 종합하고, 조망하고, 구상하는 것은 역사교사의 몫이다.”는 윤종배 선생님의 마무리 발언이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 어떻게 만들까?’를 의제로 7월 26일에 열렸던 교사주도 교육과정 대안 연구 세미나에서 배운 내용들과 소감들을 몇 장 적어보았습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제가 이렇게나마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미력하게나마 개인 의견을 제안해볼 수 있게 된 것은,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교육과정에 관심을 갖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며 고민했던 바에 힘입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년 동안 달려온 대안 교육과정 탐색 프로젝트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는 이젠 두 번의 세미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9월 : 통합역사, 역사탐구, 여행 세계사의 가능성 탐색 / 11월 전국 역사교사의 날 : 초, 중, 고 교과서 상의 계열화 구현 논의) 다음 세미나 현장에서는 지금 이 글을 흥미롭게 읽어주신 선생님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둠토의를 하며, 서로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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